몰타의 매The Maltese Falcon, 1930
by 대실 해밋
대실 해밋Dashiell Hammett(1894~1961)은 미국의 소설가이며 단편 작가, 정치 활동가였다. 메릴랜드 주에서 태어났으며, 다양한 직업을 거친 끝에 핀커턴 내셔널 탐정 사무소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절의 활동은 그의 소설 대다수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현대 미국 미스터리 소설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1929년부터 1934년까지 오 년 동안 출간한 다섯 편의 장편은 미스터리 장르의 고전이다. 죽기 전까지 삼십 년 동안 희곡 작가 릴리언 헬먼Lillian Hellman과 관계를 가졌다. 정치적 신념으로 인한 수감의 후유증과 결핵으로 점점 쇠약해졌고, 평생에 걸친 과도한 흡연과 음주의 결과 폐암으로 사망했다.
마크 빌링엄
“검은 새에 대해 얘기 좀 해봅시다……”
나는 학교에서 셜록 홈스 소설을 읽었고, 《대부The Godfather》와 《죠스The Jaws》를 통해 대중소설의 세계를 발견했다. 하지만 존 휴스턴의 영화 〈몰타의 매〉를 보고, 해밋의 ‘위대한 소설 네 편’을 피카도어Picador 판으로 찾아 읽었을 때에야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몰타의 매》는 해밋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거의 항상 미스터리 소설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되어왔다. 출간 후 여든두 해가 흐른 지금까지도 하드보일드의 물꼬를 튼 첫 작품으로서 《몰타의 매》가 가지는 중요성이라든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와 로스 맥도널드Ross Macdonald 등 후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나는 다만 《몰타의 매》의 영예가, 마땅히 장르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지점을 훨씬 넘어선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중요한 소설일 뿐 아니라, 위대한 소설이다.
나는 언제나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용어에 의구심을 제기해왔다. 영국 사람들이 ‘범죄소설crime fiction’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소설을 미국에서는 관습적으로 ‘미스터리 소설mystery fiction’이라고 부른다. 이 장르에 속한 소설 중 20세기 중반부터 등장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 소설 대다수는 미스터리라는 정체성에 대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다. 그 점을 고려해보자면 ‘미스터리’는 확실히 부적절한 용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수수께끼 풀이’라는 요소가 ‘미스터리’ 장르에 속한 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질이었던 시점 ─ 물론 전형적인 ‘누가 범인인가whodunnit’ 장르를 뜻한다 ─ 에서 아주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몰타의 매》 자체는 내 생각에 미스터리 소설 유형과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책이기도 하다. 세 번째 소설인 이 작품을 통해, 다른 무엇보다 주인공 샘 스페이드를 통해, 해밋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 유형을 창조했다. 그리고 이 비유를 한계점까지 잡아 늘려 말하자면, 《몰타의 매》가 일단 끝나자마자 그 빌어먹을 유형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이 책에서 핵심 미스터리는 특유의 복잡 미묘한 줄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검은 매 자체는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맥거핀이며, 스페이드가 이 새를 찾아 헤매는 무리에 합류하는 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브리지드 오쇼네시, 캐스퍼 거트먼, 조엘 카이로와 어울리면서 매 조각상에 관심 있는 척하지만, 실상 제 파트너를 죽인 자를 찾아내 체포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그 셋이 서로 반목하도록 조종한다.
그렇지 않던가?
물론, 스페이드의 행동에 관해서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해석이 존재한다. 해밋은 독자들로 하여금 캐릭터의 의식 상태를 도식화하도록, 스페이드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럼으로써 살인자의 정체라든가 까마득한 과거에 만들어진 보물의 행방보다 훨씬 복잡하고 흡인력 있는 미스터리를 창조한 것이다.
독자 입장에선 그저 스페이가 파트너 마일스 아처가 살해당한 장소를 둘러본 뒤 거리를 걸어갈 때, 혹은 브리지드 오쇼네시와 침대에서 뒹굴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독자는 스페이드가 하는 말과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엄밀한 그의 행위만 가지고 가설을 세워야 한다. 해밋은 광고업에 종사하던 초창기 시절, 그가 ‘감수 분열meiosis’이라고 불렀던 테크닉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절제의 활용은 수사학적 요령이다. 속이는 게 아니라, 인상을 더 강렬하게 남기기 위한 것이다.
해밋은 ‘덜 쓰는 게 더 많은 효과를 낸다’는 교훈을 일찌감치 터득했고, 《몰타의 매》 전반에 그 지식을 활용하여 최고의 효과를 거두었다. 장편소설치고는 성격묘사가 매우 적게 사용되고 오로지 대사만을 통해 제시되는 편이다. 폭력 행위는 드물게 등장하고 그럼으로써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세 건의 살인이 일어나는데, 그중 오직 한 건인 자코비 선장의 죽음만이 실제로 묘사된다. 인물들은 꽤 자주 총을 휘두르지만, 진짜 싸움은 그들의 술책을 통해 발생한다. 그들 모두 너무나 얻기 힘든 매 조각상에 자기 손을 얹기 위해 무슨 짓이든 기꺼이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가까스로 얻은 보물은 ─ 그것을 쫓는 인물들이 그렇듯 ─ 겉보기와 전혀 다른 존재로 판명된다.
살인자와 배후 조종자 무리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인물들로 꾸려졌다. 거트먼, 오쇼네시, 그리고 젊은 총잡이 윌머까지도, 모두 해밋이 핀커턴 탐정 사무소 시절 일 관계로 알았던 이들을 기반으로 창조한 인물들이었다. 오쇼네시는 예전 고객이었고, 윌머는 ‘꼬마 강도’라는 별명이 붙은 범죄자였고, 카이로는 위조범이었으며, 거트먼은 미심쩍은 독일 정보원이었다. 샘 스페이드만이 해밋의 상상만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스페이드의 모델은 없다. 그는 꿈속의 남자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립탐정들 대부분이 스스로 꿈꾸었을 모습, 그들이 자만심에 찬 순간에 스스로 근접해가는 목표로서 떠올렸을 법한 모습이 바로 스페이드다.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으로 각인돼버렸지만, 해밋의 ‘꿈속의 남자’는 챈들러식 모험을 찾는 기사나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아니다. 《몰타의 매》가 1941년 영화화되었을 때 분명 험프리 보가트는 아이콘으로 남을 만한 연기를 펼쳤지만, 감독 존 휴스턴이 원래 스페이드 역으로 조지 래프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살인자를 주로 연기했던 배우 래프트는 보가트보다 확실히 훨씬 더 ‘금발의 악마’라는 원작 속 해밋의 묘사에 가까웠을 것이다. 휴스턴이 자신의 선택을 관철시켰더라면, 스페이드의 진짜 동기는 소설을 읽은 독자들만큼이나 영화 관객들에게도 확실하게 짐작할 수 없는 미묘한 인상으로 남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해밋은 썼다. “사립탐정이란 거칠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 범죄자든 순진한 구경꾼이든 고객이든 그가 마주치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해밋은 플롯을 짜는 데 능수능란했지만 그보다 도덕적 모호함을 탐구하는 쪽에 훨씬 몰두했고, 샘 스페이드라는 캐릭터를 통해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해밋은 독자로 하여금 스페이드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믿게 만든다. 동료 아처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무심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 사무실 문에 걸린 아처의 명패를 치우는 모습, 게다가 아처의 아내와 저지른 불륜은, 스페이드가 (그리고 해밋이)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하고 싶어 했던 것만큼 완전히 나쁜 남자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훨씬 나중에야 밝히기 위한 장치이다.
“내가 겉보기만큼 비도덕적인 사람일 거라고 너무 확신하진 마시오……”
해밋의 의도적인 방향 이탈은 이런 목적으로 활용되었고, 거장다운 솜씨로 완수되었다. 소설 초반 이후 책장이 거의 다 넘어갈 때까지 마일스 아처 살인사건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스페이드는 매 조각상의 행방을 찾는 데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파트너의 살인범을 조사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그는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 기꺼이 해치운다. 전형적인 팜 파탈 브리지드 오쇼네시와 침대에 뛰어드는 것도 여기 포함된다. (물론 그가 이 상황을 즐기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쇼네시에게 품을 수 있는 의구심에 대해서, 해밋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상식적인 인물이라고 할 에피 페린을 활용해 명확한 통찰력처럼 보이는 것을 제시한다. 스페이드가 에피에게 브리지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에피는 대답한다. “난 그녀 편이에요.” 독자는 에피의 의견을 완벽하게 신뢰하기 때문에 그 순간부터 브리지드를 믿게 된다.
마찬가지로 독자는 스페이드가 묘사되는 모습, 대부분은 그 자신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모습에 속아 넘어간다. 적어도, 우리는 스페이드가 아처의 아내 아이바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걸 알면서부터는 스페이드에게 호감을 느낄 수 없도록 조종된다. 하지만 불륜 시기를 고려해보더라도 이를 도덕적 파탄의 징후라고까진 할 수 없다. 어딘지 수상쩍은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려 애쓰면서,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건네받은 1만 달러 중 1천 달러를 챙기기까지 한다. 거트먼의 사주로 자신이 마약에 취한 채 구타당한 걸 그냥 넘겨버릴 순 없기 때문에, 고통에 대한 적정선의 보상은 당연한 일이다. 스페이드가 최선을 다해 감추고 있던 본래 성격이 튀어나오는 순간들도 물론 존재한다. 특히 마약에 취한 거트먼의 딸을 깨어 있게 하기 위해 호텔 방 안에서 계속 끌고 다니며 걷게 하는 장면에 주목하자. 그녀는 사실상 스페이드의 명예로운 면모를 언뜻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활용되는 캐릭터이다.
스페이드가 브리지드에게 들려주는 여담, 소위 ‘플릿크래프트 우화’에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얘기가 오갔다. 어쩌면 너무 지나친 해석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타코마에서 실종된 부동산 중개업자 플릿크래프트 이야기에 관한 이 무수한 분석들에 한마디 더 얹어봤자 의미없는 일이다. 다만 이것만은 말해두고 싶다. 내게 플릿크래프트 우화는 스페이드의 실용적 세계관을 아주 간단하고 뛰어나게 보여주는 예시다.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멍청이 노릇’을 하는 것의 유혹마저 뿌리친 채 스페이드는 맡은 바 일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짓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마침내 마일스 아처의 살인범을 공권력에게 넘길 때, 그는 후회하지도, 두 번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신, 틀림없이 사형실로 끌려가게 될 이 범인을 잡아 넘기는 게 왜 합당한 일인지 훌륭한 이유 일곱 가지를 ─ 무려 일곱 가지다 ─ 줄줄이 읊는다.
그중 가장 단순한 이유는 또한 가장 흥미로운 이유기도 하다. “어떤 남자의 파트너가 살해당했을 때, 그 남자는 뭔가 해야만 해.”
작가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는 《몰타의 매》를 읽고 나서 몇 날 며칠을 스페이드에 푹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필립 말로에게 더 심하게 반해버렸다. 분명한 사실은, 해밋이 창조한 새로운 종류의 소설에 등장하는 새로운 유형의 탐정이 즉각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만약 해밋이 계속해서 글을 썼다면, 이후 소설에서 스페이드를 다시금 등장시켰을지 아닐지에 관해 짐작해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나로 말하자면 해밋이 그런 유혹에 저항했을 거라고 믿는 쪽이다. 그 캐릭터는 목적을 달성했고, 해밋은 ─ 심지어 그 시절에조차 ─ 시리즈의 주인공이 돌아올수록 기세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법칙을 인지할 만큼 충분히 상식 있는 사람이었다. 필립 말로의 경우 《빅 슬립The Big Sleep》에 등장했을 때보다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에서 분명 덜 흥미로운 존재가 되었다. 해밋의 나빠진 건강이 몇몇 굉장한 미래의 작품들을 우리로부터 앗아갔을지언정, 우리는 해밋의 가장 유명한 주인공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해밋의 작품에 관한 토론이 완전해지려면, 산문 자체에 대해서도 충분한 찬사를 바쳐야만 한다. 챈들러가 훨씬 더 탁월한 스타일리스트로 추앙받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여든 해가 넘게 지난 지금, 말로가 등장하는 소설들 대부분보다 《몰타의 매》가 월등히 뛰어나다는 게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희극적 요소’가 훨씬 암울하고 훨씬 절제되어 있다. 스페이드는 말로가 그랬듯 매 순간 재치 넘치는 말을 던지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브리지드와, 무엇보다도 거트먼과 나누는 군더더기 없고 능란한 대화 장면은, 리듬과 간결함에 관한 잘 짜인 마스터클래스와도 같다. 대서양 너머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 무대에서 상연되는 풍속 희극들로부터 1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대사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해밋이 노엘 카워드Noel Coward의 작품을 읽어봤을지 여부를 상상해보는 건 꽤 솔깃한 일이다. 카워드의 희곡 《사생활Private Lives》은 《몰타의 매》가 출간된 바로 그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총을 꺼내, 테니스 라켓과 프렌치 도어를 날려버려……
지금 해밋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바와 작품을 분리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의 좌파적 관점과 시민권의 대의에 대한 열정적 헌신은 소설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샘 스페이드는 두려워하지 않고 굴복하지도 않는다. 육체적으로는 스페이드에 비할 수 없이 약했지만, 해밋 역시 대부분의 삶에 걸쳐 국무부와 국세청과 조 매카시가 가하는 박해에 정면으로 맞서고 굴복하길 거부했다.
자신의 원칙을 지켰고, 늘 약자의 편에 섰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타일과 함께 새로운 종류의 대중소설을 창조한 해밋이야말로 비할 바 없이 특별하고 오래 기억될 작가다.
또다른 유형의 급진적 이야기꾼인 록밴드 클래시의 보컬 조 스트러머는 1978년 간염에서 회복될 당시 병원에 누워 《몰타의 매》를 읽었다고 한다.
해밋은 또한 유일무이하게 쿨한 작가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에 스타일을 부여한 장본인일지는 모르지만, 챈들러가 그렇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해밋 덕분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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