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이 책은 자연의 개발·착취와 지배를 위한 과학을 형성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자원 착취를 ‘당연시하는’ 법으로, 커먼즈의 인클로저와 사유화로 변형되었는지 이야기하며 커먼즈 회복과 이를 통한 우리 경제, 민주주의, 그리고 삶의 쇄신을 위한 개념적 토대를 마련한다. ─ 「책 소개」에서
자연법칙과 법의 본성
나일 민물 농어는 담수어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것에 속하는데, 길이는 보통 6피트약 183cm, 무게는 400파운드약 181kg 이상 나간다. 이 민물 농어의 서식지는 사하라 사막 이남으로, 나일강뿐 아니라 콩고, 니제르, 차드 호수를 비롯해 여러 강가에서도 발견된다. 그런데 이 민물 농어가 서식지가 아닌 동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견되면서 생태계에 의도하지 않은 외래종 도입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2004년 사우퍼Hubert Sauper가 대중을 위해 만든 다큐멘터리 「다윈의 악몽」은 바로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속하는 민물 농어는 엄청난 크기와 힘, 탐욕을 보이며 자기 종을 비롯해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또한, 16년이라는 평균수명 기간에 대단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양식을 위해 빅토리아 호수에 민물 농어를 도입한 이래로 호수에 살던 대부분의 토착종이 사라졌고, 이는 엄청나게 파괴적인 사회경제적 결과를 야기했다. 예를 들면 주로 수출을 위한 큰 규모의 어획 작업 때문에 토착민들이 전통적으로 영위해 온 어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을 위해 호숫가에 마을이 생겼지만, 물과 전기 등 기본 시설조차 들어서지 못했다. 새로운 현금 경제에 동화되지 못한 지역 주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집을 떠나야만 했다. 거리의 아이들 사이에서 매춘과 에이즈, 약물 남용이 만연했다. 더군다나 나일 민물 농어는 전통적 방식대로 햇빛에서 건조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훈제로만 보존할 수 있는데, 이는 해당 지역의 땔감을 고갈시켰다.
근대 경제와 법의 패러다임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보다 더 잘 암시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근시안적 착취와 국가주권, 돈에 부추겨지는 사적 소유돈이 금융기업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법적으로 추상화한 것는 지역사회의 희생과 환경 파괴를 대가로 소수에게만 거대한 이익을 제공했다. 국가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장 뚜렷하게는 현대의 다국적기업는 나일 농어 사례와 마찬가지로 식인食人적 경향을 보여주는데, 다양한 주체가 전쟁이나 기업 인수를 통해 서로를 잡아먹는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서 한 세기간 착취에 가까운 산림 벌채로 경관이 훼손되었고, 하천에 토사가 쌓이면서 연어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다. 나무가 사라지면서 지역 주민의 생계수단도 덩달아 사라졌다.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해 서부에서 남서부까지, 건조 지역에 서식하는 식물군을 살리고 산업농을 육성하기 위해 물을 지나치게 소비하면서 대수층은 고갈되고, 강가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에 가뭄의 영향에 더 취약해졌고, 지역 주민의 생계와 식량 안보가 위협받았다. 단기적 시각으로 진행된 경제적 이익이나 그 밖의 다른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식량 부족, 질병, 인구과잉은 전 세계적으로 빈번해졌다. 이 때문에 소득 격차는 커지고, 환경은 더 훼손되었다.
나일 농어가 새로운 환경을 파괴하고, 어쩌면 빅토리아 호수에서 벗어난 같은 나일 농어마저 먹어버릴 수 있듯이 착취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을 제때 바꾸지 않는다면 인간 문명은 이 행성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근대적 자본주의 제도가 나일 농어처럼 주변뿐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기업은 부유한 관광객을 유치하는 개발 프로젝트가 남반구 개도국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치켜세우지만, 그것 때문에 무엇이 파괴되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려면 먼저 이러한 시스템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오늘날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일부러 기획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같은 근시안적 시스템에 우연히 이르게 된 것도 아니다. 서문에서 언급했듯 이 책의 주요 명제는 법학법이론이 과학과 함께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17세기 이후에 근대성modernity은 오늘날 전 지구적 위기의 근본 바탕이 되는 산업화 시대의 물질주의 지향과 착취의 사고방식을 낳았기 때문이다.과학자와 법학자는 현재와 같은 상태에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한다 앞으로 과학과 법의 관계를 탐구하다 보면 법학이 자연과학과 놀라울 만큼 비슷한 역사와 개념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연법칙’과 법 간의 관계에서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과 법 간의 상호작용이 진화해 왔음을 보게 될 것이다.
과학에서 기계론적 패러다임은 16~17세기에 시작되었다. 이것은 갈릴레이가 도입한 정량화와 베이컨이 옹호한 인간의 자연 지배 강조, 데카르트가 발전시킨 물질세계를 정신과 분리된 하나의 기계로 여기는 시각, 뉴턴의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자연법칙’에 대한 개념, 마지막으로 로크가 촉진한 사회에 대한 합리주의적이고 원자론적인 개체주의적 시각을 포함한다.
그로티우스, 도마 같은 합리주의적·기계론적 패러다임을 주장한 17세기 법학자들은 실재를 낱낱으로 한정되는 구성 요소의 총합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낱낱의 구성 요소는 바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개별 권리를 가진 소유권자를 뜻했다. 로크와 홉스가 주장하고 옹호한 소유권과 국가주권은 법적 근대성의 두 구성 원리다. 게다가 데카르트적 전통 아래에서 법은 여전히 개별 주체로부터 분리된 ‘객관적’ 틀로 여겨진다.
지난 30년간 과학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했다.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전체론적이고 생태적인 세계관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은 세계를 기계로 보지 않고 네트워크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트워크는 관계의 패턴이다. 따라서 네트워크로서 생명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관계와 패턴으로 사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과학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시스템 사고’, 또는 ‘시스템적 사고’라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연이 착취하지 않고, 오히려 생성적generative인 일련의 생태적 원리를 통해 생명을 지탱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법조계나 대중이 법을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아직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다.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상호의존적인 시스템상의 문제이며 전 지구적 위기는 결국 생태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법 패러다임의 근본 변화, 곧 새로운 ‘법의 생태학’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호소하고 있다. 새로운 생태적 법질서의 핵심에는 사회적 실재를 개별적 ‘구성 요소’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와 공동체의 구성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여기에서 법은 객관적인 구조물가 아니다. 법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과 시민 조직의 법적 구현체로서 법 공동체에서 출현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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