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을 대신해서
머슴새와 ‘밭 가는 해골’
박새를 민간에서는 흔히 머슴새라고 부른다. 저녁 어스름이나 해가 뜰 무렵에 이랴낄낄! 이랴낄낄! 소를 몰아 밭 가는 소리로 크게 울어대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옛날에 한 머슴이 혹독한 주인 밑에서 일을 했다. 주인은 머슴에게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일을 시켰다. 낮에 밭을 간 머슴에게 밤에도 밭을 갈게 했다. 머슴은 지쳐 쓰러져 죽었다. 죽어서 머슴새가 된 머슴은 지금까지도 어스름 저녁과 어스름 새벽에 소를 몰아 밭을 간다.
그런데 살아서 그 고생을 하던 머슴은 왜 죽은 뒤에까지도 그 고생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그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육신이 해방되었으니 혼이라도 편안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은 자못 엄숙하다. 인간의 운명을 그 핵심에서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19세기 중엽에 우리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파리 센강 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서점의 고서 더미에서 보들레르는 신기한 그림 한 장을 발견한다. 인체의 골격을 보여주기 위한 이 해부도는 앙상한 해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화가는 그림에 제 생각 하나를 덧붙여, 해골이 그 골격을 곧추세워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벌써 저 세상의 몸이 된 이 해골에게도 아직 이 세상의 고생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두 개의 시로 되어 있는 이 시의 뒷부분을 약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서글픈 체념의 촌놈들아,
너희들의 등뼈나 껍질 벗겨진
그 근육의 온갖 노역으로,
파서 일구는 그 땅으로부터,
말하라, 납골당에서 뽑혀온 죄수들아,
어떤 괴이한 추수를
끌어낼 것이며, 어떤 농가의
광을 채워야 하는가?
너희들 (너무도 혹독한 운명의
무섭고도 명백한 상징!), 너희들이
보여주려는 바는, 무덤구덩이에서마저
약속된 잠이 보장된 것은 아니며,
허무가 우리에게 등돌리는 배반자이며,
모든 것이, 죽음마저, 우리를 속인다는 것이며,
슬프다! 영원무궁 변함없이,
우리는 필시
알지 못하는 어떤 나라에서
거친 땅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우리의 피 흐르는 맨발로
무거운 보습을 밀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해골들은 벌써 죽음의 세계, 허무의 세계에 들었지만, 죽음과 함께 영원한 휴식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나라에서 “거친 땅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피 흐르는 맨발로 보습을 밀며 노역해야 한다.
그들은 죽음 뒤에까지도 영원히 험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부당한 처사에 대해 우리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고생하는 자는 영원히 고생하게 되어 있다고 믿는 “서글픈 체념의 촌놈들”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평소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이런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나는 문학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또한 미학적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해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이후에 썼던 글을 묶은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고뇌의 어떤 증언이기도 하다.
난다의 김민정 시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8년 초여름
황현산
차린 것은 많고
먹을 것은 없고
호남 지방에 내려가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반찬이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을 수 있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호남 사람들이, 비록 부잣집에서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그런 밥상을 차려놓고 먹었던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차림은 일제 강점기에 목포나 군산 등지 미두장에 투기꾼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여관의 밥상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잔칫집 같은 데서 “이게 여관집 밥상인가” 하며 불평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있다.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다는 뜻이다.
나는 요즘 빈 시간에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이 ‘여관집 밥상’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냈다. 인터넷에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몇 해 전부터 열 권이 넘는 사전을 모바일 기기의 ‘앱’으로 대체했으며, 구하기 어려운 옛날 책들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이용한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사이트에는 우리가 세계 명작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책들이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서양어 텍스트 파일로 올라와 있으며, 애플에서는 바로 그 책들을 ‘e북’ 형식으로, 그것도 무료로 제공한다.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서는 수년 전부터 소장 도서 전체를 스캔하여 이미지 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세에서 현대에 걸쳐 대작가들과 군소 작가들의 저작이 거기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던 조선 왕조의 2백 몇십 권 의궤까지 우리에게 보내주기 전에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올려놓고 있다. 인터넷 후진국이라는 프랑스가 그렇다. 놀라운 것은 캐나다 퀘벡 대학의 사회과학연구소다. 이 연구소의 사회학 고전 사이트에는 플라톤에서 니체나 프로이트에 이르는 저명 사상가들과 사회학자들의 주요 저작이 프랑스어 텍스트 파일과 PDF 파일로 올라와 있다. 동양 고전의 프랑스어 번역본 파일만 해도 수백 권에 이른다. 사서삼경과 『도덕경』을 비롯한 경서류는 말할 것도 없고, 『죽서기년竹書紀年』이나 사마천의 『사기』 같은 역사서와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같은 미술서가 거기 끼어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사이트들이 모두 서양 사람들이 운영하는 외국 사이트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말로 되어 있는 책을 만나기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기보다 더 어렵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의 온라인은 번화롭기 그지없지만 그 알맹이를 생각하면 쓸쓸하다. 누리꾼들이 만들어가는 위키백과만 해도 한국어 항목은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하다. 그래서 저 밥상을 생각하게 된다. 문화를 과시하고 소비하려는 기획은 많지만, 문화의 창조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산적 이용의 전망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것이 우리 온라인의 실정이다.
한번은 내가 잠시 관여했던 번역연구학회에서 지난 1950~60년대에 발간된 세계문학전집 전체를 디지털 텍스트로 만들어 번역 문체 연구 자료로 쓰려 한 적이 있었다. 연구비를 주겠다는 재단도 있었지만, 해당 출판사들의 허락을 얻을 수 없었다. 이미 상업성이 없어진 텍스트들이지만 그 출판사들이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여 만든 것이니 그에 대한 권리 주장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문화관광부가 됐건 교육부가 됐건, 새로 만들어진다는 미래창조가 됐건, 정부 기관이 이런 일에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 있는 자들은 인터넷의 난맥상을 말하며, 실명제를 들었다 놨다 하며 갈팡질팡하고, 정치적 억압의 기미까지 내보이고 있지만, 계엄령을 선포하여 출판물에 먹칠을 하던 시대의 발상법으로 온라인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 인터넷 문화를 진심으로 바로잡고 싶다면 질이 좋은 콘텐츠를 그것도 대량으로 제공하는 길밖에 다른 방책이 없다. 물론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아리송한 저 거창한 토목 공사에 비하면 사실 과자값에 불과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이 그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역시 어려운 일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2013. 3. 9.)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