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는 이탈리아 여행 중 보았던 피콰드로의 가방을 끝내 사지 않은 것이다. 오렌지색이 참 예뻤는데……. 비싼 가방을 사고 싶은 게 아니다. 명품을 사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 눈에 좋은 가방만 보면 이성을 잃는다. 여행용 트렁크, 백팩, 토트백, 숄더백, 노트북 가방, 크로스백……, 무엇이든 좋다. 심지어 가방을 사은품으로 주는 곳에 가면 사지 않아도 될 물건까지 사고 만다.
가방에 집착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내 것’을 가지지 못했던 욕구불만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내 방이 없었고, 내 책상이 없었다. 가방만이 유일한 내 것이었고, 내 가방엔 내 것을 넣을 수 있었다. 가방을 들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전한 곳에 있는 것 같고, 모든 게 준비돼 있는 것 같았다. 가방은 축소한 집 같다. 가방에 달린 주머니들은 각각 하나의 방이고, 그래서인지 나는 수납 공간이 많고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가방을 유독 좋아한다.
외출할 때면 제일 먼저 가방을 챙긴다. 각각의 주머니에다 알맞은 물품을 넣는다. 커다란 주머니에는 노트북이나 책을 넣고, 작은 주머니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이팟을 넣고, 이어폰, 수첩과 펜, 지갑을 챙긴다. 외출해 있는 동안 가방은 나의 집이 된다. 집게처럼 나는 가방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가방이 없으면 어쩐지 허전하고, 방랑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가방을 좋아하는데도 여자들이 핸드백을 좋아하는 마음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다들 비슷한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지, 큼지막한 상표가 붙어 있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넣지 못할 것 같은 손바닥만 한 클러치를 왜 들고 다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방 사랑 경력이 오래되다 보니, 이젠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가방을 집처럼 사용했지만, 어떤 사람은 가방을 방패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막고, 공격을 막고,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자괴감을 막고, 내가 남들에 비해 뒤처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막는, 방패처럼 사용되는 가방도 있다. 어떤 가방은 미술관이 되기도 한다. 뭔가 잔뜩 넣을 수는 없지만 들고 다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방도 있다. 어떤 가방은 또 다르게 사용될 것이다.
가방에 대한 생각들도 많이 바뀌고 있다. 무조건 명품을 선호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브랜드만을 따지는 소비자도 많이 줄었다. 내가 찾아간 가방 공장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브랜드였따. 명품 가방만큼 품질이 좋지만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은 제품들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었다.
명품도 다만 하나의 가방일 뿐
“명품이 있을까요? 저는 명품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명품이라는 말처럼 촌스러운 게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생각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좋은 가죽을 쓰고, 디자인 좋고, 가격도 싼데 굳이 해외 브랜드를 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치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죠.”
가방 공장의 대표님이 내게 해준 말이다. 생각해보면, 명품이란 단어만큼 묘한 게 없다. 이름난 제품이라는 건데, 세상에, 이름 없는 제품도 있나? 괜히 장난치고 싶은 단어다. 패러디 시 한 수 읊어보겠다. ‘내가 그 제품의 이름을 듣기 전에는 / 그 제품은 다만 하나의 가방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 제품의 이름을 들었을 때 / 그 제품은 나에게로 와서 명품이 되었다 / 누가 나에게 저 이름을 사다 다오.’ 제품의 질과 상관 없이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시다.
한국에 핸드백 생산 기술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970년대였다. 일본에서 들여온 기술력으로 많은 회사들이 핸드백을 생산 수출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없었다. 외국 회사에서 보내온 작업 지시서에는 디자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의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재료를 제대로 사용했는지, 작업 지시서와 다른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정도였다. 수출품 말고 내수용으로 제작하는 것은 영화배우나 귀부인들이 ‘이러이러한 핸드백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 똑같이 만들어주는 게 전부였다. 흔히 ‘살롱백’이라 불리는 핸드백이었다.
가죽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1990년대였고, 수많은 해외 브랜드가 한국으로 밀려들어왔다. 한국의 가방 브랜드가 자리잡을 수 있는 시기가 거의 없었고, 핸드백이나 가방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었다. 핸드백 디자이너의 1세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1세대를 알 수 없으니 지금의 디자이너들이 몇 세대인지도 알 길이 없다. 선배의 가르침도, 후배의 새로운 반격도 볼 수 없었다. 열려 있는 정보도 없었고, 열어서 보여줄 만한 정보도 없었다.
최근 들어 많은 디자이너들이 핸드백 생산에 뛰어들었다. 개인 매장을 열고, 자신만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소비자들은 명품보다 싸지만 좋은 제품의 독특한 디자인을 원하고 있다. 머지않아 어떤 디자이너는 살아남을 것이고, 어떤 디자이너는 포기할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핸드백 시장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어도 가죽을 남기지 말자
많은 핸드백을 가죽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죽을 다루는 기술이 공장의 기술력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아마추어들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게 가죽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한다.
“학생 가방 같은 건 1~2년 배우면 할 수 있어요. 네 귀퉁이를 꿰매면 가방이 되는 거죠. 하지만 핸드백 같은 경우는 평생을 배워가면서 해야 해요. 원단 자체가 생명체예요. 이게 다 남의 가죽이란 말이죠. 가죽이란 게 하나하나 다 달라요.”
가방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 직원들의 임금이 가장 센 곳이 바로 가죽을 재단하는 작업장이다. 소가죽을 예로 들어보자. 소 한 마리로 두 장의 통가죽을 뽑을 수 있고, 두 장의 통가죽으로 최대 다섯 개의 가방을 만들 수 있다. 가죽이 매끈한 소도 있고, 진드기가 있는 소도 있고, 자기가 싼 똥을 깔고 앉아서 피부병이 생긴 소도 있고, 모든 소가 제각각이다. 다리나 머리 쪽은 주름 때문에 버려야 하는 부분이 많다. 어떤 각도로 가죽을 재단하냐에 따라 가방을 하나 더 만들 수도 있다. 계산이 잘못되면 가방 하나가 조각조각의 가죽으로 버려지는 것이다. 가죽 재단실이 회사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게 단순한 과장은 아닌 것 같다.
하나의 가방이 만들어지려면 길고 지난한 작업 과정을 지나야 한다.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가죽을 자르는 일도, 가죽을 붙이는 일도, 가죽을 꿰매는 일도, 사람이 해야 한다.
가방 공장의 출발점은 가죽 보관실이다. 많은 가방을 가죽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가죽의 보관과 활용이 가방 회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오래 보관하면 기름기가 빠져서 쓸 수 없고, 잘못 재단하면 버리는 자투리가 많아지며, 단 한 번의 바느질 실수로도 쓸모없어지는 것이 바로 가죽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며, 우리는 죽어도 가죽을 남기지 말자, 라고 회사의 커다란 벽 어딘가에 쓰여 있을 것만 같다. 공장을 돌아볼 때 가죽의 소중함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가죽의 선택과 재단이 끝나면 배접반으로 이동한다. ‘배접’이란 얇은 조각을 포개어 붙이는 일을 뜻하고, 공장에서는 가죽을 포개어 붙이는 배접 공정을 통해 가방의 뼈대를 세우게 된다. 한국의 가방 공장에서는 유독 배접 공정이 중요하다. 가죽 가방은 크게, 서는 가방과 주저앉는 가방,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서는 가방이란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가방이고, 주저앉는 가방이란 흐물흐물하게 아래로 접히는 가방이다. 한국의 가방 공장들은 일본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서는 가방 중심으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서는 가방은 가죽 안에 보강재를 넣기도 하고, 안감을 대기도 하니 배접이란 굳건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가방의 기둥을 세우는 일잉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서는 가방과 주저앉는 가방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해 전 유럽의 벼룩시장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유럽의 벼룩시장에 가면 참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가죽 가방을 만나볼 수 있으니 가방 중독자로서 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게 가득 쌓여 있는 가죽 가방을 보면서, 가죽 향을 맡으면서 나는 황홀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허름한 중고품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고라서 더욱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보였다. 어떤 가방은 서 있었고, 어떤 가방은 주저앉아 있었고, 어떤 가방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어떤 가방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듯 허리를 편 채 서 있었고, 어떤 가방은 피곤해서 누워 있었고, 어떤 가방은 구석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그들을 구출해내야 할 것 같았다.
한참 가방 구경을 하다가 한쪽 구석에 누워 있는 폴리오 케이스Folio case(일반적인 형태의 서류 가방)를 발견했다. 붉은빛이 감도는 얇은 가죽 가방이었는데, 가방을 여는 방식이 무척 독특했다. 내가 보기엔 참 멋진 가방이었는데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나는 가방을 집어 들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방 정면에 ‘E. Murray’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가방을 너무나 사랑한 탓인지, 자신의 물건을 잘 간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가방에다 커다랗게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다. 나는 이름이 적혀 있는 가방이 마음에 들었다.
가방을 사 들고 오면서, 한 사람의 일상을 상상해보았다. 머레이 씨는 가방을 들고 어딜 갈까. 회사원일까, 공무원일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까, 아니면 헌책방의 사장님일까. 상상은 끝없이 이어졌다. 가방은 그런 상상을 하기에 딱 좋은 물건이다. 폴리오 케이스가 아니라 여성용 핸드백이었다면 더욱 야릇한 상상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핸드백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떤 게 내 맘에 드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패션쇼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명품을 소개할 때에도 눈길이 멈추는 가방은 거의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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