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889년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베스트셀러best-seller’라는 용어는 곧 대영제국으로,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용어가 새롭기는 해도,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아메리카 대륙과 그밖의 곳에서 늘 존재해왔다. 오래 전부터, 어쨌거나 16세기 초에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로, 몇몇 작품들이 독자들을 매료시켜 푹 빠지게 만들었고, 그것은 대대적인 구매와 여러 차례의 재판再版으로 나타났다. 오래 전부터 몇몇 책은 다른 책들보다 잘 나갔고, 잘 팔렸다. 따라서 베스트셀러의 이면에는 문학적 성공이라는 영원한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처음에 이 문제는 문학적 가치라는 문제에 조금 가려진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양(판매부수)보다는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사람들은 양의 문제를 잊지 않았다. 그들은 그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성공은 질을 보장한다고, 독자들이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감식안과 이성을 갖추고 있어서 오직 나쁜 책만이 외면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17세기 프랑스의 부알로나 코르네유의 동시대인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책의 성공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그 책이 작가가 얼마나 천재적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세기부터 상황이 복잡해졌다. 특히 출판업의 발전과 문맹퇴치에 발맞추어 문화의 민주화가 시작되자, 고전 작가들이 생각했던 ‘성공과 가치의 일치’가 여러 방식으로 의문시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 존재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둘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 비평계의 거두 헨리 루이 멩켄이 그렇게 생각했고,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한 서신에서 “성공은 언제나 아주 나쁜 질을 의미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와 병행하여,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오직 성공에만, 그것의 규모와 획득 방법에만 골몰하기 위해서 불분명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는 질의 문제를 결국에는 덮어버리고 말았다. 20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런 이들의 승리를 거두면서 베스트셀러를 서서히 문화생활의 중심이자 심장으로 만들어갔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계속 분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떤 이들이 ‘미국화’라고 정의하는 이런 현상은 이미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려서, 어떤 작가가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대작가들이 자기 책의 판매부수를 알면 질투가 나서 얼굴이 시퍼렇게 질릴 것이라고 털어놓으면, 이제 많은 현대인들은 반신반의하며 그 대작가들이 안됐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수백만 부가 팔린 책 이야기를 수시로 듣다 보니, 결국 10만 부는 가소롭고, 1만 부는 창피를 겨우 모면한 정도로 생각된다. 요컨대,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움직임은,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가 평가하듯이, “출판 시스템의 베스트셀러화로서, 대중문화의 발달과 문화적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대중의 출현”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런 점진적인 산업화와 병행하여, 베스트셀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불가사의한 부분을 간직하고 있다. 1922년 극작가 알프레드 모르티에는 “사실, 굳이 말씀드리자면, 성공은 아주 묘한 수수께끼입니다”라고 단언했다. 피에르 노라 또한 이렇게 지적했다. “아마도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공만이 베스트셀러 범주 가운데 진정한 단 하나의 범주일 것이다 .모든 예상을 뒤엎는 책들과 함께, 그 현상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그 범주이다.” 그리고 그 책들은 “원래 그 책이 대상으로 삼았던 독자, 혹은 적어도 그렇게 믿었던 독자를 거스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베스트셀러는 기술과 마술, 기적과 거대산업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바로 이 불확실한 위치가, 여느 것들과 같을 수 없는 책이라는 상품이 가진 환원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이, 베스트셀러가 가진 매력의 커다란 부분을 이룬다.
따라서 지난 한 세기 동안 베스트셀러가 문화 시스템 안에서 전례가 없는 자리와 중요성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그 복잡한 내부 풍경을 두루두루, 다시 말해서 일관성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경계들에 휘둘리지 않은 채, 그 긴 역사와 지리학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처음에는 도무지 헤쳐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정글 속을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준비된 상태로 눈앞에 놓여 있는 나침반을 발견하게 된다. 나침반은 세 개의 축을 가리키는데, 그 세 개의 축은 우리를 또다시 기본적인 세 개의 질문으로 이끈다. 책, 베스트셀러란 무엇인가. 저자, 베스트셀러를 어떻게 만드는가. 독자, 왜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는가.
제1부
책,
베스트셀러란 무엇인가
맬컴 라우리의 컬트 소설 『화산 아래서Under the Volcano』의 서문에서 모리스 나도는 “걸작들은 결코 쉽게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 “라우리의 독자는 매년 겨우 수십 명씩 새로 생겨났다. 이것이 걸작의 정상적인 진행이다. 나도의 평가에 따르면, 위대한 책은 본래 잘 안 팔린다. 거꾸로 말하면, 베스트셀러란 필연적으로 질이 낮은 책을 의미한다. 요컨대, 나도와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질적인 범용함이 베스트셀러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 따라서 그 기준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최근 500만 부가 팔린 『천사의 게임El juego del angel』을 쓴 소설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옹호한 정반대의 생각만큼이나 이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성공이 최고의 품질 보증”이라는 이 생각은 베스트셀러란 어떤 식으로든, 필연적으로 ‘좋은 책’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사실, 성공과 문학적 가치(양과 질)는 서로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지는 않는다. 아주 위대한 책들이 크게 실패한 반면, 반박의 여지가 없는 인간 정신의 걸작들 가운데 몇몇 작품은 출간 즉시 큰 영광을 누렸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저런 것이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수 있었을까 하고 묻게 되는 한심한 작품이나 싸구려 소설도 그랬다. 베스트셀러는 훌륭한 책일 수도 있고, 형편없거나 그저 그런 책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작품의 질에 관한 한, 성공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따라서 베스트셀러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싶다면 다른 기준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 기준은 수치(판매부수), 시간(성공하는 데 걸린), 그리고 지역(베스트셀러의 역사는 성공이 언제나 국경을 초월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으므로)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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