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불편한 진실,
눈물과 이권으로 얼룩진 전기
전기 문외한이 전기에 관심 갖게 된 계기
나는 전기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전기공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전기와 관련된 일을 해 본 것도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에는 집안의 전등을 갈아 끼우는 것이 전기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전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전사고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면서 내가 사는 남한 땅에 원전이 몇 개나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무려 21개가 가동중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곧 23개로 늘어났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탈핵(탈원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외국의 사례를 보니 탈핵을 한 국가에서는 녹색당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녹색당 창당작업에 뛰어들어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원전에만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전력시스템 전반에 대해서는 여전히 캄캄했다.
그러던 내가 발전-송전-배전을 아우르는 전력시스템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바로 밀양 송전탑 문제 때문이었다. 2012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인터넷을 보는데, 충격적인 뉴스가 보였다. 경남 밀양에서 70대 농민 한 분이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살던 노인이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은 불과 두 달 전에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한다는 밀양 주민들을 우연히 만난 적도 있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송전탑, 아니 더 정확하게는 초고압 송전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전소에서 소비지까지 전기를 보내기 위해 76만5천 볼트, 34만5천 볼트, 15만4천 볼트 같은 엄청나게 높은 전압의 송전선이 건설되고 있었고, 그 송전선 때문에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알게 된 것은 단지 밀양만 송전선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경북 청도에도 송전선 때문에 고통받는 주민들이 있었다. 이미 송전선이 건설되어 있는 충남 당진, 서산, 강원도 횡성, 평창, 태백, 전남 여수 등 전국 곳곳에서 시골 주민들이 초고압 송전선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불필요한 발전소와 송전선을 왜?
그래서 전기에 대해 좀더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진실을 알고 보니, 밀양을 지나가는 76만 5천 볼트의 송전선은 밀양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있는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서 나오는 전기를 대구와 경북지역으로 송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와 한전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 설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대구는 그렇게 전기소비량이 많이 증가하는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구에서 필요한 전기 정도는 대구 주변에 크지 않은 발전소를 지어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밀양 송전선이 필요한 이유는 발전소, 특히 원전 때문이었다. 원전을 한 곳에 몰아서 짓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선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는 이미 6개의 원전이 가동중에 있는데, 6개를 더 지으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곳에 발전소를 몰아서 짓다 보니 초고압 송전선이 자꾸 필요해지는 것이었다.
실상을 보니, 대한민국의 전력정책은 어처구니없는 수준이었다. 초등학생도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펴지는 않을 수준이었다. 전기가 꼭 필요해서 원전을 짓고 송전탑을 짓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현실을 알고 보니 순서가 거꾸로였다.
문제의 출발점은 원전 같은 대규모 발전소를 많이 짓는 것이었다. 그런 발전소들을 많이 짓다 보니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송전선을 많이 짓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기를 누군가가 쓰게 만들어야 하니, 원가 이하로 기업들에게 ‘산업용 전기’를 공급해 왔던 것이었다.
“왜 이렇게 하나?” 하는 의문을 갖고 들여다보니, 모든 것이 다 ‘돈’ 때문이었다. 발전소와 송전선 건설을 둘러싸고 엄청난 돈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돈을 버는 기업들이 있었다. 그들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반복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책 때문에 밀양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이 생겼다. 게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원전은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어느덧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원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원전만큼 많이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해 기후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이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 국가가 되었다. 경제규모로는 절대로 세계 7위가 안 되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세계 7위가 된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금의 청소년, 청년들과 미래세대가 뒤집어쓰게 되어 있었다. 이런 시스템은 전혀 정의롭지 않다.
그때부터 집에 누워 천장에 달려있는 전등을 바라보며, “이 전등을 밝히는 전기는 과연 어디서 올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지금 우리 집(또는 사무실)을 밝히는 전기는 과연 어디서 올까?
대한민국 전력정책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그런 와중에 나는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드문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전력업계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대한민국 전력정책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2013년 6월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협의체’에 밀양 주민들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본래는 전기공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가 들어가면 더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온통 ‘마피아’ 천지인 대한민국에서 양심적이고 독립적인 전문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나마 후쿠시마 이후에 공부한 전기지식과 법률지식이 있는 내가 전문가협의체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40일간 활동을 하면서 나는 정부와 한전, 그리고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속아 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책에서 분명히 밝히겠지만, 원전이나 송전탑을 안 지으면 전력난이 온다는 것은 완전한 허구이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돈을 벌게 하기 위해 쓸데없는 발전소와 송전탑을 짓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경남 밀양에서 문제가 된 76만5천 볼트 송전선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에는 맞지 않은 송전선을 들여온 것이 문제의 근본원인이다. 그리고 발전소를 한 곳에 몰아 짓는 바람에 전력계통이 불안정해지고, 그것 때문에 또 새로운 송전선을 건설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당신이 그 정도 얘기를 할 수 있는 전문가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전기공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전기와 관련된 정책은 전문가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올바른 정보와 판단 근거만 주어진다면 평범한 시민들이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전력정책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걸려 있는 문제다.
나는 밀양 송전탑 전문가협의체에 참여한 이후, 기회만 있으면 현재의 전력정책을 비판해 왔다. 글도 많이 썼고, 언론 인터뷰나 강연도 했다. 만약 내가 얘기하는 것이 허위였다면, 이미 정부나 한전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어야 맞다. 그러나 내가 하는 얘기에 대해 한전도, 정부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제대로 반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마이뉴스 TV>, <뉴스타파> 같은 언론과 그런 내용의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밀양 주민 측에서 공개토론을 제안했을 때에도 그들은 토론을 거부했을 뿐, 우리 주장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반박을 내놓지 못했다. 마치 논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불온한 소책자를 내는 이유
그래서 이 소책자를 낸다. 그동안 내가 해 온 주장을 출판물로 정리해서 내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내가 찾아내고 정리한 것이기도 하지만, 송전탑, 원전, 석탄화력발전소로 고통받는 지역 주민들이 내게 해 준 얘기들도 포함이 되어 있다.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도 지금 시스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통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또한 이 책은 녹색당의 동료들과 함께 찾아내고 논의하고 토론한 내용들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비록 작은 정당이고 생긴 지가 얼마 안 되는 정당이지만, 녹색당은 그 어느 정당보다도 문제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었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수치나 그래프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대부분 정부와 한전, 전력거래소가 만든 자료이다. 그들이 만든 자료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최대한 시민들이 읽기 쉽도록 단어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전기에 관한 기술적인 내용들은 줄이고, 정책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주권자인 시민들이 알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1장에서는 대한민국의 전력정책을 움직이는 것은 철저하게 ‘이권’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전기가 필요해서가 아니고, 원전마피아, 전력마피아, 대기업들의 이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한민국 전력정책이 수립되고 발전소들이 지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2장은 송전선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76만5천 볼트라는 초고압 송전선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전력계통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또 다른 송전선을 건설하게 만든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규모 발전소를 한 곳에 몰아 짓고 76만5천 볼트 송전선을 연결하는 데 있다. 제2, 제3의 밀양이 생기지 않으려면, 이런 초고압 송전선의 진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2장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보고자 한다.
3장은 대안에 대한 것이다. 우선 전력난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력소비가 늘어난 것은 정부의 잘못된 전기요금 정책 때문이라는 것도 살펴볼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세계적인 추세도 있고, 국내에서도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그리고 초고압 송전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탈핵-탈석탄화력-탈송전탑은 지역분산형 발전으로 전환하면 한 묶음으로 이뤄진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착한 전기를 위한 다섯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필요한 시민들의 행동도 제안하고자 한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라는 중요한 선거일정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지금 움직이면 바꿀 수 있다.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책의 제목에 대해 고민하다가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로 잡았다. ‘착한 전기’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착한 전기’는 다른 사람의 눈물과 고통을 낳지 않는 전기를 말한다.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전기를 말한다. 핵발전의 위험과 기후변화, 그리고 초고압 송전선의 피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전기를 말한다.
전기를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충분히 착한 전기를 쓸 수 있고, 착한 전기를 쓰는 사회로 전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해 왔지만, 나는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이 불온한 소책자를 내는 이유는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 목적에 맞게 적나라하게 얘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림으로써, 대한민국의 전력정책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해 보려고 한다. 정부와 한전, 그리고 이 책에서 ‘마피아’라 불리는 분들은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책임 있는 자세로 논쟁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2014년 12월
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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