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다른 두 개의 도서관
십여 년 전 네덜란드 유학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틈나는 대로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과 마주하고 있는 비넨로테 광장은 일주일에 두 번씩 시장이 섰는데, 이때마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장을 보며 한참 다니다 보면 슬슬 몸도 피곤해지고 손 붙잡고 따라오던 아이들도 칭얼대기 마련이다.
이런 순간이면 이곳 사람들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듯 중앙도서관을 찾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로비에서 쉬거나, 도서관 안에 마련된 식당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곤 한다. 곧이어 너나할 것 없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 곳곳을 돌아다니는 또 다른 장보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1층 미디어자료실에서 음악 CD나 영화 DVD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2층 전체를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꾸민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하는 즐거운 오후를 보낸다.
때때로 도서관 로비에는 작은 공연이나 무료 전시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기도 하고, 로비 한쪽에는 그 시각 도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공연, 콘서트, 전시 등)의 팸플릿을 모아 놓은 이벤트 카탈로그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서 주말에 어떤 곳에 들를지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하곤 한다.
수년 후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바쁜 일상에 젖어 있던 어느 날, 아이가 도서관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집 주변에 있는 도서관을 검색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분당 정자동에 위치한 공공 도서관에 갔다. 우리 주변에 있는 대개의 공공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이 도서관 역시 도서관인지 일반 사무건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형태의 무미건조한 건물이었다. 또 큰길에서 한참 들어간 외진 곳에 있어서 인근 대형마트에 주말마다 장을 보러 그 근처를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도서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도서관까지 가는 길도 제법 되고 걸어가려니 횡단보도를 많이 건너야 하는 터에 주말마다 차를 몰아 도서관에 가야 했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길을 건너 도서관에 들어서면, 언제나 도서관은 일반열람실을 이용하는 수험생들로 북적거렸다. 이때마다 우리의 도서관은 커다란 독서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칸이 막혀 있는 독서실처럼 여러 개의 열람실로 구획되어 있는 도서관 내부는 자습서와 수험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이곳을 과연 ‘사회적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콩나물시루 같은 공간에 시큰둥한 침묵만 흐른다.
그나마 1층 어린이 도서관은 아이들과 부모들로 활기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하나의 구획된 방 안에 공간을 마련하여 비좁기도 하고, 아이들 말소리가 울리는 터라 부모와 자식 간의 여유 있는 독서를 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자리 경쟁으로 신경이 곤두서고 북새통 속에서 밀치고 떠밀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사이에 자기 자식 지키기가 먼저인, 또 하나의 작은 독서실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차지한 자리에 앉아 동화책을 넘겨가며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옆자리 아주머니가 매서운 눈길로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준다. 옆에서 그 아주머니 아이는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별안간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서관 2층 전체를 차지한 넓은 어린이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뛰놀며 책을 읽던 모습,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모습, 편안하고 멋진 소파와 가구에 맘대로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바닥에 딸린 양탄자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읽으며 깔깔대던 아이들의 모습. 그곳에서 아이와 부모는 책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고 있었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아이와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문제집을 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생경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갑갑한 마음에 아이와 함께 매점에 들러 음료수를 먹으러 나오니, 역시나 매점은 지하 한쪽 구석에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매점에서 만나는 풍경이란 판매대와 식탁, 그리고 무표정한 콘크리트 벽뿐이다.
광장과 도시로 열린 식당 앞 발코니에 앉아서, 지나가는 행인과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 로비에서 공연을 관람하거나 체스를 두는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팸플릿을 뒤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오후 한때를 만끽하던 그곳에서의 경험을 여기 이 도서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문득 도서관에서 보낸 반나절이 스트레스가 되어 몸을 무겁게 짓누르더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건축공간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은 하나의 공공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시장을 품은 광장의 일부이며, 더 나아가서 광장을 품은 도시의 일부다. 도서관은 책을 쌓아둔 공간만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도시의 다양한 삶을 만나는 도시의 거실이자 발코니,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터였으며, 또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도시의 오아시스이자 새로운 경험을 접하는 도시의 관문과 같은 공간이었다.
문제는 분당의 도서관이 우리에게 특별한 경우가 아닌 것처럼 로테르담 중앙도서관 역시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라는 점이다.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은 1977년 네덜란드의 저명한 근대건축가인 반 덴 브룩Van den Broek과 바케마Bakema에 의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도서관과 로테르담 중앙도서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비단 저명한 건축가와 그렇지 않은 건축가 사이의 차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 지방 소도시를 걷다가 만났던 수많은 작은 도서관들 역시 로테르담 중앙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이고 여유 있는 공간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건축물의 디자인에 앞서, 우리 삶에 있어서 도서관이라는 문화공간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 도시의 어디에 위치해야 하며, 또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질문과 고민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건축가가 디자인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찾게 되고, 회자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훌륭한 도서관을 갖고자 한다면, 도서관이라는 도시 공간, 문화 공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기본 방향의 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합리적인 방식과 절차에 따라서 역량 있는 건축가를 찾아 사회적 비전을 물리적 디자인으로 구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물에 내재된 공간구조와 공공 공간 및 경관이 함께 만들어내는 포괄적 의미의 공간 환경이 건축물 자체보다 실제의 삶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 건축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건축기본법에 따르면 ‘건축’이란 건축물과 공간 환경을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 관리하는 것이다. 즉, 건축이라는 행위는 물리적인 건축물뿐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생활공간적, 사회적, 문화적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작업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 삶을 빚는 그릇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따라서 중요한 공공의 자산인 도서관 건축 역시 개별적인 도서관의 웅장함이나 수려한 미관에 앞서 도시의 공간구조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용을 가능하게 하면서 어떻게 공공성을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질문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나 홀로 아파트와 같이 우리 일상에서 동떨어진 도서관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없고, 닫힌 공간에서 주입식 공부를 하는 현재의 폐쇄적이고 낙후된 공간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
다시 건축기본법을 인용하면, ‘건축디자인’이란 품격과 품질이 우수한 건축물과 공간환경의 조성으로 건축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기획·설계하고 개선하는 행위다. ‘공간 복지’, ‘공간의 질’이 부각되고 있는 오늘날, 좋은 건축과 창조적인 환경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좋은 건축과 환경이란 단지 건축물을 아름답게 설계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과업은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대상으로 일상적, 사회적, 문화적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총체적인 기획 작업에서부터 개별 프로젝트의 설계, 그리고 시공 및 설계 사후관리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는 일련의 과정을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구현해 나가는 작업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공간이 단순히 사회경제적 부산물이 아니라, ‘문화적 유산’이라는 것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 한나 아렌트가 서구의 도구적 합리성에 대항하는 ‘사랑’의 가치를 말하면서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감정의 사치”라고 정의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건축공간은 비움을 통해 열린 구조를 갖는 일종의 사치 혹은 여지이며, 그 사치를 통해서 우리 삶이 풍부해지는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에 공감할 때 우리는 삶 가까운 곳에서 좋은 건축과 좋은 환경을 만들고 또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 주변에서 좋은 도서관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단지 좋은 건물을 디자인하는 건축가가 없기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좋은 도서관이 있기에 앞서, 도서 보유량이나 도서관의 크기로 좋은 도서관의 순위를 매기는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가치 구조가 변해야 하고, 생활공간적, 사회적, 문화적 공공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도서관에 관한 사회적 비전과 가치가 공감되는 가운데 ‘장소로서의 도서관’의 구체적 모습과 계획의 방향이 정책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이와 같은 정책을 현실에 적용하고 구현하기 위해 일관성있고 지속적인 디자인 경영Design management이 선행되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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