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일곱 살
엄마는 빵을 좋아한다. 카스텔라, 팥빵, 크림빵이나 마시멜로가 듬뿍 든 초코파이, 어쩌다 먹는 치즈케이크나 티라미수, 방부제가 잔뜩 든 값싼 제과회사 빵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엄마가 소보로빵에 꽂혔다. 한 봉지에 다섯 개씩 들어 있는 길쯤한 스틱 형 삼립빵.
엄마에게 처음 스틱 형 소보로빵을 사다 준 건 나였다. 밥을 먹고 난 후에도 쩝쩝대는 소리를 내며 먹을 걸 찾던 엄마는 소보로빵을 건네자 한참을 뜯어보았다. 먹는 것에 집착하는 엄마가 냉큼 빵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요리조리 뜯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순간 엄마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얘가 왜 이렇게 생겼니?”
엄마는 빵을 코앞에 바싹 대고 중얼거렸다.
“빵 공장에서 길쭉하게 찍어 냈으니까 그렇지.”
엄마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빵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얘, 내가 널 어디서 봤더라.”
엄마의 눈빛이 이상야릇하게 반짝였다. 엄마만의 중얼거림이 시작됐을 때야 나는 아차,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챘다.
엄마에게 방금 전 건넨 소보로빵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품고 있는 빵 이상의 ‘무엇’이었다. 엄마는 집 안의 모든 사물들은 물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과도 말을 나눌 수 있다는 걸 깜빡했다. 거울 속에 비친 엄마 모습도, 베개도, 하다못해 엄마가 매일 쥐고 밥을 떠먹는 숟가락도 어느 순간엔가 엄마만이 아는 ‘무엇’으로 둔갑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 꽂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갈수록 그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슈퍼에 빵을 사러 갈 때마다 삼 단짜리 빵 진열대에서 빵을 고르는 내 손이 자꾸만 허공을 맴도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안 먹을 거면 이리 줘.”
빵을 빼앗으려 하자 엄마는 눈을 부릅떴다.
“안 돼!”
엄마는 빵을 가슴팍에 끌어안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어 댔다. 빵 부스러기가 엄마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엄마가 집착을 보이면 더 이상 말릴 수 없다.
“엄마, 그거 빵이잖아. 인형이 아니라니까.”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엄마의 의심 가득한 눈은 풀어지지 않았다. 엄마와 이런 말씨름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치껏 넘어가는 게 약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번번이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았다.
정상적인 사람의 뇌는 호두 알맹이처럼 생겼다고 한다. 엠아르아이라는 기계로 찍은 엄마의 머릿속은 잇자국이 나게 갉아먹다 버린 사과 같았다. 나는 벌레가 꼬물꼬물 기어 나올 것 같은 엄마의 머릿속 사진을 오래도록 쳐다봤다.
“처음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건망증이나 기억력 감퇴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젊은 나이니 의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테고요. 초로 치매라고 들어 보셨지요? 환자분의 경우는 알츠하이머에 해당되는데, 망상을 보는 게 일반적인 증상입니다. 특정한 사물에 자신을 투영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죠. 여기 빈 공간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의사선생님은 반딧불이처럼 움직이는 레이저 포인터로 엄마의 뇌 사진 한 부분을 가리켰다.
“망상이 이 빈 공간을 채우는 겁니다. 상태가 심해지면 행동장애도 오고 현실적인 판단력은 물론 방향감각도 떨어지게 됩니다. 치매의 일반적인 증상들이죠.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기도 하지만 환자분의 경우는 때가 많이 늦었습니다.”
아빠는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보다 더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손바닥으로 마른 얼굴만 씻어 내렸다.
엄마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아빠와 오빠와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엄만 기껏해야 일곱 살짜리 수준으로 변해 엄마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엄마가 보는 망상의 세계는 스펙트럼이 다양해 아무도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모를 수 있다고 의사선생님은 덧붙였다.
엄마가 돌아온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의사선생님 말대로 본래의 엄마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엄마는 정말 일곱 살에서 멈춰 버린 걸까. 아니면 점점 더 어린애가 되어 가는 걸까?
엄마가 돌아온 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지 열 달 만이었다. 아빠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엄마는 아빠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도시의 장애인 보호시설에 있었다. 엄마를 찾은 날, 아빠는 이제 됐다고 했지만 엄마를 찾은 그날 하루만 기뻤다. 집을 나갈 때 마흔다섯 살이었던 엄마는 겨우 일곱 살짜리 어린애가 되어 돌아왔으니까.
나는 엄마를 달래 소보로빵 대신 내가 먹으려고 사 온 크림빵을 건넸다.
“이거 먼저 먹으면 이따가 줄게.”
엄마는 미심쩍은 눈으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간 빵을 내게 건네주었다. 소보로빵이 든 봉지를 등 뒤에 감춘 채 슬그머니 엄마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엄마는 크림빵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엄마, 그때 왜 집에서 나갔어?”
아무 생각 없이 우걱우걱 빵을 씹어 먹는 엄마를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자꾸만 물어보게 된다. 엄마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개를 잘잘 흔들었다. 엄마의 반응은 항상 똑같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큰 눈을 끔뻑끔뻑하는 것도.
아빠는 이제 엄마에게 묻는 걸 포기했다. 대신 엄마가 가장 대답을 잘할 수 있는 것들만 물어본다. 일테면 집에 돌아온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첫마디는 “나 누군지 알아?” 하는 말이었다.
“응, 알아. 박풍일.”
엄마가 아빠의 이름을 아는 건 아빠가 수십 번도 더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당신 이름은?”
“김창순.”
엄마 이름이 김창순이란 걸 가르쳐 준 것도 아빠였다.
아빠가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머릿속도 호두 알맹이처럼 생겼나 한번 쪼개 보고 싶을 정도였다. 다음은 오빠와 내 이름을 대답할 차례. 아빠가 빼먹고 묻지 않으면 약간 서운한지 울듯 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코를 찡긋거렸다. 물론 내가 먼저 말해도 안 된다. 엄마가 대답해야 할 말을 가로채면 안 되니까. 요즘은 일곱 살짜리도 엄마처럼 바보같이 굴진 않는데.
빵을 먹고 난 엄마는 바로 베개를 베고 드러누웠다.
“엄마, 일어나. 약 먹어야지.”
엄마가 내 팔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곰처럼 덩치만 큰 엄마의 무게가 내 몸에 묵직하게 실렸다. 엄마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손바닥에 놓아 준 알약 세 개를 한꺼번에 털어 넣고 물을 반 컵 마신 뒤 고개를 뒤로 젖혀 약을 삼켰다. 약을 삼키면서 엄마는 바보스럽게 머리통을 흔들어 댔다. 엄마의 저런 모습이 나를 절망하게 한다. 가끔은 내가 딸인지 엄마가 내 딸인지도 헷갈린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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