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팔자
허형만의 『꼴』에서 본 반전스토리 하나. 장안에 꽤 이름난 관상쟁이가 있었다. 관상이란 상相을 보고 그 운명을 점치는 술법이다. 상은 몸 전체가 다 포함되지만 그중 핵심은 단연 얼굴이다. 얼굴에는 양기가 집중되어 있다. 당연히 몸 전체에 대한 정보는 다 얼굴로 모여든다. 그래서 오랫동안 관상학이 발달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 관상쟁이가 한창 이름을 날릴 즈음, 돌연 눈이 멀게 되었다. 천기누설의 대가였던 걸까? 상을 봐야 할 사람이 시력을 잃었으니, 이런 기막힌 일이 있나. 한데 반전이 일어났다. 소리로 운명을 점치게 된 것이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운명이 통째로 보였다는 것. 눈을 잃은 대신 귀가 활짝 열린 것이다. 하여, 오히려 눈이 먼 이후에 더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목소리는 신장에 그 뿌리가 있다. 『동의보감』의 「성음聲音」 장에 따르면, “심心은 성음의 주인이고, 폐는 성음의 문이며, 신腎은 성음의 뿌리”이다. 신장과 폐, 심장 등 주요 장기가 화음을 이루어야 소리가 나온다는 사실. 따라서 목소리는 의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진단 기준이 된다. 예컨대, “간병에는 목소리가 슬프고, 폐병에는 목소리가 급하다. 심병에는 목소리가 굳세고, 비병에는 목소리가 느리며, 신병에는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대장병에는 목소리가 길고, 소장병에는 목소리가 짧다. 위병에는 목소리가 빠르고, 담병에는 목소리가 맑으며, 방광병에는 목소리가 약하다.{허준, 『동의보감』, 윤석희·김형준 옮김, 동의보감 출판사, 2006, 164쪽}’ 등등.
그러므로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몸 상태를 알게 되고, 그걸 바탕으로 운세를 예측할 수 있다. 덧붙여, 그 눈먼 관상쟁이는 의뢰인의 뼈를 만진다고 한다. 소리와 뼈? 그렇다. 신장은 정精: 진액이 고도로 농축된 에센스의 원천인데, 이 정이 응축·변형되어 뼈가 되고 골수가 된다. 그래서 목소리는 곧 뼈의 상태이기도 하다. 뼈가 흐물흐물한데, 소리가 영롱하기는 불가능하다. 소리와 뼈의 긴밀한 상관관계는 현대의학에서도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귀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는 과학자 토마티Alfred A. Tomatis에 따르면, “발성된 소리는 입에 있지 않고, 몸에 있지도 않으며, 정확히 뼛속에 있다. 노래하는 것은 실제로 신체의 모든 뼈다.{서정록, 『잃어버린 지혜, 듣기』, 267쪽}” 그러니 소리의 진동과 뼈의 밀도를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의 운을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소리가 곧 팔자인 셈이다.
아, 그러고 보니 고대 신화에서도 천자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존재라고 했다. ‘성인聖人’이라는 말의 한자를 보면, 듣는 귀耳와 말하는 입口이 들어 있지 않은가. 하늘의 소리를 들어 세상에 전하는 존재가 성인인 것이다. 또 하나 재밌는 예로 신라의 왕들의 호칭 가운데 이사금이란 명칭을 들 수 있다. 떡을 물었을 때 잇자국이 가장 많은 자를 왕으로 추대한 데서 유래된 명칭인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좀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치를 알고 보면 꽤나 그럴싸하다. 이는 ‘뼈의 나머지’다. 뼈와 골수를 만든 나머지로 이를 만드니 이가 튼튼하다는 건 몸 전체의 뼈들이 튼튼할뿐더러, 그 뿌리가 되는 신장의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는 걸 의미한다. 치아를 오복의 하나로 친 건 이 때문이다. 신장이 튼실하면 수명도 길고 정력이 좋을 테니 자식도 풍성하게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귀가 발달하여 소리를 잘 들을 것이다. 경청보다 더 중요한 리더십은 없다! 이 경청에는 ‘천지인’의 모든 소리가 다 포함된다. 잘 듣고 잘 전달할 수 있는 자, 그것이 곧 추장이고 왕이요 리더다. 그래서 이사금이라는 호칭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왜 이토록 소리에 대해 무심할까? 소리라고 하면 오디션, 뮤지컬, 관현악 무대 등 화려한 공연들만 떠올릴 뿐 정작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신경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욕망과 에너지가 눈으로 쏠려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그야말로 시각의 유토피아다. 눈부신 조명, 화려한 스펙터클, 럭셔리한 비주얼 등등. 이 시각의 유토피아는 스마트폰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에 부응하여 사람들은 수시로 찍어 댄다. 뭘 하든 일단 촬영을 하고 본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데이트를 할 때도, 그리고 무차별적 셀카까지. 그 결과, 모든 삶과 욕망은 시각으로 환원된다. 후각, 촉각, 청각 등 여타의 감각들은 이 시각의 하녀들일 뿐이다. 시각의 판타지를 보완해 주고, 그 쾌감을 높여 주는 한에서만 그 존재성을 부여받는다. 그러니 소리와 팔자의 이 오묘한 접점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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