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금부터 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해 여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나 외에 다른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었다. 인간의 일을 영원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는 더욱더 어려웠었다. 하루 이틀,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라면 뭐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의 동기를 희망과 공포라고 한다면, 그해 여름 나는 공포 쪽에서 행동의 동기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인간 행동의 두 동기인 희망과 공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으르렁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책임감, 죄책감, 모욕감, 동지애, 우정, 존경, 용기, 믿음, 불안, 체면, 염치, 슬픔과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을지, 공포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지 여러모로 애매모호했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단순하기를 바란다. 확실성 속에 있거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해 여름 내가 만난 사람들은 삶의 불확실성 앞에 거의 벌거벗은 채로 서있게 되었다. 그리고 긴 이야기들을 갖게 되었다. 그 시작은 이렇다.
2013년 6월 7일 저녁 7시, 나는 모터쇼에 참석했다. 그 모터쇼의 이름은 H-20000이었다. ‘20000’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개수를 가리키고 ‘H’는 HEART 혹은 HOPE 혹은 사다리를 뜻한다고 들었다. 그 모터쇼에 나온 차는 달랑 한 대였다. 그 차를 만든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그 모터쇼의 작은 역사는 이렇다. 해고된 지 5년째에 접어들자 노동자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뭐였지?’
‘왜 우리는 매일 투쟁만 하고 있는 거지?’
‘맞아. 우리 원래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었잖아.’
‘맞아. 우리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거잖아.’
‘그런데 어디서 만들지? 거리에서 만들 수는 없잖아.’
‘부품들은, 공구들은 어떻게 구하지?’
차를 만들고 싶어 하던 노동자들은 시민 후원금을 모았다. “시민 후원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세상에 단 한 대뿐인 자동차.” 이것이 H-20000 프로젝트였다. 대략 8천만 원이 모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노동자들은 중고 자동차 가게에서 2004년산 코란도 밴을 한 대 구입했다.
그들은 5월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9시, 경기도 용인의 한 자동차 정비소로 모였다. 그날 아침 그들은 새로 산 스즈키 작업복을 입었다. 해고 노동자들의 등판에는 ‘SSANGYONG’이라고 써있었다. 또 ‘H-20000’이라고 써있었다. 그들은 서로 지퍼를 올려 주고 등을 토닥거리고 아직 내려앉지도 않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그들의 등 뒤에선 햇살이 작은 새처럼 춤을 추었다. 그들은 위풍당당하게, 그러나 멋쩍게 코란도를 향해서 걸어갔다.
“자, 나에게 맡겨.”
걸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자부심과, 그리고 겸연쩍음이 함께 묻어 있었다.
그들 서른 명가량의 노동자들은 용인의 정비소에서 코란도 한 대를 24시간 해체했다. 그리고 해체한 것들을 다시 24시간에 걸쳐서 조립했다. 낡은 부품은 새것으로 교체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사진과 영상으로 보았다. 처음에는 서울 광장에 앉아서 7분가량 짧게 편집된 영상으로 보았다. 그 영상을 보는 동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영상 속에서 노동자들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웃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그전에 몇 번이고 본 얼굴과는 달라 보였다. 그 순간 그들에겐 한 점 그늘도 없었다. 내가 본 것은 바로 그들이 잃어버린 얼굴이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평범함’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허름한 맥줏집에서 열린 모터쇼 뒤풀이에 참석했다.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머물러 있는 청춘일 줄 알았는데……” 노래 가사가 희뿌옇게 흘러나왔다. 내 앞에 한 노동자가 앉았다. 영상에서 본 얼굴이었다. 영상에서 본 스즈키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였다.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널찍한 얼굴에 비해 입이 작았다. 얼굴은 볕에 그을려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가는 촉촉했다. 눈동자엔 동경의 빛이 아른거렸다. 그에게 말을 걸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몽롱한 행복감 속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자꾸만 이렇게 말했다.
“또 하고 싶다.”
나는 그 말에 통증을 느꼈다. 그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나는 며칠 뒤 대한문 옆 던킨도너츠에 앉아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이름은 김대용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개인택시 기사였다. 아버지는 택시를 애지중지했다. 새벽 2시에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날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꼼꼼히 세차하곤 했다. 어떤 날은 “대용아 일어나라!” 하며 어린 아들을 억지로 깨워서 같이 세차할 때도 있었다. 김대용은 중학교 때 처음으로 차에 시동을 걸어 봤다. 차는 조금 떠는가 싶더니 부르릉 소리를 냈다. 천과 쇠로만 된 것이 움직이다니, 신기했다. “마치 내가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공고에 진학했다. 학교에선 기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기계에 미친 놈으로 통했다. 군대를 마치고 그는 잠시 MBC의 조명 기사로 일했다. 어느 날 그는 까맣게 잊었던 것을 갑자기 기억해 내듯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맞아. 나는 차를 좋아했지.’
그는 1995년에 쌍용자동차에 입사했다. 도장반에서 일했다. 그는 일을 좋아했다. 그는 맑은 날의 차와 흐린 날의 차, 여름날의 차와 겨울날의 차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차를 칠하는 날의 기온・습도가 차의 색깔에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되었다.
온도는 24도에 습도는 70퍼센트. 봄가을에는 그런 습도가 유지되니까 좋고, 안 좋은 계절은 여름하고 겨울. 여름은 온도가 너무 올라가 신나가 빨리 증발해요. 자동차 신차 나오면 보면 알아요, 언제 만들었는지. 어느 것은 색이 매끈하고, 어느 것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고. 겨울은 반짝이고, 봄가을은 금방 칠한 것처럼 보이고, 여름에 은색은 얼룩이 있는 것 같고.
그는 해고되었을 때 믿지 않았다. “저놈이 있어야 완벽한 차가 나온다.” 그를 자랑스럽게 하던 칭찬들을 그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파업에 이틀 늦게 합류했다. ‘해고는 실수야!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해고는 착오가 아니었다. 그는 해고되었다.
‘설마 내가 정리 해고를 당할라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내가? 저놈이 아니면 차가 완벽해질 수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내가?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고 계속 부서장에게 전화해 봤어요.
“나는 차를 좋아하니 차와 함께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는 차를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무거운 짐을 떨어내려는 듯 엑셀을 밟았다. 속도를 높였다. 무거움은 떨어지지 않 았다. 어느 날은 ‘조상님’들의 무덤 옆에서 며칠씩 자곤 했다. ‘왜 해고되었을까?’ 그는 묻고 또 물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대답을 구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돌아오는 답은 없더라고요. 단지 신이 날 선택 안 한 건지, 나에게 뭔가가 부족했었는지……. 질문이 나에게 와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모든 것이 우연인가? 모든 것이 신의 장난인가? 그는 자신의 전 삶을 걸고서라도 대답을 찾아야 하는지, 체념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해고 후 택시 운전을 했다. 그렇지만 그 일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눈앞으로 하루에도 수백 대씩 쌍용 차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택시 안의 룸미러로도 사이드미러로도 보였다. 그는 그 차들을 몇 년도에 만들었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특별히 애착을 가진 차는 이스타나와 무쏘였다. 그는 “이스타나가 나를 입사시켰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향수’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유치원생을 태우고 다니는 노란색 이스타나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 냄새를 한 번 맡는 것만으로도 ‘향수’가 밀려왔다.
입사해서 처음 만든 차는 이스타나였어요. 1995년 말에 본격적으로 생산해서 인원이 필요했어요. 워낙 각이 많다 보니 페인트가 많이 흘렀어요. 자동 도장기(塗裝機)에 내장된 컴퓨터에 페인트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그걸 잡는 데만 8개월 이상 걸렸어요. 그 사이에 불량이 많이 나왔죠. 그 일 하면서 자동 도장기 존에 열한 시간씩 있었어요. 7만5천 볼트가 흐르는 그 위험한 데에요. 무쏘는 제가 현장에 들어가니 라인에 흐르고 있었어요. 시험 기간이 끝나고 데이터가 잡혀 있었죠. 근데 이스타나는 그게 안 잡혀 있었어요. 처음부터 백지상태로 다시 하는 차였어요. 그래서 이스타나가 제일 애착이 많이 가요. 지금도 가끔씩 시내에서 이스타나가 지나다니면 ‘몇 년도에 생산된 차다.’ 그걸 아직도 기억해요. 보면 알아요. 말로 설명 못 해요. 그거 만들 때 상황을 다 기억해요. 색만 봐도 원래 공장에서 칠해 나온 차인지, 다시 칠한 차인지 알아볼 수 있어요.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생겼다. 그는 손님이 없는 날에도 하루에도 두세 번씩 택시를 몰고 분향소 앞에 갔다. 그는 1~2분씩 차를 세워 놓고 동료들을 지켜봤다. 대한문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던 스물두 번째 죽음. 김포 임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이윤형은 그와 기숙사에 함께 있던 친구였다. 그 뉴스를 듣고서 더는 택시를 몰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택시 운전을 그만두고 분향소의 동료들에게 갔다.
H-20000 때 코란도가 들어오는데 그걸 보는 순간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 말을 이해했어요. 그게 눈앞에서 막 지나가더라고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인생이 스쳐 가고 모든 작업 공정을 다 알겠더라고요. 모든 작업 공정도 영화처럼 지나갔어요. 옆에서 보니까 그새 전면 재도장한 걸 알겠더라고요. 맑은 날 칠했더라고요. 칠한 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솔벤트 냄새 맡으니까 그 현장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향수를 느꼈어요. 모르겠어요. 흥분했어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만감이 교차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절박했어요. 공장 생각밖에 안 났어요.
그는 “아직도 공장 생각밖에 안나요. 손이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2008년 이후 체어맨W까지 손대고 그 이후 손 못 댄 차종들 손대 보고 싶어요. 그런 차들은 어떻게 페인트가 칠해질까 보고 싶고 또 다시 하고 싶어요. 회사 들어가기 전까지는 손에 느낀 감촉이랄까 그런 것을 잃기 싫어요. 이렇게 세월이 가다 보면 손의 촉감・감각을 잃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것을 잊기 전에, 몸이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에요. 언젠간 잊힐 텐데.
그가 열정을 불태우는 한 가지는 처음 시동을 걸어 본 중학교 때 이후 변함없이 차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이제는 그만 잊으라고, 정신 차리고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하지만 그에게 열정 없는 이성이란 있을 수 없었다. 열정 없이 정신을 차리기는 힘들었다. 그는 “내 인생의 절반은 차였어요. 그런데 이제 그 절반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전에 사랑했던 연인들에 대해 그러하듯 차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우리가 낳은 어린아이들에 대해 그러하듯 차에게 말을 걸었다.
“잘 있었어?”
“왜 그렇게 얼룩이 졌어?”
“누가 이렇게 엉망으로 칠해 줬어?”
그는 말을 할 때 항상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말하는 동안 그의 눈동자 속으로 시간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H-20000 때 자동차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선도투’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해고되었지만 생계 활동을 하지 않고, 스물두 번째 사망자가 나온 이후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즈음에는 서른 명 정도 노동자들이 선도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선도투 사람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만나기 시작했다.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 밤낮을 구분 못 하는 매미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우리는 땀을 식히기엔 턱없이 부족한 2천 원짜리 아이스커피를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전,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당신들은 누구였지요?”
“왜 생계 활동을 하지 않지요?”
“무엇 때문에 5년간의 길거리 생활을 버티지요?”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다음이었다.
“대체 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요?”
나는 궁금했다. 그들은 과연, 이번 삶 속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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