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판 서문
23년에 걸친 대화로 완성한 위대한 팸플릿
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1853~1932)는 1897년 3월부터 이 책에 담긴 일련의 대화들을 쓰기 시작했다. 훗날 루이지 파브리Luigi Fabbri는 이 시기의 말라테스타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 책의 1922년 판Bologna, Edizioni di Volonta 서문에 적고 있다. 그리고 1961년에 출간한 재판Torino, Sargraf에서는 말라테스타의 이러한 모습도 소개된다. 말라테스타는 수염을 말끔히 밀어 변장을 하고 입에 파이프를 물고 도심에서 돌아다니면서, 그의 안전을 걱정하여 다른 곳으로 피하길 바라는 친구들을 향해 뻔뻔스럽게 웃어줬다는 것이다.
이 대화에 관한 구상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제안되었다. 말라테스타가 평상시에 자신과 같은 위험인물들의 소굴이 아니라 오히려 카페에 종종 들린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카페에 드나들던 사람들 중에는 경찰관도 있었는데, 그조차 손만 뻗치면 닿을 곳에 의외의 소득이 있다는 걸 모르고서 말라테스타와의 대화에 빠져들곤 했다. 도시의 아나키스트들이 여러 차례 재판에 연루되며 동료 시민들에게 선전 공세를 계속 퍼부어온 터라 당시 아나키즘은 확실히 중요한 대화거리 중 하나였다.
대화는 재판 이야기와 말라테스타 자신의 경험을 다루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복잡한 사상을 간단명료한 언어로 묘사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말라테스타의 특별한 능력과 딱 들어맞는 문학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대화라는 형식은 말라테스타가 자신의 아나키스트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는 조건으로 독자들과 그런 주장의 정치적 의미와 실제 적용 가능성을 소통하는 데 목적을 두면서도 상대의 생각을 토론할 수 있게 했다. 더구나 대화의 장점 중 하나는 허수아비가 없다는 점이다. 대화를 통해 아나키즘에 대한 엄밀한 조사가 성실히 진행했고, 때로는 상대방이 아나키즘의 약점이자 취약함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말라테스타의 기운찬 변호를 아주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1897년 말이 되자 안코나Ancona의 경찰이 말라테스타를 알아보고 추적해왔다. 말라테스타는 체포되었지만 곧 석방되었다. 그 즉시 말라테스타는 잡지와 미완성의 대화 모두를 단념하고 대신 연이어 강연회를 열었다. 1898년에는 가택연금을 당하고, 1899년 3월에는 해외로 달아나면서 또다시 망명객이 되었다. 대화는 10회로 중단되었고 이대로 잡지와 팸플릿으로 출판되었다.
앞선 10편의 대화에서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말라테스타의 분신인 아나키스트 조르조Giorgio와 부유한 부르주아지인 프로스페로Prospero, 카페 주인인 체사레Cesare, 치안판사인 암부로조Ambrogio이다. 따라서 말라테스타는 폭넓은 사회적 스펙트럼에서 각자의 정치적인 입장과 견해를 대변할 수 있었다. 프로스페로가 부자와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면 체사레는 소지주와 중간계급을 대변한다. 이들은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조르조의 설득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그 해결책이 현재의 사회질서를 붕괴시키지 않아야만 한다는 걱정도 드러낸다. 암부로조는 법과 자유주의 국가의 대변자이고 권리와 정의에 관한 공인된 사상을 대변한다. 암부로조는 조르조의 주요한 반대자로서 인간본성과 인간행동에 관한 상식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암부로조는 불가피한 현실의 명령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인정하자면서 [자유에 관한] 완화된 자유주의적인 권리 이론을 말한다. 말라테스타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들과 암부로조의 견해가 유도하는 수많은 비판들에 응답하면서 아나키스트 세계관을 능숙하고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 짧은 원고를 통해 말라테스타는 코뮈니스트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모두 소개하면서 주요한 반대 입장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되는 내용은 사적 소유와 소유권이라는 주제이다.
두 번째 대화와 세 번째, 네 번째 대화에서는 소유의 원인이 체제의 올바른 성격 및 그와 연관된 계급구조에 있다는 주장이 펼쳐진다. 한편 맬서스의 저작 및 자유무역에 관해 토론하면서 사적 소유의 권리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강력한 공격이 시작된다. 동시에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와 정부 없는 사회의 창조라는 생각이 소개된다.
다섯 번째 대화에서는 소유와 소유권의 기원이 다뤄진다. 조르조는 만일 착취가 사라져야 한다면 소유권이 폐지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여섯 번째 대화에서 공동소유가 주장되고 공산주의에 관한 생각이 등장한다.
이 공산주의에 관한 토론은 일곱 번째 대화에서도 이어지고, 공산주의를 전제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로 보며 반대하는 암부로조의 입장을 다룬다. 조르조는 아나키스트 사회를 결사체들의 자발적이고 복합적인 연합으로 묘사하면서 그 입장을 반박하고 그 과정에서 아나키스트의 자유로운 공산주의라는 형식과 권위주의 학파의 형식을 대비시킨다.
여덟 번째 대화에서는 정부와 국가의 문제, 그리고 그것이 없이도 사회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으로 초점이 이동한다. 이 장에서는 의회정치와 대의제도를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동의와 자발적인 대표 파견으로 유지되는 사회질서로서 아나키즘을 옹호하면서, 정부 없는 사회에 대한 반대 입장과 재차 토론한다.
아홉 번째 대화에서는 앞서 여섯 번째 대화에서 처음 등장했던 상호부조의 보편성에 관한 크로포트킨의 주장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열 번째 대화에서는 성과 사랑, 가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성의 불평등을 낳는 원래의 기반들을 설득력 있게 해체한다.
1899년에 10회로 대화를 중단한 뒤, 14년이 지난 1913년에 말라테스타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말라테스타는 또다시 안코나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잡지인 「의지Volonta」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말라테스타는 이 잡지에 원래의 열 편의 대화를 편집하고 수정해서 싣고 네 편의 대화를 추가했다. 초기에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대화에서 조르조의 대화 상대자였던 체사레와 프로스페로, 암부로조가 다시 등장한다.
열한 번째 대화에서는 범죄 행위에 대해 토론한다. 정부와 법, 그리고 법정이나 교도소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범죄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조르조는 이것이 코뮌의 방식으로 다뤄져야만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토론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비에 대한 이야기와 아무도 원치 않는 직업을 맡아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동한다.
열두 번째 대화에서는 혁명이라는 만일의 사태를 분석해본다. 혁명은 현재의 질서가 폭력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한편 기득권 계급은 공포에 질리지 않은 한 결코 손에 쥔 권력을 놓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폭력 혁명이라는 슬픈 필연성으로 향한다.
열세 번째 대화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젊은 공화주의자 빈센초Vincenzo를 만난다. 토론은 [사회] 변화에 대한 공화주의적 접근의 장점과 한계를 다루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화주의의 주요한 약점은 그것이 정부와 민주적인 대표 체계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아나키즘의 입장에서는, 공화주의가 현재의 정치체제라는 악惡에 여전히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것의 지지자들이 믿는 만큼 급진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1913년에 새로 추가한 대화들 중 마지막 편인 열네 번째 대화에서는, 다시 혁명이라는 주제로 돌아간다. 조르조가 강조하는 바는 국가와 정부를 제거하려는 아나키즘의 열망이 역사에서 새로운 요인이고, 단순히 정치체제의 변화를 목표로 삼았던 이전의 혁명과 완전히 다르면서 더 심오한 변화를 계획한다는 점이다.
또다시 정치적인 사건이 이 대화를 가로막는다. 1914년 6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폭풍의 기운이 드리우고, ‘붉은 주간Red Week’으로 알려지는 심각한 민중봉기가 마르케Marche와 로마냐Romagna에서 일어난다. 말라테스타는 이 민중봉기에 개입했고 그 결과 런던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6년이 지나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신인류Umanita Nova」라는 신문을 편집하며 밀라노Milano에 머물렀다.
파브리는 말라테스타가 당시에 매우 바빠서 예전의 대화 원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새로운 대화를 추가할 의지도 없었다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파브리는 말라테스타와 2주일을 보낸 어떤 손님이 이 계획을 계속하도록 설득했다고 언급하는데, 그 신비로운 손님이란 파브리 자신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전체의 결론 장이라기보다는 이야기들의 속편이라고 볼 만한 세 번의 대화가 더 이루어졌다.
이 마지막 세 편의 에세이에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몇 개의 새로운 주제들이 관심을 끈다. 열다섯 번째 대화에서는 노동자인 지노Gino와 함께 국가 없는 사회에서 사회질서가 위태로워지리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포와 더불어 경찰의 필요성을 토론한다.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스트 조르조를 통해 자신의 이전 저작인 『아나키Anarchy』에서 늑대나 범죄자가 없다면 공무원의 각 기구들의 생존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늑대 사냥꾼이 늑대를 기른다고 주장했을 때처럼, 범죄자를 만드는 것은 바로 경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의 안전이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점을 다시금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주제가 이미 열한 번째 대화에서도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그가 이 주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나타낸다.
열여섯 번째 대화에서 우리는 전쟁으로 불구가 된 상이군인 피포Pippo를 만나는데, 그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라는 문제를 토론한다. 여기서 말라테스타의 논점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민족주의에 맞서 계급연대를 호소한 레닌의 목소리를 되풀이한다. 자신이 보기에 애국주의는 부르주아지가 현재의 소유질서와 그 질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영토적 야망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늘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 열일곱 번째 대화에서는 사회주의자인 루이지Luigi가 등장해서 의회 사회주의나 권위매주의적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구별하기 위한 내용의 토론을 이어간다. 이 토론은 의회노선과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이 진화 사회주의라고 불렀던 형태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핵심으로 다루면서 혁명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련의 대화들을 이 책에서와 같은 형태로 엮는 일은 1920년 10월에 끝났다. 10월 16일에 말라테스타는 체포되었고 산비토레San Vittore의 감옥에 갇혔다. 그의 아파트에서 무기와 폭발물을 찾으려는 대대적인 경찰수색이 있었지만 이 대화의 초고는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고도 무시된 듯하다. 이 초고는 1922년에 파브리의 서문을 포함해서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말라테스타의 대화는 아나키스트 정치이론에 중대한 공헌을 한 책일 뿐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문헌이다. 무려 23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작성된 이 대화는 격동의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논평이다. 특히 유럽을 가로지르는 좌파의 선전과 조직이 두드러졌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세계는 제2차 인터내셔널, 볼셰비즘의 성장,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탄생, 1904년과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목격했다. 이런 사건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대화들은 그 사건들이 제기했던 많은 주제들을 생생한 토론에 참여시켜 다루고 있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스트 이론을 그 시대에 관한 생생한 논평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는 지적이고 독창적이며, 진정 예술적인 작품이다.
2005년
폴 너시 브레이Paul Nursey-Bray
첫 번째 대화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프로스페로 물론… 당연히… 우리는 그 점을 잘 알아.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 몸을 파는 여인들,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지. 넌 항상 같은 것을 말해. 그러니 지루해지지. 나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좀 편하게 먹고 싶은데… 분명 우리 사회에는 기아, 무지, 전쟁, 범죄, 전염병, 끔찍한 재난 같은 많은 악惡이 있어. 그래서 어쨌는데? 왜 네가 관심을 갖는 거지?
미켈레 뭐라고요? 왜 내가 관심을 가지냐고요? 당신에게는 편안한 집과 먹을거리가 가득 차려진 식탁과 시키는 일을 해주는 하인이 있지요. 하긴 당신이야 모든 게 쾌적하겠죠. 당신과 당신 가족이 무사하다면 세계가 무너진대도 상관없겠죠. 정말 당신이 조금이라도 인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로스페로 그만, 됐어…. 잔소리하지 말라고…. 이봐 청년, 화내지 말라고. 내가 감정이 없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 마음도 아프다고(웨이터, 여기 코냑과 담배 하나만!). 마음이 아프다니깐. 그런데 심각한 사회문제들은 감정으로 해결되지 않아. 자연법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위대한 연설이나 눈물을 흘리는 감상으로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어. 현명한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무의미한 꿈을 좇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지.
미켈레 아, 우리가 자연법을 다루고 있었던가요? 가난한 사람들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게 자연법이라면 어쩌죠? 나는 그런 상위법들을 지지하는 연설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프로스페로 아, 물론. 네가 만나는 사람들을 잘 알아. 네가 진정한 친구로 선택한 그 불한당 같은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에게 내 대신해서 말해달라고. 그들과 그들의 사악한 이론을 실험하려는 무리들에 대비해서 우리는 좋은 군인과 훌륭한 경찰을 가지고 있다고.
미켈레 이런! 당신이 군인과 경찰을 끌어들일 셈이라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군요. 그건 내 생각이 잘못임을 증명하기 위해 주먹다짐을 하자는 거잖아요. 별다른 논리가 없더라도 잔인한 폭력에는 의지하지 마세요. 내일이면 당신이 약자의 입장에 설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 어떻겠어요?
프로스페로 어떻겠냐구? 글쎄, 그런 불행이 온다면 많은 혼란이 있겠지. 사악한 열정과 학살, 약탈이 벌어지고. 그러면 모든 것이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겠지. 아마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해지고 몇몇 부유한 사람들은 빈곤해지겠지만 전체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세상은 변할 수 없으니까. 너나 네 가족이 그런 아나키스트 선동가들 중 한명을 내게 데려다주면, 그냥 데려다만 주면, 내가 그에게 어떻게 주먹을 먹이는지를 보게 될 거야. 머릿속이 비어 있으니까 그들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들로 너 같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쉽게 채우는 거야. 내게도 그런 어리석은 말들이 먹히는지를 보라고.
미켈레 좋아요.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의 원리를 고집하는 내 친구들 중 한 명을 데려오지요. 당신이 그와 즐겁게 토론을 벌이면 좋겠군요. 오늘날 만들어진 사회가 상식이나 품위를 거스르는 것임을 지금은 명백히 밝히지 못했으니까요. 자, 당신은 아주 뚱뚱하고 또 건강하니 약간 흥분하더라도 건강에 나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당신의 소화를 돕겠죠.
프로스페로 좋아, 그렇다면 토론해보자고. 하지만 이건 알고 있게. 더 많이 배우고 현명한 다른 사람의 일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대신에 공부나 더 하는 게 나을 거야. 나는 네게 20년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고 믿거든.
미켈레 이러는 것이 당신이 더 공부를 많이 했다고 증명하지는 않아요. 당신이 지금까지 말한 걸로 판단해보면, 당신이 더 많이 공부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로부터 더 많이 깨달은 것 같지는 않네요.
프로스페로 이봐 청년. 거참, 나를 좀 존중해달라고.
미켈레 좋아요, 당신을 존중하지요. 그러나 나이를 걸고 넘어지진 말자고요. 당신도 내 말에 반대한답시고 경찰을 부르려는 건 아닐 텐데요. 주장이란 오래되었든 새롭든, 좋든 나쁘든, 주장일 뿐이잖아요.
프로스페로 좋아, 좋아. 계속 애기해보자고.
미켈레 나는 괭이질하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농부들이 충분한 빵과 와인과 고기를 갖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집을 짓는 벽돌공이 비를 피할 집을 갖지 못할까요. 왜 제화공이 신발을 신지 못할까요. 달리 말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흥청망청거리는 데도, 그 모든 것을 생산하는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필수품이 부족한 걸까요. 나는 경작되지 않는 땅이 많고 땅을 일굴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누군가는 굶주리게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요.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왜 많은 벽돌공들은 실업자일까요? 신발과 옷, 일상생활의 필수품들이 한참 부족한데도 많은 제화공, 재봉사들이 놀고 있어요. 이런 부조리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자연법에 관해 당신이 말해주면 좋겠군요.
프로스페로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해줄게. 생산을 하려면 인간의 노동력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땅과 자원, 도구, 가게, 기계가 필요하고 상품이 만들어져서 시장으로 배달되는 동안의 수단들도 필요하다고. 간단히 말해서 네게는 자본이 필요해. 너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달랑 노동력만 가지고 있어. 그러니 땅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요청이 없다면 그들은 일할 수 없어. 소수의 우리들은 잠시 땅을 경작하지 않은 채 남겨두거나 자본을 쓰지 않더라도 괜찮지. 반면에 다수의 노동자들은 언제나 당장 필요한 것들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지.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원할 때,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편한 기간 동안 일해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일에는 이익이 없다고 계산한다면, 노동자들은 비록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그 물건이 꼭 필요하더라도 그저 놀아야만 하지. 이제 만족하나? 이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켈레 분명 모두들 당신 말을 솔직하다고 여길 거예요. 더 궁금할 게 없군요. 그러나 무슨 권리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땅을 가지나요? 자본이 소수의 사람들 손에, 특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죠?
프로스페로 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다른 사람들이 네 말에 반대하며 떠들어댔을 어설픈 주장들도 알 것 같고. 소유자의 권리는 그들이 땅을 비옥하게 개량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노동력을 자본으로 바꾼 저축에서 생기지. 더 솔직하게 말할까? 이 모든 상황은 역사적인 사실의 결과이자 수백 년의 인류 역사의 결과로 지금처럼 만들어진 거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는 투쟁을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항상 겪을 거야. 운이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누군가 손해를 보는 만큼 누군가는 이득을 보겠지. 승자에게도 불행이 있을지니! 이건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자연법이라고.
어쩌겠어. 다른 누군가가 내 돈으로 배불리 먹는 동안 나는 가난에 허덕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겨야 할까?
미켈레 그건 내가 정확히 원하는 바는 아니에요. 그러나 이런 건 생각해보겠어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다수라는 점을 통해, 삶이 투쟁이고 권리가 사실에서 나온다는 당신 이론에 따라 당신의 땅과 자본을 빼앗고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어쩌겠어요?
프로스페로 아, 그건 분명 복잡한 문제군. 그러나 다음 기회에 계속 이야기하자고. 지금 나는 극장에 가야 해서 말이야. 좋은 밤 보내시게나.
두 번째 대화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암부로조 프로스페로 씨, 지금은 우리 훌륭한 보수주의자들만 있으니 내 말 들어보세요. 지난 저녁에 당신이 그 멍청한 녀석, 미켈레와 말할 때 나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런 대화가 우리의 제도를 옹호할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거의 아나키스트처럼 보이던데!
프로스페로 이거 원, 나는 절대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암부로조 당신 이야기의 핵심은 현재의 모든 사회기구가 힘에 의지한다는 점이었고, 그래서 이 기구를 힘으로 파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논리를 제공했으니까요.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시민사회, 권리, 도덕, 종교들을 지배하는 최상의 원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나요?
프로스페로 당신은 역시 권리를 항상 입에 달고 사는군. 그 나쁜 버릇은 당신 직업 탓이겠지. 생각해보라고. 내일 정부가 국유화에 관한 법령을 발표한다면, 당신은 오늘 아나키스트들을 비난하는 것과 똑같이 태연하게 사적 소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오. 그러고는 언제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권리라는 최상의 원리들에 의지하겠지. 아시겠소, 이건 단지 어떻게 부르는가의 문제라고. 당신은 권리를 말하고 나는 힘을 말하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신성한 경찰이야. 그걸 꼭 자기 편에 두도록 하라고.
암부로조 이봐요, 프로스페로 씨. 궤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매번 당신의 보수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건 불가능해보이는군요.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씩이나 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의 그러한 관점들이 질서를 위협하는 최악의 적들에게 얼마나 많은 논리들을 제공하는지를 모르고 있군요.
나를 믿으세요. 우리끼리 언쟁하는 건 적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그만둬야 해요. 사나운 광풍이 격동의 시대에 몰아치고 있으니 우리의 제도를 방어하기 위해 모두 단결하자고요. 우리의 위협받는 이익을 돌보기 위해 단결하자고요.
프로스페로 단결하자고? 좋고 말고. 그러나 강력한 조치가 없다면, 그리고 자유주의 정책들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텐데.
암부로조 오, 물론이죠. 우리에게는 엄하게 적용되는 엄격한 법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힘으로는 민중을 오랫동안 복종시킬 수 없어요. 특히 오늘날에는요. 선전에는 선전으로 맞설 필요가 있고, 우리가 올바르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프로스페로 당신 농담을 정말 잘하시네! 불쌍한 친구여, 우리의 공동이익을 위해 부디 선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하시길. 보수주의자들이 선전을 한다면 그건 위험한 말이지. 당신의 선전은 언제나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 그들이 자기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가서 너희들이 먹지 못하는 건 정당하다고 설득해보시오. 더군다나 그들이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들인데도 말이야! 그들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몫에 대해 신과 주인에게 계속 감사하도록 두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그러나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건 끝이야. 그들은 당신이 결코 통제하지 못할 적이 될 거야. 절대로 안 돼!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선전을 피해야만 하고 합법적이든 아니든, 때로는 법을 어기더라도, 신문을 폐간시켜야만 한다고.
암부로조 그건 맞아요, 맞아.
프로스페로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모든 단체들을 해산시켜야 해. 머리로 생각하는 놈들은 모조리 감옥에 보내야 하고.
체사레 좀 침착하세요. 그 열정이 당신을 집어삼키겠어요. 이걸 기억해야죠. 더 좋았던 시기에 다른 정부들이 당신이 말하는 조치들을 취했었다가 결국 붕괴해버렸다는 사실 말이에요.
암부로조 쉿, 쉿! 저기 미켈레가 아나키스트와 함께 와요. 작년에 불온한 성명서 때문에 저 아나키스트에게 6개월형을 선고했어요. 사실 법적으로 보면 문제 없는 성명서였는데…. 허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죄를 범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회를 보호해야 하잖아요!
미켈레 신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밤 프로스페로 씨가 던진 도전장을 받아들인 아나키스트 친구 한 명을 소개할게요.
프로스페로 도전은 무슨 도전! 우리는 단지 시간을 보내려고 친구들끼리 토론했던 것뿐이야.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어디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인 아나키즘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한번 설명해보시오.
조르조 나는 아나키즘 선생이 아니고 이 주제로 강의를 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내 사상을 옹호할 수는 있지요. 더구나 (암부로조 치안판사를 보면서 비꼬는 어조로) 여기 이 신사분은 틀림없이 아나키즘에 관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겠죠. 이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나키즘이라며 유죄판결을 내렸으니까요. 게다가 분명 양심적인 분이실 테니 무엇보다도 관련된 논리들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채 그렇게 했을 리는 없겠죠.
체사레 이봐요, 인신공격은 하지 말고 아나키즘에 관해 이야기할 거라면 지금 당장 시작합시다. 실은 나 역시 상황이 나빠지고 있고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몽상가가 될 필요는 없고,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폭력을 피해야만 합니다. 분명 정부는 노동자들의 주장을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국가산업을 보호하고 상업을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르조 이 어설픈 정부에게 바라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그러나 정부는 노동자들의 이익에 관심이 없을 겁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요.
체사레 그것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요?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는 능력이 부족했고 아마도 국가의 재난을 바로잡으려는 욕구가 거의 없었죠. 그러나 앞으로의 계몽적이고 양심적인 장관들이라면 다를 수 있어요.
조르조 아니지요. 그건 장관 하나의 문제가 아니죠. 그건 모든 정부, 즉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정부가 지닌 문제이지요. 정부는 가진 자들에게서 나오고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가진 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해요. 정부의 구성원들이 바로 가진 자들이니까요. 그러니 정부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
정부는 설령 그러고 싶어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사회문제는 한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인 원인들의 결과이고, 사실상 그런 원인들이 정부의 성격과 방침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정부에게 방어 임무를 준 체제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당신이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자고 말했죠. 그러나 그런 일자리가 없다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누가 사람들에게 돈을 줄까요? 사람들의 채워지지 않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생산을 통제할까요? 그런데 가진 자들은 노동자에게서 빼앗은 생산물을 팔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스스로 가진 자이기를 그만두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는 가진 자들이 독점해온 땅과 자본을 빼앗으려 들 테니까요.
이것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는 사회혁명입니다. 당신은 노동자와 농민, 특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이런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정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 겁니다.
산업과 상업을 보호하자는 당신 말도 그래요. 정부는 기껏해야 다른 계급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특정 산업계급을 지원하고 다른 지역의 무역업자를 희생시켜서 특정 지역의 무역업자를 지원할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고 다소의 편애와 부조리, 더욱더 비생산적인 지출만이 남지요. 모두를 보호하는 정부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정부는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다른 이가 생산한 부를 이전시킬 수 있을 뿐이니까요.
체사레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정부가 어떤 일을 하려고 들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면 어떤 조치가 가능합니까? 당신이 혁명을 일으키더라도 당신은 다른 형태의 정부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모든 정부가 똑같다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혁명 이후에도 모든 건 예전과 똑같을 겁니다.
조르조 만일 우리의 혁명이 단지 정부만을 바꾼다면 당신 말이 옳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 생산과 교환체제의 완전한 변화를 원합니다. 쓸모없고 해롭고 기생하는 기관인 정부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무엇도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달리 말해 사회를 위에서 지배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제로 요구할 수단을 가진 기관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해방이나 민중의 평화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당신은 내가 아나키스트고 아나키가 정부 없는 사회를 뜻한다는 점을 알고 있겠지요.
체사레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나요? 정부 없는 사회라니! 어떻게 그런 사회가 존재할 수 있나요? 누가 법을 만드나요? 누가 법을 집행하나요?
조르조 당신은 우리가 원하는 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네요. 본론을 벗어나는 시간낭비를 피하려면 내가 짧지만 체계적으로 우리의 강령을 설명하도록 해주세요. 그런 뒤에야 서로에게 이득이 될 사안을 토론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다음 기회에 계속하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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