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민주주의·소수자운동
이스라엘의 기본적 성격이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서아시아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라든가 유일하게 서구 사회와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의라고 본다면, 이스라엘은 분명히 서아시아에서 드문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점령 정책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억압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자체가 다수자인 유대인에게만 우선적인 지위를 주고 있는 ‘에스닉 민주주의’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백인만이 민주주의를 구가해온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아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더 가깝다. 물론 이스라엘의 차별은 흑인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고 인종별 의회제도를 만들어낸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제도화된 차별과는 다르다. 이스라엘의 차별은 유대인이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데서 갈라진다.
겉모습만으로 사회를 파악한다면, 이스라엘 사회를 아는 사람들이 자주 말하듯이 이스라엘의 유대 사회에는 확실히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풍토가 존재한다. 물론 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고함을 지르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그 자리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서로 의견을 존중하면서 토론한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의견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 잠자코 있는 상황은 드물다. 또한 대학 교수나 기업의 임원 등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소탈한 복장을 좋아하고 아무에게나 허물없이 의견을 구하거나 친구처럼 대등한 태도를 취하는 일도 많다.
이러한 시각에서 아랍 사회를 보자. 다분히 권위 지향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사회로 보인다. 사실 이스라엘 유대 사회의 솔직하고 개방적인 측면을 아는 아랍인은 그들에게 감탄하며 그들을 아주 좋아하거나 그러한 태도를 배우려는 의욕을 보이는 일도 의외로 흔하다. 이스라엘의 아랍인 중 압도적 다수는 유대인과의 양호한 관계를 바라고 있으며, 문제는 유대인이 아랍 사회를 잘 모른다는 것,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견 표명을 하는 자리에서는 흔히 “우리는 반反이스라엘이 아니라 그저 이스라엘에 대해 의견을 말할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이니까 의견 표명은 자유가 아닌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것은 아랍 정치가의 전략적인 논리와도 비슷하지만 적어도 민중의 소박한 감정으로서는 본심에 가까운 발언이다.
이스라엘 유대인의 과반수는 서아시아 여러 나라나 아프리카에서 온 미즈라힘Mizrachim(서아시아 동쪽에 사는 유대인을 말한다. 스페인어를 쓰는 세파르딤과 달리 전통적으로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옮긴이)인데도, 이 사회가 서구 지향적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효율성을 중시하거나 개인주의적인 경향 속에서 인간이 기계화되어 육체가 소외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는 한편 언론의 자유나 소수자의 권리 옹호라는 가치를 중시하려는 원칙이 존재한다. 따라서 게이나 레즈비언 등 성적 소수자의 권리 운동이 서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이스라엘 내부의 아랍인이나 점령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상황에까지 관심을 두는 일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이스라엘의 관용성이나 문화의 다양성을 과시하는 식으로 드러내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운동이나 표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 등에 대해 비판하는 것 자체를 봉쇄하려는 정치적 구실로 이용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동성애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이란 같은 나라를 예로 들며,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사람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식이다. 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여성의 참정권이 없는 것이나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이외의 종교 활동이나 종교적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일절 금지되어 있다는 것 등도 마찬가지로 이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를 근거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명백하게 비논리적이다.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성적 소수자가 놓인 상황을 진정으로 우려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억압받고 있는 인간의 인권을 지키려는 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고도의 민주주의 국가든 문화적 다양성을 보증하는 국가든 이 경우 아무 관계도 없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그 주장의 강도에 역점을 둔 확신범인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나 점령 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억압 정책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보이는 함정이다. 민주주의나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평가하기가 모호해진다. 또한 평등 지향적이고 사회주의적이라는 초기 시온주의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떤 제도를 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내부의 소수자 권리 운동에 대해서도 물어야 하는 것은 그 내용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성과와 함께 늘 따라다니는 갈등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존재한 시온주의 안의 남녀평등 사상은 키부츠 내의 공동 가사노동 그리고 건국을 위해 여성도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한다는 이념으로 결실을 맺었다. 1970년 초 미국 여성해방운동의 영향을 받아 미국으로부터 이주해온 여성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페미니즘은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수준으로 처우해줄 것을 요구하고, 제4차 중동전쟁 발발 후에는 군대 내의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고조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레바논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이스라엘 병사의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고조된 뒤부터 여성운동과 평화운동은 결합하게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무의미한 전쟁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이 더는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여기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팔레스타인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적대 정책을 멈추고 전략적 철퇴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양자의 차이는 대단히 크지만 병역이라는 시스템의 옳고 그름 자체나 시온주의라는 이스라엘 건국 이념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되지 않았던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제1차, 제2차 인티파다에서 그때까지 팔레스타인 여성과의 대화를 지향하고 있던 이스라엘 페미니스트 운동의 주류가 딜레마에 빠져 침묵을 지킨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고 나서는 것보다 소수이긴 하지만 점령에 반대하며 반反시온주의를 밝히는 풍조도 나타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가 무너진 오늘날, 어떠한 사상이든 총체적인 해방 사상으로 내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일반론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은 페미니즘 측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검토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페미니즘이 시온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슬로협정 이후 이스라엘 사회의 우경화에 대항하는 강력한 사상이 나오지 않은 상황과도 관련되며,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스라엘 좌파의 혼란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이슬라엘
그래도 이스라엘의 아랍인과 이야기를 하면 유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과 동시에 아랍 사회에 대한 자기비판을 자주 듣게 된다. 아랍 사회 안에 있는 차별의식, 민중 안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권위주의. 마초적인 지도자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기 쉽다는 것. 힘을 가진 사람 앞에서 약한 사람은 발언을 하지 못한다는 것. 남성이 여성에게 젊음을 요구하고, 일반적으로 30세를 넘은 여성은 결혼 상대로 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 대한 가치가 굉장히 높고 그렇지 않은 삶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
네게브 사막의 베두인 사회 출신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컴퓨터 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컴퓨터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유대인 사회보다도 아랍 사회 안에서 받아온 차별이 훨씬 노골적이고 가혹했습니다. 당신의 룸메이트인 아랍 여성은 제가 독신이라는 것과 제가 근무하는 회사 이름을 알면 틀림없이 저를 소개시켜달라고 당신에게 부탁할 겁니다. 그다음에 제가 베두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줘 보세요. 그럼 그 사람의 태도가 어떻게 돌변하는지 관찰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겁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사원 500명 가운데 아랍인은 둘뿐이라고 한다. 또 그가 아는 바로는 컴퓨터 관련 박사학위를 가진 이스라엘의 아랍인도 지금은 딱 두 사람뿐이라고 한다. 그렇게 굉장한 엘리트인 그였지만 굉장히 특이한 여성관을 가졌고, 이는 마치 아랍 사회의 분열 상황을 체현하고 있는 듯했다.
아랍 사회 내부의 여성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주력하고 있는 페미니즘 단체에서 활동하는 아랍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공적인 정치 언어에서는 ‘무슬림도 기독교도도 드루즈(레바논을 중심으로 시리아, 이스라엘, 요르단 등에 존재하는 이슬람교 계열의 종교공동체 -옮긴이)도 아닌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 점령지 팔레스타인 사람은 우리의 형제’라고 말해요.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이 잔인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아랍 사회 자체가 젊은 여성들을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 그런 문제는 싹 달아나버려요. 차라리 서아시아 전체가 이스라엘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 남성과 관계를 맺은 미혼 여성이 남성 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명예살인’에 항의하는 캠페인을 위해 그녀는 아랍 마을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확실히 아랍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는 무척 깊다. 그러나 아랍의 여러 나라에도 이와 똑같은 문제가 있지만, 민중 차원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이 자신들 사회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들에게 보이는 세계가 확대된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아랍 사회의 이러한 문제가 오히려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인해 유지되었고,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이용되어왔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아랍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나 보수층이 주위 환경으로부터 자신들의 사회를 지킨다는 구실로 그때까지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자기비판의 목소리는, 이스라엘에서는 ‘후진적인’ 아랍 사회에 대한 우월감으로 바뀌어 이 문제를 더욱 뒤틀어버린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괜찮은 편이지, 암” 하면서 말이다. 어떤 사회나 상황은 다르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자기 사회와 상대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명확한 차이로 의식하게 된다. 자신들은 해방된, 훨씬 좋은 사회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후진적인’ 사회에 있는 상대를 얕잡아보는 것이다. 이럴 때 자기 사회에 대해 안고 있는 불만이나 답답함은 잊히고 만다. 아니, 그런 불만이나 답답함의 강도에 비례하여 ‘후진적인’ 사회를 얕보는 시선은 더 강해진다.
이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국의 허술한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 미디어에서 흘러넘침에도 ‘독재적인’ 이웃 나라들이나 ‘후진적인’ 타자와 비교하며 노골적인 우월감을 강조하는 일은 흔히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아랍어를 배우면서부터 서아시아 사회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간신히 아랍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다소 자신감도 생겨 아랍 문화나 이슬람에 대해서도 공부하여 그 심오함을 자각하게 된 나에게는 아랍 사회에 푹 잠겨 있는 편이, 즐거움이라는 점에서만 보자면 훨씬 즐거웠을 것이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어 매일매일 고생하면서도 씩씩하게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도 많았다.
그러나 주변 지역과의 관계나 미국과의 동맹을 생각한다면 일본은 오히려 이스라엘과 무척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현재 점령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식민지 지배를 했고, 아시아에 근대화를 가져오겠다는 논리와 군사 지배를 양립시키려 하기도 했다. 그것은 뒤처진 동방의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세움으로써 “야만에 대한 문화 전초기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한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1860~1904,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는 운동을 정치적으로 주도한 인물이다. 세계 시온주의자 대회를 조직해 1897년 8월 스위스 바젤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그 대회에서 설립된 ‘세계 시온주의자 조직’의 초대 의장이 되었다. 시온주의를 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운동으로 부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옮긴이)의 꿈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비서구 지역에 있으면서 예외적으로 서구적인 가치관을 접목하여 주변 지역에 대해 억압적인 존재임을 자부하며 지탱해온,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과 동쪽에 있는 두 개의 나라. ‘일본-유대 동조론’(일본인과 유대인이 공통의 선조를 가진 형제 민족이라는 설로 주로 일본인과 유대인이 주장한다 -옮긴이)이나 유대 음모론이 반복적으로 유행하는 것도 꼭 우연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현 상황에 주목하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거나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운동에 참가하거나 조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거기에 일본의 모습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문제점은 이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완전히 일방적으로 재단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 사회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또 일본을 더 잘 알기 위해 이스라엘로부터 역으로 조명해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점령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싸움은 일상의 유지라는 차원에서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지만, 이스라엘 국가에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그 사회의 존재 방식을 바꿔나가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다수자인 유대인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극히 소수이긴 하나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 그 사회를 바꿔나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대등하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서로 경험을 공유하면서 나아가고 싶다. 일본 사회를 비판적으로 파악하여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바꿔나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제삼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이스라엘 사회에 관여할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를 바꿔 나가자고 오랫동안 분투하면서 열심히 활동해온 사람들.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없지만 현 이스라엘 국가의 실상에 등을 돌리고 사는 사람들.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있는 사람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스라엘을 떠나 국외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사람들. 그들도 이스라엘 국가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부재자’다.
이 책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활동이나 사상에 대해 특별히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이스라엘에서 나를 지탱해준 것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덧붙여둔다. 그 눈부신 빛과 적외선 안에서 나는 오히려 이스라엘 ‘부재자’들의 흘러넘칠 것만 같은 존재감에 압도되어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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