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에 브리티시 텔레콤British Telecom에서 선보인 한 TV 광고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캐치프레이즈는 “말하니까 좋다It’s Good to Talk”였죠. 전화로 용건만 간단히 전하는 대신에 수화기 너머의 가족, 친구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말하니까 좋다”는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먹는 다양한 음식에 영양가가 없다면 “먹으니까 좋다”라는 말이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말하니까 좋다”는 자기를 표현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남들에게서 이해받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향한 믿음에 기반한 20세기의 구호입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나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말하기Talking가 아니라 대화Conversation입니다. 21세기에는 새로운 야망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대화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진정한 대화에서는 불꽃이 일어납니다. 대화란 그저 정보만 나누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식사’를 위해서라면, 다양한 건강서적의 처방전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대화를 위한 지혜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대화에 관한 지침서에는 이런저런 대화를 삼가라는 조언은 나와 있겠지만 최고급 대화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을 겁니다.
대화를 다룬다고 내세우는 책은 많습니다. 아첨하거나, 속이거나, 유혹하거나, 상류층처럼 말하거나,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같은 사람을 어떻게 상대할지 알려주는 책들 말입니다. 배우 애바 가드너Ava Garder에 따르면 클라크 게이블은 “누가 ‘클라크, 안녕하세요?’라고만 말을 걸어 와도 뭐라고 답할지 몰라 말문이 막히는 부류”였다고 하지요. 저는 이 자리에서 친구들 앞에서 과시할 만한 대화의 비법을 소개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대화는 사람들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기꺼이 드러내는 대화입니다. 이런 대화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실험과도 같으니까요. 함께 세상을 요리해서 쓴맛이 덜한 음식으로 만들어내기로 합의한 모험인 셈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대화가 낳은 자식과 같습니다. 지난번 책은 열여덟 개 나라의 여성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에 관해, 그들의 욕구와 두려움에 관해 나눈 대화의 자식이었지요. 그 책을 계기로 저는 과거에 살다 간 사람들과 모든 문명의 사람들이 욕구와 두려움에 관해 나눈 대화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평소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에 관해 대화를 나눈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대화에 관한 서적을 많이 찾아 읽으면서 지면으로나마 저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요. 그렇게 지금 여러분께 전하려는 이야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저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생각의 결과를 아내 디어드리 윌슨Deirdre Wilson과 나누었습니다. 아내는 사람들이 소통할 때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자입니다. 우리는 그전까지 서로 몰랐던 각자의 생각을 내세우고 반박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관심을 갖는 대화의 일면입니다. 대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나아가 세상이 변화하는 현상 말입니다. 저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
대화는 어떻게 이런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경제계와 정치계의 막강한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갈등이 삶의 본질이며, 인간은 사실상 동물이고 역사는 생존과 지배를 향한 오랜 투쟁의 기록일 뿐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라면, 물론 대화로 변화를 일으킬 수 없겠지요. 그리고 이런 믿음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크게 변화할 수 없을 겁니다. 그저 회피나 쾌락을 위한 대화만 나누면서 살아갈 거예요. 하지만 저는 세상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 세상은 배우자를, 연인을, 스승을, 신을 찾는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입니다. 개인들의 만남이야말로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누군가는 좌절하고, 탐색을 포기하고, 냉소적으로 변합니다. 반면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만남을 찾아 나서지요.
인류는 이미 몇 차례 대화의 방식을 바꾸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전쟁과 폭동과 기근만큼이나 중대한 대화의 혁명이었습니다.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없거나 삶이 무의미해 보이거나 정부가 무능할 때, 사람들은 대화의 주제나 말하는 방식이나 대화 상대를 바꾸는 식으로 해법을 찾았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대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과거에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위험에 처하거나 곤경에 빠지거나 고통에 시달렸거든요. 오늘날에도 말을 하면 위험해지는 곳이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대화가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무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인류의 역사에서는 협박이나 회피의 대화가 세상을 지배해왔습니다. 이런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할지라도, 그 방향을 무기력해지기보다 관대해지는 쪽으로 돌릴 수는 있을 겁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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