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세대의 쓸쓸한 풍경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학시절부터 그의 시를 읽어왔으니 30여 년을 함께해온 셈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의 날카로운 풍자, 현란한 기법에 담긴 재치와 통찰을 무척 좋아했다. 나와 같은 장년세대에게 황지우는 김남주, 박노해와 함께 늘 ‘현재의 시인’이다.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1983년, 젊은 시절에 그가 내놓은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실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한 구절이다. 군부 권위주의 시대를 견뎌내야 했던 암울한 현실을 풍자한 이와 같은 시로부터 당시 젊은 세대는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황지우 시가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은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면서도 예리하게 표현한 데 있다. 1998년, 이제는 장년이 된 그가 내놓은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에 실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우리말을 다루는 그의 솜씨는 여전히 탁월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함이 아닌 장년세대의 쓸쓸한 내면 풍경이다. 1952년에 태어났으니 이 시집을 발표했을 때 그는 마흔여섯이었다. 이 시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우리 사회 베이비붐 세대의 자화상이다. 앞서 김광규의 시를 다룰 때 50대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 세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 ‘상스럽게 느껴지는 슬픔’과 대면하고 있는 낯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베이비붐 세대란 19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712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15퍼센트에 육박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삶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겪어온 변동의 축소판이다. 유소년기와 10대에는 산업화 시대를 겪었고, 20대와 30대에는 민주화시대를 경험했으며, 40대 전후부터는 외환위기 이후의 시대를 살아왔다. 젊은 시절에는 고도성장의 주역이자 수혜자였던 반면, 중년 이후에는 정리해고 등을 포함한 외환위기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게 되는 나이는 50대 초·중반이다. 그리고 2012년 평균수명은 여자의 경우 84세, 남자의 경우 77세다. 기대수명을 고려하면,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떠난 다음 50대에겐 20년 이상의 삶이 남아 있다. 스무 살에 성년이 된 후 30년간 이어진 삶의 전반부를 마감하고 후반부 20년을 새롭게 열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의 노후다. 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베이비붐 세대는 부동산 자산 2억 6,000만 원을 포함해 총자산 3억 4,000만 원 정도를 보유했는데, 자녀가 결혼이라도 하면 이 금액은 크게 줄어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해선 세 가지가 중요하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고, 65세나 70세 전까지는 일을 하는 게 좋으며, 마지막으로 연금 등을 포함해 경제적 삶의 최저선을 확보하는 게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시민사회·개인 차원의 대응이 모두 필요하며, 특히 국가와 개인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국가는 연금 등 노후 복지를 강화하고, 사회적 일자리 등 국가 차원의 고용 창출에 주력하는 동시에 기업의 노후 일자리 마련 등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개인 역시 전반부를 끝낸 자신의 삶을 차분히 돌아보고 후반부 생애의 로드맵을 구체화할 수 있는 평생교육, 재취업프로그램, 사회적 공헌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요컨대 국가의 책임과 개인의 책임을 적절히 결합할 수 있는 노후대책 및 정책이 더없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 사회는 이미 도달해 있다.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에 대한 연륜이 더해짐을 뜻하지만, 화려했던 젊은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지우는 이를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보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다시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해 탄식한다.
100세 시대가 열리는 21세기에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삶이란 ‘등산’이 아니라 ‘걷기’와도 같다는 점이다. 오르고 나면 정산에서 내려오는 게 등산인데, 삶은 오히려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걷고 또 걷는 과정에서 많은 이를 만나 동행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여행의 경로가 조금씩 바뀌면서 새로운 풍경 속을 지나갈 수도 있는 게 바로 삶이다.
이런 기나긴 여행을 축복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만드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세대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 나이 든 세대가 사회의 부담이 되는 게 아니라 지혜가 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게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노후문제에 대해 개인은 물론 국가가 그 엄중한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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