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왜 작은 물고기만 먹을까?
사랑하는 내 아이야, 아주 먼 옛날 바닷속에 고래 한 마리가 있었단다. 고래는 물고기들을 잡아먹었어. 불가사리와 갈치, 게와 가자미, 넙치와 황어, 홍어와 홍어 친구, 고등어와 꼬치고기, 그리고 정말 몸을 휘휘 휘어 감는 장어도 잡아먹었지. 바다에 사는 물고기란 물고기는 전부 꿀꺽 집어삼켰어. 결국 바다에는 아주 작은 물고기 한 마리만 남게 되었지. 이 물고기는 작고 꾀가 많아서 고래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고래의 오른쪽 귀 뒤에 바짝 붙어서 헤엄쳐 다녔단다.
어느 날 고래가 멈춰 서서 말했어.
“아우, 배고파.”
그러자 꾀 많은 물고기가 작고 약삭빠른 목소리로 속삭였어.
“위대하고 관대한 고래님, 혹시 사람을 맛보신 적 있나요?”
“아니. 맛있어?”
“좀 울퉁불퉁해서 먹기 힘들긴 하지만 참 맛이 있어요.”
꾀 많은 물고기가 말했어.
“그럼 나한테 좀 가져와 봐!”
고래는 이렇게 말하며 꼬리로 바닷물을 쳐서 물보라를 일으켰어.
“사람은 한 번에 하나만 먹어도 충분해요. 북위 50도, 서경 40도로(이건 마법의 숫자란다)로 헤엄쳐 가다 보면 바다 한가운데에 뗏목을 타고 앉아 있는 뱃사람이 하나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은 부서진 배에서 탈출하느라 청바지에 멜빵(사랑하는 아이야, 이 멜빵을 꼭 기억하렴)을 메고 있고, 겨우 주머니칼 하나만 가지고 있답니다. 아, 참! 고래님께 하나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그 사람은 정말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답니다.”
이 말을 들은 고래는 북위 50도, 서경 40도를 향해 전속력으로 헤엄쳐 갔어. 바다 한가운데에 다다르니 정말 뗏목 위에 청바지와 멜빵(사랑하는 아이야, 이 멜빵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단다) 차림에 주머니칼을 가진 뱃사람이 있는 거야. 배가 가라앉아 혼자 남은 뱃사람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어. 아마도 그는 엄마가 물장구를 쳐도 된다고 허락했거나, 아니면 정말 영리하고 재주가 많아서 허락 같은 건 받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야.
고래는 입이 꼬리까지 닿을 정도로 입을 더, 더, 더 크게 쩍 벌려서 뱃사람이랑 그가 타고 있던 뗏목 그리고 청바지와 멜빵(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돼), 주머니칼을 꿀꺽 삼켜 버렸단다. 이 모든 걸 뜨끈하고 깜깜한 목구멍 속으로 꿀떡 넘겨 버린 거지. 고래는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제자리에서 세 바퀴를 빙빙 돌았어.
총명하고 재주가 많은 뱃사람은 자기가 뜨겁고 깜깜한 고래 뱃속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걸 알게 되자 뱃사람은 쿵쿵 발을 구르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기도 했으며, 여기저기를 들이받고, 데굴데굴 구르고, 뱅글뱅글 돌고, 바닥을 기면서 떠들어 대고, 울부짖다가 한숨을 내뱉고, 요란하게 춤을 추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어. 그 덕분에 고래는 속이 너무너무 안 좋아졌단다(멜빵을 잊지 않았겠지?).
그래서 고래는 작은 물고기에게 물었어.
“아, 사람은 진짜 울퉁불퉁 거북하고, 계속 딸꾹질이 나게 하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밖으로 나오라고 하세요.”
작은 물고기의 말에 고래는 목구멍을 통해 뱃사람을 불렀어.
“나와! 너 때문에 계속 딸꾹질을 하잖아!”
“싫어, 싫어! 절대 안 나갈 거야. 네가 나를 나의 고향인 알비온(영국의 옛 이름)의 앞바다와 하얀 절벽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면 모를까!”
뱃사람은 더 심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어. 그러자 꾀 많은 물고기가 고래에게 말했어.
“고래님, 저 사람을 고향에 데려다 주는 게 좋겠어요. 제가 저 사람은 정말 영리하고 재주가 많다고 말했었잖아요.”
그래서 고래는 딸꾹질 때문에 괴로운데도 불구하고 있는 힘껏 지느러미와 꼬리를 휘저으며 헤엄을 치고 또 쳤어. 마침내 뱃사람의 고향인 알비온의 앞바다와 하얀 절벽이 고래 눈에 들어왔어. 고래는 해변으로 돌진해 입을 쩌억 크게 벌렸단다.
“윈체스터, 애슈앨럿, 내슈아, 킨, 그리고 피츠–”
고래가 피츠버그를 말하려는 순간 뱃사람이 고래 입속에서 걸어 나왔어. 뱃사람은 고래가 헤엄을 치는 동안 주머니칼로 뗏목을 자르고, 멜빵으로 나무 조각들을 꼭 묶어서 작은 십자 모양으로 만들었던 거야. 자, 이제 멜빵을 잊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겠지? 뱃사람은 그 십자 모양의 나무를 고래의 목구멍에 단단히 고정시켰단다. 그러고는 네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어. 바로 이런 주문이야.
창살을 세워 놓아서
나는 네가 먹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지.
뱃사람은 아일랜드 사람이었어. 그는 해변의 조약돌을 밟으며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단다. 바닷물에서 물장구를 쳐도 된다고 허락한 엄마 말이야. 그리고 예쁜 여자와 결혼도 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물론, 고래도 행복하게 살았어. 하지만 목구멍에 창살이 생긴 이후로 아주아주 작은 물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게 되었지. 그래서 이제 고래는 어른이나 남자아이, 여자아이는 절대 먹을 수가 없단다.
사람을 먹으라고 고래를 꾀었던 꾀 많은 작은 물고기는 고래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워서 적도 근처의 진흙더미 속으로 숨어 버렸어. 뱃사람은 집에 주머니칼을 가져갔단다. 청바지도 입고 있었지. 다만 십자 모양의 나무틀을 묶었던 멜빵은 가져오지 못했어.
이게 이 이야기의 끝이란다.
이 그림은 고래가 똑똑하고 재주가 많은 뱃사람과 뗏목을 집어삼키는 그림이란다.
버튼처럼 생긴 게 네가 잊어버리면 안 되는 멜빵이고, 그 옆으로 주머니칼이 보이지? 뱃사람은 뗏목에 앉아 있지만 뗏목이 물속으로 기울어져서 잘 안 보일 거야. 뱃사람이 왼손에 쥐고 있는 건 고래가 다가올 때 뗏목을 몰아 도망가려고 저었던 나무 노란다. 이 나무 노는 ‘갈고리턱’이라고도 하지.
고래의 이름은 ‘스마일러’고, 뱃사람의 이름은 ‘헨리 알버트 비벤스’야. 저 때 작은 물고기는 고래 배 밑에 숨어 있었어.
고래가 헨리 알버트 비벤스 씨랑 뗏목, 주머니칼과 멜빵을 집어삼키느라고 바닷물을 큰 입으로 빨아들이는 바람에 바다는 요동치는 것처럼 보였어.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멜빵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단다.
고래가 적도 근처에 숨어 있는 꾀 많은 작은 물고기를 찾고 있어. 작은 물고기의 이름은 ‘핑글’이란다. 핑글은 고래를 피해 적도 관문에서 자라는 커다란 해초의 뿌리 사이에 숨어 있었어. 자, 내가 적도의 관문을 그려 봤어. 그 문들은 꼭 닫혀 있지. 늘 닫혀 있어야만 해. 그림을 가로 지른 줄이 바로 적도고, 바위처럼 보이는 것들은 모아르와 코아르라고 불리는 두 거인이란다. 거인들은 적도의 관문에 그림자로 그림을 그리고, 문 아래쪽에 있는 물고기들을 모두 새겨 넣었어. 뾰족한 부리를 가지고 있는 물고기는 부리 달린 돌고래라고 부르고, 망치 모양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물고기는 귀상어라고 하지. 고래는 화를 삭이기 전까지 그 작은 물고기를 찾을 수 없었어. 그러나 고래가 화를 삭인 후 다시 만난 그 둘은 좋은 친구가 되어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단다.
바다 때문에 선실 창문이 어둡고 푸르스름해질 때,
배가 기울어지자
선원들은 수프 그릇이 쌓여 있는 곳으로 넘어지고,
짐 가방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네.
아주머니들이 더미 위에 쓰러지는데,
엄마는 조금 더 자겠다고 하네.
너는 일어나지도, 씻지도, 옷을 입지도 않았지.
이제 너는 알게 될 거야.
너는 북위 50도, 서경 40도에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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