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
이 책의 목표는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라는 요구의 정당성과 기본소득이 가져올 전환적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다. 모두의 몫은 당연히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사회가 생산한 부에서 특정한 경제주체의 노력에 배타적으로 귀속시킬 수 없는 모든 것은 모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야 한다. 모두의 몫을 노동 여부나 자산에 따라 선별적으로 분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모두의 몫은 특정주체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 각자에게 무조건적으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준 이후에야 비로소 성과에 따른 분배를 논할 수 있다. 일한 사람들 각자에게 일한 만큼의 몫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두의 몫에 대한 무조건적·보편적·개별적인 평등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모두의 몫이란 무엇인가? 모두의 것으로부터 발생한 수익을 뜻한다. 즉, 모두의 몫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위해서는 모두의 것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논해야 한다. 과연 무엇을 모두의 것으로 볼 것인가. 가령 지구는 누구의 것일까? 지구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토지를 개간한 사람이 토지가치를 증대시켰는지는 몰라도 토지 그 자체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건물을 지은 사람이 대지를 만들지도 않았다. 토지 그 자체의 원천적인 소유권은 법적인 소유권과 무관하게, 인류의 개별적인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지의 활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개인이 독차지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여기에서 나온 수익의 일부는 개별적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토지뿐만 아니라 천연자원 또는 생태환경은 원래 인류 모두에 속한 자연적 기초이고 인류 모두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천연자원을 채굴한 사람이 채굴을 통하여 천연자원의 가치를 증대시켰을 지라도 천연자원 자체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법적 소유권을 떠나서, 천연자원은 원래 모두의 것이고 채굴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배당되어야 한다. 나아가 생태환경은 세대와 세대를 넘어 인류 모두의 것이며, 현세대의 인류에게는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환경을 파괴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수익활동 과정에서 생태환경에 부담을 끼친 기업이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독차지하는 것은 정의로운 분배가 아닐뿐더러, 반反생태적이기까지 하다. 토지 그 자체, 천연자원, 생태환경 등은 모두의 것이며 이로부터 나온 수익의 상당한 부분은 자연적 공통부共通富이다. 자연적 공통부는 모든 사람 각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
자연적 공통부가 인류 모두의 것인 자연적 기초로부터 흘러나온 수익이라면, 인공적 공통부란 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따질 수 없고 어떤 특정인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수익이다. 사이먼Herbert Simon이 말했듯이,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서 축적된 지식의 외부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외부효과가 개별적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다시 할당될 때에만 비로소 정의로운 분배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지식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통자산이고, 사회구성원 모두는 이러한 공통자산의 수익을 공유해야 한다. 오늘날 빅데이터의 형성과 활용에 의해 발생하는 수익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인공적 공통부로 볼 수 있다. 인공적 공통부의 분배는 데이터의 중심성과 함께, 이 시대의 플랫폼 경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와 빅데이터
2008년 경제위기 이후 OECD 국가들의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는 금융수익률의 하락을 낳았고, 고수익을 추구하는 위험 자본은 디지털 테크Tech 기업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몸집을 불린 구글Google,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등의 기업은 2017년에 이르러서는 시가 총액 글로벌 5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게 될 정도로 커다란 경제적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플랫폼 기업들의 이윤은 네트워크 효과로부터 나온다. 이용자 집단이 크면 클수록 네트워크 효과도 커진다. 더 많은 사용자를 모을수록 플랫폼 기업의 이윤도 커져간다. 즉, 산업자본과 달리 플랫폼 기업에서는 수확체감이 아니라 수확체증의 법칙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데이터이다. 플랫폼 기업의 이윤창출 메커니즘은 물적자원이나 인적자원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초자원으로 한다. 더 많은 데이터의 집적은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며 네트워크 효과를 증대시킨다. 더 많은 데이터는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 수단이기도 하며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전자결제 등 다른 영역의 비즈니스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경제에서 플랫폼의 고유 기능은 데이터의 추출과 이용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가치창출은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의 구체적 형태와 무관하며 오늘날 대다수의 플랫폼 기업들에서 드러나듯이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가령 구글은 검색엔진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영업을 하며, 다른 한편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자율주행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경향의 종결점은 생산과 재생산의 전 영역에 걸친 사회 인프라가 플랫폼 기업의 수중에 놓이는 상태일 것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와 함께 소유의 시대가 종식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사회 인프라에 대한 독점적 소유가 등장한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라는 원칙은 플랫폼 자본의 데이터 인클로저에 대한 대항 프로젝트이다. 이 원칙의 실천적 핵심은 네트워크 효과로 발생한 수익의 대부분은 모두의 몫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에 도달하기 위해서 먼저 던져야 할 것은 ‘빅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와 인공지능 개발에서 필수적인 빅데이터는 플랫폼 없이는 형성되지 않으며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을 소유한다. 그렇다면 플랫폼을 소유한다고 해서 빅데이터를 오롯이 소유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농지는 미개간지를 개간함으로써 성립한다. 개간 이전에 농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개간에 의해 토지 그 자체가 창조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빅데이터는 플랫폼에 의해 형성되지만 플랫폼이 디지털 활동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데이터 인클로저이다. 플랫폼은 디지털 활동을 데이터의 형태로 물질화하는 동시에 울타리를 쳐 배타적으로 활용하고 가치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데이터 기반 가치창출에 대한 플랫폼 자본의 배타적 전유는 플랫폼 없이는 빅데이터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한 측면에만 근거한다. 하지만 현실의 다른 한 측면은 플랫폼이 디지털 활동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개별적 데이터 활동의 결과물인 빅데이터는 모두의 공동소유이고 플랫폼 자본은 이러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수익을 얻는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빅데이터에 대한 모두의 공동소유권에 근거하여 네트워크 효과로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모두의 몫으로 돌려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기본소득은 공통부의 분배정의를 실현한다
기본소득은 자산 심사나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모두에게 무조건적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정기적인 현금 이전이다. 달리 표현하면 현금성·정기성·무조건성·보편성·개별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정의는 기본소득을 현존하는 복지제도와 구별해준다. 현금이라는 특성에 의해 기본소득은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와 구별되며, 정기성에 의해 기본소득은 성년에 도달할 때 일회적인 종자돈의 형태로 지급되는 사회적 지분급여와 구별된다. 현존하는 복지국가의 공적 이전소득과 기본소득의 차별성을 드러내주는 특히 중요한 지표는 무조건성·보편성·개별성이다. 20세기 복지국가의 이전지출은 기여의 원리에 따른 사회보험을 한 축으로, 필요의 원리에 따른 공공부조를 다른 한 축 삼고 있었으며 주로 가게 단위로 지급되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①노동을 요구하지도 않고, 노동할 의사에 대한 증명 없이도 무조건적으로, ②필요 여부를 가리는 자산 심사 없이 모두에게, ③가구 단위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지급된다. 이렇게 무조건성·보편성·개별성은 기본소득의 종차를 분명히 드러내는 핵심적 지표로 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기본소득의 고유한 원천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저 기능적으로 이해될 뿐이다.
반면에 기본소득을 ‘공통부의 무조건적·보편적·개별적인 배당’으로 다시 정의한다면, 기본소득의 원천이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거꾸로 살펴보면, 기본소득의 원천이 공통부라는 점을 명확히 할 때 무조건적·보편적·개별적 소득이전이라는 특유의 분배방식도 원천에 적합한 분배방식으로서 훨씬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모두의 몫인 공통부를 분배하는 데 어떠한 조건에 따라 대상을 선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통부는 기여에 따라 분배할 수 없으며, 자산 심사에 따른 선별적 이전소득 형태로 분배하는 것도 결코 정당하지 않다. 전체 사회의 수준에서 ‘각자에게는 성과에 따라 분배하라’라는 분배 원칙이 유효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특정인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모두의 몫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여기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서비스의 확충과 기본소득의 도입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공통부의 무조건적·보편적·개별적 배당으로서 이 책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노동의 성과에 따른 분배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통부의 평등배당이야말로 ‘성과에 따른 분배 원칙’을 철저하게 따른 결과이다. 특정한 누군가의 기여로 배타적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공통의 몫에 관한 분배원칙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기여에 따른 몫을 그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하듯이 누구의 기여로도 귀속시킬 수 없는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어떤 한 사람의 소득은 그 사람의 경제적 기여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조건적 소득과, 사회구성원으로서 무조건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기본소득이라는 두 가지 구성부분을 가진 복합소득으로 구성된다. 누구에게나 경제활동과 무관한 조건 없는 소득최저선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인 선先분배 소득이라고 볼 수 있고, 반면에 시장소득은 개별적 성과에 따라 추가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조건적 소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무조건적 소득의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경제적 효과와 같은 기능적 원칙보다 정당한 분배의 원칙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별적인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공통부의 크기가 GDP의 10%라면 10%를, 만약 그러한 몫이 엄청나게 커서 거의 90%라면 90%를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조건 없이 동등하게 분배하여야 한다.
기본소득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와 관련하여, 우리는 노동과 무관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기본소득의 액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임금상승 효과도 커지고 이는 더 많은 자동화 압박을 낳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노동연계복지가 저임금노동의 고용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효과를 낳는 것과 반대로, 기본소득은 일자리에 대한 선택권과 협상력을 제공하고 임금상승 효과를 낳는다. 한쪽으로 산업노동과 전형적인 서비스노동을 자동화하면서 다른 한쪽으로 재생산 영역, 돌봄과 여가, 문화예술을 플랫폼 경제를 통해 상품화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넘어설 최초의 열쇠는 기본소득 도입에서 찾을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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