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글로벌한 주제로서의 부자증세
논쟁은 적절한 논객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논제에 대해 말할 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된다.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다룬 이번 논쟁은 그 모든 점에서 기대 이상이다.
부자증세 찬성론자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라는 토론 주제에 찬성의 주장을 전개하는 쪽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George Papandreou로 이루어진 강력한 팀이다.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는 폴 크루그먼 교수는 국제무역과 경제지리학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로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국제관계론을 가르치면서 《뉴욕 타임스》에 정치와 경제를 논하는 칼럼을 쓰고 블로거로서도 명성이 높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End This Depression Now!』, 『불황의 경제학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 등 2008년 금융 위기와 그 여파를 다룬 책을 여러 권 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크루그먼의 풍부한 학식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실제 경험으로 보완하는 역할은 그리스 전 총리 파판드레우의 몫이다.
그는 평생을 바쳐 온 정치 활동에서 정부의 정책에 관한 실제적인 지식을 몸에 익혀 왔다. 총리가 되어 경력에 정점을 찍은 것은 유럽과 그리스가 금융 위기의 수렁에 빠진 시기였다.
또한 파판드레우는 2006년부터 세계 각국의 사회민주당과 사회당, 노동당이 가입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의 국제조직 ─ 옮긴이)의 의장을 맡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그리스 최악의 해에 최선의 대처를 했다는 평가를 받아 미국의 외교 전문 격월간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선정한 ‘100대 글로벌 사상가’에도 이름을 올렸다.
부자증세 반대론자
우수한 토론 팀에는 우수한 상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행히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와 아서 래퍼Arthur Laffer를 초대할 수 있었다.
그들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라는 논제에 반대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강력한 콤비이며, 크루그먼과 파판드레우에 뒤지지 않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뉴트 깅리치는 전 미국 연방 하원의장으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쟁에 두 번 출마했다. 《워싱턴 타임스》는 그를 “없어서는 안 될 리더”라고 했다. 공화당의 정책 강령인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보수주의 공약을 설계하고,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약 40년 만에 하원 다수당 자리를 차지하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원의장직에 있던 1990년대 후반에는 당시의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 하에서 2년 연속 균형 예산(세입과 세출이 균형을 이뤄 공채 발행 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예산 ─ 옮긴이)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미국에서 40년 넘게 없었던 일이다.
전형적인 정치인과는 달리 깅리치는 책도 24권이나 썼다. 그중 14권(픽션과 논픽션)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다. 공공 정책에 대한 시사평론가이며, 현재는 CNN의 정치·시사 프로그램 ‘크로스파이어Crossfire’의 공동 진행을 맡고 있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라는 토론에서는 찬성파와 반대파 양쪽이 역사적인 선례를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그것을 감안하면 공급 중시 경제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서 래퍼만큼 깅리치의 파트너로 잘 어울릴 인물이 또 있을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 고문을 지낸 래퍼는 《타임》지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로 선정됐다. 래퍼 곡선을 주창하고 세율을 낮추면 경제 활동이 활발해져서 정부의 세수도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번영의 종말: 증세가 어떻게 경제를 죽이는가?The End of Prosperity: How Higher Taxes Will Doom the Economy – If We Let It Happen』의 공동 저자이며, 래퍼 연구소의 소장이다.
왜 지금 부자증세인가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 논객만큼이나 기지와 지력 싸움을 벌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훌륭한 논쟁이 될지 아니면 그럭저럭 괜찮은 논쟁에 그치고 말지는 토론에 활기를 불어 넣을 만한 논제가 설정되었는가 그리고 논쟁이 전체적으로 대중의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유럽과 북미의 대부분의 선진국 정부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 하는 것은 주요 검토 과제가 되고 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 위기와 결합된 경제 위기로, 증가하는 공공 부채와 만성 적자를 해결할 경제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유럽과 북미의 많은 사람들이 당연시한 복지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이 정체된 반면 최상위의 부유층은 거액의 자산 소득(예금 이자와 주식 배당 등_옮긴이)을 누리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적절한 부의 재분배를 실시하는 것은 현명한 공공 정책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공정성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감안하면 아서 래퍼와 뉴트 깅리치는 분명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다(토론 직전에 3,000명의 방청객 가운데 58%가 이 논제에 찬성을 했다).
하지만 이 수치를 바탕으로 폴 크루그먼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멍크 디베이트의 기본적인 특성을 간과한 것이다. 이것은 예측할 수 없는 이벤트다. 승부는 2시간의 토론 동안 논객이 얼마나 능숙하게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상대팀에 반격을 가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래퍼 곡선과 레이거노믹스
이 광범위하고 뜨거운 논쟁 속에서 각 팀은 부유층에 대한 증세에 찬성 내지 반대하는 논거를 상세하게 제시했다. 반대파의 두 사람이 박력 있게 ‘증거품 A’로 제출한 것은 아서 래퍼가 자신의 이름을 붙인 래퍼 곡선이었다.
방청객에게 설명한 대로 래퍼 곡선의 한쪽 끝은 세율 0%이고, 여기에서는 일체의 세수가 없어진다. 반대쪽 끝은 세율 100%이고, 거기 또한 세수가 들어오지 않는다. 창출된 부가 모두 정부에 의해 몰수된다면 모든 경제 활동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세율 0%와 세율 100% 사이의 어딘가에서 세수가 최대치를 보이는(래퍼 곡선이 정점을 이루는) 세율이 있을 것이다.
논쟁에서 아서 래퍼가 역설한 것은 감세를 해도 단순 계산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세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예를 들어, 세율을 50% 줄여도 세수가 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감세의 자극 효과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결과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과세 대상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래퍼 곡선의 실제 사례로 자주 인용된 것이 1980년대다. 당시 아서 래퍼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 고문이었다. 래퍼와 뉴트 깅리치가 거듭 주장한 대로 레이건 대통령이 최고 세율을 70%에서 30%로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연방정부의 세수는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아서 래퍼와 뉴트 깅리치 같은 레이거노믹스(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1981~1989년 재임)이 채용한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 감세와 규제 완화를 주축으로 했다_옮긴이)의 옹호자들에게 증세란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세율을 올려도 세수는 단순 계산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완만하게 증가한다. 이것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투자해 생산 또는 고용을 늘리려는 의욕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부자는 증세에 민감하다
래퍼도 깅리치도 이 메커니즘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부류는 최상위 부유층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원래 세금 부담이 큰 그런 층일수록 증세에 더 민감하다. 최상위 부유층들은 정부에 세금 증가분을 납부하는 대신 회계사나 변호사를 고용하여 절세를 도모하거나 투자와 자본 지출을 줄여 경제 활동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래퍼에게 세율, 정부의 세수, 경제 활동의 상호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결과, 적지 않은 방청객이 ‘부자에게 증세를 하면 정부의 세수는 단번에 상승하고, 경제성장은 촉진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뉴트 깅리치는 지금 미국의 정치 현장에서 중심 과제가 된 증세 반대의 도덕적 측면을 환기시킴으로써 논쟁에 공헌했다. 그는 선진국에서 공정성과 사회적 평등의 문제를 경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런 문제들은 세금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아니라고 단정했다.
뉴트 깅리치에게 “과세하는 힘은 강제하는 힘”이라는 말은 세제를 논의할 때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유일한 원리다. 그의 관점에서 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사회 안팎에 분명하고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정부가 부유층만을 골라 특별세를 부과한다면, 그것은 “성공하면 벗겨가겠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깅리치는 대놓고 말했다.
논쟁을 벌이는 동안 깅리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투자자 워런 버핏을 예로 들어 그들의 회사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부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깅리치는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세금을 올린다면,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유형의 차세대들이 의욕을 잃고 부를 창출하기 위해 그들의 노동력과 자본을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유형의 트리클다운 이론(낙수 효과. 대기업과 부유층이 성장하면 위에서 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중소기업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경제이론_옮긴이)은 반박을 받기도 했지만 저조한 생산성 증가와 높은 실업률 등 경기 회복의 지연을 나타내는 지표에 민감한 방청객에게 일정한 공감을 얻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불평등의 확대로 부자증세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부자증세에 반대하는 이런 주장은 과연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일까. 선진국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2008년 금융 위기에 뒤따른 경제 정책으로 부유층이 부당하게 이득을 보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격렬한 논쟁을 통해 폴 크루그먼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는 부유층에 대한 증세가 공정성과 실제성의 관점에 비추어 불가피함을 거듭 강력하게 호소했다.
논쟁을 시작하자마자 폴 크루그먼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래퍼 곡선을 비판하고 증세하면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진단을 부정했다. 단 크루그먼도 최고 세율을 끝없이 높이면 정부의 세수가 언젠가는 감소세로 돌아서고 경제 활동도 저하된다는 점에서는 아서 래퍼와 같은 의견이었다.
폴 크루그먼은 자신과 그 밖의 다른 경제학자의 연구를 참고로 부유층의 세율은 70~80% 또는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40%를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고 세율을 올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것이 노벨상 수상자의 생각이다. 세율을 인상하면 노동과 투자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경제성장이 둔화된다거나 마이너스 성장이 된다거나 하는 뉴트 깅리치의 의견에 폴 크루그먼은 강하게 반대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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