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동네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들을 서로 어울리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집’에 대한 나의 관심은 거의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적응하고 기쁨과 평안을 느끼는 듯하다. 그 느낌은 어른들이 친구들과 만나 긴장을 풀고 웃을 때 느끼는 충족감과 같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해 겨울 사촌 형들이 나를 데리고 동네 스케이트장에 가더니 휴게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거기에는 몸을 녹이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함께 어울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 후로 나는 한 번도 그 맛을 잊어본 적이 없다.
이후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분명한 목적 없이 서로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공식적인 모임이 이루어지는 공공장소의 목적이나 기능은 정부나 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문화를 가진 모든 사회에는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이 있었고, 그러한 모임을 할 수 있는 그 사회 특유의 장소가 있었다.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도시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서 미국 사회는 비공식적 공공생활에 적대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런 모임을 가질만한 장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과거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약화되었고, 개개인의 삶도 그리 풍요롭지 못하다. 그래서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긴급하다.
이 주제를 학문적인 주요 관심사로 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이었다. 나는 1977년에 어느 지역 사회학 학술회의에서 이 견해를 처음 발표했다. 1980년에는 동료와 함께 대중적인 글을 한 편 썼고, 이후에 최소 아홉 차례 정기간행물과 책에 글을 실었다. 1983년에는 좀 더 길고 학술적인 버전을 학술지에 실었다. 독자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한정된 지면 안에서 나의 주장을 입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후 6년 동안 이 책을 썼다. 힘들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였다. 시작만 하고 그만두기를 수차례 거듭한 끝에, 사회학자들만을 위한 책을 쓰거나 사회학 저술이 으레 그렇듯이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는 책을 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나는 비공식적인 공공생활, 그리고 이를 위해 필수적인 장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장소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이며, 우리는 그런 경향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기제를 갖고 있지도 않다. 젊은 세대에게는 비공식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중요성이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이고, 시민은 여기에 합리적인 논의를 펼치지 못한다. 나의 주장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조차도 반대편 사람들을 설득할 수단이 거의 없다. 점점 더 합리화되고 모든 것이 관리되는 세상에서, 공적인 삶을 건져내려면 효과적인 논리와 언어가 필요하다. 나의 노력이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의 필요성을 대중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이 책에서는 학술적인 용어와 서술 방식을 버릴 것이다. 제3의 장소에 관해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장소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한다. 법정에 선 변호사처럼 배심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잊힐 위기에 처한 의뢰인을 변호하려는 것이다. 배심원은 교육받은 중산층으로, 어디에 살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앞에 놓인 사안에 관해 판단할 수 있고 그러한 판단 결과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나는 솜씨 좋은 변호사처럼 많은 일화와 사례를 이용해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한다.
학술적인 방식으로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있는 사실을 아무렇게나 다루겠다는 뜻은 아니다. 오직 진실만이 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비공식적인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주요 특징과 그러한 장소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때 각각의 결론이 나의 현장 경험과 일치하는지를 검증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강의실에서 토론했다. 또한 여섯 개의 장5장부터 10장까지을 실제 사례에 할애했다. 이 사례들은 앞에서 다룬 기본 얼개를 입증한다. 결국 시간은 내편이었다. 초반에는 여러 현상이 제3의 장소에 대해 내가 가졌던 처음의 생각과 어긋나 보였다. 인간은 불편한 진실을 폐기하거나 폄훼하거나 단순히 ‘망각’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긋나 보였던 현상들은 사안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더 유익한 결과를 낳았다. 변장을 하고 나타난 친구였던 셈이다. 조각들을 맞추어나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학계의 관행에 비추어 보면 내가 이 프로젝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이 맞다. 그러나 주제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었고,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 자체가 최고의 연구 방법이었다.
사회과학자가 이 책을 보면 평이한 어휘와 논리 이면에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구조가 깔려 있음을 눈치 챌 것이다. 이 책의 1부는 이후 구체적인 사례들을 비추어 볼, 비공식적 공공생활의 전형적이고 이상적인 상을 창출하는 데 할애했다. 2부에서는 여러 시대, 나라의 실제 사례들을 제시한다. 3부는 비공식적인 공공생활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다룬다. 내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학자도 있겠지만 나는 이 연구를 위해 상당한 양의 현장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 자료들을 비교 분석, 또는 근거 이론grounded theory, 경험적 관찰을 통해 이론을 수립하는 귀납적·질적 연구 방법 – 옮긴이을 도출하는 데 이용했다. 또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자료들도 활용했다.
제3의 장소에 관한 다른 학자의 논의를 보고 싶다면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ès의 “가족과 도시”The Family and the City, 《다이달로스》 1977년 봄호라는 글을 읽기 바란다. 여기서 그의 카페Café 개념만 이해하면 된다. 이 책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에 아리에스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고, 곧바로 그 개념을 반영했다. 그 논문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나의 전체적인 논지 전개를 더 앞당겼을지 모르지만, 그의 분석에 내재한 비관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사회과학에서 비공식적인 모임 장소에 관한 논의는 대개 민속지학적 기술 방법으로 이루어져,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이루어지는 핵심적인 공간들을 파악하고 그러한 공간이 사회에서 갖는 기능을 설명하는, 좀 더 추상적이고 분석적인 작업과 통합될 필요가 있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사교성Sociability에 관한 짧은 논문을 발표한 것이 한 세기 반도 더 전인데 지금까지 왜 그리 진전이 없었는지를 사회학자들은 자문해봄직하다.
끝으로 동료들에게 비공식적 공공생활의 특징에 관한 교차문화적 연구를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서 제안하고 싶다. 가장 유용하고 적절한 자료들은 언제나 공공영역 안에 존재하며, 해외 사례를 연구하기도 쉬워졌다. 우리 사회가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 필수적인 인간관계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이 책이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든 단지 동기부여에 그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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