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불평등의 세대, 무엇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한국 사회를 ‘세대’라는 프리즘으로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은 두 가지 과정에 주목한다. 하나는 민주화를 이루고자, 한 세대가 ‘저항 네트워크’를 만들어 시민사회와 국가를 ‘점유’해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를 ‘정치적 권력 자원의 세대별 축적,’ 구체적으로는 ‘시민사회의 국가화’라고 칭할 것이다. 1장에서 나는 ‘386세대가 어떻게 오늘의 권력을 형성했는지’를 묻는다. 이 ― 넓게는 ‘민주화 세대,’ 좁게는 ‘386세대’라고 불리는 ― 특정 세대의 리더들은 ‘이념’을 통해, 산업화 시대가 스스로를 파편화한 학연·지연·혈연의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원리를 터득했다. 이들은 이러한 이념·조직·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시민사회를 형성한 후, 국가에 대한 점유 작전에 집합적으로 돌입했다. 따라서 나는 이 세대의 정체성과 네트워크가 다른 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그림1〉에서 굵은 화살표로 나타냈듯이, 다른 세대의 정체성이 사회적 변동 과정을 겪으며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세대의 정체성은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민주화 운동을 통해 사회 변동을 이끌어낸, 능동적 정체성이다. 이 능동적 정체성이 ‘권력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후, ‘386세대가 한국 사회와 다음 세대들에게 해온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묻고, 이어서 이 세대의 리더들이 어떻게 권력을 분배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세대별 정치권력의 분포를 파헤침으로써 이 세대가 주도한 ‘시민사회의 국가화’가 어떤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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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은 ‘386세대가 어떻게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탄생시켰는지’를 묻는다. 나는 ‘국가에 대한 대항 및 점유’의 경험을 한, 이 세대의 ‘권력 자원 축적 과정’이 민주화를 이끌어낸 것으로 끝났다고 보지 않는다. 〈그림1〉에서 두 번째 굵은 화살표가 나타내듯이, 이 세대의 네트워크는 세계화와 시장 개방, 정보화를 맞아 로컬 및 글로벌 시장에서도 권력 자원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다른 세대에 비해 정보와 조직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 새로운 권력 자원의 구축은 이 세대가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거대한 전 지구적인 구조 변동의 물결에 무사히 ‘올라탄’ 반면, 다른 세대들은 그로부터 (상대적으로) 밀려나거나 올라타는 데 실패하거나, 아니면 먼저 올라탄 자들에게 ‘복속’되는 과정이다. 나는 이를 ‘경제적 권력 자원의 (세대별) 차별적인 축적’이자 ‘시장과 국가를 가로지르는 네트워크 위계의 구축 과정’이라고 칭한다. 나는 이 두 정치·경제적 권력의 출현이 따로 떨어진 독립적인 과정이 아닌, 긴밀하게 연결된 ‘인과적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를 밝히기 위해, 이 장은 ‘386세대가 어떻게 기업에서 세대권력을 구축했는지’를 묻고, 더 나아가 ‘386세대가 얼마나 더 오래, 얼마나 더 많은 자리와 부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2장은 상층 노동시장에서 고용의 규모, 근속연수, 소득이 세대별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확대일로에 있는 세대 간 경제적 불평등의 실상을 파악할 것이다.
386세대가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장악하고,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하는 과정을 드러낸 다음, 나는 다음 두 장3장과 4장에서 그들이 민주화 투쟁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부모 세대 ― 산업화 세대 ― 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386세대가 산업화 세대를 몰아냄으로써, 이 세대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듯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사라져도 그들이 구축해놓은 제도와 문화는 남는다. 산업화 세대의 어떤 제도와 습속이 남았는가? 386세대가 구축한 위계 구조의 어떤 요소들이 이전 세대로부터 전수된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동아시아 특유의 ‘벼농사 체제’에 주목할 것이다. 산업화 세대는 동아시아에, 한반도에 수천 년 동안 뿌리내린 ‘벼농사 체제’의 기억을 몸과 기억에 새긴 채 도시화와 경제 발전을 주도한 이들이다. 그 기억을 끄집어내야, 우리는 한반도 정주민 특유의 ‘위계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386세대가 이룩한 ‘세대 네트워크’ 또한 이 동아시아 위계 구조 위에 구축된 것이다. 386세대가 구축한 위계 구조는 기존에 존재하던 위계 구조를 세계화의 경쟁 구도에 적응하는 와중에 ‘완성’시킨 것이지, 그들이 새로 고안해낸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3장은 ‘산업화 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묻고, 이어서 ‘산업화 세대가 어떻게 불평등 구조를 싹 틔웠는지’를 질문한다.
4장에서는 산업화 세대가 주도했고, 이제 386세대와 포스트 386세대에게 그 DNA가 전수된 세대 간 자산 이전 전략을 들여다본다. 위계 구조의 상층을 차지하기 위해 쟁투해온 한국인들의 경제적 행위 양식은 결국에는 한 가지로 수렴된다. 그것은 증여와 상속을 통한 가족·씨족 계보의 안전망 구축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산의 축적 및 이전 전략을 살펴봐야 하고, 그로써 발생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 장에서는 ‘세대 간 자산의 불균등한 형성은 어떤 불평등 구조를 만들었는지’를 질문한다. 산업화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 자산과 그 이전 전략을 분석한 다음, 한국 복지 체제의 한계와 향후 과제로 논의를 확장시킬 것이다.
5장은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들은 동시대 청년과 여성이다. 이 장은 위계구조의 상층을 장악한 거대한 386세대, 그들이 구축한 위계 구조화에서 더욱 가혹한 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는 청년들 및 그 한편에서 조금씩 자리를 확보하며 착취와 수모를 감내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짧은 (데이터 분석을 통한) 소묘와 함께, 한국형 위계 구조가 직면한 위기의 징조들을 언급할 것이다.
6장은 한국 사회의 세대와 위계 문제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세대가 위계 구조로 탈바꿈하는 과정, 구체적으로는 세대와 위계가 어떻게 서로를 재생산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장에서 세대론은 위계 구조를 해부하기 위한 구도 잡기앵글로서의 역할을 하며, 궁극적으로 한반도 특유의 ‘위계 구조’를 (세대론을 통해) 이해해야 계층계급화 과정 또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장 말미에서는 ‘한국형 위계 구조의 위기’를 실증한다. 한국의 100대 상장기업에 대한 세대별 실적 비교를 통해 ‘세대의 정치’와 그 여파가 기업의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7장은 세대 간 그리고 세대 내 불평등과 그 재생산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를 논의한다. 이를 위해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노동시장 개혁 방안 몇 가지를 제시한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세대 간 연대임금’ ‘연공임금제 폐지 및 약화’ ‘세대 간 주거권 재분배’를 세대 간 형평성 정치의 구체적 항목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두번째 프로젝트로, 청년 세대를 위한 복지국가 전략으로서 고용과 훈련의 안전망 확대를 논의하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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