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경이로운 유대 역사 4천 년
이 지구상에는 약 76억 명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중 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1천5백만 명이 채 안 된다. 세계인구의 0.2퍼센트도 되지 않는 수치다. 통계로 볼 때 유대인은 아시아의 한구석에 박혀 있는 아이누족일본 홋카이도 원주민처럼 역사의 ‘벤치 멤버’여야 한다. 그러나 유대인은 적은 인구에 비해 엄청나게 유명하다. 종교, 과학, 문학, 음악, 경제, 철학 분야의 거장 중에 유대인의 비율은 무척 높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시기는 5백 년 동안 이어졌다. 그리스가 멸망한 후 그리스인들은 유목민이 되었고, 다시는 옛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달랐다. 그들의 창조적 시기는 4천 년 동안 이어졌다. 그들의 문화는 알게 모르게 동서양 문화에 흡수되었다. 물론 그들이 이런 유대 문화의 빚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민족으로부터 세계 최대의 종교인 기독교가 나왔다. 약 24억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서 나왔다. 이 민족으로부터 기독교 교회의 창시자 바울도 나왔다. 유대인의 종교는 이슬람 신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슬람교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후손을 자칭하는 약 18억 명의 추종자를 거느린 세계 제2의 종교이다. 모르몬교도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 지파기원전 722년 아시리아가 침공해 세계로 흩어진 북방 10지파의 후손이라고 자칭한다.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또 한 명의 유대인이 있는데, 바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이다. 그의 책 《자본》은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경전이며, 마르크스 자신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고이 모셔지고 있다. 유대인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원자력 시대를 열었고, 그의 이론 물리학은 달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유대인 정신의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 정신의 속살을 보여주었다. 그가 발견한 정신분석은 인간의 자기 이해와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관한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보다 3백 년 앞서 유대인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철학을 신비주의로부터 분리해 합리주의와 현대 과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오랜 역사에 걸쳐 유대인들은 인류에게 기도, 교회, 구원, 보편 교육, 자선 같은 개념을 하나씩 소개해 왔다. 그것도 세계 사람들이 그 개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기 수백 년 전부터 말이다. 그러나 1948년까지, 거의 3천 년 동안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나라가 없었다. 바빌로니아인들 사이에서 살다가 헬레니즘 세계에서 지냈고, 그 후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본 후 이슬람 문명 안에서 번성했으며, 1천2백 년간의 중세 어둠에서 벗어난 후 근대에 새로운 지적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유대인과 같은 시기에 역사에 등장했던 이교도 시대의 위대한 민족들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바빌로니아인, 페르시아인, 히타이트인, 펠리시테인처럼 한때 강하고 위대한 나라를 이루었던 그 민족들은 지구상에서 모두 사라졌다. 중국인, 힌두인, 이집트인 정도가 유대인만큼 오랜 역사를 이어 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민족이다. 이 세 문명은 한 번의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을 뿐, 그 후 다른 문명에 큰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 문명들은 자기 갱생의 씨앗이나 다른 문명을 탄생시키는 씨앗을 자기 안에 품고 있지 않았다. 유대인과 달리 그들은 자신의 땅에서 내몰리지 않았고, 낯선 땅에서 생존 문제에 직면하지도 않았다. 유대인만큼 서양 역사에 큰 영향을 준 민족은 그리스인과 로마인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세계나 로마에 살았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다.
유대 민족의 역사를 다른 민족의 역사와 구별 짓는 세 가지 생존 비결이 있다. 그들은 4천 년 동안 생존의 역사를 이어 왔으며, 3천 년 동안 지적이고 영적인 힘을 지녀 왔다. 3천 년간 나라 없이 살았지만, 이방 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간직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사상을 자신들의 언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두 주요 언어로 표현해 왔다.
보통 사람들은 인간 사유의 각 분야에 남아 있는 유대인의 흔적을 잘 모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 독일, 영국의 문학이나 과학을 이해하려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만 알면 된다. 그러나 유대 문학과 학문을 이해하려면 히브리어와 이디시어뿐 아니라 아람어, 아랍어, 라틴어, 그리스어, 그리고 거의 모든 현대 유럽어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문명은 역사의 흔적을 물질적인 유물로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토판이나 유적들을 통해 옛 문명을 이해한다. 그러나 고대 유대인에 관해서는 대부분 그들이 가르친 사상과 그 사상들이 다른 민족과 문명에 끼친 영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전쟁을 상술한 토판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전의 영광을 증언해주는 유적도 거의 없다. 역설적인 사실은 존재의 흔적으로 거대한 유물만 남긴 민족들은 시간과 함께 사라졌지만, 사상을 남긴 유대인들은 살아남았다.
세계 역사는 유대인들에게 여섯 번의 도전 과제를 던졌고 그때마다 유대인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도전에 하나하나 맞섰다.
유대인의 생존을 위협한 첫 번째 도전은 이교도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유대인들은 소규모 유목민 무리에 불과했고,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니키아, 이집트, 페르시아 같은 강대국들, 다시 말해 역사 무대의 주인공들 사이의 단역 배우였다. 강대국들이 충돌하고 서로를 말살하는 1천7백 년 동안 어떻게 그들이 문화 집단으로 생존할 수 있었을까? 당시 유대인들은 멸망의 운명에 위태롭게 가까이 있었다. 그때 그들을 구한 것은 사상이었다. 그들은 사상으로 자신들이 맞닥뜨린 위험에 응답했다.
1천7백 년에 걸친 유랑, 노예 생활, 전쟁으로 인한 멸망 위기, 포로 생활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기다린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였다. 이 시대는 생존을 위협받은 두 번째 도전이었는데, 유대인이 이 위기에서 빠져나온 것은 기적이었다.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에는 그리스인들이 만지는 모든 것이 마술처럼 그리스화되었는데, 그들을 정복한 로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의 종교, 예술, 문학과 로마의 군대, 법, 정치는 문명 세계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로마의 군대가 패했을 때 로마의 문화도 무너져 소멸했다. 처음에는 그리스에게, 다음에는 로마에게 정복된 민족들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에 군사력에 의존한 새로운 민족들이 들어섰다. 이 민족 생몰의 혼란스러운 역사에서 유대 민족은 살아남았다. 무력이 아닌 그들의 응집력 있는 사상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유대인의 생존을 위협한 세 번째 도전은 인류 역사의 전무후무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두 개의 유대교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는 팔레스타인을 근거로 한 유대교이고, 다른 하나는 디아스포라Diaspora를 근거로 한 유대교이다. 디아스포라는 ‘흩뜨리다’ 혹은 ‘흩어지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팔레스타인 밖, 즉 이방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통칭하는 말이다. 디아스포라 역사는 유대인들이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때부터 19세기 유럽의 게토에서 해방될 때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수많은 작은 공동체로 분화되어 다양한 나라와 문화 속에 흩어져 살았다. 이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들 주변의 이방 문화에 흡수되거나 동화되지 않을 수 있었는가?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만들어 이 도전에 맞섰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종교 법전인데 흩어진 유대인들을 결합하는 영적 구심점 역할을 했다. 《탈무드》가 거의 1천5백 년 동안 유대인들을 보이지 않게 다스렸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탈무드의 시대’라 부른다.
7세기에 유대교는 또 하나의 종교인 이슬람교 ― 무함마드Muhammad가 창시했다. ― 를 낳았는데, 이것이 유대인에게는 네 번째 도전이 된다. 창시된 지 채 1백 년이 안 되어, 이슬람 제국은 서양 문명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무자비하게 증오했던 그 이슬람 제국에서 단순히 생존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문학적·과학적·지적 성취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 시대에 유대인 가운데 정치인, 철학자, 의사, 과학자, 사업가, 국제 자본가 등이 출현했다. 아랍어는 유대인의 모국어가 되었다. 유대인 풍류가도 등장했는데, 그는 종교와 철학에 관한 글을 썼을 뿐 아니라 사랑에 관한 시도 썼다. 그렇게 7백 년이 지나가고 이슬람 제국이 쇠약해지자, 이슬람 세계의 유대 문화도 힘을 잃었다.
다섯 번째 도전은 중세 시대였는데, 이때는 유대인과 서구인 모두에게 암흑기였다. 유대인은 1천2백 년 동안 절멸의 위협에 맞서 싸워야 했다. 십자군의 이름으로 정복된 비기독교 민족들은 유대인을 빼고는 모두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1천2백 년간의 암흑기를 지나면서도 영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침체되지 않았다. 오히려 위대한 유대인이 그들에게 남겨준 사상을 검증하고 사상의 힘을 확인했다. 마침내 게토의 벽이 무너졌을 때, 유대인들은 한 세대가 채 지나기 전에 서구 문명의 날실과 씨실을 이루고 있었다. 한 세대가 채 지나기 전 게토의 그늘이 여전히 남아 있었을 때, 그들 가운데 총리, 기업의 수장, 군대 장교, 유럽 지식의 판을 바꿀 지식의 전위들이 나타났다.
여섯 번째 도전은 근대에 찾아왔다. 19~20세기에 출현한 민족주의, 산업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같은 이념은 서양 정신의 신종 전염균인 반유대주의anti-Semitism와 더불어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도전이 되었다. 생존을 하려면 이 도전들에 맞서는 새로운 대응 방법이 고안되어야 했다. 이 대응 방법이 적합한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대 역사가 한 문명이 아니라 여섯 문명에 걸쳐 펼쳐졌음을 살펴보았다. 이 역사는 문명이 인간처럼 한 번의 생애 ― 보통 5백 년 정도 지속되고, 길어도 천 년을 넘지 않았다. ― 만 산다고 믿는 여러 역사학파들이 볼 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핀 것처럼 유대인들은 4천 년을 생존해 왔고, 여섯 문명 속에서 각기 다른 문화를 이루었으며, 아마 일곱 번째 문화도 곧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실과 이론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