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대기업들이 우리의 지적인 습관을 뒤바꿔놓는 중이다. 나비스코와 크래프트 같은 식품 기업들이 우리의 먹을거리와 먹는 방식을 바꾸고자 했던 것과 똑같이, 이제는 아마존과 페이스북, 구글이 우리의 읽을 거리와 읽는 방식을 바꾸고 싶어한다.(15~16쪽)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유명한 기업들을 정의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떤 기업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는 초등학교 3학년이라도 설명할 수 있었다. 엑손은 석유를 파는 회사이고,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파는 회사이며, 월마트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물건을 사러 가는 매장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독점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 기업들 중에서는 그 같은 무한한 확장 열망을 이름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지구상에서 유량이 가장 많은 강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은 아마존의 로고는 A부터 Z까지를 가리키고 있으며, 구글의 회사명은 0이 100개나 붙는 숫자 구골googol에서 따왔다. 구골은 수학자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숫자를 간략히 줄여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이런 회사들은 대체 얼마나 클까?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으겠다는 목표로 구글을 설립했지만, 그 목표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구글은 현재 무인 자동차와 폰을 만들고, 죽음과 싸워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아마존은 한때 “모든 물건을 파는 상점”으로 만족했지만, 이제는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드론을 설계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야심찬 기업들 ― 거기에는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 애플도 포함된다 ― 은 모두 우리의 “개인 비서”가 되려고 경쟁하고 있다. 아침에 우리를 깨워주고 인공지능A.I.의 소프트웨어로 우리의 하루를 이끌어주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의 소중하고 개인적인 것들, 일정과 연락처, 사진과 문서들을 모아 보관하려 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자기들에게서 정보와 오락거리를 찾게 만드는 동시에,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총망라하는 거대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구글글래스와 애플워치를 보면 그 기업들이 인간의 몸에 인공지능을 이식하게 될 미래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테크업계의 독점 기업들은 인류를 자신들이 바라는 그림대로 바꿔놓으려는 의지가 과거의 어떤 기업 집단들보다 강하다. 이들은 인간의 진화 방향을 바꿔서 인간과 기계의 통합이라는 오랜 노력을 드디어 완수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테크와 관련된 보도가 대부분 최신 제품 발표에 치우쳐 있다 보니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위와 같은 주장은 실리콘밸리에서는 제법 흔한 생각이다. 테크 기업의 창업자가 연례 연설을 할 때면, 인류의 본성, 특히 그들의 생각에 우리가 미래에 가져야 한다고 믿는 인류의 본성에 대한 대담한 선언을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테크 전문가들의 세계관을 대표해서 흔히 사용되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흔히 자유의지론으로도 번역되는 미국 보수파의 한 흐름. 정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점에서는 주류 보수와 비슷하지만, 전통적 사회 가치보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중시한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 옮긴이가 실리콘밸리를 지배할 거라 짐작하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유명인들 중에는 아인 랜드Ayn Rand.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 사상가로, 『파운틴헤드Fountainhead』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Atlas Shruggged』 등의 작품은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바이블처럼 여겨진다. ― 옮긴이를 사상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테크계의 거물들에게 귀를 기울여 보면, 그와는 다른 세계관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영웅적 개인을 숭배하는 자유지상주의와는 정반대에 가깝다. 테크 대기업들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며 집단적으로 존재하도록 태어났다고 믿는다. 이들은 네트워크와 집단이 가진 지혜, 그리고 협업을 기꺼이 신뢰하며, 원자화된 세상을 복구하려는 깊은 열망을 품고 있다. 세계를 연결하면 문제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이들이 사용하는 수사법에는 인간의 개인성individuality에 대한 존중이 드러나지만테크 기업들은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세계관은 그와는 정반대다. 심지어 흔히 사용하는 사용자라는 표현도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관료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들린다.
유럽에서는 이런 테크 대기업들을 하나로 묶어서 GAFAGoogle, Apple, Facebook, Amazon라고 부르는데이 기업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재치 있을뿐더러, 그 특성을 제대로 본 것이기도 한다. 이 네 개의 기업은 지금 개별성을 보호하는 원칙들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이들이 만든 기기나 웹사이트는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적재산권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저작권의 가치를 무시한다. 또한 경제 영역에서는 인류가 공공선과 위대한 목표들을 추구하는 것을 경쟁이 방해한다는 정교한 논리를 내세워 독점을 정당화한다. 테크 기업들은 개인주의혹은 개인성, individualism의 핵심을 이루는 자유의지에 대해서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각 개인이 하루하루 내리는 크고 작은 선택들을 자동화하려 한다. 어떤 뉴스를 읽을지, 어떤 물건을 살지, 어떤 길로 이동할지, 어떤 친구를 사귈지 등을, 테크 기업이 만든 알고리듬이 제안한다.
테크 기업들과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보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덕분에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편리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경탄만 하고 있었다. 이제 이들의 독점이 빚어낸 결과를 곰곰이 따져보고 인간의 앞날을 결정하는 데 있어 우리 스스로의 역할을 되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어떤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기관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던 가치를 바꾸고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면, 우리는 개인성individuality을 상실하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 된다.
지난 여러 세대 동안 우리는 이 같은 혁명들을 겪어왔다. TV디너전자레인지에 데워서 TV를 보면서 먹을 수 있도록 간편하게 포장된 음식 ― 옮긴이나 새로 나온 음식들이 갑자기 주방을 가득 채웠고, 우리는 비닐로 감싼 치즈,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치즈가 줄줄 흐르는 냉동 피자, 바삭바삭 씹히는 동그란 감자튀김 같은 것들에 놀라고 즐거워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그런 것들은 중요한 혁신처럼 보였다. 식재료를 사서 레시피에 따라 차근차근 조리하는 일은 따분한 작업이었고 조리 후에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박박 닦아야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기적과도 같은 음식이 나타나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해야만 했던 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식생활에 일어난 혁명은 단순히 새롭고 재미나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새롭게 등장한 제품들이 일상생활에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편리함과 효율성, 풍요로움과 맞바꾼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새로운 음식이 놀라운 엔지니어링의 결과인 건 맞다. 하지만 이 엔지니어링은 사람들을 비만으로 이끌었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나트륨과 상당량의 지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음식을 먹다 보면 입맛이 바뀌고 허기를 달래기 어렵게 된다. 또한 그런 음식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고기와 옥수수가 추가 생산되어야 했고, 급증한 수요를 채우기 위해 미국 농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환경에는 끔찍한 폐해를 불러왔다. 그 결과 완전히 새로운 기업형 농장이 등장했다. 한푼이라도 비용을 절감하려는 대기업들이 똥이 가득한 우리에 닭을 쑤셔넣고 항생제를 마구 주입했다. 소비 패턴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를 깨닫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우리의 허리둘레와 수명과 정신, 그리고 지구가 이미 피해를 입은 후였다.
1900년대 중반의 음식 혁명과 유사한 변화가 이제는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바꿔놓고 있다. 대기업들이 우리의 지적인 습관을 뒤바꿔놓는 중이다. 나비스코와 크래프트 같은 식품 기업들이 우리의 먹을거리와 먹는 방식을 바꾸고자 했던 것과 똑같이, 이제는 아마존과 페이스북, 구글이 우리의 읽을 거리와 읽는 방식을 바꾸고 싶어한다. 가장 거대한 테크 기업들은 인류 역사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게이트키퍼다. 구글은 우리에게 정보에도 위계가 있음을 알려주면서 인터넷을 정리해서 보여주고,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속해 있는 사회집단에 대한 세밀한 이해와 알고리듬을 활용해 우리가 접하는 소식들을 정리해준다. 또 아마존은 출판업계에 자리 잡고 출판 시장을 장악했다.
그같은 시장 지배적 기업들은 자신이 통제하는 시장을 새롭게 재편할 능력을 갖게 된다. 거대 식품 기업과 마찬가지로 거대 테크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제품을 구성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이 기업들은 문화 생산의 전 과정을 바꾸어 수익을 극대화하고 싶어한다. 지식인이나 프리랜서 작가들, 탐사전문 기자들, 그리고 제법 알려져 있지만 베스트셀러를 내지 못한 작가들은 과거의 소농들과 비슷한 신세가 되었다. 소농은 늘 근근이 버텨왔는데, 경제가 변화하면서 아예 경쟁 자체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지식의 영역에서 독점과 순응주의conformism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위험이다. 독점은 힘있는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사용해서 경쟁의 다양성을 억누르는 것이며, 순응주의는 그런 독점 기업들 중 하나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사용해서 의견과 취향의 다양성을 말살할 위험을 말한다. 집중화concentration에는 동질화homogenization가 뒤따른다. 변화한 식생활에서 우리는 이런 패턴을 뒤늦게 발견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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