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올바로 파악하는 유물사관
마르크스는 경제학을 연구하기 이전에 이미, 법학·철학·역사학을 공부하여 ‘유물사관material interpretation of history'을 확립했고, 이것이 ‘나의 모든 연구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먼저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관해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사회는 경제 영역, 정치 영역, 법률 영역, 문화 영역, 사회 의식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기 때문에, 사회를 ‘사회구성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경제 영역이 이 사회구성체의 ‘토대’이고, 정치·법률·문화·의식 등의 영역은 이 토대 위에 세워진 ‘상부구조’라고 봅니다. 또한 토대인 경제 영역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면서, 이것을 ‘생산양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생산력은 어떤 생산물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생산수단(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과 생산자들의 기술·지식이 생산력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이 생산력을 이용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처분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서로 맺는 관계를 ‘생산관계’(또는 소유관계)라고 말합니다.
계급사회의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또는 직접적 생산자)을 착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왜 이런 생산관계가 생겼을까요?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자기 혼자만 먹고살 수 있는 ‘생산력’ 수준에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산자의 기술과 도구 등이 발달하여 소수의 사람이 노동하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리하여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경제 영역에서 대립하는 계급들이 생기고, 이 계급들은 각각 자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거나 확대하기 위해 정치·법률·언론·종교·교육 등의 상부구조를 통해 서로 투쟁하게 됩니다.
이 계급투쟁에서 국가는 계급들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타협으로 화해시키면서 기존의 사회체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유지하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구입니다. 다시 말해 국가는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하며, 정부의 세입과 세출의 세부 사항을 결정하고, 경찰·군대·정보기관 등을 이용하여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활동을 감시하며, 독과점의 피해를 줄이고 공정거래를 촉진하며, 대외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공권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실례를 역사에서 살펴봅시다.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 대체로 병원과 학교를 무료로 운영하고, 월세가 싼 공공 임대주택을 대규모로 건설하며,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주면서 직업훈련을 시키고, 저소득층에게 소득을 보조하며, 노인에게 충분한 연금을 제공하고, 장애인을 보호하며, 소득세의 누진율을 높여 부자가 더욱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했습니다. 이런 국가를 ‘복지국가welfare state'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자본가계급과 임금노동자계급의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선의의 제3자’로서 두 계급의 이해관계를 ‘중립적으로’ 화해시킨 실례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주장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이 복지국가를 세우지 않았다면, 노동자계급과 서민의 쌓인 불만이 폭발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사회가 설립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에는 소련이 새로운 사회의 모델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에서는 일자리를 잃고 빈곤에 시달렸으며 1939년부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대포 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유럽의 유권자들은, 1945년부터 ‘실업자가 없는 완전고용’과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를 국가 정책의 첫 번째 과제로 채택하지 않는 정당에게는 투표하지 않기로 작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권자들의 절박하면서도 강력한 요구를 무시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어떤 정당도 집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본가 정당(영국의 보수당)이나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 정당(영국의 노동당)은 복지국가를 선거 강령으로 제시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유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복지국가는, 국가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선의의 제3자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서민들의 거대한 자본주의 반대 정서에 부닥쳐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자본가계급과 국가가 궁리해 낸 탈출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한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예컨대 1970년 6월의 총선에서 집권한 영국의 히스E. Heath(1916~2005) 보수당 정부는 기술 도입과 임금 억제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1971년 8월 ‘노사관계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피켓 수가 제한되고 동정파업은 불법이며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노조가 손해를 배상해야 했습니다. 노동조합은 전국적으로 노사관계법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와 파업을 행했고, 특히 1973년 10월의 제1차 석유파동 이후 광부노조가 파업을 선언하자, 히스 수상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모든 정부기관과 기업들에게 주 3일 근무를 명령하면서 1974년 2월 총선을 실시했습니다. 보수당은 “누가 영국을 다스리는가? 선거에서 이긴 정부인가, 아니면 노동조합인가?”를 구호로 삼았지만, 야당인 노동당에게 패배했습니다. 노동당은 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소수당 정부’를 구성하여,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고 광부노조의 파업을 종결시키며 노사관계법을 폐기했습니다. 그 뒤 1979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당의 대처M. Thatcher(1925~2013) 수상은 앞에서 말한 ‘복지국가’를 해체해야만, 부자들의 조세 부담을 줄이면서, 노동조합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의 정치’(이것이 ‘자본가계급의 독재’이고,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핵심입니다)를 강화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감축하고, 교육·건강·실업자·퇴직자에 대한 사회 서비스를 축소하며, 긴축내핍정책을 강화하고, 자유로운 영리 활동에 대한 규제들을 철폐하며, 수익성이 높은 독점적인 국유기업들을 민간인들에게 불하하고, 소련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국방비를 증가하며, 도시 폭동에 대항하기 위해 빈민 구제보다는 경찰 병력을 강화하고, 히스 시기의 노사관계법을 부활시키면서 파업하기 위해서는 노조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정치적 분쟁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규정 등을 추가했습니다.
이 개정 노동법에 의거하여, 대처 정부는 가장 전투적인 광부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이른바 국영 탄광의 ‘비능률적 광구’를 폐쇄하는 조치를 단행합니다. 이에 맞서 광부노조는 1984년 3월 5일에서 1985년 3월 3일까지 1년 동안 파업을 계속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는 경찰을 대규모로 동원하여 노동자들과 ‘격투’를 벌이기까지 했으며, 이 파업이 노동법의 규정들을 어겼다는 이유로 광부노조와 조합장을 고소하여 광부노조는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했고 재산을 압류당했습니다. 광부노조의 패배로 영국의 노동운동은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수당의 신자유주의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노동분쟁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언론재벌 머독Rupert Murdoch(1931~ )이 런던에서 신문사들―뉴스오브더월드, 더 선, 타임스, 선데이타임스―을 매입하고, 네 개의 신문사 본사를 전통적인 신문사 밀집 구역인 플리트 스트리트Fleet Street가 아닌 이스트 엔드의 부둣가인 와핑Wapping에 비밀리에 새로 지은 뒤에, 기존의 신문사 제작진들 모두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새 건물로 이사 오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협박장을 1986년 1월에 보냅니다. 이리하여 1년 이상에 걸친 파업이 일어났는데, 머독은 노동조합을 ‘불법 파업’으로 고소했고, 법원은 노동조합에 벌금을 선고하며 특히 6명보다 많은 조합원이 피켓을 들었다고 ‘불법 피케팅’을 중단하라고 선고합니다.
한국에서도 법원이 불법 파업이라고 판결하여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벌금을 선고하는 일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제정한 노동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제대로 자본가 또는 사용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불법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은 파업 등의 단체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자본가와 협의해야 한다고 노동법은 규정하고 있는데, 자본가가 단체협상에서 불성실한 태도를 취해 시간만 질질 끄는 경우에도 노동조합이 파업하면 불법 파업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파업의 목적이 ‘근로 조건의 개선’이어야만 한다는 노동법의 규정을 매우 좁게 해석하여, 법원은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 공기업의 사유화(민영화)를 반대하는 파업,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반대하는 파업, 불법·부정 선거를 비난하는 연대 파업 따위를 모두 불법이라고 선고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동법의 조항들과 법원의 판결은 국가 기관들이 임금노동자들에게 오직 ‘임금노예’로서 자본가계급의 지휘·감독에 복종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노동 관련법과 법관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가 기구를 완전히 해체하고 부패 관료들을 철저히 내쫓아야 할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는 ‘관료층’(예: 소련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한 당과 정부의 특권 계급인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이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법원이 이른바 ‘불법 파업’에 대해 부과한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액과 가압류 때문에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생계비와 의료비를 돕고 법률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노란봉투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모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그것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생각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이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다가 새로운 사회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가를 간단히 살펴봅시다. 어떤 사회가 제대로 굴러간다고 말할 때는, 토대와 상부구조 등 사회구성체 전체가 서로 이가 맞아서 또는 균형을 이루면서 잘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마르크스가 특히 강조한 것은 공황과 그 뒤에 나타나는 불황 시기입니다. 공황은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생긴 불균형이 밖으로 폭발하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생산력은 몸이고 생산관계는 옷입니다. 몸이 자꾸 커지면 옷을 갈아입혀야 합니다. 옷을 갈아입히지 않으면 지금의 옷이 찢어집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좀 더 큰 옷으로 갈아입히려 하지 않고, 지금의 옷이 너무 좋다고 말하면서 커진 몸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제공황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생산방법이 개발되고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증가해서 상품들이 점점 더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산력이 발전하는 것인데, 이 생산력의 발전이 너무 많은 상품들을 생산함으로써 시장이 포화상태에 빠져 상품들이 팔리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상품이 안 팔리면 자본가들은 공장 문을 닫으며, 공장 문을 닫으면 실업자가 많아집니다.
그런데 상품들이 안 팔린다는 이야기가 그 상품들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상품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돈이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상품들이 안 팔리면 그 상품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주면 될 것 아닙니까? 이런 훌륭한 방법은 기존의 ‘생산관계’―가난한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를 변경시켜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공짜로 주는 방법’의 하나는 정부가 복지 정책을 세워 빈곤층에게 생활비를 주고 빈곤층이 그 돈으로 상품들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여 있던 상품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고, 공장 문을 닫을 필요도 없고 실업자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과 취업노동자가 세금을 냄으로써 정부는 거둬들인 세금으로 빈곤층에게 준 생활비를 메울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복지 확대와 경제 성장이 나란히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생산력이 발달할 때 이것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복지 정책을 실시하여 상품들의 판로를 개척해야 합니다. 몸이 커지면 좀 더 큰 옷을 입어야 몸과 옷이 균형을 이루면서 몸을 더욱 잘 자라게 하는 것처럼,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생산관계가 바뀌어야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균형을 유지하며 또한 생산력이 더욱 발달하도록 자극할 것입니다. 사실상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1945년 이후 1970년까지 채택한 복지국가가 바로 이런 노력의 산물입니다. 정부가 복지 정책을 확대하여 학교·병원을 무상으로 운영하고,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을, 저소득층에게는 소득 보조를, 노인들에게는 연금을 주고, 공공 임대주택을 건설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교사·의사·사회복지사 등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기업들은 상품 판매가 증가해 투자를 계속할 수 있으며, 이리하여 기업과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해 정부에 더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정부 재정은 안정되면서 복지 확대와 경제 발전이 나란히 진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73년 10월의 제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세계적 규모의 투기―증권 투기, 원료와 반제품에 대한 투기, 토지와 건물에 대한 투기―가 실패하면서 세계대공황이 발생했습니다. 이 대공황을 계기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케인스경제학이 물러나고,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의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이것을 대변하는 경제학은 프리드먼M. Friedman(1912~2006)의 통화주의였습니다―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본가들은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기술혁신을 촉진하여 더욱 다양한 상품들을 많이 생산하면서도, 임금노동자들에게는 더욱 낮은 임금을 주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고 정부의 복지 정책에 필요한 세금을 더욱 적게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리하여 생산력의 증가에 어울리는 분배 관계와 소비 수준 등 생산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상품들이 팔리지 않으면서 생산이 정체되고 공장은 놀게 되며 실업자가 생기고 주민의 생활수준은 저하하여 실망과 자살이 증가한 것입니다.
이처럼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균형이 파괴되면 그 사회의 인적·물적 자원은 대규모로 낭비되기 때문에, 생산관계를 바꾸려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투쟁이 시작되어, 상부구조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투쟁이 격화됩니다. 이 투쟁에서 피지배계급이 이기면 사회는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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