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비뚤어진 언론, 그 민낯
언론은 누구의 감시를 받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언론은 ‘제4부’로 불리는, 선출되지 않은 사실상의 권력기관입니다. 언론이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적 도구라는 점 때문에 다양한 역할과 특권이 주어지는데, 결과적으로 언론 스스로 권력기관화하는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언론이 스스로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되는 역설적 현상입니다.
권력이 된 언론은 누가,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까요? 권력은 현명하게 쓰일 수도, 반대로 나쁘게 쓰일 수도 있습니다.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도록 부여한 특권을 사익을 위해 멋대로 행사하는 언론은 어떻게 견제하고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망가진 언론’을 법과 제도로 교정한다?
입법, 사법, 행정부 등 법률에 따른 기관은 권력 남용과 불법 집행을 금지하고 위반 시 처벌 규정을 법으로 정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언론기관이 보유한 특권과 권력은 법률에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언론이 권력을 남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경우 규제와 처벌이 쉽지 않습니다.
권력화한 언론을 규제하기 어려운 데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언론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에 아예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도 만들 수 없다고 명시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언론을 규제하려고 시도한 경우는 대부분 정부와 집권세력에 비판적인 언론을 통제하고 권력의 나팔수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당연히 끝이 좋을 수 없었습니다. 1961년 5.16 쿠데타, 1979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부패 언론 척결을 내세우며 일부 언론을 폐간하고 언론인들을 해직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YTN, MBC 등에서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해고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법원 판결을 통해 잘못된 행위라고 인정돼 언론인들은 복직했고, 집권세력이 언론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둘째, 언론사는 KBS, 연합뉴스처럼 정부가 지원하는 공영 언론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기업입니다. 신문과 방송의 보도 활동은 뉴스와 정보를 알리는 언론 행위지만 동시에 수익성이나 특정 가치 확산 등을 추구하는 기업의 활동이기도 합니다. 민간 언론사의 취재보도 활동은 일반 기업이 자금을 조달해 영업 행위를 하고 수익을 내는 활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언론사마다 다양한 목적을 추구하며 활동합니다. 재벌이 돈을 대서 만든 언론은 기본적으로 재벌의 이익을 앞세우고, 장애인들이 만든 언론은 장애인을 위한 보도를 하며, 종교단체가 설립한 신문사는 해당 종교적 가치의 확산을 목적으로 언론 활동을 합니다. 언론사 보도 활동의 결과물은 뉴스와 논평이지만 이는 동시에 소비자가 구매하는 상품이기도 합니다. 소비자 선택과 언론사 간 경쟁에 의해 작동하는 시장 원리가 언론 영역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시장 질서에 영향을 끼치려는 행위는 대개 실패합니다.
셋째, 언론이 만들어내는 최종 결과물이자 영향력의 바탕인 힘은 뉴스 보도인데, 언론사의 잘못된 보도 또는 악의적 왜곡 보도라고 해도 규제하거나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언론 보도는 기본적으로 말과 글로 이뤄집니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생각과 의도가 다양한 형태로 담기는데, 이를 규제와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언론이 악의적 의도로 사실을 왜곡해 보도한다는 사실이 아무리 ‘심정적으로’ 명확해 보여도,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논평을 하고 기사를 쓰는 사람이 정보를 왜곡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면서 교묘하게 법적 책임을 피해 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글이 갖는 이러한 미묘함은 문학작품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마술적 매력이기도 합니다. 또한 무엇이 진실인지를 말과 글로 정확하게 밝혀내어 전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적지 않습니다. 3장에서 살펴본 존 스튜어트 밀의 지적처럼, 한때 거짓으로 여겨진 것이 세월이 지난 뒤 진실이라고 밝혀진 사례도 많습니다. 이는 가짜 뉴스의 폐해가 심각해도 이를 법으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언론, 상상의 공동체를 세우다
언론이 스스로 권력화하는 문제를 법과 제도로 바로잡기 어렵다면 어떻게 고쳐 쓸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언론이 왜 권력화하는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입니다.
공동체의 공적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도록 공무원, 정치인을 뽑았는데 공직 자체가 권력화해서 특권을 누리는 경우와 언론의 사례도 유사합니다. 종교나 교육체제도 비슷합니다. 삶에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제도화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면 또 하나의 새로운 권력으로 변질돼 부작용을 발생시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적인 직무와 기능에 주어진 특권이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나 특정인을 위한 권력과 이권의 도구가 되는 경향 때문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이자 정치가인 존 달버그 액튼John Dalberg-Acton이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고 말한 대로입니다. 하지만 권력화의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치와 행정, 종교, 교육 등의 시스템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순기능을 최대한 키우고 역기능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 구조와 기능을 알아야 합니다.
언론이 특권화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언론이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더 강력한 힘을 소유하려는 것은 인간 본능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인데, 주권자인 시민은 여론에 따라 움직입니다. 여론을 형성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언론은 사회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힘입니다.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도,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힘도 여론입니다. 과거 절대왕정기 최고 권력자인 왕과 영주의 힘이 물리적 군사력에 있었다면, 민주주의 시민사회에서는 여론이 그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근대 이전에도 말과 글은 개인과 집단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권력이 출판물과 인쇄물을 검열하고 허가한 배경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최종 승자가 된 배경으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힘”을 강조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개인으로는 약한 존재이지만 집단으로서는 어떤 생명체보다 강력합니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은 엄청나게 큰 무리를 형성할 수 있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힘이라고 하라리는 말합니다. 인간만이 특정한 목표를 위해 정교한 소통과 협력, 실행을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 최고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라리는 사람이 조상, 민족, 국가, 종교 등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의 개념”을 받아들여 그대로 믿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개념화한 것과 비슷한 설명입니다. 사람은 개인마다 고유한 성향과 가치를 갖고 있지만 상상의 공동체는 공통의 신념과 가치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과거에는 허구의 개념 또는 상상의 공동체가 민족, 국가, 종교적 내세, 인륜, 도덕과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언론이 날마다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여론이 상상의 공동체입니다. 언론이 날마다 보도하는 뉴스와 의견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되고 여론이 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식을 좌우하게 만든다는 것은 행동의 준거가 되는 신념과 가치체계를 형성하는, 실로 엄청난 힘입니다.
(중략)
권력화한 언론, 사회의 흉기가 되다
권력화한 언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다른 차원의 권력 남용과 달리,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여론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영향력이 크면 그로 인한 부작용과 악용 피해도 비례하지요. 여론이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큰 힘이라는 점은 잘못된 언론, 권력화한 언론이 여론과 사람들의 생각에 끼치는 악영향 또한 크다는 의미입니다. 언론이 전달하는 정보와 주장을 바탕으로 여론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언론은 대기나 식수원과 유사합니다. 언론이 깨끗하지 않으면, 여론은 오염되고 사회는 건강성을 잃게 됩니다.
돈벌이가 주목적인 상업적 언론은 상대적으로 폐해가 크지 않습니다. 돈이라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용자에게 언론의 상업적 의도가 비교적 잘 드러나니까요. 유명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파라치 보도, 실시간 인기검색어와 선정적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기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진짜 위험하고 해악이 큰 언론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포장해 보도하고 자신들과 특정 집단의 이해를 마치 공동체의 주요한 의제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이는 언론의 왜곡 보도로 나타납니다. 언론은 불편부당을 내걸고 사실 보도를 표방하지만, 인간 인식은 백퍼센트 완벽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습니다. 서 있는 위치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동일한 대상도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다양성이 인정됩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언론이 재벌과 기업 편이냐, 아니면 노동자와 급여 생활자의 편이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고 해석되는 문제입니다.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입장과 관점이 지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동시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을 근거로 한 관점과 해석의 차이를 넘어서 언론이 특정 집단과 결탁하거나, 사실 자체를 왜곡·조작하고 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침소봉대 과장한다면 언론은 사회의 흉기가 됩니다. 이 경우 언론은 언론 자유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사적 이해를 위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교묘하게 사실을 비틀어 보도하는 경우, 파파라치 언론처럼 그 폐해와 잘못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더욱 위험합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