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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리벽 너머로 내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는 입을 반쯤 벌리고 왼쪽 뺨을 바닥에 붙인 채 자고 있었다. 이제 태어난 지 이틀이 될까 말까 한 아기는 숨을 쉬며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이마를 유리벽에 갖다 대었다. 나와 요람 사이의 거리는 불과 몇 센티미터 정도였는데 그 요람이 무중력상태로 변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만 같았다. 플라타너스 가지 하나가 마치 부채처럼 규칙적으로 흔들리면서 유리창을 스치고 있었다. 내 딸은 ‘카롤린 에릭 신생아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 흰색과 하늘색의 방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내가 아기를 잘 볼 수 있도록 요람을 유리벽 쪽으로 바싹 밀어놓아 두었다.
아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그만 얼굴에는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나뭇가지는 소리 없이 계속 흔들렸다. 코를 유리벽에 바싹 붙이고 있었더니 입김 자국이 생겼다.
간호사가 다시 나타나 나는 곧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으니 호적과의 문이 닫히기 전에 시청에 도착하려면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붉은색 가죽 표지가 씌워진 조그만 노트인 ‘호적부’를 들춰보면서 병원 층계를 내려갔다. ‘호적부’라는 제목이 졸업장, 공증인 증명, 족보, 토지대장, 귀족 칭호 증명서, 혈통 증명서 등의 온갖 관청 서류들을 대할 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어떤 존중심 섞인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처음 두 장에는 나와 내 아내의 성명과 더불어 나의 혼인 증명서 사본이 있었다. 내 호적상의 상세한 내용은 따지고 싶지 않았는지 ‘부父’에 해당하는 칸은 빈칸으로 남아 있다. 사실 나는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네 등분으로 접힌 푸른 바닷빛 종이 한 장이 이 호적부에 핀으로 부착되어 있었다. 내 부모의 혼인 증명서였다. 점령기에 한 결혼이었으므로 거기 적힌 아버지의 이름은 가명이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프랑스라 오트 사부아 주므제브 시청.1944년 2월 24일, 17시 30분……공식적으로 시청 청사에기 자스파르 드 종그와마리아 루이자 C가 출두하였음.장래의 부부가 될 두 사람은서로를배우자로선택할것임을차례로 선언하고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이들이 혼인에 의하여 결합되었음을 공포함.
1944년 2월 므제브에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제 곧 알게 되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의 가명의 성姓에다 덧붙인 ‘드 종그’는 도대체 무엇일까? 드 종그. 그것이야말로 아버지다운 발상이었다.
나는 병원 입구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도로 가에 세워둔 코로맹데의 자동차를 알아보았다. 그는 잡지를 읽느라 정신이 팔린 채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더니 내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 전날 밤 바가텔 문 근처에 있는 바로크풍의 실내장식을 한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곳은 평소에는 절대로 발을 들여놓을 일이 없지만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기는 경우에나 들르게 되는 그런 장소들 중 하나였다. 내 딸은 그날 밤 아홉 시에 태어났는데 나는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가기 전에 보았고, 막 잠들려는 산모에게 키스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가을비를 맞으며 뇌이 구역의 황량한 대로를 따라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걸었다. 자정이었다. 나는 그 식당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그곳에는 내게는 등만 보이는 한 남자가 카운터에 팔꿈치를 기대고 서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바맨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는 남자 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
“코로맹데 씨, 당신한테 온 전화입니다.”
코로멩데……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집에 자주 찾아오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 친구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가 통화하는 동안 r 발음을 굴리는 둔중하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전화를 끊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장 코로맹데 씨?”
“그런데요.”
그는 놀란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었다. 나는 내 소개를 했다. 그가 탄성을 질렀다. 그러더니 쓸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렇게나 컸군……”
“네.” 나는 사과라도 하듯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내가 애아버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는 감격한 나머지 아기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내게 술 한 잔을 권했다.
“아버지라, 그거 대단한 거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함께 레스페리아라는 이름의 그 식당을 나왔다.
코로맹데는 차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낡은 검은색 레장스의 문을 열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는 내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버지를 이십 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다.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지 십 년이나 되었다. 그나 나나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1942년 어느 날 저녁에 바로 그 레스페리아 식당에서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십 년 후 그날 저녁과 똑같은 식당에서 ‘그 어린아이’의 출생 소식을 들을 것이었다……
“세월도 빠르지……”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 그 어린아이는, 나도 그애를 볼 수 있을까?”
그 말에 나는 다음날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는 데 동행해줄 것을 청했다. 그는 매우 기뻐했고 우리는 정각 다섯 시에 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대낮의 햇빛 아래 그의 자동차는 그 전날보다 더 허름해 보였다. 그는 읽고 있던 잡지를 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내게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테가 굵고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알이 박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호적과가 다섯 시 반에 문을 닫거든요.”
그는 자기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걱정 말게.”
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이십 년 사이 내가 많이 변한 것 같은가?”
나는 그 시절에 내가 그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인상을 되살려 보려고 눈을 감았다. 집게손가락으로 연신 콧수염을 쓸어대면서 딱딱 끊어지는 짧은 문장으로 말하고 잘 웃던 금발의 활력 있는 남자. 항상 밝은색 양복 차림이던 모습. 그렇게 그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속을 맴돌고 있었다.
“나 늙었지, 안 그래?”
사실 그랬다. 그의 얼굴은 쪼그라들었고 피부는 회색빛이었다. 아름답던 금발도 잃어버렸다.
“별로 그렇지 않은데요.” 내가 말했다.
그는 기어를 바꾸고 나른한 몸짓으로 크게 핸들을 돌렸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과 직각으로 만나는 대로로 접어들 때 모퉁이를 크게 도는 바람에 낡은 레장스가 인도의 턱에 부딪혔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참 자네 아버지 말인데, 그 사람 지금도 여전히 레트 버틀러를 닮았는지 모르겠군…… 왜 있잖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저도 그런 생각 하곤 해요.”
“우리는 아주 오래된 친구라네. 십 년 전 오트빌 기숙사에서 알게 되었지.”
그는 도로 한복판으로 차를 몰다가 트럭을 스치다시피 했다. 그러고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라디오를 켰다. 스피커에서는 경제 상황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경제 상황이 날이 갈수록 경악할 만한 상태로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1929년의 공황에 비길 만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나는 내 딸이 잠자는 희고 푸른 방과 유리창을 스치며 흔들리는 플라타너스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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