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의 겉과 속
2013년 10월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한국석유공사의 해외자원개발 프로젝트였던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Harvest Energy Trust(이하 하베스트) 인수 사업을 둘러싸고 날 선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MB정부가 “석유공사 대형화 사업의 상징”이라며 그렇게 선전하고 홍보했던 하베스트 사업이 사실은 거대한 부실덩어리라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실 규모가 1조 원을 넘고 게다가 앞으로 예상되는 영업손실만 무려 5000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42조 55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된 초대형 사업임에도 현장실사 한 번 없이 졸속으로 인수가 추진된 사실도 밝혀졌다. 게다가 반드시 거쳤어야 하는 이사회 승인도 없이 불법적으로 인수가 진행된 사실도 알려졌다. 이런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비난이 쏟아졌다.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은 여당임에도 “사실상 깡통기업을 인수하면서도 기초적인 정보 확인이나 현장실사도 없이 하베스트 측 자료만을 바탕으로 자산평가도 졸속으로 마무리한 채 성급히 계약을 해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 낭비를 초래했다”고 추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좌현 의원은 석유공사가 “해외자원개발 사업 근거인 ‘해외자원개발 사업법’과 공사설립 근거인 ‘한국석유공사법’을 모두 위반했다”며 정부의 책임을 제기했다.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은 그저 “송구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대체 하베스트 프로젝트가 어떤 사업이었기에 이처럼 난리가 났던 것일까?
하베스트 프로젝트는 석유공사가 2009년 9월 석유·가스 생산광구와 오일샌드oil sand 광구를 보유한 캐나다 하베스트를 무려 4조 5500억 원을 주고 인수한 대형 사업이었다. 하베스트 인수를 두고 국내 언론들은 한국석유공사가 이번엔 ‘대어’를 낚았으며 이번 인수로 석유공사는 글로벌 석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그 의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정부와 공사는 하베스트 인수로 한국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에 바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실상은 전혀 달랐다. 온갖 부실과 문제가 가득한 그야말로 부실덩어리였다. 우선 인수 가격이 너무 비쌌다. 하베스트는 2009년 상반기에만 2341억 원의 손실을 내고 있었으며 부채 규모가 상반기 매출액보다 1조 원 이상 많은 부실기업이었다. 이런 기업을 무려 4조 5500억 원이나 주고 인수했다.
현지 언론인 〈글로브 앤 메일The Globe and Mail〉은 “한국기업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기업을 비싼 가격에 인수했다”고 지적했고 캐나다 일간지 〈캘거리 헤럴드Calgary Herald〉는 “한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을 정도였다.
인수를 둘러싼 협상과정도 졸속이었다. 석유공사가 제시한 28억 5000만 캐나다달러의 인수 가격을 하베스트 측이 거절하자 단 하루 만에 인수 가격을 36억 캐나다달러로 올렸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 평가도 안 된 정유시설 날NARL도 동반 인수한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날은 1973년 완공된 이후로 가동 중단, 화재 등을 거듭해 온 문제의 시설로, 한 번 보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실한 시설이었다. 그런데 공사는 현장실사 한 번 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다. 원래 하베스트 인수 사업은 예상수익률이 공사 내부 기준에 미달되어 투자가 불가능한 사안이었지만 공사는 수익률 수치를 조작해 인수를 추진했다. 게다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았다. 또 메릴린치에 의뢰한 경제성 평가 보고서는 단 5일 만에 작성된 것으로 그 신빙성이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었지만 공사는 이런 보고서를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인수를 결정했다.
인수 방법도 의혹투성이였다. 당시 하베스트는 미국과 캐나다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적대적 M&A를 할 경우 운이 좋다면 600억 원만 투자해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 석유공사는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 ‘회사정리계획’이라는 비정상적 방법을 통해 하베스트 자산과 부채 100%를 인수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석유공사는 끝내 4조 5500억 원이나 주고 하베스트 인수를 감행했다. 사실상 하베스트 측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받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영권 프리미엄(약 4000억 원)까지 챙겨주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것은 하베스트에 하늘이 준 선물이다”며 조롱 섞인 기사를 냈다. 결국 이런 부실 투자는 초대형 손실로 돌아왔다. 동반 인수한 날에서만 인수 후 3년간 무려 1조 14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많은 위법과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석유공사는 끝끝내 인수를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일까? 공사의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무엇을 한 것인가? 감사원은 왜 지금껏 이런 비리에 대해 제대로 된 감사 한 번 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의문의 귀착점에는 MB정부의 자원외교와 해외자원개발이 있다.
1. MB자원외교의 실상
MB정부는 자원외교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정부 말대로라면 상당한 해외자원이 확보됐어야 했다. 그러나 실상은 홍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내용은 없었다.
정권실세들이 주도한 정치적 이벤트
자원외교는 MB정부 외교의 대표 브랜드였다. MB정부는 출범 초부터 자원외교를 전면에 내세웠다. 자원외교를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설정했고, 해외자원 확보에 적극적이었다. 한승수 초대 총리를 ‘자원외교 총리’라 명명했을 정도였다. 한 전 총리는 수시로 해외순방에 나섰고, 외교특사단도 수시로 꾸려졌다. 2008~2011년 석유공사나 광물자원공사 등 관련 공기업에 투입한 예산은 무려 5조 원이 넘는다.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 등 정권 핵심 인사들도 뛰었다. 특히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차관이 도드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2009년 8월 볼리비아 리튬확보를 위한 남미 출장을 시작으로 모두 12개국을 방문했으며 스물세 차례나 각국 정상들과 만났다. 이 의원은 자신의 책 《자원을 경영하라》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기도 하고 때론 퉁퉁 부은 발에 침을 맞아가며 전 세계곳곳을 돌아다녔다고 썼다.
이 의원의 주 무대가 남미였다면, 박영준 차관은 아프리카였다. 박 차관은 2009년 8월부터 아프리카 가나, 콩고, 남아프리카, 탄자니아, 카메룬 등을 두루 방문했다. 그는 총리실 안팎에서 ‘미스터 아프리카’로 불렸다.
해외자원개발 실무는 공기업 사장들이 맡았다. 강영권 석유공사 사장, 주강수 가스공사 사장,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 등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MB정부 자원외교의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는 해외진출 창구 역할을 맡았다. MB정부 출범과 함께 에너지자원 담당 대사직을 신설하고, 73개 재외공관을 에너지 거점공관으로 지정했다. 현지 전문 인사를 에너지 보좌관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소리만 요란했던 빈 수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2월, 대통력직인수위원회는 2조 원짜리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을 따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MB정부는 이를 두고 패키지package형 자원개발 사업의 첫 결실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후 탐사과정에 약 3639억 원(3억 3000만 달러)이나 투입해 네 개 광구를 시추했지만 상업적으로 유효한 유전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루에 15~20만 배럴 생산이 가능하다고 했던 바지안Bazian 광구의 매장량은 하루 200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고, 추정매장량이 7억 9000만 배럴이라던 상가우 노스Sangaw North 광구에서는 물과 천연가스가 조금 발견되었을 뿐이다. 당초 석유공사가 72억 배럴로 발표한 전체 원유매장량도 감사원 감사 결과 20억 배럴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석유공사는 두 개 광구의 지분 전부와 한 개 광구의 지분 절반을 반납했는데, 이런 계약 변경의 대가로 약 1127억(1억 달러)을 쿠르드 지방정부에 지급해야 했다.
2010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은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을 한국에 초청하고 리튬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상회담 직후 체결된 MOU는 양국 광물공사가 맺은 네 번째 MOU였다. 2009년 4월, 8월, 10월에 더해 이번까지 매번 비슷한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지난 MOU와 다른 것은 대통령이 등장한다는 사실뿐이었지만, 언론의 태도는 180도 달랐다. 국내 언론들은 앞다퉈 장밋빛 기사를 쏟아냈다. KBS는 〈9시 뉴스〉에 특집까지 편성해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 리튬을 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에서 “볼리비아 리튬개발권 코리아가 먼저 따냈다”며 대서특필했다. 볼리비아 리튬 자원은 곧 확보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실상은 허탈한 수준이다. 언론의 호들갑만 보면 MOU에는 구체적인 숫자와 구속성 있는 내용이 잔뜩 들어 있을 것 같지만, MOU는 구속성이 없는 일반적인 내용에 불과했다. 언론이 리튬을 당장 확보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얘기였다. 실제로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볼리비아의 경우 리튬 품위가 낮고 관련 인프라가 거의 없어 경제성 확보가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고 칠레·아르헨티나 등 기존 생산국 시장 개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다. 또 협상 상대국인 볼리비아는 시간을 끌면서 댐이나 병원 등 사회간접자본을 공짜로 얻어낼 기회나 엿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다.
환상은 곧 깨졌다. 2010년 11월, 볼리비아 정부가 돌연 리튬 국유화를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이상득 의원이 공을 들이고 대통령까지 나선 볼리비아 리튬 사업은 어처구니없게 종언을 고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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