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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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90의 사회
오늘날 20대 문제의 핵심은 ‘1등 시민’인 중상위층과 나머지 ‘2등 시민’ 간의 격차가 더는 메울 수 없는 초初격차가 되었다는 데 있다. 이 초격차는 단순히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직업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보하는 형태의, 즉 물적자본만이 아닌 인적자본의 세습을 통해 확대·유지된다. 그리하여 1등 시민과 2등 시민이 갖는 격차는 노동시장에서 소득·직종·직업적 안정성의 격차로 나타난다.
20대의 불평등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삶이 평등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강화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다차원적이라는 질적 특징에 있다. 그 불평등은 학력·소득·직업·인맥·문화적 역량의 복합적인 결합으로서, 부모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격차가 그대로 자녀의 인적자본 격차로 체화되는 것이다. 흔히 이 격차는 능력의 격차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출신 계층의 격차라는 사실을 ‘나머지’ 계층에 속한 오늘날의 20대는 삶의 단계마다 피부로 깨친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단순히 경제적·사회적 지위 격차의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활세계에서 겪는 경험의 이질성이 커지면서, 20대의 세계관은 그들이 어떤 계층 출신인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2019년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20대의 핵심 문제가 계층 또는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또 20대 내부의 격차가 이전 세대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다차원적임을 보여주었다.
조 전 장관 일가의 문제는 20대 내부에서의 단층을 드러냈다. 기성세대로부터 착취당하는 ‘N포 세대’와 한국 경제 고도 성장의 수혜를 받은 자신감 넘치는 ‘G세대글로벌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진취적인 사고방식으로 글로벌 환경 전문가를 꿈꾸며 고등학교 때 이미 제1저자로 의학 분야의 논문을 쓰고, 대학교 재학 중에는 300시간 이상을 의료 봉사활동에 쓰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은 2010년 당시 제시된 G세대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기업처럼 자녀의 인적자본 형성을 위한 장기 전략을 짜고, 입시제도에 최적화된 투자를 계획·집행하며, 탄탄한 주력 계열사의 든든한 지원과도 같은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 등을 활용하기도 했다.
조 전 장관 자녀에 대한 분노는 그와 경쟁 관계에 있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른바 명문대에 재학 중인 중산층 자녀들을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조부모와 부모가 일구어놓은 재력과 인적 네트워크, 경우에 따라 위법·탈법 의혹을 받을 수도 있는 방법까지 써 일종의 ‘추월 차로’를 타며 중산층 자녀 교육의 최고 목표인 의대에 입학한 것은 그들이 보기에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명문대와 의사 양성소 입시에서 ‘불공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문대 바깥의 20대는 시종일관 침묵하면서 ‘남의 일’이라는 무기력한 반응이었다. 그나마 지방 국립대 중 대기업 취업률이 가장 높은 경북대 학생회가 장관 후보자 시절인 8월 말 한 차례 성명서를 발표했을 뿐이다.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 “20대는 이슈 초기 국면부터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이었으며, 시간에 따른 부정 평가의 등락도 초기에 다른 연령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부정적 반응을 내놓은 뒤 큰 변동이 없었다. 20대는 ‘조국 수호’를 외친 4050의 서초동에도 ‘조국 사퇴’를 부르짖은 6070의 광화문에도 모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서 20대가 중산층의 분노와 다수의 냉소로 갈린 것은, 오늘날 그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양적·질적 특성 때문이다. 20대, 즉 90년대생1990~1999년생의 생활세계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세계다. 이들은 상급학교 진학, 각급 학교에서의 교육과 기회 획득, 교육의 최종 ‘결과’인 취업 과정에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복합적인 불평등을 경험한다.
각각의 20대들이 불평등 구조의 위계 서열에서 어느 위치에 자리하는지는 그들의 부모가 어떤 계층 또는 계급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취업하기 전까지 각 단계는 ‘능력 본위’로 포장되어 있지만 기실 그 ‘능력’은 부모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월 소득은 얼마고, 어느 지역의 몇 평 아파트에 거주하는지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20대가 취업과 함께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어떤 일자리를 얻느냐는 그의 미래 소득, 자산, 결혼 여부, 사회적·문화적 경험 등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 고임금의 안정된 일자리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 간의 격차가 큰 데다, 이직이나 전직 등을 통한 ‘질 좋은 일자리’로의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인터넷 게시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한 번 ㅈㅅ중소기업을 의미면 영원한 ㅈㅅ’라는 말이 나타내듯 첫 일자리가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갈린다. 첫 일자리가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의 기회를 얻는 이들은 연간 7만 2,000명쯤 되며, 이는 동갑내기들 중 10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격차가 아니라 10퍼센트와 90퍼센트의 격차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격차는 단순히 임금의 격차가 아니라 생애주기 전반의 격차다. 변호사·의사와 삼성전자·우리은행 직원의 생활세계 내 격차는 크지 않지만, 그들과 중소기업 노동자 또는 비정규직의 격차는 감히 메울 수 없을 정도로 넓고도 깊다. 20대가 계급 불평등을 경험한다면 현대판 부르주아지인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불평등인 것이다.
여기서 중산층은 ‘중간 소득 집단’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안정된 도시의 중간계급과 도시 및 농촌의 프티부르주아 중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단 그리고 소득이 높은 상층 노동계급을 포함하는 집단’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좀 더 상층의 집단이다. 미국의 사회학 교과서인 『소사이어티인포커스Society in Focus』는 취업자 중 소득 상위 1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대기업 고소득 화이트칼라와 전문직 종사자 등을 ‘상위 중간계급upper middle class’으로 정의하는데, 이 책에서 사용하는 중산층 또는 중상위층 개념은 이와 가장 유사하다. 이는 이 책이 중산층과 중상위층을 함께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한국에서 최상위 10퍼센트에 속하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이 연 1억 1,520만 원을 넘어야 하고, 상위 20퍼센트에 들어가려면 연 8,500만 원은 넘게 벌어야 한다. 상위 20퍼센트 이상 가구는 맞벌이 비중이 높기 때문에 개인소득 기준으로는 상위 10~15퍼센트 안팎의 집단을 중산층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들은 교육과 노동시장에 투자할 경제적 여력과 문화적 자본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집단이다. 또한 내부에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20대가 경험하는 다중의 불평등
20대 집단 내부의 격차는 ‘능력’의 격차로 포장된 ‘결과’의 격차이면서, 동시에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계층’의 격차다. 결국 20대의 격차는 부모 세대인 50대의 격차가 그대로 세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오늘날 50대인 60년대생1960~1969년생이 한국 사회에서 학력, 소득, 직업, 자산, 사회적 네트워크 등 다중격차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세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근로자의 22.4퍼센트, 취업자의 16.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대기업·공공부문 화이트칼라는 1980년대 초중반 전문직 또는 대졸 사무직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등장한 이후 고소득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나 이들은 1990~2000년대에 질적으로 발전한 한국 자본주의의 수혜를 입었다. 이들 ‘80년대 학번-60년대생’과 나머지 ‘학번 없는 60년대생’의 차이는 이전과 다르다. 바로 직전의 ‘학번 없는 50년대생’은 ‘학번 없는 60년대생’에 비해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60년대생으로 넘어가면 ‘번듯한 일자리’는 대부분 대졸자의 차지가 되고, 거기에 소수의 대공장 정규직 생산직 근로자가 80년대 후반 ‘노동자 대투쟁’과 90년대 초반 ‘3저 호황’에 힘입어 고임금의 안정된 일자리를 확보한 구조가 짜여졌다.
이 ‘80년대 학번-60년대생’인 중상위층은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나머지 학번 없는 60년대생과 다중적인 격차를 벌렸다. 그리고 이들이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 사회적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을 이용해 자녀세대90년대생에게 동일한 지위를 물려주려고 나서면서 중산층 지위의 세습이라는 결과가 빚어지게 되었다.
80년대 학번 대졸자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라는 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직종에 종사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본인과 같은 안락한 지위를 자녀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 대치동 사교육 특구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30대80년대생에게서만 해도 가끔은 존재했던 육체노동자나 소상인 자녀가 대기업에 취업하는 일은 이제 20대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셈이다.
평일 점심, 서울 을지로입구역 인근 식당가로 밥을 먹으러 나온 20대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들이 SK텔레콤이나 KEB하나은행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다면, 그들의 60년대생 부모도 대졸 화이트칼라일 가능성이 크다. 거꾸로 사원증이 없는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아니면 명동 인근에서 서비스·판매직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들의 부모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의 격차에 가깝다.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바뀌었다”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지적은 구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60년대생이 대학특히 명문대 정원 확대, 경제 호황기 노동시장 진입, 수출 대기업의 급성장과 그로 인한 노동소득 증가·자산 가격 급등에 힘입어 세습 중산층의 1세대를 이루었다면, 90년대생은 그들의 교육 투자로 만들어진 세습 중산층의 2세대다.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은 부모 세대인 50대 중산층이 학력정확히는 학벌과 노동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그들의 자녀에게도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는 데 있다. 세습 중산층의 자녀가 ‘번듯한 일자리’를 독식하는 게 2019년의 20대가 1999년 또는 2009년의 20대와 다른 점이다. 이렇게 심화된 ‘격차 고정’은 결혼, 주택 등 생애주기에서의 기회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혼과 주택 문제는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 간의 격차 심화의 결과이면서 그와 동시에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90년대생’은 출신 학교, 직업, 소득, 자산 나아가 결혼 등의 사회적·문화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중의 불평등을 경험한다. 그들에게 불평등은 마치 공기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불평등 확대와 격차 고정 상황에서 겪는 경험의 이질성은 정치·사회 인식에 영향을 미쳐 ‘계급의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관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들은 ‘세대’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굳이 세대론의 용어를 사용해 이들을 규정짓자면 ‘초격차 세대’가 어울릴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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