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시더라?
전라도 땅 어느 암자에서 마당을 하루 세 번씩 정갈하게 쓸며 살았다는 어떤 늙은 보살 이야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점심, 해질녘이면 그녀는 싸리비로 정성스레 암자 마당을 쓸곤 했다고 한다. 그 암자에 머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전해준 얘기다. 나도 그 싸리비 보살을 한번쯤 만나 보고 싶었지만 엘리엇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언젠가 그 얼굴을 만날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하다가 이제는 그럴 시간이 영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 속에 주저앉아 있다. 그 보살 얘기를 전해 들은 것이 한참 전 일이니까 그가 지금도 마당을 쓸며 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싸리비 보살 얘기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빗자루질 때문만은 아니다. 빗자루 얘기 말고도 “누구시더라?”의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암자에 하루이틀 머문 사람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며 아침 인사라도 할라치면 보살은 빗자루질 하다 말고 틀니를 덜그럭거리며 생전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처럼 “누구시더라?”로 인사를 받곤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아침에 만난 사람도 낮에 보면 “누구시더라?”, 낮에 이름을 댄 사람을 저녁에 만나면 또 “누구시더라?”다. “낮에 인사드렸잖아요. 저 아무개 아무개요” 그러면 보살은 아이처럼 웃으며 “아, 그랬나요?” 했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마당 쓸던 손 멈추고 틀니 덜그럭거리며 또 어김없이 되묻기를 “누구시더라?”
나는 내게 끊임없이 “너는 누구냐?”고 되묻는 책을 좋아한다. 인생을 바꾼 책, 그러면 “아, 이 책이요”라며 책 하나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 축에 끼지 못한다. 너는 누구냐고 내게 묻는 책은 한두 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을 만나면서 내가 궁극적으로 내게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너는 누구인가? 그러나 네가 누구인가는 마침내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너보다 더 큰 것, 너를 연결할 더 큰 어떤 것을 찾았는가? 싸리비 보살의 법문대로다. 누구시더라, 자기를 자기라고 조석으로 우기는 당신은?
- 한국일보 2007. 9. 8
여행자의 깨침 ─ 대학 신입생을 위하여
나는 이 글을 버펄로라는 곳에서 쓰고 있지만 지금쯤 새내기들을 맞아 필시 시끌벅적할 우리의 대학 캠퍼스들이 눈에 선하다. 해마다, 고목에 물오르고 개구리 잠 깨는 봄의 시작과 함께, 눈빛 초롱한 신입생들을 만난다는 것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큰 행복 가운데 하나다. 봄학기가 1월에 시작되는 미국에서는 우리처럼 새내기를 맞는 춘삼월의 설렘을 경험할 수 없다. 내가 머물고 있는 버펄로는 경상도보다 더 클 성싶은 호수를 양쪽에 하나씩 끼고 있어 3월에도 무시로 흐린 눈발이 분분하고 4월이 지나야 간신히 봄이 오는 고장이다. 여기서 차로 30분 거리의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에는 물보라를 뒤집어쓴 나무들이 투명한 얼음옷을 더께더께 입고 있다. 나무들이 얼어죽지 않는 것이 기적 같다. 얼음집이 에스키모에게 집이듯 나이아가라의 나무들에게는 얼음옷이 겨울옷인지 모른다.
돌연한 깨침처럼, 여행자는 흔히 두 가지 만남을 경험한다. 그는 여행길에서 많은 것을 보되 그가 본 어느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 탐나는 것들이 제아무리 많아도 그는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유의 왕국에서 해방된 사람처럼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소유할 수 없다. 여행이란 그러므로 소유와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 낯선 자유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는 남의 나라, 그 타자의 고장에 와서 어럽쇼, 어찌된 건가, 거기서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을 만나듯 제 나라 자기 고장,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영국 작가 G. K. 체스터턴이 했던 말(“외국 땅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자기 조국에 발을 딛는 것이다”) 그대로 그는 타지에서 고국을 만난다.
여행은 그러나 이런 두 개의 만남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세 번째 만남이 있다. 제 나라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이미 이전의 자기가 아님을 문득 깨닫는다. 남의 고장에서 제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제 나라에서도 남의 고장을 발견한다. 그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에서 그는 그가 몰랐던 타자의 얼굴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바뀌어 있다.
대학을 다닌다는 것과 여행의 경험 사이에는 모종의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 여행의 경우처럼 대학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 고정관념, 굳어진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 대학 생활이다. 무언가를 단단히 움켜쥐기 위해, 어떤 것에 매달리고 집착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번지수를 잘못 잡은 사람이다. 우리는 누에고치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가지 않는다. 모래에 머리 처박는 타조처럼 자기가 믿는 것에만 열심히 머리 파묻기 위해서라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 쥐었던 것도 일단 놓는 곳, 거기가 대학이다. 놓지 않고는 우리가 대학에서 새로운 것을 만날 가능성은 없다. 몸을 가두는 육체의 감옥이 있다면 혼을 가두는 정신의 감옥도 있다. 대학은 정신의 가두리 양식장이 아니라 여행자의 행로처럼 열린 바다, 넓은 하늘, 트인 지평이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의 주인공 걸리버는 난쟁이, 거인, 철학자, 말들의 나라를 여행하고 ‘야후Yahoos’족도 만난다. 이 나라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속의 세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들의 여행기에서 18세기 영국 독자들이 본 것은 자기네 나라 영국이다. 낯선 나라를 통해 되비쳐오는 제 나라의 얼굴 만나기, 그것이 여행의 한 소득이라면 대학 생활의 가장 자랑할 만한 성과도 나 아닌 것, 타자, 다른 세계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알고 넓어지는 것이다. 이 자기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질문 던질 줄 아는 성찰과 비판의 능력이다. 질문하는 능력의 확장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가 대학에 인정하는 높은 특권이 대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다. 그것은 특권이되 모든 기득권을 거부하고 진리의 소유 주장을 심문하는 특권, 정신의 가장 활발하면서도 겸손한, 그리고 겸손해지기 위한 특권이다.
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최근의 에세이집 『망명에 대한 성찰Reflections on Exile and Other Essays』에서 모든 형태의 문화적 고정성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망명자exile의 정신이며 자신은 그런 망명자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한다. “자기 집에서 편하지 않은 것, 그것이 도덕성의 한 부분이다.” 집으로 돌아와 타자의 존재를 보는 여행자, 그는 사이드의 망명자와도 비슷하다. 그 여행자의 소득에서 우리는 안주하지 않는 대학 생활의 정신적 자취를 본다. 나중에 설혹 어떤 안거의 순간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질문 없이 네모꼴로 오래오래 퍼져앉은 자의 안주는 아니다.
- 씨네21 2001. 3. 20
인문학적 사유의 네 가지 책임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옛날 페르시아의 한 왕자는 자기가 인간을 잘 알아야 장차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전국의 학자들을 불러 인간 이해의 방법을 마련해오라고 당부한다. 20년이 지나 학자들은 낙타 스무 마리에 책 2000권을 싣고 나타난다. “너무 많다. 줄여오라.” 또 10년이 지난다. 그사이 왕자는 왕이 되고 학자들은 낙타 세 마리에 책 500권을 실어 왕에게 대령한다. “이것도 너무 많다. 더 줄여라.” 다시 몇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나귀 한 마리에 책 100권 등짐을 지운 학자들이 나타난다. 왕은 이미 늙고 병들어 임종의 침상에 누워 있다. 왕은 탄식하며 말한다. “인간을 아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나는 인간을 알 수 없단 말이냐?” 그러자 학자 하나가 왕에게 귓속말로 일러준다. “폐하, 사실은 단 한 줄이면 됩니다. 태어나서 살아가 죽는 것, 그게 인간입니다.”*
* 원래 아나톨 프랑스가 쓴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약간 고쳐 사용했다.
인간의 한 생애가 ‘태어난다, 산다, 죽는다’는 단 세 개의 동사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평등하듯 그 세 개의 동사 앞에서 평등하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태어난다, 산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 가진 것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생물학적 전기다. 그 전기는 생명체 공통의 것이라는 점에서 평범하고 평등하며 위대하다. 인간이 그 전기로부터 제외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의 코빼기에서 자만심을 뽑아내고 그를 낮은 곳으로 임하게 하는 효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한 사유행위로서의 인문학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의 생물학적 전기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이 잘나서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해 지고 있는 ‘책임’을 생각하고 따지는 것이 인문학의 한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예외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다가’라는 부분이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전기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 개처럼 죽고, 어떤 사람은 개처럼 태어나 인간처럼 죽는다. 삶의 방식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철학자 볼테르는 생전에 자기 묘비명을 써놓고 죽은 사람이다. “친구를 사랑하고 적을 미워하며 죽노라”는 것이 그의 자작 묘비명이다. 이 비명은 그가 어떻게 살고 왜 살았는가를 요약한다. 그것은 생물학적 보편 전기와는 다르다. 사마천은 자신이 왜 『사기史記』를 쓰게 되었는가를 밝힌 글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는 구절을 남긴다. 죽음의 차이에 관한 언명치고는 동서고금에 이보다 더 빛난 표현이 없을지 모른다. 죽음의 차이는 사실은 삶의 차이-어떻게 살았는가의 차이에 좌우된다.
넓게 규정했을 때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사유, 표현, 실천의 총합이다. 이 의미의 인문학은 강단 인문학 혹은 학문으로서의 인문학과는 좀 구별될 필요가 있다. 학문 갈래로서의 인문학은 서구 근대의 산물인 반면, 인간에 관한 사유, 표현, 실천으로서의 인문학은 동서양에 걸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가 보통 인문학이라 부르는 것은 문학, 철학, 역사, 예술사, 서지학 같은 근대 이후의 학문 분과들을 지칭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의 길을 모색해온 동서고금의 오랜 사유 전통을 통틀어 의미할 때가 더 많다. 이런 인문학은 좁은 분야를 파고드는 전문적 학문 연구자만의 것이 아니고 그런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의미의 인문학은 만인의 것이다. 강단 인문학의 경우처럼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연구하는 것과 인문문화적 가치를 사유하고 실천하는 것으로서의 인문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문학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전공 분야의 인문학 갈래를 연구하는 것이 주 과제다. 그는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의 기본 정신이라는 관점을 꼭 가져야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정신 없이도 강단 인문학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단 인문학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인문학에 안겨지는 사회적 실천적 책임은 강단 인문학적 작업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것은 인간에 관한 사유와 실천으로서의 인문학이 중시해야 할 네 가지 책임을 환기시키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 사회에 대한 인간의 책임, 역사에 대한 인간의 책임, 문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그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의미의 인문학은 전문 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 이런 인문학은 교양주의자들이 생각하듯 예술과 문화 등등에 대한 무슨 고급 교양이니 소양이니 하는 것들을 스펙 쌓듯 쌓아나가는 것을 능사로 삼지도 않는다. 인문학에 관한 이런 종류의 ‘교양론’은 이미 오랜 타락의 전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인문학은 목걸이, 팔찌 같은 단순 장식물이 아니다. 또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인문학은 일부 실용주의자들이 착각하듯 무용한 백수의 사업인 것도 아니다. 이런 실용주의 역시 사유의 정지를 특징으로 하는 이 시대의 정신적 마비와 타락을 반영한다.
위에 말한 네 가지 책임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 책임의 문제를 부단히 사유하고 그 중요성을 사회에, 사람들에게, 부단히 환기시키는 것은 인문학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수행코자 하는 곳에서 대학의 강단 인문학을 넘어선 실천의 인문학이 탄생한다. 지금 시대에는 그런 인문학이 필요하다.
- 국민일보 2010. 12. 17
노무현의 질문 ─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노무현의 유산은 무엇이고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 되기 이전부터, 되고 나서, 그리고 퇴임 이후에도 시종일관 그의 삶과 행적을 이끈 커다란 질문을 하나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것이 그 질문이다. 이것은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목표에 관한 질문이며 정신과 비전, 꿈과 가치에 관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망각한 사회는 제아무리 잘살아도 길 잃은 사회, 제아무리 휘황해도 어두운 사회, 제아무리 똑똑해도 눈먼 맹목의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질문을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살지 않았던가? 우리가 망각한 그 질문의 환기, 그의 죽음이 벼락 치듯 우리에게 일깨운 그 화두야말로 노무현이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다. 그의 죽음 이후의 과제들을 생각해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 질문의 거울 앞에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2009년 노무현의 죽음이 절절한 애도의 물결을 일으킨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내고 나서야 그가 꿈꾸었던 세상, 그가 만들어보고자 했던 사회의 비전에 대한 그리움에 흠뻑 젖었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노무현이 꿈꾸었던 세상은 소박하다면 소박하게도 사람들이 ‘민주주의’라 부르는 체계의 원칙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링컨의 표현을 빌리면 ‘민주주의의 명제에 봉헌된’ 사회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은 결코 소박한 작업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그 작업이 우리에게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며 그가 우리 모두에게, 집권세력과 국민과 사회에 남긴 숙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숙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과제의 수행을 위한 방법적 측면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민주주의 문화’의 토양을 일구어나가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일은 정치 영역만의 작업이 아니다. 정치학자들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제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되었으니” 어쩌고 하는 망발에 가까운 발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으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를 포함해서 사회 모든 영역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하는 민주적 가치, 원칙, 태도, 의식, 정신 상태─곧 ‘시민문화’의 성숙을 요구한다. 그 문화의 토양 없이 민주사회는 요원하고 일시적으로 민주주의 같아 보이는 것도 쉽사리 엎어지거나 퇴행과 반전의 운명을 거듭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마라톤이다. 그것이 긴 마라톤인 이유는 민주주의의 문화를 키우고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전의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문화’라는 표현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가 시도했던 제도 개혁, 권력기관의 탈정치화, 인권과 시민 기본권의 존중, 약자 보호, 권력 분산, 지역주의 극복과 수직 서열주의 타파 같은 작업들의 기본 목표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화를 키우는 데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그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일은 정치권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정과 직장, 교육과 언론을 포함해서 사회 모든 영역들에서 진행되어야 할 ‘사회 전체’의 과제다.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시민교육 강화는 특히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이 나라에서 교육은 ‘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창조적 교육을 되뇌면서도 창조 정신의 핵심이 비판적 사고라는 것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알고 있는가?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노상 머리에 담고 다닐 평생의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 한겨레 200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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