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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육 혁명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과업, 교육
한 사회에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모두를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고 해도 좋은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사회의 미래는 어둡지만, 당장 사회에 수많은 문제가 있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면 그 사회는 미래에 희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은 한 사회와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업입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을 어떻게 여기고 있나요? 단편적인 예시로 들 수 있는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시 주요 5당 후보의 정책토론에서 “교육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오간 적이 있습니다. 한 후보는 교육의 목표란 한마디로 말해서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다른 후보는 교육의 목표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학생들을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는 것, 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모두 교육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그러나 결코 이 두 가지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자본과 국가의 논리를 넘어
교육의 목표가 학생들의 ‘창의력 신장’이라고 대답한 관점은 정확히 자본의 이익과 논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왔고, 그 시대에 발맞추어 미래 사회의 인재에게 필요한 능력으로 요구되는 ‘창의성’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회와 국가는 결코 경제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하는 경제적 조건과 환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교육의 목표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관점 역시 제한적입니다. 교육은 분명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육은 사교육을 얼마나 받을 수 있냐에 따라서 성적이 결정되고, 대학도 결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이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은 중요한 과업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교육의 근본적인 목표가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선별하기 위해서라든가, 생존 경쟁에 이기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우리는 이미 훌륭한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교육은 자본과 국가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한 인간이 존엄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갖추어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이 세계에 대한 나의 책임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자기실현을 이루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배울 수 있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더 선하고 아름다운 삶의 가능성을 창조하고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같은 교육의 목표는 이미 우리나라의 〈교육기본법〉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교육기본법〉 2조에 따르면 교육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 제도가 매년 바뀌는 것을 보면 분명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사회 전반적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제도가 시행되든 제자리걸음 혹은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문제의 본질이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북유럽 교육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도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도 목공 수업을 하고, 바느질을 배우고, 체육도 하고, 진로 탐색의 시간도 있고, 봉사 시간도 반드시 채워야 하지요.
그러나 교육의 목표와 교육의 주체들이 누리는 자유의 범위는 확연히 다릅니다. 바느질을 얼마나 일직선으로 잘하는가를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경쟁 시스템은 결코 자신의 취미활동을 위해 목공 시간에 기타를 만드는 북유럽의 교육보다 훌륭한 인재를 길러낼 수 없습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아이들과 요리 수업이나 연극 수업을 해보면 우리 아이들도 북유럽 아이들만큼 행복하게 웃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들입니다. 그러니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교육의 목표와 철학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입니다.
학교라는 상처
본래의 목표를 무시하고 자본과 국가가 요구하는 인재를 만드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의 최종 피해자는 결국 교육받는 청소년입니다. 받는 점수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고 그 순위가 곧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는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자존감을 지키는 일조차 특별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실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에서 받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노력은 거의 투쟁에 가깝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성적과 상관없이 자신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엄한 개인임을 인식하기 위해선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조장하는 주위 사람들의 획일적인 평가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그로 인한 학교 폭력, 자해, 자살 등의 문제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생이 자기 존중감을 느끼도록 돕고 타인 역시 자신과 같은 존엄한 시민으로 존중하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와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데 말입니다.
이런 상처는 비단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것만은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더 큰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성적이라는 하나의 기준에서 우수한 것이 곧 인간으로서도 우월하다는 잘못된 인식은 부당한 권력과 특권마저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기적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대로 된 교육의 목표가 부재한, 아니 있지만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못한 지금의 교육 현실은 모든 청소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아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 내면의 보편적 의식 구조로 자리 잡으면서 갖가지 사회 문제의 뿌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목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자기실현과 자존감을 키우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요?
학생들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다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를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미성숙한 존재’라는 인식을 전환하는 일입니다. 교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학생을 대하는 법을 배울 때 ‘학생들은 미성숙한 존재’라고 배운다고 합니다. 실제로 교사가 학생들을 미성숙하고 미숙한 존재이므로 교사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거나, 학생들의 생각을 낮잡아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학생들은 미성숙하고, 그런 학생들을 성숙한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거기엔 자연히 성숙한 정도에 따라서 위계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성숙한 정도를 ‘성적’으로 점수 매기고, ‘생활기록부’로 관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적이 높은 것이 인간적으로 더 성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고, 나아가 나이가 어리다고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덜 성숙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주어진 것이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인간 존엄성은 자기를 실현하게 하는 힘, 자유를 성취하게 하는 힘, 윤리적인 시민으로 자라나게 하는 힘에서 지켜질 수 있습니다.
청소년은 배움의 주체이지 미성숙하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것은 그렇게 보고자 하는 기성 사회의 논리이며, 청소년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계도의 대상으로 보아왔던 식민시대의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이는 단호하게 말해 교육이 아니며, 진정한 민주주의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교육은 청소년을 기존 사회의 가치 체계에 맞게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자신에게 잠재된 자유와 가능성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동등한 존재자이자, 자기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하게 하는 삶의 원리입니다.
민주주의와 교육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청소년 시기를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기로, 청소년들은 성숙한 성인이 되기 전의 미성숙한 존재로 이해해왔습니다. 그러나 청소년은 미래에 시민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한 명의 현재 시민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으며,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합니다. 시민은 자신의 사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하며, 사익과 공익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잡을 줄 아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민의 시민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학습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자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민주 시민 교육을 해나가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교육의 첫걸음은 청소년들이 자기 삶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교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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