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유일한 경제권력인가?
존 홀: 사회 권력의 원천에 대한 우리 토론을 경제 문제로 시작해 봅시다. 당신은 자본주의가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경제 시스템으로 완전히 견고해졌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마이클 만: 먼저 사회 권력의 원천들 중에서 자본주의부터 간단하게 진단해 볼까요? 전반적인 저의 주장은 권력의 기본 원천으로 이념적·경제적·군사적·정치적, 이렇게 네 가지 원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시 사회학적인 문제를 다룰 때에는 일반적으로 이 네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만 하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전체를 분석해 보면 가장 근본적인 사회 제도는 자본주의와 국민 국가였습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 파시스트 생산 양식의 도전을 받아 겨루기도 했고, 초기에는 제국주의 선진국들이 식민지 영토를 소유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중 한 나라는 지금도 제국입니다만, 자본주의와 국민 국가가 근본적 사회 제도인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정말 다양한 의미로 폭넓게 이해해야 할 단어인 ‘세계화’를 예로 들면 세 가지 주요 원칙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국민 국가의 세계화, 최초의 세계 제국인 미 제국의 등장이 그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계급투쟁을 낳고 국민 국가와 제국은 지정학과 전쟁, 때로는 내전을 낳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데올로기를 발생시키는데 20세기의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이기보다는 대개 세속적입니다. 이들이 제 최근 저작의 주제입니다. 특히 지금 마무리하고 있는 《사회 권력의 원천들 3》의 주제죠.
당신이 지금 물어본 질문에 답변을 하자면, 맞습니다. 자본주의는 현대 세계에 매우 확고하게 구축되었고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로 퍼지면서 현실에서 유일한 경제적 파워 게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주의도 변화하여 지금은 몇 가지 변형된 형태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오늘날 선진국 노동자들의 권리는 19세기 노동자들의 권리와 비교할 때 엄청나게 신장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자들은 사회적·법적 보호를 더 많이 받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모든 인류는 토머스 마셜Thomas H. Marshall이 말한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국가의 사회 경제적 삶, 즉 자본주의 안에서 함께 공유하는 권리를 획득했죠. 물론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통제하는 데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사회적 삶의 많은 부분이 점점 더 상품화되고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에 이용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자본주의’이긴 합니다.
존 홀: 하지만 자본주의는 2007년과 2008년 상당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1929년 대공황 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면서 더 강화된 게 아닌가요?
마이클 만: 어쩌면요. 하지만 아직 위기가 끝난 건 아닙니다. 그러나 1929년 이후 두 가지 발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첫째, 그때보다 규제를 하는 정부의 역할이 훨씬 더 커졌기 때문에, 정부는 미리 동의를 받은 정책들로 관여하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둘째,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한데요, 오늘날에는 1929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자본주의 조직의 국제 협력이 생겼습니다. 1930년대 당시에는 각국의 경쟁적인 평가 절하와 관세가 세계 경제 회복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경제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 장담하긴 어렵습니다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대공황이라기보다는 대불황으로 보이고, 그것도 1929년의 대공황처럼 그렇게 심각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불황은 세계 경제에서 국제적인 힘의 균형을 서구에서 아시아 쪽으로 살짝 옮겼다는 점에서도 보다 세계적입니다. 경제 회복은 서구가 아니라 아시아가 이끌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보다 견고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해졌음을 보여 줍니다.
존 홀: 이번 위기가 대불황이라는 게 드러나면 이 위기 이후 자본주의가 더 많은 규제를 받게 될까요? 미국 은행들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취임하자 잠시 동안 정부 규제에 노출되었지만, 지금은 규제에 반대할 능력이 있어 보입니다.
마이클 만: 저는 그 지점에서 타협을 하리라고 봅니다. 제가 볼 때 미국은행들은 영국 은행보다 정치적 반발에 살짝 더 취약해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똑같이 ‘월 스트리트(나쁜 놈들)’를 ‘메인 스트리트(미국의 보통 사람들)’의 대척점에 놓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이 좀 더 규제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929년과 오늘날을 비교하면 앞서 말한 두 가지 말고도 세 번째 주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탄탄하게 조직된 이데올로기적 저항이 부재하다는 겁니다. 1929년에는 대공황이 일어나자 좌파와 우파 양쪽에서 사회주의와 파시즘이 몰려왔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는데 이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견고해졌는지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신호지요. 자본의 국제 협력이 좀 더 긴밀해졌다고는 해도 나라마다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면서 틀림없이 규제가 좀 더 생길 겁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서구는 최근 드러난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주요 문제는 금융 자본의 역할과 힘이 너무 커진 것, 즉 경제가 자꾸 금융화되는 것입니다. 이는 부채가 많고 재정 적자인 나라들이 국제 금융 자본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나라들의 환율이나 채권은 외부 공격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국민보다 은행가들의 요구에 따르는 정책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면은 1920년대의 정치 경제학이 그랬듯이 원래 어느 정도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를 뛰어넘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케인스식으로 소비 촉진을 위한 정부 지출을 잠깐 하다가 환율과 정부 채권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금방(적어도 유럽에서는) 적자를 줄이고 통화 수축 정책을 폈습니다. 가장 우선되는 것은 투자자의 안전이고 그 결과로 나타날 실업 문제에는 관심도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은행은 직접 많은 규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은행은 자신들이 이미 완벽한 해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은 호경기에 많은 돈을 벌고 불경기에는 긴급 구제를 받으며 자본주의를 살려 냅니다. 그러니 은행가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없는 거죠.
존 홀: 만약 새로운 규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새로운 수단이 고안되어 또다시 위기를 초래하고, 또다시 긴급 구제로 이어질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겠군요.
마이클 만: 네, 몇 년 안에 유사한 성격의 또 다른 위기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정부가 금융 자본을 훨씬 더 많이 규제하는 국면을 열어야만 하는데 잘될 것 같지 않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 권력입니다. 제 용어로 말하자면 분배적 권력distributive power 1)이 집합적 권력collective power 2)보다 지배적인데요, 이것이 인류 전체에게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실제로 부채가 최고 수준이지만 달러가 기축 통화이기 때문에 투기 압박을 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파운드와 유로, 특히 유럽 내에서 경제가 어려운 나라들은 압박을 받습니다. 각국 정부는 정부 지출의 대폭적인 삭감을 포함하는 디플레이션 대응책을 도입하면서 투기꾼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렇게 하면 불황이 길어질 거라 주장하지만 이들의 충고는 무시됩니다.
무엇보다 최근 각국 정부의 걱정거리는 국가 부채sovereign debt 3)입니다. 증권 시장이 붕괴되고 금융이 불안정한데 정부가 지출을 삭감하고 대출 규제를 하다가는 실제 불황이 극심해져서 대공황을 다시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불가능한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의 보수 정부들은 이 위기를 이용해서 오랫동안 고대했던 복지 지출 삭감을 시작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압박은 시장에서, 즉 금융 자본의 움직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금융 위기가 일어났는데, 케인스식 해법을 잠깐 처방한 후 더 강화된 신자유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가 유럽인들에게 이를 반대한다고 경고해야 하다니 더욱 어이가 없죠. 미국인들은 이번 대불황에서 유럽인들보다 더 많은 교훈을 얻은 듯 보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 권력입니다.
존 홀: 무역 전쟁이나 경쟁적인 평가 절하가 없다는 것은 확실히 전간기戰間期 4)와 매우 다른 점입니다. 지역별 무역권이 등장하는 건 결과적으로 자유 무역에 대한 공격이 될까요?
마이클 만: 그렇게 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미국이 혹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일 뿐이죠. 제대로 된 정치 연합이 형성된다면 미국 내에서 국제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정치 연합은 대형 미국 회사들의 이익에 너무나 반하는 일이라 실제로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아, 미국, 유럽이 점점 더 상호 의존하고 있다는 점, 또 아시아 전역에 걸쳐 있는 화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세계 경제는 지역별로 분리된 경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겁니다. 지구의 약 3분의 2는 눈에 띄게 상호 의존하고 있고 이 중 어떤 지역은 완전히 초국가적입니다.
존 홀: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미국이 여전히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인가요? 다국적 협력은 헤게모니를 가진 지도자가 있어서 일어나는 걸까요?
마이클 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여러 국제기구에서 주도력을 쥐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국제기구들이 조금씩 면모를 갖춰 나갔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aganization, WTO는 현재 각 나라가 관세 등의 방식을 정할 때 법적으로 국제 규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WTO에 벌금을 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미국 혼자서 주도하는 게 아니라 차츰 갖추어 온 국제기구의 면모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세계가 미국 탓이라고 비난하는 구조 조정 프로그램 같은 경제적 문제들도 유럽인들이 100퍼센트 협조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따금 일본인들은 여기서 좀 일탈하기도 하지만 유럽인들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헤게모니적 질서라면 미국 혼자 주도하는 질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국제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가장 초국가적 형태의 자본주의인 금융 자본주의의 질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이중 헤게모니, 즉 일부 계급과 미국 주도의 지정학적 동맹국들이 만드는 헤게모니로 봅니다. 여기서 미국이 차지하는 영역도 서서히 잠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현재 미국과 중국, 또 일본과 산유국들이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 세계를 불황에서 끌어내고 있죠. 특히 중국은 제조업과 수출 산업에서 회복세를 보이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존 홀: 그럼 이것은 혼합 시스템이네요. 미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 없이는 아무 일도 안 되지만, 다국적 동의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미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이로군요?
마이클 만: 그렇습니다. 그런 다국 간 상호 자유 무역이 확산되고 있죠. 각국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G20(Group of 20, 세계 주요 20개국을 회원으로 하는 국제기구)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G20은 재무 장관들의 회의체에서 국가 원수들의 회의체로 격상되었고, 서구와 일본 중심에서 벗어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는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Republic of South Africa)5) 국가들로 구성을 확대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의 지정학적 힘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신호입니다.
존 홀: 당신이 말한 것에 대한 반론이 있는데요, 세계 경제의 잉여 자본 대부분을 흡수하는 것을 보면 미국은 여전히 거대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미국이 과거보다 약해졌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당신의 주장대로 다른 선진국들이 분발하고 있는 특정 분야에 한해서만 그런 것이죠.
마이클 만: 맞습니다. 권력이 이동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달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기축 통화로 존재할 겁니다. 대체할 만한 다른 통화가 없어요. 유로는 이미 결함이 드러났습니다. 분데스방크(Bundesbank, 독일 중앙은행) 말고는 달리 유로를 이끌 만한 단일 세력이 없는데, 분데스방크로는 유럽 대륙 전체를 이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는 긴급 구제를 받았지만 주로 독일이 지원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도 정치적인 문제가 많았으며 자동적으로 집행된 게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리스보다 경제 규모가 큰 다른 유럽 국가들이 독일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중국 통화는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필수 불가결한 경제적 권력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존 홀: 게다가 실제로는 미국의 콧대를 꺾는 데 아무도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마이클 만 없죠. 세계 경제는 안정된 기축 통화로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주요 주체들은 위험을 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 기축 통화가 전환되면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혼란을 겪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런 전환이 결국에는 일어나겠지만, 연관된 강대국들 대부분은 이러한 전환이 점진적으로 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존 홀: 그래서 지금 미국의 상황은 20세기 초 영국이 직면했던 상황과는 다른 거로군요. 그때 영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모두 보유했던 독일과 대결해야 했죠.
마이클 만: 맞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경우를 보면 독일이 심각한 위협으로 떠오르기 전에 이미 기축 통화인 파운드가 독일 은행, 러시아 은행, 프랑스 은행 등 다른 주요 은행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과 다른 학자들이 밝혔듯이, 당시의 제도는 영국이 독일과 군사적으로 경쟁하기 전부터 이미 부분적으로 다국적 시스템이었습니다.
존 홀: 결국 영국은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부채와 군사력 소진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이클 만: 맞습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어떠한 내적 논리 때문도 아닌 게, 그 전쟁은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보다 오래된 강대국 간 경쟁의 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1) 마이클 만이 구분하는 권력의 유형 중 하나. b를 지배할 수 있는 a의 권력을 분배적 권력이라고 말하는데, a가 더 많은 분배적 권력을 가질수록 b는 더 많이 잃게 된다.
2) 행위자들의 공동 권력을 의미. a와 b는 자연과 같은 다른 행위자 c를 지배하기 위해 협력하기도 한다.
3) 특정 국가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강대국 통화를 기준으로 발행하는 채권. 기술적으로는 국가 채무national debt에 포함되지 않는다.
4)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 구체적으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인 1919~1939년 동안을 말한다.
5) 2011년 출판된 원저에는 'BRICs'로 되어 있으나, 2014년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합류한 관계로‘BRICS'라 표기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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