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문명의 뇌, 서양 도서관의 역사를 시작하며…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텅 비는 느낌에 시달렸다. 읽어치운 책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의 숫자도 점점 더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다른 책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도서관에서 마주치게 되는 책에 대한 강박을 이렇게 인용하며 매튜 배틀스는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를 시작했다. 나도 그랬다. 수년간 제법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새로 읽어야 할 책들은 늘 보란 듯이 늘어났다. 이러다간 책의 늪에 빠질 것 같았다. 스스로 문자옥問字獄을 만드느니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고 그래서 일단 쓰자고 마음먹었다. 지난해 8월부터다. 매일 한 줄이라도 쓰자고 다짐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쓰기도 힘들었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상념을 걷어내는 것도 일이었다.
칼 세이건이 말하지 않았던가? 인류가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별도의 공용저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할 줄 아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류뿐이라고, 그리고, 그 ‘기억의 대형 물류창고’를 우리는 도서관이라 부른다고.
그렇다. 도서관은 인류 문명의 뇌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감히 그 뇌를 건드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사키 아타루가 마르틴 루터의 입을 빌려 고백한 것과 같다.
루터가 한 것은 성서를 읽은 것입니다. 읽어버린 것입니다. 책을 읽은 이상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읽는다는 것은 책을 고쳐 읽는다는 것이고, 책을 고쳐 읽는다는 것은 읽는다는 것이고, 책을 고쳐 읽는다는 것은 책을 고쳐 쓴다는 것이며, 책을 고쳐 쓴다는 것은 법을 고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혁명인 것입니다.
내가 시작한 이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는 한줄 한줄 써내려가면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학 전공자도 아니요, 역사와 그렇게 친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아닌가. 그저 「정보문화사」를 수년간 강의하게 되면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미안함에서, 그리고 족보 없는 아이들처럼 존재감도 없이 직업적 정체성도 모른 채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그들이었기에, 내 글을 통해 나름의 자존감과 위안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게 최초의 역사서에 대한 기억은 대학 시절에 읽은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정도다. 문고판이었고 이렇다 할 기억도 없다. 그런 내게 역사에 대한 엄청난 DNA라도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학계의 쟁쟁한 선학들이 다루려고 하지 않았던 그러나 아킬레스건 같았던 도서관 역사를, 문외한과 다름없는 내가 그 깊이도 모른 채 도전장을 낸 건 아닌지 일면 후회스럽기도 하다.
이 혼란의 와중에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는 도움을 주었다. 그는 원저와 출전의 인용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글을 ‘역사 르포르타주reportage’라는 형식으로 대중적인 글을 썼다. 물론 내가 대중서를 내는 것도 아닌데 이 방식을 따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글을 통해 나름의 방식대로 역사를 서술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고, 요약해서 소개하는 방식을 일부 빌려올 수 있었다. 내 앞에도 도서관사를 쓴 훌륭한 선학들이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당대의 서술 방식을 지금 이해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시작한 1차 목표는 참고문헌도 각주도 없는 그 글들을 보면서 선학들이 기술한 원전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진행하면서 상당 부분 많은 책이 서양의 원전을 그대로 번역하여 옮긴 것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2차 목표는 이 중에 살릴 원전은 살리되, 나머지는 원서나 번역서 문장을 압축하고 요약·인용하여, 문장 구조를 읽기 쉽도록 편집하는 것이었다. 지면을 아끼고 대학생 수준에서 이해력을 조금이라도 높여보자는 의도였다. 최종 3차 목표는 도서관이 존재하던 당시 상황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시대적 배경을 서술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총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장 난제였다. 아래 피터 버크의 문제 제기처럼 좀 더 완전한 독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는 정보에 빠져 죽을 지경이지만 지식은 결핍되어 있다. 우리는 정보 거인이 될 수 있지만 그러면서 지식 난쟁이가 될 수 있다”
“대학들의 중요한 좋은 점은 학문을 작은 부분들로 나눠서 각자에게 작고 제한된 책임을 맡긴다는 것이다. 하나의 전문화를 통해서 인류는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또 서로 다른 종류의 학자들에게 점점 더 다양해지는 지적 환경들이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경향은 사고의 폭을 좁혀서 개인들이 자기 자신의 학문 분과조차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는 것을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는바, 인류의 지식이라는 정말로 큰 그림은 또 말할 것도 없다 하겠다.”(「지식의 사회사」 중에서)
이렇게 어렵게 나는 ‘도서관의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화두를 시작했다. 이는 마치 내게는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논할 것인가?’와 다를 바 없으니, 평생 짐으로 짊어질 화두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도서관의 탄생은 문명의 시원과 궤를 같이하는 만큼 긴 역사를 갖고 시대와 더불어 변천하였기에 한 시대의 문화사와 지성사를 포함한다. 알베르트 망구엘은 우주를 바벨탑과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라는 두 개의 신화를 통해 바라보았다. 인간 존재의 정점을 하늘에 닿고자 하는 수직적 야망과 온갖 세상의 지식과 상상마저 소유하고자 하는 수평적 탐욕이 만나는 교차점에 있다고 본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도서관은 긴 역사의 대부분이 우주는 아니더라도 지상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기존 질서를 찬양하지 않는 모든 책은 제거해야 할 쓰레기에 불과했다.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이기도 했지만,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서부터 저 북한의 인민대학습당까지 지식의 지배와 통제를 통해 권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인류의 상징적 건축물이기도 했다. 노자가 공자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수장실에 근무하면서 오늘날 사서와 같은 위치에서 왕실의 도서를 섭렵했기 때문이었다고 하니 사실 여부를 떠나 사서 역시 글을 읽고 썼던 엘리트들로서 권력과 가까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시대를 뛰어넘어 공히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요람이자 심장부가 되었다.
모든 역사는 이렇게 단편적 사실을 뛰어넘는 스펙터클한 스토리다. 아니 상상의 공간이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줄이 한 편의 소설로, 한 편의 영화로 거듭났듯이 우리 도서관의 역사도 사실의 기록과 전승, 논리적 해석 이상의 비어있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나는 우리 후학들이 도서관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지성사를 꿰뚫고 인류 문화의 위대함과 소통하며 풍부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자극을 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선학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앞선 연구와 저술에 힘입었으며, 그들을 키워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숲속 보물들을 찾아내어 갈고 닦아 내 물건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나의 식견과 통찰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세상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되었듯이 나는 그저 편집자로서의 직분을 겨우 수행했다. 그러므로 단연코 말한다. 이 책이 가능한 한 빨리 폐기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9년 7월
楚安齋에서 저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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