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753년 가을 유명한 디종 아카데미에서 논문 현상 공모를 실시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물음에 가장 훌륭한 답변을 내놓은 사람에게 상을 줄 예정이었다.
제네바에서 온 장 자크 루소라는 한 인습 타파주의자가 이 논문 공모에 응했다. 그의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비록 수상하지 못했지만 250년이 흐른 뒤 유일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루소의 논문은 대단한 파급력을 미쳤고 그런 탓에 많은 역사학자는 이 논문이 프랑스 혁명의 도덕적 근거를 제공했다고 믿는다. 게다가 루소를 근데 사회과학의 창시자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100쪽이 채 되지 않는 논문에서 루소는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제시했으며 이는 찰스 다윈과 허버트 스펜서의 저서보다 한 세기 이상 앞선 것이었다. 더욱이 루소의 시도는 인류학이나 사회학 자료를 전혀 이용할 수 없던 시대에 나온 것이라 더 놀라웠다. 당시에는 두 학문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고고학 자료도 이용할 수 없었다. 1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처음으로 하인리히 슐리만이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먼 옛날, 즉 “자연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루소는 주장했다. 그 시대에는 인간이 오로지 힘과 민첩성, 지능 면에서만 차이를 보이고 각 성원은 당장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만 일했다. 루소는 인간 조건의 모든 불쾌한 특성이 자연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사회 자체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자기 보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존감이 일반적인 원칙으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사회가 커지면서 불행히도 이런 태도는 자기애, 즉 남보다 우월하고 싶고 남들로부터 존경받고 싶은 욕구에 자리를 내주었다. 또한 베푸는 마음 대신 재산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결국 점점 수가 많아진 부유한 집단이 가난한 집단에게 사회 계약을 강요했다. 이는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함으로써 불평등을 제도화한 계약이었다.
논문을 쓸 당시 근거로 삼을 만한 자료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논문이 미친 영향력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자연인간”에 대한 묘사는 여행자들이 전하는 일화를 바탕으로 했다. 루소는 활을 뛰어나게 잘 쏘는 “서인도 제도의 야만인”, 힘과 손재주로 유명한 “북아메리카 야만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기니, 아프리카 동쪽 해안, 인도 남서부 말라바르 해안, 멕시코, 페루, 칠레, “마젤란 대륙”의 원주민 이야기도 들었다. 또한 루소는 희망봉의 코이코이족도 알고 있긴 했지만 이들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명칭인 “호텐토트족”으로 지칭했다.
루소가 세세하게 틀린 사항을 모두 열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는 그레고르 멘델이 DNA를 몰랐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보다는 루소의 논문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최근의 자료를 활용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는 옛날 사람들에 대한 방대한 고고학 자료이고 다른 하는 오늘날의 인간 집단에 대한 인류학 자료다. 요컨대 이 두 부문의 방대한 자료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내용이 이 책에 실려 있는 것이다.
해부 구조나 지적 능력 면으로 볼 때 이미 빙하 시대부터 현대 인간이 존재했다. 기원전 15000년 무렵 인간은 가장 가까운 경쟁자를 거의 멸종시킨 뒤 지구상의 주요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빙하시대 인류 조상은 일반적으로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먹이를 찾아다니며 살았고 이 집단의 성원은 베푸는 마음, 나눔, 이타심을 존중했다.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이 지적했듯이 수렵채집 사회의 성원은 불평등이 생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우리 조상 모두가 계속 이런 방식으로 산 것은 아니다.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일부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이 커진 더 큰 규모의 사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원전 2500년 무렵이 되면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불평등의 형태가 세계 어디에선가 나타나게 되었고 진정 평등한 사회는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 다른 이들은 원하지 않는 몇몇 지역에만 한정되었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복잡한 인간 사회의 출현을 비대 현상, 즉 공작의 꼬리나 코끼리의 엄니 등 특정 조직이 과대 성장하는 현상에 비유했다. 하지만 복잡한 인간 사회가 형성되기 위해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인간 집단의 특징을 결정짓는 특별한 사회 논리가 변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사회인류학에서 이러한 논리의 세부 사항을 배우고,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고고학을 통해 배운다.
다음 내용에서는 고고학과 사회인류학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불평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광범위한 규칙성 몇 가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첫째, 인간 사회는 수백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가운데 대여섯 가지가 매우 효율적이어서 세계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둘째,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만한 논리적 전제도 수백 가지나 되지만 이 가운데 몇 가지만 효율적이어서 서로 아무 관련도 없는 수십 개 사회가 동일한 전제를 내세웠다.
이 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의 동료 고고학자나 사회인류학자가 많은 정보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위한 책은 아니다. 우리는 일반 독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선사 시대 조상에 대해 알고 싶지만 사회과학 문헌을 살필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일반 독자를 위해 쓴 책이기 때문에 오래전 사건의 시대를 표기할 때 쉽게 알 만한 익숙한 방식을 사용했다. 대략적인 근사치 이상으로 밝힐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시기의 경우에는 오래전이라고 표기했다. 이보다 나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마야, 유럽식 달력으로 표기된 경우에는 신문이나 뉴스 잡지 독자에게 익숙한 “기원전” 또는 “기원후” 체계를 이용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고고학과 사회인류학을 자주 언급할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동물학과 고생물학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동물학자는 살아 있는 양서류와 파충류, 포유류를 연구함으로써 이 동물들의 해부 구조와 행동에 대해 상세한 지식을 전달한다. 반면 고생물학자는 화석 기록을 연구함으로써 양서류가 파충류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양서류에서 파충류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등을 우리에게 입증해 보인다.
고생물학자의 경우 대개 고대 생물종의 뼈가 유일한 연구 자료이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뼈에는 인대, 힘줄, 근육이 붙었던 부위가 보이며 동물학자는 이를 특정 행동과 연관시킬 수 있다. 동물학자도 나름대로 불리한 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생물체만을 대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생물학자는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생물체의 뼈 구조를 연구하여 과거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따라서 두 분야는 상호 간에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고고학과 사회인류학도 상호 협력할 때 가장 효율적이지만, 수년간 이 두 학문은 기껏해야 어색한 관계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고고학자들은 선사 시대 증거 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종종 사회인류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하지만 많은 사회인류학자는 자신들이 고고학에서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인류학자들은 고고학이 육체노동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고고학이 사회인류학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회인류학자는 로빈 폭스였다. “고고학이 구식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 학문은 아무리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라도 과거에 대한 사실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라고 언젠가 폭스는 쓴 바 있다. 나아가 고고학은 “언제나 다시 돌아가 이 학문의 주제라 할 수 있는 형체적 유물의 날 것 그대로의 사실과 대면해야 한다. 이는 강점이지 결코 약점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사회인류학자는 형체적 유물의 날 것 그대로의 사실과 반드시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곧 사실일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영역이 무한히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회인류학자는 원한다면 과거가 자기 방식대로 해석 가능한 하나의 “텍스트”라고 믿을 수도 있다. 심지어 사회인류학자는 마음만 먹으면, 인간 사회의 발전 방식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 없으며 한없이 다양한 사회 속에서 질서를 밝혀내려는 시도는 모두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고고학자에게는 이런 사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가령 고고학자는 1만 5000년 전에 군주제가 없었으며 드디어 여러 대륙에서 등장하게 된 군주제가 형체적 유물에 놀라운 유사성을 남겨 놓았다는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의 고고학자는 사회인류학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화적 행동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에게는 과거 사회의 앙상한 윤곽만 있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사회인류학자의 저서를 읽음으로써 고고학자는 쉽게 소멸되는 사회 구조를 재구성하기 위해 무엇을 참조해야 하는지 배운다. 동시에 고고학자는 사회인류학자가 발전시킨 모든 이론이 고고학 유물에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정도의 약식을 지녀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인류학 및 고고학 자료는 우리가 이용할 만한 자료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용 가능한 수백 가지 사회인류학 연구 가운데 고고학 자료를 해석하는 데 가장 쉽게 이용할 만한 것을 골랐다. 또한 사회 변화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했거나 불평등의 논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연구도 참고했다.
가능한 경우에는 특정 사회를 접촉했던 초기 사회인류학자들의 연구를 참조했다. 이들은 이 특정 사회가 식민 정책이나 세계화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변형되기 전의 모습을 알려줄 수 있었다. 이 고전적 연구 중에는 오늘날 유행하는 인류학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것이 많다. 하지만 이런 초기 연구 자료는 이제 더 이상 관찰할 수 없는 원주민 고유의 행동에 관해 고고학자들에게 설명해 준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한때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많은 사회 형태도 단지 고고학 유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기가 되면 선구적 인류학자의 많은 저술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이용한 고고학 연구 자료 역시 마찬가지로 선택적이었다. 이용 가능한 수백 가지 중에서 우리는 실제적인 사회적 행동을 추론할 수 있는 것을 추렸다. 고고학 유적지에서는 늘 인공 유물이 나온다. 하지만 모든 유적지에서 불평등의 측면을 보여 주는 주거가옥, 공공건물, 의식 관련 특징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최신 자료가 항상 유용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주 깨달았다. 훌륭한 고고학 증거는 어느 시대에서든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접한 이론이나 설명 모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자연 선택 이론이 발표된 것이 1859년이었고 지금도 쓰이고 있다. 1905년에 처음 발표된 상대성이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진정 유용한 이론에는 “유통 기한”이 없다.
학문에는 반드시 이론이 있어야 한다. 이론은 개별적인 여러 사실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니만큼 얼마나 많은 이론을 제시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상반되는 가정들을 설명하느라 길고 장황하게 한 장을 할애하는 것만큼 “흥을 깨는”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리처드 S. 맥니시라는 이름의 한 나이 든 현명한 고고학자의 지도를 따랐다. 일전에 맥니시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론은 향수와 같습니다. 적당히 뿌리면 당신 주위에 구혼자가 몰려들지요. 하지만 너무 많이 뿌리면 사람들은 당신이 잘못된 자료의 냄새를 가리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는 이 책에 실린 이론이 귀 뒤에 살짝 찍어 바른 향수라고 믿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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