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 드디어!”
“드디어 뭐?”
나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다. 목소리는 이 책의 첫 줄을 쓸 때부터 내 안에서 배회하고 있다. 그것은 매복한 채 엿본다. 틈새를 기다린다. 그것은 열등생이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다. 언제나 경계하고 있는. 교사로서의 내 활동에 대해 지금의 나보다 더 비판적인 시선을 건네는 경향이 있는. 나는 그 족쇄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 늙어왔다.
“뭐가 드디어야?”
“드디어 너만의 ‘거기’에 도달하고 있잖아! 교사인 너의 ‘거기.’ 네 무능의 지점. 지금까지 네가 쓴 글을 읽어보면 넌 아주 나무랄 데 없는 선생처럼 보이잖아, 하 참! 기가 막혀서! 창작으로 온갖 철자 습득 장애를 구해주고, 각자에게 잊지 못할 문학을 가득 채워주고,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정신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잖아! 그렇다면 실패는 전혀 없네?”
“……”
“그 수에 넘어가지 않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거야?”
내 유령들을 깨우기 위해 나의 심연으로 거슬러올라가는, 복수심에 불타는 형편없는 꼬마 녀석! 그 일은 성공한다. 곧이어 세 개의 얼굴이 나타난다. 고3 교실 구석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얼굴. 그애들은 바칼로레아 국어 시험에서 몇십 점을 더 따라잡아야 했고 『이방인』을 설명해내야 했건만 내가 얘기해주는 카뮈에 대해 철통처럼 꽉 닫혀 있었다. 수업에는 꼬박꼬박 출석했지만 생각은 완전히 딴 데 가 있었다. 점을 찍어놓은 듯 앉아 있는 세 명의 이방인. 나는 그들에게서 관심의 표시라곤 전혀 끌어내지 못했고, 그들의 침묵은 나를 일방적인 수업에 꼼짝없이 묶어놓았다. 나의 세 명의 ‘뫼르소’들 …… 그들은 내게 일종의 강박관념이 되어버렸다. 교실 안의 나머지 학생들도 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게 다야?”
“……”
“그게 다냐고, 단지 그 세 명뿐이야?”
아니, 고1 반의 미셸이 있다. 열입곱 살쯤이던 그애는 다니던 학교마다 계속 퇴학당해 나의 추천으로 우리 학교로 왔는데, 기록적인 짧은 시간 안에 엄청 큰 싸움을 벌이고 마침내 내 눈앞에서 폭발한 뒤(“에이 씨발! 난 당신한테 그 무엇도 요구한 적 없다고!”)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다른 애들 얘기도 할까? 한 무리의 좀도둑이 있었지. 내 도덕적인 교훈에도 불구하고 백화점들을 휩쓸고 돌아다녔던. 자, 됐냐?”
“그런 얘길 들으니 좀 낫군.”
“꺼져버려, 모두에게 훈계나 하는 너의 지지리 못난 즐거움을 난 너무 잘 알아! 내가 네 말을 들었더라면 누구도 가르치려 들지 않았을 거고, 아침 일찍 일어나 라 고드 암벽의 작은 능선이나 산책하러 갔을 거다.”
비웃음.
“결과적으로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여기 있잖아. 열등생의 어원이 삐딱하게 옆으로 걷다가 콱 달라붙는 게라잖아 ……”
대화의 끝. 다음번에 계속. 그는 내 심연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성급하게 준비했던 몇몇 수업에 대한 후회, 결심까지 해놓고 뒤늦게야 되돌려준 몇 묶음의 채점 답안지에 대한 후회 속에 나를 남겨두고 말았다.
우리 교사들의 ‘거기’…… 돌연한 피로가 몰려드는 그 밀폐된 장소에서 우리는 우리의 포기를 가늠한다. 더러운 감옥. 그곳에서 우리는 해결책보다는 죄인을 찾아내는 일에 더 골몰하며 맴돌고 있다.
20
그렇다, 우리 교육자들이 한데 모여 웅성대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낙담하는 순간 우리의 열정은 우선 죄인을 찾아내는 일에 쏠린다. 게다가 국가교육이란 각자가 자신의 죄인을 쉽게 지목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듯하다.
오락기 위의 구슬들처럼 부산한 애들을 앞에 두고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묻는다.
“그러니까 유치원에서는 가만히 서 있는 걸 가르치지 않았나요?”
새로 입학한 중1 아이들이 문맹이라고 판단한 중학교 선생이 비난을 퍼붓는다.
“대체 초등학교에서는 뭘 하는 거죠?”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는 어휘 결핍의 고1 학생들을 보고 고등학교 선생이 한탄한다.
“중학교 때까지 애들이 도대체 뭘 배운 겁니까?”
첫 과제를 면밀히 검토한 대학교수가 놀라며 묻는다.
“이애들이 진짜로 고등학교를 나오긴 한 건가요?”
젊은 신입사원을 마주한 산업체 간부가 목청을 높인다.
“설명해봐요. 대학에서는 대체 뭘 하는 겁니까?”
이에 그리 어리석지 않은 여자 신입사원이 대답한다.
“대학은 당신의 조직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형성합니다. 즉 교양 없는 노예와 맹목적인 고객이죠! 그랑제콜은 여러분의 십장들─앗, 죄송, 여러분의 ‘간부들’─을 규격화하고, 여러분의 주주들은 주가 현황판을 돌아가게 하죠.”
“가정의 직무유기요”라고 교육부 장관이 한탄한다.
“학교는 더이상 예전의 학교가 아니에요.” 가정이 유감을 표한다.
여기에 자기 체면을 지키려는 온갖 제도권의 내부 소송이 보태진다. 예를 들면 영원한 신구 논쟁 같은 것.
“‘바보를 양산하는 교육제도’를 부끄러워하라!”고 우민화정책의 격렬한 비판자인 ‘공화주의자들’이 고함친다.
“엘리트 공화주의는 물러나라!”고 민주주의 발전의 이름으로 교육자들이 대꾸한다.
“노조들이 국가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이 비난한다.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노조들이 반박한다.
“중학교 1학년의 문맹률이 그 정도라니! 우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 왕년의 관리가 한탄한다.
“그 시절에야 중학교가 귀족 계급의 임원들만 받아들였으니까. 그때가 좋았죠?” 짓궂은 사람이 빈정댄다.
“이놈은 제 어미를 꼭 닮았군!” 분노한 아버지가 노발대발한다.
“당신이 조금만 더 엄했더라면 얘가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거예요!” 격분한 어머니가 대꾸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어떻게 공부를 해요?” 낙담한 청소년이 이해심 많은 선생의 귀에 대고 한탄을 늘어놓는다.
체계적인 잔혹함을 이용해 자기 선생을 오랜 신경쇠약 치료를 받도록 병원으로 보내버린 열등생조차 흡족한 얼굴로 먼저 이렇게 설명한다.
“그 선생님한텐 권위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걸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에겐 늘 우리의 무능을 책임질 누군가를 우리 자신 안에서 지목할 수 있는 원천이 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냥 이 모양인걸요.” 열등생이던 나는 선량한 지킬 박사가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하이드 씨를 아프리카 오지로 추방해줄 것을 요구하며 엄마에게 그렇게 편지에 썼다.
21
산뜻한 꿈을 꿔보자. 이 여선생은 젊고, 솔직하고, 규격화되지 않았으며, 운명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고, 완벽한 존재감이 있다. 그녀의 교실에는 모든 학생들, 프랑스 전역의 학부모, 동료교사, 고용주들로 가득하고, 거기에─의자를 보태서─지난 십년간의 교육부 장관들도 합류했다.
“정말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나요?” 젊은 여교사가 묻는다.
교실에는 대답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말이 제가 방금 들은 말인가요?”
침묵.
그러자 젊은 여교사는 전 교육부 장관에게 분필을 건네며 요구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칠판에 써주세요.”
“그 말을 한 건 내가 아니라 교육부 공무원들이오!” 전 장관이 항의하며 말을 잇는다. “새 장관이 올 때마다 그들이 일러주는 첫마디가 바로 그겁니다. ‘어쨌든 장관님, 우리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라고 말이오. 하지만 나는 온갖 개혁안을 제안했으니 그런 말을 했다는 의심을 받을 순 없어요! 그런데도 그렇게나 많은 저해 요소가 개혁적인 나의 재능이 표출되는 걸 막았으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오!”
“그 말을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칠판에 쓰기나 하세요.” 젊은 여교사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업다.
“없다에 ㅅ 받침을 덧붙이세요. 그런 게 바로 문제의 일부랍니다. 사소한 문제가 아니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좋아요. 장관님 생각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가요?”
“모르겠소.”
“자, 여러분. 그러니 그게 무엇인지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실패하게 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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