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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식품점의 허울
“높이높이 쌓아 두고 싸게 판다.”
- 잭 코언(테스코 창업자)
슈퍼마켓
아무리 철학적으로 ‘로커보어locavore(지역에서 나는 식품만 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농민시장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일주일에 두어 번 쇼핑카트를 밀면서 슈퍼마켓 통로를 오르내린다.
알고 보면 이러한 쇼핑 행위는 아주 전형적인 것이다.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있는 식품마케팅협회Food Marketing Institute(미국 전체 소매 식품 매출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식품소매협회)에 따르면 평균적인 슈퍼마켓 쇼핑 고객은 매주 1.7회 슈퍼마켓에 간다.
무엇보다 슈퍼마켓은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슈퍼마켓은 보통 일주일에 7일 문을 열며, 일부 체인이나 어떤 곳은 하루 24시간 내내 영업하고 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기도 전에 그곳에서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곳에서 파는 식품은 대부분 값이 싸다. 그렇긴 해도 돈을 펑펑 쓸 의사가 조금만 있다면 한겨울인 1월에도 딸기를 살 수 있다. 그러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먹을 것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식품 가격에 대한 이러한 독점적 지배력 때문에 어쩌면 슈퍼마켓이 태초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고 생각될 지경이다. 슈퍼마켓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슈퍼마켓이 겨우 네 세대 전에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학자이자 식량 정의 운동가인 라즈 파텔은 《식량전쟁 ─ 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Stuffed and Starved: The Hidden Battle for the World’s Food System》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슈퍼마켓은 특허 받은 발명품이다. 모든 혁신적인 발명이 그렇듯이 슈퍼마켓은 이러한 생각이 싹튼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공업국가, 특히 미국은 식품을 비롯한 제품을 만드는 일에 무척 능수능란했다. 농부들은 작업 시간에 제한이 있는 밭갈이 말과 인간 노동력 대신에 트랙터, 콤바인 같은 기계화된 농기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들은 훨씬 더 넓은 토지를 개간하여 작물을 심고 수확할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농장을 경영할 수 있었다. 농부들이 농기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면서, 농장에서 다양한 작물과 가축을 생산하던 혼합농업은 가급적 단일한 곡물, 콩류, 유지작물(주로 식용의 기름을 짜기 위해 심는 작물─옮긴이)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단작농업으로 바뀌었다. 가축이 병들기 쉽고 도축과 판매에 적합하지 않은 집중적인 가축 사육장이 항생제 덕분에 가능해졌다. 마찬가지로 몇 번 수확하기도 전에 지력을 고갈시켰을 단일작물 재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화학비료와 살충제, 다른 토양 처리제 덕분에 가능해졌다. 기본적으로 농장은 낮은 단가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한정된 종류의 생산물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쪽으로 특화된 공장이 되었다.
산업 공정 덕분에 산업적 농업이 가능해지자 산업적 농업을 통해 산업적 식품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식품 제조업체가 유통기한이 긴 포장식품이나 조리식품으로 끊임없이 재결합될 수 있는 한정된 종류의 원재료에 의존하기 시작하자 더욱 더 많은 산업적 식품이 생산되었다.
식품 생산이 산업적 식품망의 끄트머리에서 효율성을 띠게 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은 순식간에 과잉생산으로 변화했다. 다른 소매 상품과 마찬가지로, 식품 가격이 내려가면 사람들은 실제로 필요하지 않는데도 여분의 식품을 사들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상품작물이 과잉생산되면 생산 감소가 아니라 소비 증가를 중시하듯이).
하지만 ‘실제로’ 소비를 늘리기 위해 식품 소매업체들은 현대식 셀프서비스 식품점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이 셀프서비스 식품점은 북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대량소비라는 대항수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저렴하며 산업적으로 생산된 새로운 식품과 거기에 짝을 맞춘 셀프서비스 모델이라는 두 가지 신개념을 모두 이용했다.
생각하는 것조차 거의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예전에는 식료품을 구입하려면 사고 싶은 품목과 수량을 적은 목록을 가게 주인에게 주었다(잡화점은 바나나나 감귤 때로는 건포도 같은 몇 가지 물품을 살 수 있는, 주로 마른 식료품 가게였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선한 농산물은 농민시장식의 중앙 시장에서 팔았다. 신선한 고기는 정육점이나 시 공설시장의 정육 가판대에서 팔았다). 가게 주인은 주문 받은 갖가지 식료품을 찾아 모은 후, 손님이 값을 치르면 계산대 너머로 그 물품을 건넸다. 만약 가게 주인에게 신용이나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면 외상 장부에 표시하고 물건을 받을 수도 있었다. 물품은 대부분 뒷방에서 가져온다. 가게 주인이나 점원이 방금 들어온 새 상품을 한번 써 보라고 권하기도 하겠지만 웬만해서는 충동구매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 그 시절에는 식료품이나 잡화를 사려면 여러 전문점에 몇 차례 들러야 했다.
1914년 앨버트 제라드와 휴 제라드 형제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일어난 식료품 가격 급등을 막을 수 있는 기업가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진열대 앞에서 고객이 스스로 필요한 식료품을 고르게 해서 간접비를 줄인다는 생각이었다. 끝없이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한 급진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사람들이 물품을 직접 찾아내기 쉽도록 제라드 형제는 식품 품목을 알파벳 순서로 갖추어 진열함으로써 고객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이 가게에 ‘알파 베타’라는 이름을 붙였다.
식료잡화상 클래런스 손더스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는 좀 더 깊이 생각했다. 손더스는 1916년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자신이 만든 최초의 셀프서비스 식료잡화점 ‘킹 피글리 위글리’를 개업했다. 이 새로운 피글리 위글리 소매점 모델에서는 고객들이 회전문을 밀고 식료잡화점 매장에 들어와 쇼핑 바구니를 들고는 통행 흐름이 한 방향인 각 통로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코스를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계산대에 다다르고 거기서 돈을 지불하고 바로 지나서 있는 회전식 출구를 통해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슈퍼마켓에서는 고객이 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식료 잡화점이 미로같이 생긴 기본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게다가 고정수요 상품을 매장에서 가장 외진 곳에 두는 소매 수법이 더해져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들르고 수많은 고수익 제품 곁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자동차나 화장품, 향수 같은 몇 가지 물품을 제외하고는 셀프서비스 소매 모델이 소비재 쇼핑 경험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특허사무소에 정식으로 제출한 최초의 인물은 제라드 형제가 아니라 손더스였다. 1917년 ‘셀프서비스 상점’이라는 자신의 발상에 대해 미국 특허 1242872를 받았다. 10년이 지나지 않아 피글리 위글리 상점 1,200곳이 미국 전역에서 문을 열었다. 1932년에는 이 셀프서비스 상점의 수가 2,660개에 달했다.
1937년 손더스는 식료 잡화점의 기능을 완전히 자동화하기 위해 셀프서비스 계산대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도 했다. ‘키 다즈 올key does all'을 어색하게 조합한 키두즐Keedoozle이란 이름의 식품점이 겨우 몇 곳 세워졌으나, 있어야 할 자동 판매 기술은 분명 없었다. 오늘날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손더스가 처음 시도한 상점이 실패하고 세월이 50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셀프서비스 계산대가 소매점 분야의 현실이 되었다. 산업적 식품망에서 실제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대상인 계산대 점원(소비자에게 남겨진 유일한 접촉)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너무나도 무관심한 듯해서 놀랍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식품을 생산하는 농민이나 어민, 목장주인이나 과일 재배자를 볼 수 없다. 머지않아 식품을 바코드 스캐너에 통과시켜 물건 값 지불을 처리하는 사람을 더 이상 못 볼 수도 있다(당분간 나는 계속 도전적인 자세로 타협을 거부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몇 곳 남지 않은, 사람이 처리하는 슈퍼마켓 계산대에 줄을 설 것이다).
식품의 단가를 낮추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산업적 식품 체계와 식품 소매점 역할을 하는 슈퍼마켓 모델이 몇 세대 안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졌다. 오늘날 북아메리카에서 소비되는 식품의 99퍼센트가 산업적 식품 체계를 통해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이 지배적인 모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 마나 한 소리이다. 이 모델에 바치는 충성의 대가로 평균적인 식품점에서 38,718가지 다양한 식품 품목을 고를 수 있다. 잘 팔릴 것으로 기대되는 17,000종의 신제품이 해마다 이런 식품점에 출시되고 있다. 값은 또 얼마나 싼가! 미국인은 소득의 평균 9퍼센트 정도를 식품 구입비로 쓴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적다. 교통비로 쓰는 것보다 더 적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선택이라는 환상
식품점 안에는 선택이라는 환상이 있다. 4만 가지 품목이라니 종류가 아주 많은 것 같지만, 자연의 물품 재고 목록에 견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농업이 산업화된 결과 20세기에 먹거리 생물다양성의 75퍼센트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먹거리 다양성의 최대 90퍼센트까지나 사라졌다고 한다. 재배되는 여러 형태의 당근, 콩, 시금치 같은 식량 작물의 다양성, 수산 식품 자원의 유전적 다양성, 가축 품종의 다양성과 우리가 이용하는 먹거리의 전체 생물 다양성이 우리 시대에 급격히 감소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선택할 수 있었던 먹거리의 종류는 지금보다 적기는커녕 사실상 더 많았다.
무슨 까닭일까? 다양성은 기계화의 적이다. 그래서 산업적 농업은 장거리 수송을 위해 크기나 모양이 일정하고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맛과 같은 품질은 별로 안중에 없다. 겨우 몇 세대 전에 있었던 맛의 만신전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때 이후, 산업적 식품 체계의 인위적 선택 탓에 과일과 채소 품종의 97퍼센트 정도가 사라졌다. 해마다 전 세계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2퍼센트가량 사라지고 있다. 어쩌면 점점 더 적은 종류의 먹거리를 좋아하는 법을 배우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단 150가지 서로 다른 식량 작물이 대규모 상업농으로 재배되고 있다. 농민들이 5천 가지가 넘는 식물종을 작물로 재배해 왔는데도 산업적 식품망은 그중 단 3퍼센트만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북아메리카에는 수백 가지 사과 품종이 있다. 이런 사과는 크기와 모양, 빛깔이 다 다르다. 색조와 촉감, 풍미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저장이 수월한 것도 있고 잘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애플파이를 굽기에 안성맞춤인 것도 있고 말리기에 최적인 것도 있다. 훌륭한 사과 주스를 만드는 것도 있고 사과 탄산음료의 재료가 되는 것도 있다. 6월에 나뭇가지에서 익는 것도 있고 10월까지 달려 있어야 하는 것도 있다. ‘이것이’ 바로 선택이다.
안타깝게도 식료 잡화점에서는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없다. 지난번에 나는 식품점에 그래니스미스, 골든딜리셔스, 스파르탄, 후지(부사)가 나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운이 좋으면 핑크레이디 사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과 품종은 모두 날것으로 먹기 위한 것이다. 다 익기 전에 따서 멍들지 않게 운송하고 몇 달 동안이나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된다. 만약 내가 직접 사과 주스를 만들거나 정말 좋은 파이를 굽고 싶다면 나한테 맞는 사과 품종이 여기에는 없다.
토마토도 마찬가지다. 수백 가지 유형과 모양 가운데 산업적 식품망에서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것만이 허용된다. 다 익은 후에 딴 토마토를 맛보고 싶어도 슈퍼마켓에서는 그런 토마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사과와 토마토를 선택하는 일은 놀랍게도 일 년 내내 변함이 없다. 이 선택의 균일성을 ‘세계의 항시 여름global summertime'이라 한다. 곧 식품의 공급 라인이 전 세계 여러 곳까지 미친다면 그 어딘가는 항상 여름이라는 뜻이다. 1월에 갖추어 놓은 농산물이 6월에 갖추어 놓은 농산물과 너무도 비슷한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브로콜리는 사실 계절식품이다. 피망도 마찬가지다. 딸기, 사과, 토마토도 마찬가지다. 식품점 안에서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더욱이 진열대나 냉장고 안에 있는 식품을 선택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대개 진정한 선택권이 아니다. 여러 상표가 붙은 달걀 가운데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런데 2010년 8월 아이오와 주 농장 두 곳에서 발생한 살모넬라균 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전국에서 달걀 5억 개가 회수되었을 때 다른 수십 개 상표의 달걀이 영향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5억 개 모두 대규모 생산 업체 한 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갖가지 상표를 달고 판매되었지만 모두가 동일한 거대 기업농에서 생산되었다. 이 정도로는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다면, 미국 식품 공급의 90퍼센트 뒤에는 단 5개 기업만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슈퍼마켓 바깥에서도 환상은 계속된다. 여러 대형 체인점 가운데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슈퍼마켓을 통하는 것 말고는 식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거의 없다. 코스트코와 월마트 가운데 양자택일하는 것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그 속에 들어 있는 재료는 똑같다.
무정부 상태에서 아홉 끼니
특정한 시점에 특정 도시나 국가가 비축하고 있는 식량을 추적 조사하는 단체인 식량보장서클에서는 논의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논의에서는 놀랄 정도로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주제가 있다. 요즈음 도시에는 특정한 시점에 주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식량이 단 3일치만 비축되어 있다는 추정이다.
2000년에 영국의 농민과 화물트럭 운전사들은 휘발유와 디젤유 가격 인상과 함께 자신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정부의 유류 관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략적인 시위와 도로 봉쇄 탓에 국가의 유류 공급 상황이 크게 지장을 받았고 차량을 통한 수송이 마비되었다. 도시 진출입 교통 시스템을 방해하기 위해 주요 간선도로 위에서 이른바 파상 봉쇄도 이루어졌다. 세인스베리, 테스코, 세이프웨이 같은 대형 식품 체인점에서는 사재기가 눈에 띄었으며, 매장 진열대에 상품을 다시 채울 만큼 안정적인 배달이 안 되자 사흘째 되던 날 이 체인점들은 식품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영국 정부는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 얼마나 빨리 식량이 동날 수 있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곧 영국 정부는 식량보장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농촌청Countryside Agency이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2007년에 농촌청장 캐머런 경은 영국이 공급 라인의 정상적인 흐름에 지장이 생겨 일어나는 식량 파동에 사실상 몹시 취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 보고서는 영국 대도시들이 특정한 시점에 ‘무정부 상태에서 아홉 끼니’를 버틸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대형 슈퍼마켓들이 사흘째 되는 날 남은 물품에 대해 공급 제한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대형 슈퍼마켓들이 이것을 ‘무정부 상태에서 아홉 끼니’라고 부를 리는 없겠지만, 이른바 ‘3일의 법칙’이라는 것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마켓 소매업은 경쟁이 무척 심하다. 슈퍼마켓 수익은 판매량에 의존하게 마련이다. 식품마케팅협회FMI가 발표한 2010년도 통계에 따르면, 세금을 내고 나면 슈퍼마켓의 연평균 순수익이 1퍼센트가 채 안 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수익 가운데 얼마라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비용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데 매달린다. 식료품 소매상의 처지에서 재고를 많이 쌓아두는 것은 손해가 크다. 우유나 빵,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처럼, 시들거나 썩거나 유통기한을 넘기거나 곰팡이가 생기면 대부분 버리는 상하기 쉬운 식품의 재고는 식료 잡화점으로서는 최악의 재고다. 손님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미끼 상품임에도 이런 제품을 매장 뒤쪽 깊숙한 곳에 놓아둔다. 손님들이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더 비싸며 가공 처리된 다른 제품들 곁을 어쩔 수 없이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식품 체인점들은 무척 정교한 적기 공급 생산 방식의 ‘가치 사슬 물류value chain logistics'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재고 관리를 잘 해서 특정한 시점에 유통 체계상에 사흘치 식량만 남겨놓으면 된다.
식품점에 물품을 계속 공급해 주는 이 엄격하게 통제된 공급 라인이 문제가 생길 때까지는 순조롭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먹는 식품 대부분이 아주 먼 곳에서 오고 있는 오늘날, 연료 공급이 중단되거나 자연재해로 도시 진입이 차단되거나 테러 공격으로 국경이 폐쇄되어 국내 수송이 정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흘치 식량은 결코 충분한 재고가 아니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 두 대가 돌진했을 때, 미국 내 운송이 크게 제한받았지만 사흘쯤 지나 곧 뉴욕에서 식량이 떨어지자 결국 재개되어야 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에 물자 보급이 끊겼을 때도 동일한 ‘3일의 법칙’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은 특정한 시점에 미국이나 캐나다의 어떤 도시에도 다 적용시킬 수 있다. 현대 식료품 ‘공급망’ 체계에 관해 직접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나 비상 대책 정책 결정자에게 한번 물어보라. 그들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에 기껏해야 3일치 식량만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슈퍼마켓은 사실상 산업적 식품 체계를 위한 아울렛 몰에 불과하다. 바야흐로 산업적 식품 체계가 끝나가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마지막으로 매장 진열대가 텅 비게 될 경우 어떻게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수많은 기관과 경제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것이 어느 날 내가 매력적이지도 않고 사랑받지도 못하지만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뿌리채소들과 양배추 몇 포기를 찾다가 포기하고는 농산물 매장에 서 있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풍요의 환상 즉 슈퍼마켓 모델이 무너진 이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교묘한 속임수라는 것을 알았다. 마이클 폴란이 날카롭게 지적하듯이, 우리들은 우리 몸과 환경을 해치면서 “산업적 식품망의 끝부분에서 먹고 있다.” 하지만 그 산업적 식품망의 끝부분에서 먹는 일도 ‘끝나가고 있다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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