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매
머리카락 굵기도 다르고
눈 모양도 다르고
콧구멍 크기도 다르고
다리 길이도 다르고
발가락 생김새도 다르지만
우리는 자매다.
한지붕 아래 살면서도
가끔 딴마음이 되지만
우리는 진짜 자매다.
오늘도 동생이랑 손을 잡고 걷는다.
어린 내가 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닐 때 서로 잃지 않으려고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그 버릇이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이어져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곤란한 눈총을 받을 때가 있다. 옆집 어르신도, 윗집 부부도, 가게 아주머니들도, 얼마 전 만난 사람들도 우리를 살피며 조심스레 묻는다.
“무슨 사이예요?”
“자매예요.”
그래도 사람들은 또 묻는다.
“진짜 자매예요?”
그러면 우리는 웃으며 한마디씩 말한다.
“그럼요, 진짜 자매예요.”
“저는 언니고, 이 친구는 동생이고요.”
그제야 사람들은 속을 털어놓는다.
“아, 혹시나 했네.”
혹시나?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연인처럼, 부부처럼 보였던 걸까. 그래서 자매라고 해도 잘 믿지 않았던 걸까. 하기야 나이 먹어서도 뭐든 함께하고 꼭 붙어 다니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그 순간 나는 나이 먹은 자매끼리 사는 게 특별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도 나랑 동생 관계를 의심받을 때면 헛웃음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다. 성소수자를 존중하지만 나는 그저 동생을 별나게 사랑하는 ‘극소수자’일 뿐이니까.
성수자도 극소수자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알고 보면 모두 사정이 있고 사연이 있다. 그러니 나랑 다르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보다 한 번이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천생연분
1979년 5월 5일 어린이날
하늘이 점지해준 인연이 있다.
아빠는 그토록 아들을 바랐는데
우리 집에 또 딸이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막내딸로 태어나서
응 언니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되었다.
저녁상에서 아빠는 소주잔을 기울였고
셋째 언니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기 남 줘버리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여섯 살 난 응 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기 남 주지 말아요.” 했다는데
그래놓고 자꾸 하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도끼눈으로 소리친다.
“당장 꺼져버려!”
요즘 같은 세상에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갈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혼을 잘 하지 않는 세상, 이혼이 두렵지 않은 세상,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조차 쉽지 않아 혼밥, 혼술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혼족 세상. 나는 그런 세상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동생이랑 함께 살아간다. 종종 ‘천생연분’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외모는 다르지만 하는 일도, 좋아하는 것도 닮은 우리는 먹고 싶은 것도 한목소리로 외치고 사람들 이야기에 똑같이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나와 동생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진짜 천생연분이 있었다. 바로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이다.
엄마 아빠는 1938년 봄날 한 달여 차이로 태어난 호랑이띠 동갑내기다. 스물여덟 무렵 부부의 연을 맺고 가난해도 딸 다섯을 낳으며 잘 먹고 잘 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형편이었지만 밥상에 둘러앉으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빠는 아주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남자였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대대로 내려온 가난은 뼈가 빠지게 일해도 벗어나기 힘들었다. 엄마는 먹고살 만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아주아주 착해빠진 여자였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 살림을 맡아 했고 처녀 시절 홀로된 큰오빠의 아이들, 그러니까 조카 둘을 업어 키우다 시집갈 나이도 놓쳤다. 그러다 아빠를 중매로 만나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가 살림 솜씨 좋고 키가 큰 게 마음에 들어서, 엄마는 아빠가 잘생기고 남자다운 게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엄마와 아빠를 두고 이모들은 “천생연분이 따로 없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남자를 만나 평생 고생하며 사는 동생이 짠해서 했던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1985년 나이 마흔아홉 살에 천생연분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듯 석 달 차이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엄마가 땅을 치며 울었다. 그 뒤 아빠는 엄마를 살려보겠다며 좋다는 약이랑 음식은 다 구해다 달이고 고았다. 언제나 집 안에는 약초 냄새가 가득했다.
천생연분인데 지극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어찌 감동을 하지 않겠는가. 엄마의 병세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밥도 잘 먹었고 얼굴빛도 밝았다. 하지만 좋은 일이 생기면 안 좋은 일이 따르는 법인지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주저앉고 말았다. 아빠의 병명은 엄마의 병명과 같았다.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더 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게 되었다.
새벽녘 밥을 짓고 나란히 잠든 딸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병든 아내를 두고 혼자 바깥일이며 살림이며 병간호까지 하면서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 그렇다 해도아무리 천생연분이라 해도 병까지 같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끝내 아빠는 눈도 못 감은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천생연분 짝을 잃은 엄마는 어떤 날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지고 또 어떤 날은 쇠꼬챙이처럼 날카로워졌다. 아빠가 있을 때보다 살고 싶다는 말을 더 자주 했다. 하지만 하늘은 엄마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는지 아빠가 떠난 지 석 달이 되던 날 밤에 엄마를 데려갔다. 엄마는 고아로 남을 딸들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눈동자가 다 풀렸는데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주변 어른들이 그런 엄마를 보며 “이제 편히 가도 돼요. 걱정 말아요.” 했던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서 윙윙거린다.
엄마 아빠한테도 다음 생애가 있다면, 그저 하늘이 삶과 죽음을 맺어준 천생연분이 아니라, 남들 걱정하지 않고 자식도 많이 낳지 말고 두 분만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천생연분으로 살아가길, 그래서 백수 천수까지 누리며 오래오래 사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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