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작성을 위한 효율적인 두뇌 플랜
자,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것은 딱 2가지로 요약된다.
서평의 의미와 독서의 3가지 단계.
‘엥? 뭘 배웠다는 건가? 금시초문인데?’ 방금 이런 유형의 질문이 대뇌를 스치고 지나갔다면, 불행하게도 책의 첫 페이지로 되돌아가 다시 읽어야 한다. 다시 읽기 힘든, 또는 읽기 싫은 분들을 위해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평은 책에 대한 분석적 평가라는 것과 우리가 의도적으로 선택해야 할 독서 방식은 비판이라는 중간 단계라는 것. 여태껏 우리는 바로 이 2가지를 배웠다.
그중에서도 ‘서평이 뭐냐’는 것이 최고 핵심이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헷갈린다면 늘 ‘서평’이라는 말의 뜻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나는 지금 책을 평가한다, 평가한다, 평가한다”고 중얼거려보는 것도 꽤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 “나는 꽤 예민한 감수성을 발휘해 이 책을 감상했으며, 냉철한 지성으로 이 책을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도움이 된다. 더 도움이 된다고 표현한 이유는 ‘감수성’과 ‘지성’의 결합이야말로 서평의 가장 바람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쓸 수 있는 서평러는 몹시 드물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수준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이 이상적인 수준이 대체 왜 ‘이상적인 수준’이 되었는지, 사례를 통해 생각해보자.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서평을 쓴다고 치자. 한 사람은 그 소설을 매우 감동적으로 읽었고, 읽고 나서도 먹먹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이 책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야. 정말 좋아. 너도 꼭 읽어봐”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반응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고 해서 서평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 옮기면 서평이 아니라 일지나 일기에 가깝다.
서평 쓰기를 위한 두뇌 플랜
이제부터의 설명이 중요하다. 서평러는 서평 쓰기를 위해 맞춤형 두뇌사고 플랜을 훈련해야 한다. 일종의 서평 프로세서의 정신적 과정을 따라가보자.
예를 들자면, 우리 서평러들이 서평에서 해야 할 일은
1. 왜 ‘마음이 먹먹한가’의 원인을 분석하고,
2. 이 책이 왜 이렇게 ‘좋았을까’의 근거를 찾아내 드러내는 것이다.
3. 그리고 분석과 근거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도록혹은 전혀 읽고 싶지 않도록, 혹은 읽을 필요가 없도록
4. 내 판단을 그들도 역시 신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서평의 전체적 프로세스다. 내가 읽은 ‘마음의 방향’을 바탕에 슬쩍 깔고, 다시 말해 내 정신과 감수성이 책과 소통하도록 하고 나서, 그 결과물을 지성적이며 논리적으로 분석해보면서 왜 내가 그렇게 읽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서평의 실전과 실제와 목표가 거의 다 밝혀져 있다. 서평에 접근해가는 이 두뇌 과정은 매우 중요해서 우리 독자들께서 찬찬히 자기 경우에 대입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좀 점에는 ‘먹먹한가’와 ‘좋았을까’를 기저에 깔고 설명했지만 이 작은 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표현은 책과 필자에 따라 무궁무진해진다. 이 책은 ‘왜 불편할까’, 이 책은 ‘어떻게 불편해졌을까’도 가능하다. 때로는 이 책은 ‘왜 슬플까’, ‘어떻게 슬픔을 드러냈을까/어떻게 효과적으로 슬퍼졌을까’도 가능하다. 혹은 이 책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어떻게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되었을까’도 물론 가능하다.
눈치챘겠지만 서평러는 반드시 책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마치 자아분열처럼, 가만히 있는 책에게 내가 질문을 던져놓고 또 내가 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해보는 건데, 이 과정이 있어야 나만의 서평이 잘 나온다.
질문이 없으면 서평을 쓸 수가 없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던져야 한다.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 도구가 필요하다. 속된 말로 화장도 도구발이고, 게임도 아이템발이다. 서평러의 멋진 질문도 도구가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서평러가 책을 분석하려고 덤빌 때 상비할 무기는 ‘왜?’와 ‘어떻게?’이다. 얘네 둘은 같이 붙어 다니는 게 좋다. 큰 녀석 ‘왜’가 나오면 꼭 둘째 ‘어떻게’로 연결이 되도록 해야 말할 거리도 많아지고 분석도 풍성해진다. 그러니 ‘왜’는 오른손, ‘어떻게’는 왼손에 쥐고 책에게 막 던져보자.
좋은 인터뷰이가 좋은 인터뷰어를 만드는 법이다. 다시 말해 좋은 질문이 좋은 접근을 이끌어낸다. 텍스트에 접근하는 질문지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보는 것이 어려우면 우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저런 질문지를 적어보자. 우리가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정답이다. 이 느낌과 과정에서 〈1차 질문지〉가 생성된다. 나만의 글은 〈1차 질문지〉를 발달시키고 전개시키면서 생성된다. 예를 들어,
○ 영화 〈기생충〉은 왜 우스꽝스러우면서 슬플까. 어떻게 그럴까. 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좋았는데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자면 뭘까.
○ 영화 〈엑시트〉는 왜 웃기면서 씁쓸할까. 어떻게 그럴까. 나는 이 영화가 좀 실망이었는데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자면 뭘까.
○ 영화 〈조커〉는 왜 잔인한데도 슬플까. 어떻게 그럴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굉장히 불편했는데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자면 뭘까.
○ 소설 《토지》는 엄청 긴데 왜 잘 읽힐까. 어떻게 그럴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와!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자면 뭘까.
○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생각보다 짧은데 왜 이렇게 안 읽힐까. 어떻게 그럴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에계계~’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남들에게 설명하자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 학술서 《사피엔스》는 학술서인데 왜 재미있을까. 어떻게 그럴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서술한다면 뭘까.
이렇게 느끼는 대로 끄적거린 것이 〈1차 질문지〉이다. 자연스럽게 생성된 〈1차 질문지〉는 생각의 원천이다. 매우 중요하다. 이 메모지를 앞에 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다음 단계란 ‘왜’와 ‘어떻게’를 활용해서 생각을 보다 논리적인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두 번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정신과 감수성을 열어놓고 읽는 한 번의 독서, 그런 후에 보다 차갑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면서 읽는 또 한 번의 독서. 이 두 독서의 결합이 위에서 말한, ‘따뜻한 감수성과 차가운 지성’의 결합이다. 그리고 이 두 독서의 결합이 더 위에서 말한, ‘1단계 독서와 2단계 독서까지 가야 한다’는 충고와 같은 말이다. 이 길이 쉽겠는가. 설명도 어려운데 쓰기란 도통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도전할 만하다.
경험적으로 서평을 여러 번 가르치고 과제를 많이 읽다 보면, 서평러 스스로 이 두 독서의 결합을 조금씩 황금비율로 맞춰가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요리사마다 음식 조리법이 다르고 손맛이 다르듯 글의 황금비율은 제각기 다르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 말고는 책을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우리에게 과연 무슨 서평 기회가 있었겠는가. 대부분은 대학에 와서 처음 서평 쓰기를 배운다. 제대로 배우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도 점차 ‘난류暖流 같은 마음’과 ‘한류寒流 같은 지성’을 섞어, 매우 온난한 글을 쓰게 되는 서평러들이 분명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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