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인간이란 종種은 참으로 독특하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왜 지금처럼 행동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니 말이다. 유사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이런 의문에 대해 현대 과학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 중 하나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설명이다. 지금껏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이론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화론적 사고는 도처에 퍼져 있다. 전도유망한 젊은 경영자들은 참신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진화론적 지식에 귀를 기울이며,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진화론의 논리를 활용한다. 의사들은 기존의 진단법을 수정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의 진화에 대한 지식을 탐구한다. 심지어 식료품점에서도 진화론적 마인드를 지닌 심리학자들을 컨설턴트로 초빙하여 최선의 진열 방식에 대해 자문을 받을 정도다.
언론보도나 학술적・대중적 과학서의 내용으로 판단해 보건대, 진화론은 거의 모든 수수께끼에 대해 해답을 제공할 것처럼 여겨진다. 신문지면은 날마다 ‘공격성’이나 ‘범죄 행위’ 같은 인간성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기사들로 넘쳐난다. 한편 서점의 서가에는 진화론이 ‘완벽한 배우자를 찾는 방법’,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방법’, ‘자신의 직업에서 최고가 되는 방법’ 등을 알려줄 것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하는 대중적인 과학서들이 즐비하다. 우리가 많은 저자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들을 나열해보면 대충 이렇다.
“우리의 정신은 본래 원시시대의 수렵・채집인처럼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발버둥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털 없는 원숭이’처럼 행동하게 된다. 강간은 자연스럽고 남성의 바람기는 불가피하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 중에서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신문보도와 대중 과학서의 이면에는 어떤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책은 이러한 의문에 답을 제시하기 위해 씌어졌다.
많은 학자들은 진화론적 관점이 인간의 행동과 사회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진화론은 생물학 분야만 지배하는 게 아니라, ‘진화심리학’, ‘진화인류학’, ‘진화경제학’ 등 신생 학문 분야를 통해 사회과학 쪽으로도 점점 더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하지만 진화론의 관점이 그처럼 생산적이라면 왜 모든 사람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사회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대다수가 진화론적 방법론을 무시할 뿐 아니라, 그중 상당수가 진화론에 극단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진화론의 파문이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로 번져나갈 만큼 위력적이라면, 우리는 진화론이라는 이름 아래 제기되는 모든 주장들을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세계 유수의 진화생물학자들 중 일부가 ‘진화론적 방법론을 이용한 인간 본성 연구’에 몹시 비판적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사실,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법론은 과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자주 논쟁을 야기한다. 물론 진화론은 모든 과학사상 중에서 내용이 가장 풍부하고 광범위하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가운데 하나로,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방법론과 가설을 제공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진화론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문제를 놓고 한 세기 이상 열띤 논쟁을 벌여왔다.
따지고 보면, 편견에 사로잡힌 사상이나 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진화론적 추론을 오용했던 과거의 사례가 이 같은 논쟁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선례는 종종 다윈의 사상을 왜곡한 데서 비롯되었지만, 이로 인해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새로 등장한 학문 분야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본성이 유해하거나 위험하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진화론을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자들은 진화론적 접근방법을 아직도 몹시 불편해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진화론을 이용한 인간성 해석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은 사상의 양극화를 조장한 셈이 되고 말았다.
진화론이 점점 더 전문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물학적 사실과 사변적인 이야기나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여느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진화론 분야의 연구도 질적 수준이 매우 다양하다.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적으로 분석한 연구 중에는 최고의 연구 기준을 만족하는 탁월한 수작이 있는가 하면, 타블로이드 신문 수준의 선정적인 사이비 과학에 불과한 것도 있다. 더욱이 진화론적 분석을 둘러싸고 극단적인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진화론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진화론에도 몇 가지 이점이 있음을 수긍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반면 진화론의 열렬한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지니는 한계를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책은 현재 인간행동 연구에 사용되고 있는 진화론적 접근방법 및 이론 중에서 핵심적인 것들을 골라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독자들을 혼란스러운 용어, 주장과 반박, 논쟁적 진술 등이 뒤섞여 있는 진흙탕 사이로 안내한다. 우리는 이들 진화론적 방법으로 인간행동을 얼마나 타당하게 연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인간 사회나 문화에 존재하는 고유한 특징들이 때때로 그러한 방법론을 무력화하지는 않는지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진화론에 관한 찬성자와 비판자들의 주장을 모두 꼼꼼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를 때쯤 되면, 독자들은 ’진화론의 이름을 내걸고 이루어진 인간행동에 관한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 한 걸음 더 접근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 1장 센스와 넌센스
오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인간행동을 분석하는 데 진화론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대표적 논쟁 사례 중 하나는,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가 쓴 대학 교재에 대한 특별한 반응에서 비롯되었다.
1975년 윌슨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동물의 행동에 관한 백과사전적 서적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동물행동에 관한 교과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언론매체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드물지만, 윌슨의 책은 달랐다. 그 책의 마지막 장에서 윌슨은 “동물의 행동에 관한 최근의 연구, 특히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와 빌 해밀턴Bill Hamilton의 통찰력이 인간행동의 다양한 측면들을 설명해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광범위한 주제들, 이를테면 인간의 성적性的 차이, 공격성, 종교, 동성애, 외국인 혐오 등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사회과학은 생물학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충격적 예측까지 내놓았다.
윌슨의 책은 격론을 불러일으키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뒤흔든 이른바 ‘사회생물학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회과학자들은 윌슨의 주장을 통렬하게 비난했고, 윌슨의 방법론을 흠집 내는 데 골몰하는가 하면, 그의 설명을 사변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깔아뭉갰다. 흥미롭게도, 비판자들 중에서 가장 저명한 축에 드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과 스티븐 J. 굴드Stephen J. Gould는 윌슨과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유명 언론을 통해 “윌슨은 단세포동물이자 환원주의자”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윌슨의 주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동물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서 사회생물학의 가치가 입증되자, 많은 학자들이 이 ‘새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인간성 해명을 시도했다. 그 결과 논쟁은 양극화되었고, 급기야 매우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 되었다. 비판자들은 사회생물학자들을 ‘우익의 보수적 가치를 옹호한다’고 비난했고, 사회생물학자들은 비판자들을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연루되어 있다’고 몰아세웠던 것이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3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룬다).
감정이 격앙되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난무하는 논쟁의 와중에서 균형 잡힌 판단과 공정성으로 눈길을 끈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중 한 명인 존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였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열띤 논쟁의 와중에도 점잖게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논쟁이 과학적 관점을 일탈하여 정치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윌슨을 겨냥한 온당치 못한 비판을 꾸짖는가 하면, 생물학적 원리의 부적절한 적용이 지니는 위험을 꾸준히 경고했다. 1981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우리 시대가 ‘생물학을 사회과학에 적용하려는 시도’에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인종에 관한 이론, 나치즘, 반유대주의 등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매우 짜증스러웠고,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인간행동에 관한 윌슨의 견해 중에서 일부는 설익고 심지어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그는 균형감 있는 분석을 통해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인정하는 한편, 책의 여러 가지 긍정적인 특징들을 조심스럽게 강조하기도 했다.
사회학자 울리카 세예르스트롤레Ullica Segerstråle는 사회생물학 논쟁을 분석하면서, “옹호자와 비판자 모두를 이해하는 과학자가 거의 없다보니, 양자 사이에서 의사소통과 중재를 맡을 만한 적임자를 찾을 수가 없다”라고 논평했다. 이 논쟁에서 찬반론자들이 얼마나 양극화되고 이성을 잃었던지, 후에 메이너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인정할 정도였다.
르원틴이나 굴드와 한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는 자연스레 사회생물학을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윌슨이나 트리버스와 한두 시간 동안 대화하면 나도 모르게 사회생물학을 신랄히 비판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기본적으로 메이너드 스미스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회생물학자(‘진화론적 접근방법을 사용한 인간행동연구’를 옹호하는 사람들)와 그 비판자들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즉, 진화론적 방법론의 긍정적인 면을 개관하면서도,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부분을 지적하는 데 망설이지 않고 생물학적 원리를 무책임하게 적용하는 위험을 경계함으로써, 시종일관 균형 잡힌 중도적 견해를 유지하고자 한다. 연구자들 중에는 인간의 진화사를 참고함으로써 인간행동의 모든 측면들이 명쾌하게 설명되리라 믿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노선을 달리하며,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때는 다양한 대안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사회생물학 논쟁의 높은 열기와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혹독한 비판에 부담을 느낀 사회생물학자들은, 빗장을 닫아걸고 외부와 접촉을 끊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비난이 심해지자 그들은 똘똘 뭉쳐 연합전선을 형성했으며, 때로는 ‘반대편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우리 편끼리는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1989년 에번스턴에서 개최된 인간행동 및 진화협회Human Behavior and Evolution Society(HBES)의 창립총회 기조연설에서, 회장 빌 해밀턴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은 적들에게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고 말했다.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는, 해밀턴이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향해 “우리의 이론과 가설이 아무리 황당하고 검증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결과에 상관없이 과감하게 앞으로 밀고 나가자”고 독려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중견 연구자지만) 당시 HBES의 소장파 회원이었던 한 연구자는 “일각에서는 그런 식의 발언이 본의 아니게 부정확한 연구관행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당시에는 강경파에 밀려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술회했다. 다른 회원들에 의하면, 오늘날에도 HBES 내부에는 자기비판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한다.
진화론적 관점의 진정한 이점 중 하나는 창의성이다. 우리는 진화론에 담긴 창의성이 억눌리는 것을 원치 않으며, 브레인스토밍의 가치와 이를 위한 시간 투자의 필요성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떠한 과학 분야도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설과 연구 방법론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원칙을 신봉한다. 이제 인간의 행동과 진화에 관한 연구가 웬만큼 자리를 잡은 만큼, 외부의 비판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수단은 ‘한 차원 높은 과학 기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적 접근방법을 이용하여 인간행동을 탐구하는 연구자들 중 일부는 특정한 하위분야를 인정하고, 각 하위분야의 접근방법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떠한 분파도 인정하지 않고, “대표적인 학파들의 접근방법들 간에 의미 있는 차이를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우리는 이 책에서 1970년대에 개념적 발전을 이루면서 등장한 다섯 가지 접근방법을 다루고자 한다.
이들 다섯 가지 접근방법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한 것으로, 인간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들 하위분야의 이론과 방법론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우리도 그러한 차이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차이점 중 일부는 분야 자체의 속성과 연구전통의 차이에서 유래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다분히 관념적이다.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양한 진화론적 관점들을 비교하여, ‘타당성과 통찰력을 지닌 관점’과 ‘질적으로 미흡하다고 여겨지는 관점’을 가려낼 것이다. 나아가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접근방법을 이용할 경우 인간행동을 일관성 있게 연구하는 것이 가능한지, 만약 가능하다면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것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창작물이므로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