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중에서
우리는 이 단편집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매우 낯선 문화에서 생겨난 문학작품과 만나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한다. 문학은 언제나 다양한 대륙을 이어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는 다리였다. 문학은 성과 종교, 정치적 견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관용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잠시마나 스스로를 더 큰 세계의 일부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같은 고향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이 소설집이 수천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과 조지아 사이의 거리를 조금은 좁혀줄 수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 그반차 요바바조지아의 시인·번역가·출판인
아프리카 여행
─ 누그자르 샤타이제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게 다르지만 나는 잠을 제일 좋아한다. 음식도 좋다. 예를 들면 따끈한 수프나 스테이크, 으깬 감자 같은. 하지만 잠이 더 좋다. 특히 날이 추울 때 따뜻하고 아늑한 침 대에 누워 평화롭게 자는 아침잠이 최고다.
전에 엄마와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잠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는 나만의 침대도 있었고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지만, 엄마가 “얘야, 가서 자거라. 늦었다.”라고 해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호텔 복도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기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잠을 더 좋아한다. 대체로 나는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든다.
이 지하실을 찾아내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 추파카와 나는 디고미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 서북쪽 근교 ― 옮긴이의 간선도로에서 벗어난 골목길에서 폐타이어에 불을 붙이고, 모닥불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잠들곤 했다. 이제 나는 여기 지하실에서 잔다. 여기 있는 골판지 상자 속으로 기어 들어가 담요로 몸을 감싼다.
그 담요를 어디서 구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 내가 템카트빌리시 북부 지역 ― 옮긴이에서 아파트 건물에 들어가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면서 혹시 헌 옷이 있으면 좀 달라고 부탁하자 그들이 헌 옷을 조금 내주었다. 이 담요와 선원용 하늘색 외투를 그때 얻었다. 외투는 나한테 너무 컸지만 소매를 걷어 올리자 그런대로 잘 맞았다. 골판지 상자는 엘리아바 시장에서 얻었다.
소후미압하지아[조지아 서부, 흑해 남쪽 연안에 있는 자치 공화국]의 수도 ― 옮긴이에서 온 고슈카라는 아이가 골판지 상자에서 자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골판지 상자는 시원하고 바깥 추위를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열을 안에 가둔다. 하지만 얼어붙을 듯이 추울 때는 그래도 역시 춥다. 밤에 덜덜 떨면서 깨어나면 담요도 상자도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일어나서 달리거나 제자리 뛰기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폐타이어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추파카와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모닥불에서 나온 검댕 때문에 온몸이 새까매지곤 했다. 우리는 눈과 이만 하얗게 보이는 서로를 놀려대곤 했다. 그 뒤 추파카는 본드에 중독되어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의식이 몽롱해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다. 평소대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멍해져서 때로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고 때로는 ‘아빠’라고 불렀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말로 부르곤 했다. 결국 그는 죽었다. 사람들은 그가 얼어 죽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는 본드를 너무 많이 마셨다.
이 지하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도 추파카처럼 끝났을 것이다. 본드에 취해서 기분이 좋아지면 더는 춥지 않다. 아니, 사실은 더는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본드에 취하면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아서, 당신은 코끼리와 사자와 기린들이 어떻게 걸어 다니는지도 볼 수 있다. 짐승들은 걷고 또 걷고, 당신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정말로 아주 근사하다. 텔레비전보다 낫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동물들이 걷고 있을 때 당신은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바로 거기에 함께 있다. 이따금 그들은 당신 바로 옆을 지나서 달려간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거의 부딪칠 것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면 당신은 그들의 냄새를 맡고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룩말이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아는지? 말 냄새다. 코끼리들은 일곱 마리, 여덟 마리, 아홉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닌다. 코뿔소는 혼자 다니거나 둘씩 짝을 지어 다니지만, 그보다 많지는 않다. 영양은 헤아릴 수도 없다.
사자들이 제일 근사한 것 같다. 그들은 마른 풀밭에 엎드려 그 노란 눈으로 얼룩말과 물소들을 지켜본다. 사실 당신은 자고 있는 게 아니라 깨어 있지만, 여기 있는 게 아니라 거기 있다. 당신의 등뼈까지 올라오는 마른 풀밭에 서서, 물소가 어떻게 걷는 지, 갈대를 어떻게 짓밟는지, 새들이 어떻게 지저귀고 노래하는지, 얼룩말들이 어떻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넓은 들판을 가로 질러 이동하는지를 듣는다.
양계 농부 가브리엘과 그의 정원
─ 이라클리 삼소나제
우리가 사는 교외 지역은 12, 3년 전쯤에 만들어졌다. 첫 이주민 중에는 가브리엘도 있었다. 우리 모두 봄에 이사 왔고 가브리엘이 오자마자 어린 나무들을 심었으므로 우리가 사는 동네와 가브리엘의 정원은 나이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아무도 가브리엘을 ‘양계 농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부를 이유도 없었다. 당시 가브리엘은 아직 어느 관공서의 구내식당 수석 요리사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밑에는 크세니아 노파밖에 없었지만, 아무튼 가브리엘은 누군가의 우두머리로 여겨졌고 본인도 그 사실을 뿌듯해했다. 그의 가족은 아직 닭을 키우지 않았는데, 만약 닭을 키운다고 해도 그저 아내 굴리코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들은 아직 전혀 가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할 만했기 때문이다.
굳이 밝히자면 빵이 절반을 차지하는 독일식 비프스테이크이긴 해도, 어쨌든 수석 요리사가 남은 음식을 집으로 가져간다고 해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브리엘의 집은 때로는 기름진 수프, 때로는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냄새로 가득했다. 당시에는 아직 누구도 가브리엘을 ‘양계 농부’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별명은 공고했던 우리들의 삶의 균형이 깨지면서 가브리엘이 진정한 양계 농부로 변모했을 때에야 생겼다.
어떤 사람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그런 모습이었을 거라고 믿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소시지 같은 손가락에 작고 뚱뚱한 이 남자를 보고 있자면, 더 날씬하거나 뚱뚱한 또는 더 젊거나 늙은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에게서 변하지 않는 영원성이 보였다. 이런 인상을 갖게 된 건 그의 몸 때문인지도 모른다그의 몸은 토막을 낸 울퉁불퉁한 나무 몸통과 흡사했다.. 아니면 그의 점잖고 이성적인 말투와 절제된 동작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들과 달리 그는 한때라도 놀아보았거나 버릇없었을 여지조차 없어 보인다. 종종 내가 잘못 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 12년 동안 거의 매일 가브리엘을 보다시피 하면서도 그에게서 어떤 작은 변화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에게 새치나 주름살 하나 생기지 않았으니, 어떻게 그의 겉모습이 변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브리엘은 지금도 늘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납작한 머리는 약간 구부정하게 솟은 오른쪽 어깨에 거의 붙다시피 해서, 짧은 목이 왼쪽 어깨 위로 살짝 보이는 정도다. 머리와 목 아래로는 약간 불룩 솟은 유연한 가슴, 그리고 완만하게 살찐 배와 역시 살찐 엉덩이, 그 바로 아래에는 짧은 두 다리가 이어진다. 가브리엘의 부자연스럽게 부어오른 얼굴은 만성적인 잇병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코밑수염은 양쪽 뺨 사이 어딘가에 감춰져 있고, 깊이 감춰진 선한 두 눈은 외로이 곁눈질한다.
(중략)
가브리엘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 믿는다. 가장 낭만적이었던 젊은 시절에도 그가 요리사를 꿈꿨던 이유는, 음식을 직접 다루는 일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징표이자 최고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이 양계 농부가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분명한 건, 가브리엘이 닭들을 잘 팔지 못하는 경우에도 틀림없이 굶을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가장 행복한 휴식을 선사해주는 일상의 확실한 보증인 셈이다. 이는 세계관이기도 하며 삶의 리듬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리듬이다. 내전과 전후 시대조차 가브리엘이 발견한 리듬을 앗아가지 못했고, 그래서 가브리엘은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변하지 않은 채 늘 그대로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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