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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방문을 열자마자 죽음이 콸콸 쏟아졌다.
“헙.”
지하7호 유경식(63)이 코를 잡고 숨을 참았다.
빛보다 냄새가 빨랐다. 유경식의 눈이 컴컴한 방 안에서 빛을 찾고 있을 때 냄새는 방문 밖으로 뛰쳐나와 그의 코로 달려들었다. 문틈으로 새던 냄새가 문턱을 넘어 복도 저편으로 범람했다.
유경식이 106호 방 안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불을 켜자 지독한 죽음이 보였다. 생명은 없고 생명이 꺼진 흔적만 남은 방을 죽음이 차지하고 있었다. 유경식이 신발을 신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106호 남자가 들려나간 자리에서 그가 죽으며 토한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살아 있을 때 그의 몸은 바짝 말라 있었다. 젓가락 같은 몸에서 그의 다리만 피 빤 거머리처럼 통통했다. 폐병이란 말이 있었다. 혼자 움직이지 못했던 그는 누운 채 대소변을 흘렸다.
사망 뒤 사나흘이 지나 발견됐을 때 남자의 몸은 방바닥에 눌어붙어 흐물흐물해지고 있었다.
유경식이 남자의 마지막을 물걸레질했다.
물에 저항하던 피가 조금씩 닦여나갔다. 남자가 한 생을 마감하며 온몸을 쥐어짜 남긴 흔적이 동정 없이 지워졌다.
들춰 올린 이불 안엔 구더기가 엉겨 붙어 있었다.
냉기 어린 방바닥에서도 구더기는 생기 있게 움직였다. 거동이 불가능한 남자를 파먹으며 구더기는 반질반질하게 살이 올랐다. 소멸하는 인간을 먹고 태어난 생명들은 지독하고 치열하게 꿈틀거렸다. 유경식이 이불로 구더기를 둘둘 말아 건물 밖으로 내갔다.
죽음은 일상이었다.
누군가 혼자 죽어 발견되는 일이 일상인 건물이었다. 혼자 죽어 발견된 사람을 치우는 일도 혼자 죽는 일만큼이나 일상이었다.
“관리인이 나를 잘 본 거 아니겠어.”
죽음을 닦는 일이 성가신 뒤처리가 아니라 특별한 배려라고 유경식은 생각했다.
그는 고물을 주워 생계에 보태왔다. 죽은 자의 방을 치우고 망자들이 남긴 살림을 고물로 얻었다. 이 건물에서 유경식은 그때2014년 3월까지 여섯 개 방의 죽음을 씻고 유품을 꺼내 팔았다.
106호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유경식이 걸레로 닦아 광을 냈다. 검정 매직으로 쓴 상품 목록을 건물 출입문 벽에 붙였다.
매물
벽면 TV 19인치 1만 원
전기장판 1인용 1만 원
딸딸이(손수레) 1만 원
작은 까쓰렌지 7000원
지하 7호에 문의
유경식이 건물을 들고 날 때마다 판자문이 꺼억꺼억 울었다.
문다워 문이라기보다 열고 닫는 기능을 하므로 문이었다. 4층짜리 건물에 현관이랄 게 없어 유경식이 판자를 잇고 경첩을 박아 문이라며 달았다.
문은 두 세계의 경계였다.
서로 다른 세계가 문으로 보이는 경계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대치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이면 좁고 낡은 시멘트 계단이 위아래로 뻗었다. 도시의 화려를 묻히고 귀가한 주민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궁벽한 삶의 세계로 진입했다.
문밖으로 나온 106호 남자의 유품이 주민들의 선택을 받아 다시 문안으로 들어갔다.
유경식이 이불 더미를 내다 버릴 때 구더기 한 마리가 106호 방바닥에 떨어졌다.
남자를 지운 방 한가운데서 구더기가 뒤집힌 몸을 맡았다. 죽은 남자의 몸에서 태어난 구더기는 남자가 흘린 이 생의 마지막 한 톨이었다. 죽은 자는 방에서 치워졌어도 그가 남긴 이야기는 징그러운 구더기처럼 살아남았다.
그날 이후 건물에 이야기 하나가 보태졌다.
청소될 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거되지 않은 구더기처럼 꿈틀거렸다. ‘나를 벌레 취급하지 말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퇴치하려 해도 퇴치되지 않는 벌레처럼 그 집에 달라붙었다.
구더기가 말았다 펴는 힘으로 뒤집힌 몸을 바로잡았다.
몸을 감출 구석을 찾아 필사적으로 기었다. 그 남자와, 그 방과, 그 건물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도 차가운 방바닥과, 습한 벽과, 낡은 계단과, ‘그 사태’ 사이를 기어다니며 소리 없이 우글거렸다.
209호 나환수(→ 15쪽)의 방은 유경식(→33쪽)도 모르는 틈에 치워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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