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도 상식도 무색하게 만드는 ‘기아’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한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빈곤에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절실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거의 무지하다고 봅니다. 먼저 빈곤의 정의를 내려볼게요. ‘빈곤이란 그날 당장 먹을 끼니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공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이 좀처럼 나오지 않을 때 느끼는 배고픈 초조감 말이죠. 그러나 이 경우는 조금만 기다리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반드시 우리의 의식에 깔려 있지요.
그러나 빈곤에서 오는 기아는 최소한의 기대조차 가질 수 없는 걸 의미합니다. 애초에 모아놓은 재산이 있을 리 없고 국가의 지원금이나 물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일까지 기다리면 어딘가로부터 식료품이 들어온다거나 생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을 전체나 친척 할 것 없이 근근히 살아가는 사회도 있어요.
공복과 기아는 전혀 달라요. 공복은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기아는 사회․경제적 그리고 지속적인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지역 전체에 먹을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제도 없었고 내일도 아마 없을 겁니다. 기아는 지역 전체가 빈사 상태의 질환을 겪는 상황이에요. 중앙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그런 것이 명칭 이상으로 실체를 갖는지는 의문이지만) 분명 이러한 기아를 구제할 방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돈도 물품도 조직력도 아무것도 갖지 않은 지자체와 관리들이지요.
당사자 스스로 기아를 구제하려면 세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주린 배를 안고 물이라도 마시고 자든가, 아니면 구걸을 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도둑질을 하든가. 거지에게는 만국 공통(?)의 사인이 있어요. 자기 입에 손을 대고 그것을 상대를 향해 내미는 거죠. 그 행동을 우리가 흉내 내면 전혀 비참한 느낌이 들지 않겠지만 그들에겐 절실합니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구걸은 생업입니다.
여기에 ‘어린이의 인권’이라는 발상은 우스워집니다. 어린이의 인권이란 상식인 것 같지만 실체가 없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를 아끼고 그 아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다, 남의 아이라도 그 존재에 대해 배려한다, 이런 거지요. 그러나 내가 다녀온 세계 여러 나라에선 어린이의 인권 따위는 ‘허공에 뜬 단어’에 불과합니다.
어린이의 인권을 말하는 사람에게 몇 가지 소박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어린이의 인권을 지킵니까?”
“물론 부모입니다.”
“그 부모가 먹을 것도 줄 수 없고 학교에도 보낼 수 없다면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학교까지 1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도 노선 버스가 없어서 걸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자전거 따위와도 전혀 인연이 없는 경제 상황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부모가 할 수 없으면 사회에서 해야 합니다.”
“사회가 전혀 여유가 없으면?”
“정부가 해야 합니다.”
“정부가 의무 교육도 할 수 없고 빈곤 구제를 위한 어떤 예산도 갖고 있지 않다면?”
상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태를 상정하는 나를 상식이 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르죠. 1990년 9월 2일에 발효된 ‘아동의 권리에 관한 조약’ 전문을 보면 분명히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아동은 완전하고도 조화를 갖춘 인격 발달을 위해 행복하고 애정과 이해가 있는 가정에서 성장해야 한다. 따라서 아동이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또한 유엔에서 발표한 이상적인 정신, 특히 평화․존엄․관용․자유․평등 및 연대 의식에 따라 자랄 수 있도록 고려한다.”
모름지기 이상은 높이 가져야 한다지만 이 내용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읽은 후에는 침묵하거나 깊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빈곤 지대에서는 특히 평화, 존엄, 자유, 평등이라는 개념의 편린조차 없으니까요.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평화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란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지도 못한 것을 소망할 수는 없습니다.”
거의 동물처럼 오두막에서 잠자는 사람들이 과연 존엄성을 알고 있을까요? 그들은 자유도 없습니다. 이동 수단이 없기 때문에 이웃 마을에도 거의 가지 못합니다. 볼일이 있으면 10킬로미터든 20킬로미터든 걸어갈 다리는 있지만 10킬로미터, 20킬로미터를 가도 그곳에 다른 마을이나 친척의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끝없는 황야라면 아무도 그런 거리를 걸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동조차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 교육이나 여행, 주거의 자유 따위를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얼마 전 남인도에서 본 불가촉천민(달리트) 가족은 세 평 정도의 방에서 여덟 식구가 이리저리 몸을 겹쳐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카스트 제도의 최하위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은 그들이 불가촉천민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좋고 나쁘고가 아니에요. 그것이 생의 현실이지요. 상류 계급은 불가촉천민의 사회적인 인권 향상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인도인들은 말합니다. 불가촉천민이 지금처럼 저임금 노동력으로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번영과 안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물론 극히 소수의 인도적인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현실 사회 안에서 개혁의 힘까지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평등이라는 것은 단어로는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개념이랍니다.
제3의 해결법 ‘도둑질’은 물질(빵이나 돈)의 가장 빠른 이동 방법입니다. 허가도 인가도 필요 없죠. 누구의 물건이든 상관없어요. 정말로 오늘 당장 먹을 끼니조차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로서는 도둑질이 매우 나쁜 짓이라고 정면으로 주장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공복은 일시적인 상태이므로 먹으면 바로 해결되지만 기아는 뿌리가 깊습니다. 기아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칼로리 부족 증상인 ‘머래즈머스marasmus’예요. 빼빼 말라 관절이 툭 튀어나오고 뼈 위에 피부를 씌운 상태가 되지요. 다시 말해 해골이 살아서 걸어다니는 느낌입니다. 어린아이도 볼이 쑥 들어가고 눈만 큰 노인 같은 생김새가 되요. 우리가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서 본 그 모습이지요.
그에 비해 단백질 부족에 의한 기아가 있습니다. 이 유형의 영양실조는 한동안 살이 통통한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있어요. 배는 튀어나오고 팔도 퉁퉁 부어요. 그런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통통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미 온몸에 부종이 퍼져서 심장 기능에도 문제가 있고,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태였던 거죠. 이것은 크와시오코르kwashiorkor(아프리카의 소아영양실조증, 아프리카어로 ‘붉은 몸’이라는 뜻)라는 증상인데, 또 하나의 특징은 인종에 상관없이 머리카락이 금발로 변한다는 점입니다.
머래즈머스 상태의 아이는 영양분을 보충해주면 회복되지만, 크와시오코르 상태인 아이에게 단백질을 보충한다는 것은 가난한 사회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한때 세계은행 등이 대대적으로 시골 마을에 중장비를 보내 논을 만들어준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당시의 중장비가 모조리 망가진 채 코끼리 무덤이 아닌 ‘고질라의 무덤’처럼 방치되어 있고, 논도 더 이상 경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었죠. 그러나 거기서 아이들이 작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습니다. 작은 물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수프에 넣는다고 하니 단백질 보충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나는 지금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들판이나 사막, 공터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당혹스러웠던 것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이는 일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라서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음식을 펼쳐놓으면 얼마 후 반드시 누군가가 발견하고 다가와요. 그리고 물끄러미 우리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겁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이라는 건 잘 알지만 처음에 나는 먹다 남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대단한 실례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았어요. 거의 뼈만 남은 닭다리라도, 주스가 아주 조금 남아 있는 깡통이라도 그들은 빼앗듯이 가져가죠. 나이 든 여자와 소년이 있을 경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양보하는 일은 없습니다. 힘의 세계죠.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서는 산양 한 마리를 통째로 요리한 식사를 대접받았는데(이건 엄청난 대접임), 음식을 남기면 실례라는 생각이 착각임을 잠시 후에 깨닫게 되었답니다. 음식을 조금만 먹고 가능하면 남겨서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랍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지역이 아니라도 아프리카의 파티에서는 사람들이 묵묵히 먹기만 합니다.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진지하게 먹기만 해요. 그래서 파티 음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집니다. 남자들은 고깃점을 포장도 하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가는데,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옷이 지저분해지거나 음식에 먼지가 묻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요.
다행이라고 할지 안쓰럽다고 할지 기아 상태의 아이들은 그다지 공복을 호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어요. 일본의 NGO가 그들에게 죽 상태의 음식을 주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들은 접시나 컵을 든 자신의 손을 말없이 바라보거나 우리를 쳐다봐요. 어찌 보면, 나는 별로 먹고 싶지 않지만 음식을 준다니 받겠다는 표정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들은 가장 마음 아픈 이야기는 사지가 젓가락처럼 야윈 아이에게 간호사가 “조금만 기다려. 금방 먹을 걸 줄게.”라고 말하자 그 아이는 “먹을 건 필요 없으니 담요를 주세요.”라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임종이 가까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화 능력은 진작에 퇴화되었고 겨우 남아 있는 꺼져가는 불씨 같은 생명이 괴로웠을 거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기아 난민을 선진국들이 마냥 방치해두는 건 아닙니다. 선진국에서는 수마트라에서 일어난 바다 위의 지진이나 그보다 앞서 인도양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물자를 보내려고 했어요. 그러나 거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길이 파괴되고 다리가 끊기고 전화 연결도 되지 않았지요. 그런 어려움 외에도 물자를 운송하는 도중에 도난을 당하거나 강탈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강탈하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같은 나라 사람들이랍니다. 또 다른 문제는 보낸(기증한) 물자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겁니다. 비합법적 도둑과 합법적 도둑의 차이이기는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자기 나라 사람들을 위한 물자를 훔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소리치고 싶어집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한때 자국에서 유아용 분유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수입에 의존했었어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비싼 분유를 도저히 살 수가 없었죠. 게다가 아기 엄마는 태어난 아이가 10개월 정도 되면 다시 임신을 하기 때문에 젖이 나오지 않아요.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아기에게 연유를 사서 먹이는데, 이것은 영양이 편중되어 있어서 아기가 먹으면 금방 건강이 나빠집니다. 혹은 할머니가 옥수수 가루 따위를 반죽한 것을 먹이는데 이것도 설사를 일으키죠.
보다 못한 미국 외 몇 나라의 민간 조직이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들에게 분유를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관리도 만만치 않았어요. 우선 분유를 받으러 오는 아기의 부모는 분유를 넣을 자루나 그릇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기의 아버지는 구멍이 뚫린 밀짚모자에다 분유를 받는데, 그러면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 그 귀중한 분유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곤 합니다. ‘가난한 집 자루일수록 구멍이 크다’라는 속담은 당시 내가 만들었지요.
수녀들은 2주에 한 번 부모들에게 아기를 데려오게 하여 몸무게를 잽니다. 몸무게가 순조롭게 늘어나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이렇다 할 이유(감기에 걸렸다거나 설사를 했다거나)도 없이 몸무게가 늘지 않으면 원조 기관은 놀랍게도 분유 지급을 중지한답니다. 이런 경우 원조 기관은 부모들이 받아간 분유를 한 숟가락에 얼마를 받고 시장에 내다 팔아서 그 돈으로 다른 형제들을 먹인다고 단정하거든요. 그래서 지급을 끊는 강경 수단으로 부모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볼리비아의 시골에서 우리 NGO는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직접 급식을 만들어준 적이 있어요. 이것은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하기 위한 미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집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공복인 상태로 학교에 오면 수업 시간에 도통 공부가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학교에서 급식을 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매력입니다. 매력이라기보다 더없이 좋은 미끼지요. 부모들도 급식을 먹으면 아이의 식사가 대충 해결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급식만으로도 아이들의 단백질 섭취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지능도 높아져요. 더구나 급식을 주는 학교에 부임하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좋은 교사가 모여든답니다.
나도 스폰서로서 그 급식을 먹어보았어요. 고기와 야채와 밥을 합치면 대략 한 사람 분량을 50엔 정도면 만들 수 있어요. 식기는 모두 각자 가지고 옵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음식을 담은 접시를 소중하게 들고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교정을 가로질러 반대쪽 숲 속으로 가는 게 보였어요. 그곳에는 비슷한 또래의 세 소년이 불안한 모습으로 서 있었죠. 교사에게 물어보았더니 그중 두 아이는 형과 동생, 또 한 아이는 친구라고 했어요. 소년은 자신이 받은 급식을 매일 식구나 친구에게 나눠주어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던 겁니다. 가난한 나라에는 도처에 어린 가장이 있어서 내 마음에 깊은 감동과 안타까움을 주었답니다.
그들만의 생존 공식
아프리카에는 기아로 인해 고아가 많다고 하는데, 약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나요?
‘아프리카에는 고아가 없다’는 말을 나는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자주 들었습니다. 확실히 아프리카에서는 가족이나 친척 간의 유대가 깊어요. 아니, 아프리카뿐만이 아닙니다. 개인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선진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모두들 친척이나 같은 부족 간의 유대를 믿고 살아가기 때문에 고아가 외롭거나 공공시설로 보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처음에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답니다.
아프리카에서 고아가 발생할 비율은 일본보다 분명 높습니다. 나도 아직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프리카에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많아요. 물론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의 어머니에게 남편에 대해 물어도 확실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의 상식대로 ‘남편이 죽었습니다’ ‘이혼했습니다’ ‘농민입니다’ ‘원래는 목수였는데 지금은 실업자입니다’ 등의 대답을 기대했는데, 그런 유형의 대답은 거의 들은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아이의 법적인 아버지가 없었다는 식이죠. 아이들의 아버지가 각각 다른 경우도 있다고, 일본인 수녀에게서 들은 적도 있어요. 남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이유로는 ‘돈 벌러 간 곳에서 여자가 생겨 소식 두절’인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 남편도 처음 얼마 동안은 아내나 아이에게 마음을 썼을 테죠. 하지만 돈벌이를 하러 간 외지에서 제대로 된 일을 찾지 못하면 고향의 처자에게 연락을 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나마 편지를 주고받기라도 한다면 부부의 심리적 유대가 지속되겠지만, 두 사람 모두 글을 모른다면 그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부부 간 연락은 자연히 끊기고 남편은 ‘사라진’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남겨진 모자가정에서 어머니가 죽으면 아이들은 당장 고아가 되는 겁니다.
그 외에도 고아가 될 요소는 많습니다. 고아가 된 아이는 반드시 누군가의 가정으로 보내집니다. 그러나 그 집도 가난할 텐데 어떻게 아이를 맡을 수 있을까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인정이 많은 걸까요? 일본인 같으면 자신이 떠맡은 아이에게 따로 큰돈을 들이진 않더라도 식비가 2만 엔 정도 늘고, 아이에게 내줄 방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샐러리맨 가정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그 열쇠를 발견했습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방에서는 식사를 할 때 둥그렇고 커다란 쟁반에 하나 가득 한 가족이 먹을 만큼의 음식을 만듭니다. 대부분은 주식인 곡류에 반찬이 되는 소스를 끼얹은 음식이에요. 예를 들면 마뇩Manioc(남미의 관목 뿌리에서 전분을 채취해서 타피오카를 만드는 식물) 빵에다가 옥수수 가루를 뜨거운 물에 개어서 마뇩 잎을 끓여 넣은 소스를 끼얹어 먹습니다.
그 음식을 각자 자기 그릇에 담아 먹지 않고 다 같이 손으로 집어 먹습니다. 남자들이 먼저 먹고 나머지를 여자아이들이 먹는 지역도 있지만 남자와 여자가 함께 먹는 광경을 본 적도 있어요. 어쨌거나 밥 먹을 식구가 몇 명이든 식구 한두 명이 늘어나든, 한 끼에 먹을 음식은 대개 그 쟁반 하나 가득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쟁반의 음식이 바닥나면 식사는 끝이 납니다. 친척 아이 하나를 맡아도 준비하는 식사의 양은 똑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 저녁 식사부터 군식구를 위해 생선 한 토막을 더 요리하는 일은 없지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을 수 있답니다.
우리의 식사는 자기가 먹을 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부식도 한참 많이 먹을 나이의 아이에게는 더 담아주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프리카식 식사는 강한 사람이 많이 먹습니다. 먹는 속도가 느린 아이는 제대로 먹기도 전에 쟁반이 바닥나죠. 그리고 한집안의 주부인 어머니 역시 그런 복잡한 양의 배분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족 중에 거의 ‘먹이’를 스스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약한 아이가 생긴다는 점에서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는 들짐승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영양실조 아이를 보살피는 수녀들은 어머니들에게 그 점에 대해 주의를 줍니다. 우선 어린아이들을 위해 따로 작은 접시에 일정량을 덜어서 천천히 먹게 하도록 지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들은 그런 주의 사항을 실행하려고 하지 않아요.
“수녀님, 우리는 접시가 없어요. 접시를 살 돈을 주시든가 수녀원의 접시를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지역 시장에서 파는 플라스틱 접시는 10엔, 20엔이면 살 수 있다지만 그런 접시를 사거나 어린아이에게 흘리지 않고 음식을 먹일 수 있는 작은 숟가락을 살 돈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옛날에는 어느 나라든 영양실조 아동을 위한 원조는 음식의 재료(우유나 밀가루, 기름 등)를 부모들에게 배급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원조는 그 자리에서 먹이는 급식으로 바뀌고 있지요. 음식 재료를 주면 부모들은 그것을 영양실조 아동에게 먹이지 않고 다른 형제들에게 먹이거나 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리한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이는 급식 형태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급식 풍경은 수없이 많이 봤지만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조리대 따위는 설치되어 있지도 않고, 지붕만 있는 구조물 아래서 어머니들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야채를 다듬거나 아궁이에 땔감을 넣어 불을 지펴 큰 솥에다 죽을 끓입니다. 땔감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걸쭉한 죽은 보기에는 별로 먹음직스럽지 않지만 각 지역마다 싸게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 있어요. 그중에는 애벌레처럼 보이는 말린 벌레를 가루 낸 것도 들어가는데 상당히 좋은 단백질 식품이랍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안겨 싸구려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죽을 받아 먹습니다.
가끔 혼자 급식을 먹으러 오는 7~8세의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가정 환경은 잘 모르지만 그 아이 역시 낮에 학교에 가지 않는 것 같았죠. 그 아이는 매일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진료소 마당 한 귀퉁이 지붕 아래에 의자 대신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벤치에 앉아 가지고 온 접시에 죽을 받아 먹곤 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수녀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미심쩍은 행동을 하는 거예요. 손에 들고 온 중국산 비닐 봉투 안에 죽이 담긴 접시를 넣으려다가 담당 수녀에게 주의를 받았어요. 죽이 쏟아지지 않도록 접시를 수평으로 넣으려고 애썼지만 보통 구조의 봉투로는 쉽지 않지요. 그 아이는 죽을 먹는 척하면서 접시를 봉투에 넣어 가려고 했어요. 그 아이에게도 집으로 죽을 가져가서 먹이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던 겁니다.
“그 아이가 봉투에 접시를 넣으려고 했다면 죽이 다 쏟아졌겠네요.” 하고 내가 묻자 거기 있던 사람이 대답했어요. “괜찮아요. 설사 쏟아지더라도 모두 손으로 훑어 먹을 테니까요.”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개는 그릇이 없으면 죽을 가지고 집으로 가는 건 포기할 테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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