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중의 사군자,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나고 덕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서 만물을 키워내는 덕生成之德이 남보다 뛰어나셨다. 태도가 의젓하고 차분하며 얼굴이 수려하고 피부는 흰 눈이 엉긴 듯하였다. 본래 일찍부터 쇠약해져 춘추 삼십여 세에 눈썹 사이에 듬성듬성 흰빛이 비치고 기력이 심히 약해졌으나 피부는 맑고 고와 씻은 듯 깨끗하였다. 높은 기상과 신중한 행동거지에다 태도가 위엄있고 조신하고 도량이 넓어 모든 일을 꾸려가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베푸는 데 여유로워 가까운 친지와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내셨다. 타고난 성품이 바르고 너그러우며, 활달하고 인자하며, 부드럽고 유쾌하여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으셨다. 사람을 아끼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지극하고 더없이 인자하고 후덕하였다. 그러나 누구에게 치우치는 법이 없어 한쪽에만 치우쳐 호의를 보이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명정대하여 일말의 구차함이 없었으니 이른바 군대를 이끄는 장부요, 규중의 사군자士君子라 하겠다. 평소에 말없이 묵묵히 계시면 옆 사람이 숙연해져 어려워하며 더욱 공경하고, 아랫사람은 두려워하며 조심하였다. 한번 따뜻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씀을 시작하면 따사로움이 봄기운 같고 사랑스러움이 겨울날 같아서 만복이 흘러넘치고 모든 일이 조화롭고, 길하리라는 것은 지자知者를 기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수壽와 복福을 다 누리지 못하셨으니 하늘의 뜻이 어찌 된 것인가.
어머니가 시집오자마자 친정 부모님 상을 당해 곡을 했던 까닭에 신혼에 할아버지께 인사를 올렸으나 삼가 근신 중이라 존안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우리집에 들어온 뒤로는 할아버지가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것을 받들지 못하고 우러러 효성을 펴지 못한 까닭에 뼈에 사무치는 한이 남아 못다 한 효성을 할머니에게 다하고자 하였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조금만 편찮으셔도 마음을 졸이고 위로하며 지극히 위해드렸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더욱 힘써 반드시 직접 자르고 끓였다. 부엌에 들어가서 잘 익었는지 살피고 청사廳事에 솥과 화로를 펼쳐놓고 차고 뜨거운 정도를 맞추며 짜고 싱거운지도 일일이 맛보았다.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청사를 떠나지 않고 한여름에도 손수 불 피우기를 그치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때를 어기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올렸다. 상이 물려나오면 남은 음식이 많고 적은지를 살펴서 드신 것이 많으면 흐뭇해하며 기뻐하고 혹 드신 것이 적으면 크게 걱정하며 직접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어 올렸다.
“참으로 마땅하도다. 내가 속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미처 말하지 않아도 뜻을 맞추니 어찌 그렇게 마음을 잘 읽고 총명할꼬?”
할머니는 어머니를 칭찬하며 매사에 잘 대해주고 아끼셨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섬김은 화평하고 곡진하며, 반드시 후한 말씀과 덕 되는 일로 도움이 되고자 했다. 아버지도 탄복하고 어머니를 공경하고 귀히 대하셨으니 서로 지극히 가깝고 화목하였다. 어느 부부인들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이 없겠는가마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밖으로는 부부의 의를 갖추고 안으로는 서로 마음이 통하여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미리 헤아리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의견을 내면 마땅히 어기지 않으셔서 의견이 같고 뜻이 합해지니 화목하고 도타우심이 지극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동이 진중하면서도 작은 잘못이라도 무섭게 꾸짖었고, 어머니는 비록 특별한 자질이 남보다 뛰어났으나 온화하고 맑아 천성이 완전하였으니 세상의 교활하고 재빠른 처세에 어찌 부합하였겠는가? 서울과 시골이 다르니 또 어찌 서울 사람의 눈에 익지 않은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시비를 가려 노할 일도 많았고 부모와 떨어져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으나 타고난 성품이 넉넉하고 밝아서 얼굴빛과 목소리로 드러내지 않았다. 동서와 시누이, 시어머니와도 사이가 좋고 친지간에 돈독하고 화목한 것은 평생 근본으로 삼은 바였다. 대접하는 데 후하며 정성을 다하여, 상대가 비록 박하게 해도 어머니는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하였다. 동기간에 반드시 의복과 음식을 나누고, 촌수의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후한 정과 너그러운 뜻을 고루고루 폈다. 하찮은 음식이라도 제철에 좋은 것은 반드시 많이 장만해서 봉양하고 남은 것은 바로 일가에 보내 친지들과 정을 나누었다. 귀천을 따지지 않고 굶주림과 추위가 심하고 사정이 급하다 들으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스스로 침식을 편히 못하고 옷과 음식으로 도와준 뒤에야 시원해하며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더욱 기꺼이 바깥사람들을 도왔는데, 어머니를 의지하여 서로 의논하여 재물을 아끼지 않았으며 힘을 다하되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셨다.
(중략)
어머니는 자애로움이 지극하셨지만 반드시 바른 교훈을 두고 늘 이르시기를
“어른에게 삼가고 조심하며, 공손하고 순종하며, 겸손히 받들어 잠깐도 게으르고 오만하지 말아라.”
하고 또 말씀하기를
“내 평생 의지하는 바는 한편으로 치우치고 도량이 좁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음이니 너희는 삼가 혹시라도 그렇게 행하지 말아라. 남이 비록 듣고 본 것이 없거나, 천성이 어리석거나 해서 체모를 잃는 일이 있으면 마땅히 자세히 가르치고 정다이 일러서 고치게 해야지 깨우치지는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극히 안타까운 일이요, 스스로 복에 해로우니 부디 삼가라.”
하셨다.
우리가 혹 하인들을 야단치면 그때는 그들의 태만함을 꾸짖어 분을 풀어준 다음, 우리를 조용히 꾸짖으며
“종이 비록 귀천이 다르지만 또한 사람이요 지각이 있다. 위에서 어른이 살피고 있는데 아이들이 또 사사로이 꾸짖는 것은 어른을 앞서는 것이요 어진 마음이 적은 것이다. 비록 어른이 꾸짖고 벌해도 화를 풀고 죄를 덮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우리가 혹 바로 제 앞의 일을 하인에게 자주 시키면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릴 때부터 마음을 낮추고 몸을 부지런히 해야 다른 집안에 가서 공손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느니라.”
하셨다. 하인을 부릴 때면 옷과 음식을 후하게 해주었으며, 멀고 가까움과 싫고 좋음을 두지 않고 공정함이 한결같았다. 규범이 엄하고 법도가 있어서 비록 신임하는 종이라도 사사롭게 말을 주고받거나 너무 가까이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어려운 사정을 잘 살피고 돌보고 어루만짐이 지극한 까닭에 종들이 벌을 받아도 감히 원망하지 못했다. 이웃의 아랫사람들도 꺼리고 두려워하였지만 거리를 두지 않았고, 가까이하되 아첨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조용하고 엄하면서도 온화하여 집안을 다스리는 데 법도가 있고, 풍부하게 갖추되 넉넉함과 간소함을 경우에 맞게 하였다. 온갖 일을 총명하게 환히 알고 있어 꿰뚫어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니 이는 바로 우리 외할아버지의 관대하고 큰 도량과 외할머니의 어질고 맑은 덕을 이어받은 것으로 크고 훌륭한 덕과 규범이 실로 요즘 세상에 드문 것이었다.
다시 보고 듣지 못할
어머니는 스스로 반평생 깊은 근심 중 세상에 대해 복받치고 마침내 한낱 아들이 없어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과, 언니가 이미 혼인할 나이가 되었으나 미처 혼인시키는 재미를 보지 못하고 훗날 아버지가 높고 귀하게 되는 것을 능히 함께 누리지 못하는 것이 가슴에 맺힌 한이 되어 서러워하셨다. 그러나 오히려 서글픈 얼굴이나 슬픈 말을 하지 않고 수복壽福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로 도리어 아버지에게 마음을 푸시라고 재삼 청하셨다. 세세한 유언이 수만가지이나 내가 우둔해서 천년에 한 번도 이생에서는 다시 얻어 듣지 못할 말씀을 능히 자세히 새겨듣지 못하여 다 기억하지 못하니 어찌 지극한 한이 아니리오. 아버지는 평생 소중히 대하며 마음이 맞는 부부로 백발이 되도록 함께 늙어갈 것을 기약하다가 하루아침에 중도에 천고千古의 이별을 당하여 마지막으로 집안일을 의논하며 부탁을 받으니 그 깊은 원망과 슬픔이 어떠하리오.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목을 놓아 울면서 어머니의 말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삼가 잊지 않겠노라 답하셨다. 어머니에게 가슴에 품은 것을 자세히 이르라고 하며 바라는 바를 낱낱이 다 좇으며 앞으로의 일을 일일이 물어 어머니의 의견을 다 따르고자 하셨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고자 말씀하길
“내 이미 처궁妻宮이 박하여 두 번이나 이런 정경情景을 당하고 나이 또 사십이니 다시 아내를 들이지 않으려 하오.”
하니, 어머니가 정색을 하고 답하셨다.
“어찌 이런 답답한 말씀을 하십니까? 형세를 들자면 위로 어머님이 계시나 음식을 받들 사람이 없고, 당신은 나이 마흔에 뒤를 의탁할 아들이 없고, 혼인하지 않은 두 딸이 있고, 시중들고 음식을 주관할 사람이 없으니 마땅히 급히 장가를 드셔야 할 터인데 어찌 이같이 그릇되이 헤아리시는 겁니까?”
아버지가 더욱 슬퍼하고 탄복하며 그 뜻이 지혜롭고 밝음을 일컫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면 살림을 맡아 다스릴 첩妾을 두면 어머니를 모시고 살림을 하는 데 해롭지 않고 후사를 두되 적자는 아니요 내 뒤를 부탁할 뿐이니 어떠하겠소?”
어머니는 또 말리며 답하기를
“천한 사람은 끝내 간사하고 음란하기 쉬우니 마땅히 새로 부인을 얻으소서.”
라며 다시금 권하셨다. 이어 우리 형제에게 삼가 이르기를 다른 말씀은 없고 다만 들어올 어머니에게 삼가고 공손히 하여 스스로 신세를 편안하게 하고 돌아간 어미에게 못난 자식을 낳았다는 허물이 미치게 말라고 두 번 세 번 당부하셨다. 슬프고 슬프도다! 이때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과 절절한 천륜으로 천고千古의 끝없는 영원한 이별을 당하여 삼가 가르침을 받들었으니, 아아, 슬프다! 저 끝없는 푸른 하늘蒼天이여! 차마 어찌 하늘이 사람을 내어 어머니의 정 끊기를 이렇듯 급히 한단 말인가? 다만 듣는 것이 망망하고 보는 것이 황황하여 가슴을 치고 흐느껴 울며 들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너희 내 말을 다시 들으려 해도 미치지 못할 터인데 울고 자세히 듣지 않음은 그르지 않으냐?”
하시며 맨 아래 애정에게까지 마지막 가르침을 이르니 이 여종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종으로 나의 유모이다. 그때 옆에서 어머니 머리를 짚고 발을 주무르면서 흐느끼니 이는 다른 종들과 달라 천릿길을 따라와 모시다가 중도에 주인을 잃는 마음이라, 어머니가 그 마음을 깊이 헤아려 몇 마디 삼가 일렀다.
“어려서부터 주인과 종의 의를 맺어 정이 두터운 데다 천리를 따라와 슬픔과 괴로움을 겪고 중간에 내 불행하게 되니 의탁할 곳이 없어 서러울 터이나 주인어른이 계시고 어린 두 주인이 있으니 또한 의탁할 곳이 없지 않을 것이다. 새 주인마님을 잘 모셔서 모름지기 연의 순박하고 충성스러움을 배우라.”
다시 아버지와 우리에게 일일이 앞날을 부탁하고 세세히 당부하셨다. 그 후에 어머니 말씀이 낱낱이 어긋남이 없었으니 어찌 그리 이치를 환히 꿰뚫어 아셨을까? 그때 한 달 남짓 병을 앓아 정기가 소진하였으나 정신과 총명이 하나도 빠트림이 없고 뒤섞임이 없었다. 이렇듯 성덕과 총명을 하늘에서 특별히 타고나고도 어찌 명이 짧고 박함이 이토록 심한가?
어머니가 이미 11일에 쌍동 큰집 사랑에 들르셨는데,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나와 보시고 반기며 말씀을 주고받고 어린아이를 내와 보이니 잠깐 본 뒤에 즉시 들여보내고 앞에 두기를 괴로이 여기셨다. 이후로 어머니는 차차 말씀 나누기를 싫어하여 하지 않고 더욱 기운을 수습하지 못하여 때때로 잠깐씩 정신을 잃기도 했다. 14일에는 지각知覺이 더 희미해져서 불러도 대답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미음을 떠 넣어도 받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말씀하기를
“이미 어찌 할 수 없으니 쓸데없는 미음으로 괴로이 보채는 것은 부질없다.”
하고 아침밥 때부터 미음을 끊고 변變을 기다리셨다. 즉시 운명할 것이었으나 약을 많이 쓰고 인삼 기운이 다하지 않은 까닭에 오히려 희미한 호흡이 끊어지지 않으니 발상發喪을 못하였다. 아버지가 비통해하며 울면서 탄식하셨다.
“내 이미 하릴없는 줄 알면서도 요행을 바라고 인삼을 써 돌아갈 사람을 저렇듯 고생시키니 어찌 나의 탓이 아니며 애달프지 않으리오?”
언니가 망망한 중에 생혈生血을 써보고자 칼을 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벌써 칼을 다 감추고 생혈이란 것이 거짓이라고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르시고, 어머니가 곡기를 끊은 뒤부터는 우리 형제를 서헌西軒 건넌방으로 옮겨 환자 곁에 가지 못하게 엄금하였다. 언니는 어머니의 명을 늘리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변을 기다리며 하루 종일 건넌방에서 어쩔 줄 몰라 초조해하였다. 환자를 곁에 모시고 임종을 못하니 비록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잡고 보내지 않아도 어머니 살아 계실 날이 이 날뿐이니 비록 느끼지 못해도 마땅히 몸을 안고 곁에서 모시며 모녀의 덧없고 느꺼운 정을 다해야 했건만, 언니는 다만 황황한 심신에 하늘이 캄캄해져 아버지 말씀만 받든 채 종일 건넌방에서 천지가 아득하고 가슴이 꽉 막혀 다만 갑갑해서 가슴을 뜯으니 피가 흥건히 흘러내릴 뿐이었다. 어머니를 붙들어 마지막 영결을 하지 못했으니 어찌 천고에 사라지지 않을 한이 아니겠는가. 이에 초혼招魂 하고 속광屬纊 하니 아아, 푸른 하늘이여 차마 이 어찌된 일인가.
오호 통재라! 누가 하늘이 어진 사람은 수壽를 주고 복을 더한다고 하였는가. 우리 어머니는 평생 널리 베풀고 인자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자비롭고 어진 마음이 지극한데도 수명이 길지 못하고 평생 마음에 지극히 바라고 지극히 원하던 한낱 아들을 끝내 두지 못했다. 또 아버지가 이미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立身하였으니 비록 미미한 관직이나 그 영행榮幸, 영광과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처음에 심히 고생하다가 끝내 즐거운 생활을 한 가지도 누리지 못했다. 우리 형제를 두어 언니는 이미 혼인할 때가 되었으니 혼수를 마련하며 혼기婚期를 일컬으며 몹시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금치 못하다가 마침내 성혼하는 재미를 보지 못하였다. 집안 살림을 밤낮으로 열심히 오랫동안 꾸려오다가 중도에 돌아가시니 세상의 나쁨이 극에 달하고 유한이 쌓이고 쌓였다. 오호라 하늘의 법이 무지함이냐 아버지의 운명이 박함이냐? 이 어찌된 일인가?
하늘까지 닿을 듯한 우리의 지극한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도 범상한 고분鼓盆의 슬픔과 짝을 잃은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부터 지극한 정성을 다했으나 간호가 힘들다고 느끼지 못하고 온갖 약초와 갖은 약방으로 시험하며 비록 허망한 무당 점이라도 병환에 차도를 얻는다고 하면 마땅히 금하지 않고 다 따르셨다. 필경 변이 나기 오륙일 전에 점을 보니 점쟁이가 말하기를
“이미 바랄 바가 적으나 요행을 바라거든 옥추경玉樞經이란 것이 목숨을 늘리는 경이니 백여 금을 들여 읽으시려면 읽고 부질없으면 마소서.”
하니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행여 효험을 보면 천행이고 비록 힘을 입지 못해도 한을 없게 하라.”
하며 백금을 들여 경經을 하였으나 이미 대운大運과 하늘의 뜻을 어찌하리오. 비록 힘을 얻지 못할지언정 아버지는 약을 쓰고 돌보는데 극진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미 변을 당한 뒤에는 수의壽衣를 만드는 데 능단비단의 종류과 화주수화주. 품질이 좋은 비단를 쓰고 관의 재료를 또 좋은 재목으로 썼다. 아버지는 평소 두터운 정과 어머니가 기대하던 뜻대로 살아계신 때나 돌아가신 뒤에나 갚음을 다해 믿음이 있음을 극진히 하고 우리 형제로 하여금 의약이나 상례喪禮에 부족하다는 한을 없게 하였다. 아아! 비록 부부는 한 몸이나 또 어찌 은혜에 깊이 감사하지 않으리오. 이에 초종성복初終成服을 마치고 어머니의 몸이 한 궤 속에 감춰져 목소리와 얼굴을 아주 천고에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니, 애통하고 슬프도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황황히 따르고자 하나 길이 없고 망망히 부르짖으나 응함이 없으니 오호라 슬프도다! 비록 위로 할머니가 보살펴주시고 아버지가 강보의 아이처럼 매사에 우리를 사랑하고 걱정함이 지극하나 어머니를 차마 어찌 잊을 것이며 또 어찌 어머니 품속의 사랑 같으리오. 머리를 들어 어머니 앉은 곳을 보니 휑하게 비어 몸을 붙일 곳이 없으며, 서도 좇을 곳이 없고 앉아도 외로워 기댈 데가 없으니 우리 형제 둘이 몸을 의지하고 얼굴을 마주하여 시시로 눈물을 흘렸다. 아침저녁 제사를 위해 빈소 앞에 앉으면 먼저 슬픈 향내와 횐 장막에 애가 미어지고 심혼心魂이 놀랐다. 그리워하여 울부짖으며 어머니를 열 번 불러봐도 검은 관은 묵묵히 말이 없고 이승과 저승이 막막해서 한마디 말도 알아주는 바도 없으니 슬프도다! 이 길은 무슨 길이기에 이토록 박절하고 급급한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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