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의사소통의 그물
“책이 혁명을 일으키는가?” 이처럼 문제를 아주 둔감하게 제기하는 일은 프랑스의 교활한 덫, 그릇된 질문에 발을 들여놓게 만들 것이다-다시 말해서 문제를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시켜서 왜곡시킬 것이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인과관계의 직선적인 개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책을 사는 행위를 바탕으로 독서, 독자의 신념, 여론의 동원은 물론 대중이 혁명의 행위에 참여하는 과정까지 논증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전파의 일직선적인 원인-결과 모형으로는 단지 여론의 비문자적 원천만이 아니라, 텍스트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활발히 전유하는 행위라 할 수 있는 독서에 이르기까지 독립적인 요인들을 제대로 고려할 수 없다. 따라서 책의 전파에 관한 연구는 혁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관계가 없는 것인가? 나는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좀더 복잡한 모형을 제안하고 싶다.
책의 역사는 전파 연구diffusion study의 일종으로서, 무엇이 전파되고 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전파되는 것은 담론도 아니고, 여론도 아니고, 책이다. 물론 책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그것은 제품화한 물건, 예술작품, 상업적 교환 품목, 사상의 매개물이다. 따라서 책의 연구는 노동·예술·사업의 역사처럼 수많은 분야에 걸쳐 있다. 그것은 각별히 지성사에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대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계몽주의는 얼마나 널리 전파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18세기에는 어떤 책이 실제로 가장 널리 유통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런 다음 그는 문학시장의 특별한 부분을 측정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한 범주들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는 충분한 정보와 함께 일련의 유효한 기준들을 가지고 심지어 계몽주의의 수요까지 계산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계몽사상가들의 저작이 문자문화의 일반 유형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계몽주의를 찾는 일로 시작하지 않고 그것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바보라도 입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계몽주의와 혁명을 연결하는 문제에 직접 달려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담론 분석가의 비판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전파론자를 도와줄 것이다. 담론 분석가들은 관념들을 마치 혈액 속에서 감시할 수 있는 방사능 입자처럼 정치체 속에서 추적할 수 있는 ‘단위들’로 보는 데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반대가 아무리 옳다 해도 책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책은 상업의 통로를 거쳐 유통되는 물리적 대상이다. 책의 생산, 분배, 그리고 (어느 정도) 소비는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저자에서 독자로 가는-그리고 궁극적으로 저자에게 되돌아가는-의사소통의 순환으로 그 체계를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저자는 독자, 비평가, 그리고 주위의 사회에서 정보와 영감을 주는 여러 원천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순환을 표 7.1처럼 체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이 모형은 전파의 직선적인 개념과 비교해서 두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그것은 유기론적 견해-동맥·정맥·모세관으로 구성된 의사소통의 그물에 의해 사회 침투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며, 생산과 분배 과정의 각 단계를 고려하는 견해-에 찬성하여 하향식 침투를 상정하는 개념을 거부한다. 그것은 역사상 다른 시대, 다른 문화, 그리고 신문·소책자·포스터 같은 다른 인쇄매체에 적용될 때 약간 다른 목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은 언제나 같다. 그 원칙은 의사소통 과정의 체계적인 성격과 그 부분들의 상호연결을 공정하게 다루는 방법으로 그 과정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둘째, 그 모형은 자기충족적이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대신, 모든 단계에서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저자·출판업자·인쇄업자·서적상·사서·독자는 국가, 교회, 경제, 그 밖의 다양한 사회집단의 압력을 받으면서 행위를 끊임없이 수정했다.
최근까지 나온 대부분의 연구는 저자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들의 글에는 종종 후원제도, 검열제도, 앙심, 경쟁심, 수입의 욕구를 보여주는 흔적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인쇄되어 나타났을 때 그들의 글은 활자를 고르고, 형태를 잡고, 인쇄기의 막대를 밀고 당기는 수많은 장인들의 손에서 모양을 갖추었다. 출판업자도 시장의 공략, 판형, 삽화, 활자체, 책 도안을 결정하고 자본을 집중하면서 텍스트의 의미에 일정한 형태를 주었다. 또한 우리는 문화적 중개자로서 서적상의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바로 서적상의 가게-또는 길의 진열대, 마차, 등짐-에서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고 책이 독자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독서는 순환의 단계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단계로 남아 있다. 우리는 독자가 혼자서건 집단이건, 소리내어 읽건 속으로 읽건, 도서관 안에서건 밤나무 아래서건, 텍스트의 뜻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기껏해야 막연히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수용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해서 우리가 당대인의 문학 경험을 파악하려는 생각마저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학은 저자와 독자, 또는 독자와 텍스트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학은 전반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통해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체계는 모든 지점에서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공식화하는 모든 요소를 연구할 수 있다. 생산과 분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수용에 대한 우리 지식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상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수용은 여전히 문학 경험을 좀더 많이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로 남아 있다. 우리는 독자 반응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메우기 위한 책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모형들을 가지고 노는 일도 만일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별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금서에 관한 연구의 경우, 그것은 매우 유익한 것으로 판명된다. 왜냐하면 질적 증거가 양적 증거를 보완하기 때문이다. 제1장에서 지적했듯이, 출판업자와 서적상들이 철학책을 논의하고 취급하던 방법은 독자들 사이에 금기에 대한 취향이 얼마나 퍼져 있었는지를 많이 밝혀주고, 서적 판매의 통계는 문학적 수요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단계를 넘어선 주장을 하려면 전파의 문제에서 의미의 문제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담론 분석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18세기 독자들이 좋아하는 품목을 알려주는 적절한 지표로 간주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방식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직선적으로 들려 미심쩍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방법의 장점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것은 문자문화의 시대착오적인 개념에 의존하지 않은 채 텍스트의 상호 관련성 유형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만일 우리가 법의 테두리 밖에서 나돌던 문학의 전체를 식별할 수 있다면, 당대인들이 체제에 위협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에 관해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불편한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우리가 그 문학을 읽는 방식이 200년 전 프랑스인의 방식과 거의 같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유 행위로서 독서의 개념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제 샤르티에는 금서가 독자 반응의 일관성 있는 유형을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여론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을 맞받아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한다. 만일 독자들이 책 속에 인쇄된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모든 종류의 개인적인 관념들을 제멋대로 책에 투영하면서 나름대로 텍스트를 전유한다면, 그들의 경험은 끊임없이 다양해질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문학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건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읽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해도 우리는 별로 밝힐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읽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샤르티에는 미셸 드 세르토와 리처드 호거트의 업적에서 전유의 이론적 평가에 관한 논지를 끌어낸다. 그리고 역사적 사례를 위해서는 카를로 긴즈부르그와 내 연구를 인용한다. 드 세르토는 확실히 독서 행위에 들어 있는 ‘무한히 많은 의미’를 강조했다. 너그럽고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그는 보통사람들이 매체에 의해 밀랍처럼 틀에 박힐 수 있는 멍청이라는 생각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는 저항에서 그친 채,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읽었는지에 대해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이론을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또한 그의 성찰은 호거트의 성찰에 의해 완전히 강화되지 않는다.
호거트도 노동계급의 문화가 긍정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보통의 독자들이 책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모두 만들어낸다고 논증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그들 경험의 문화적 결정 요소를 강조했다. 그들의 문화는 그들의 응접실처럼 아늑하고, 보호감을 주며, 과열되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분위기처럼 작용했다. 그것은 자기와 다른 요소들을 자기 유형에 흡수했다. 그것은 개인주의나 특이성을 증진시키기는커녕 그 테두리 안에 들어온 모든 것에 나름의 성격을 도장 찍듯 찍어놓았다.
카를로 긴즈부르그가 16세기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라는 하층계급의 독자에 대해서 얻은 연구 성과는 똑같은 논점을 더 멀리 밀고 나아간다. 긴즈부르그는 단순히 메노키오가 르네상스 텍스트를 자기 말로 바꾸면서 공격적으로 읽었다고 논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메노키오는 고대부터 민중문화 속에 숨겨져 전해오던 물질주의적 우주론으로부터 자신의 말을 끄집어냈다고 주장한다.
나는 18세기 라 로셸의 독자에 관한 연구에서 개인이 루소의 저작에 얼마나 열렬히 반응했는지, 그러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문화적 틀로 루소주의 그 자체에 맞게 생활했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독자 반응에 대한 다른 연구는 이러한 경향을 강화시켜주었다. 그것은 수동성이나 불확정성 가운데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 독자들은 기존의 문화적 틀 속에 텍스트를 맞추면서 텍스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떻게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는가? 내 생각에,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서 통찰력을 끌어내 환경에 투영하는 방식은 아니다. 차라리 틀 속에 인식을 맞추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틀을 문화에서 얻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그대로의 현실은 사회적 구축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계는 조직된 채로 온다. 그것은 여러 범주로 나뉘고, 관습에 따라 형성되며,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서로 물드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우리의 문화로부터 물려받은 인식체계 안에 그것을 맞춘다. 그리고 종종 그것을 말로 옮긴다. 그래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의미를 왜곡하는지에 상관없이, 의미도 언어처럼 사회적이다. 우리는 의미를 만들면서 사회적 활동에 깊이 개입한다. 특히 우리가 글을 읽을 때 그렇다.
책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는 두꺼운 상징 영역 속에서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책과 관계된 모든 것은 문화적 규약-그것을 쓴 언어만이 아니라 활자, 편집, 판형 크기, 제본, 심지어 그것을 팔려고 이용한 광고-의 흔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는 각기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그의 방향을 지시한다. 독자도 텍스트에 많은 것-기대·태도·가치·의견-을 걸고, 이것들도 역시 문화적 결정요소를 갖고 있다. 그래서 독서는 두 가지 요소-의사소통의 매체인 책의 성격, 그리고 독자가 내면화하고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일반적인 기호체계-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두 가지 주의사항을 덧붙이고 싶다. 첫째, 나는 문화적 틀의 중요성을 주장하지만, 문화를 유기적 총체라고 보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종류의 틈과 단층선이 문화체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의미를 만드는 일은 통일성만큼 갈등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은 경쟁하는 틀들을 동원한다-또는, 케임브리지 학파의 술어를 빌려 말한다면, 경쟁관계에 있는 담론의 실천 행위들을 동원한다. 독자들은 정치논문을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적 상투어의 관습적인 규약에 맞추면서 의미를 만든다. 그러므로 독서의 역사를 위해 담론의 분석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다.
둘째, 독서에 대한 문화적 제약을 강조한다고 해서 독자들이 똑같은 책에서 똑같은 내용을 발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거의 모든 문화체계는 텍스트에 독창적이고 서로 모순되는 반응을 제공할 만큼 충분히 범위가 넓다. 나는 독서에 관한 다중의 결정인자론을 펼치기보다, 독서는 단순한 결정인자를 갖고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펴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은 독서를 문화사의 밖으로 내몰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유를 가치 있는 개념으로 주목하지만, 그것이 독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다른 학문 전통-태도·가치·세계관에 관한 연구로서, 프랑스에서는 집단 정신자세의 역사로 알려진 영역-에서 그 역사 연구를 제외한다는 조건이 아닐 때 그렇다.
말하자면 아무리 개념을 명확하게 한다 해도 경험적 연구의 부족을 메울 수 없으며, 독서의 역사 연구는 적절한 증거가 부족하여 난관에 부딪힌다. 우리가 18세기 프랑스인들이 책에 얼마나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해도, 독자 반응에 대한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아니면,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나는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프랑스의 금서 연구가 제기한 특별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방법론에 관한 문제를 잠시 비켜가고 싶다.
의사소통의 순환에서 수용의 측면에 관한 어려움을 비켜가기 위해 우리는 여론의 문제와 직접 부딪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일반 대중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의견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원칙적으로 정치는 왕의 일이었다. 국사國事는 베르사유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 작은 세계 안에서 권력의 좁은 실내가 더 작은 공간으로 나뉘었다. 내실의 계략을 꾸미는 핵심 동아리들이 그들 마음속에 ‘왕의 비밀’(이 말 ‘Secret du Roi’은 루이 15세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외교를 지칭하기 위한 것이다. 루이 15세의 대신들도 그의 외교정책의 방향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을 간직하고 있었다.
루이 14세 시대에 절대주의를 공고히 한 뒤, 일반 대중은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계에서 멀리 떨어져 정치화하기 이전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많은 권력 갈등이 궁정의 테두리 밖에서 일어났으며, 참여하는 관찰자로서 대중은 점점 정치화했다. 이러한 종류의 정치는 소송의 형태-청원·저항·낙서·노래·인쇄물·이야기-를 띠었고, 대부분의 재담bon mot, 악담mauvais propos, 공공연한 소문bruit public은 집단폭력(민중소요emotion populaire)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일부는 경찰 첩자의 손으로 쓴 기록에 남았다. 왜냐하면 당국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것을 추적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기 때문이다. 경찰 보고서는 수백 가지 문서를 채우고 있는데, 일부는 아주 풍부하여, 그것을 읽는 사람은 선술집·카페·공원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는 듯할 정도다. 물론 첩자의 보고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첩자들은 잘못 듣거나, 제대로 들었다 해도 치안 당국이 그들에게 정해준 방침에 들어맞도록 왜곡시켜 제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보고서를 비밀신문·일기·편지 같은 유사한 자료와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파리에서 나돌던 소책자·노래·인쇄물의 방대한 모음집 안에서 더 많은 문서를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자료를 뒤지면서 몇 년을 보낸 뒤 18세기의 파리를 거대한 의사소통의 그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모든 이웃을 한 울타리로 엮고, 당시 파리인이 ‘공공연한 소음’(선동적 소문)이라고 부르던 것, 또는 오늘날 우리가 정치적 담론이라고 알고 있는 것으로 언제나 윙윙거리는 그물이었다.
우리는 표 7.2처럼 두 번째 모형에 따라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이 모형이 혁명 전 파리에서 정보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하건 말건, 나는 이것이 당시 전갈message이 다른 매체와 사회환경을 통해 전달되던 방식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의사소통 체계를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여론의 역사를 대강이라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어려움이 많다 해도-사료가 고르게 남아 있지 않고, 대중의 구성을 확실히 알지 못하며, 여론이라는 개념 속에 모호한 성격이 많이 남아 있다 해도-이 과업은 성취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한편으로는 불법 문학의 유통과 다른 한편으로는 여론의 급진화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료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성격의 관계였던가?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아니었다. 첫 번째 전파 모형이 가리키듯, 금서의 생산과 전파는 모든 지점에서 인쇄된 말의 순환계통 바깥으로부터 오는 영향을 받았다. 정치적 이야기는 다락방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까지 밀려가 닿았고, 출판업자들이 출판물을 기획하며 따지는 타산 속에 스며들었고, 서적상을 자극하여 공급물량을 주문하게 만들었다. 책, 특히 파렴치한 추문 같은 특별한 범주는 ‘악담’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또한 그것도 역시 말을 퍼뜨리는 데 한몫 했다. 그것은 말이 공중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막았고, 말을 인쇄물에 고정시켜 왕국의 가장 먼 구석까지 실어날랐다.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 대신 우리는 상호 강화, 반향feedback, 증폭을 상상해야 한다.
두 번째 모형에서 보듯이 이 반향 과정은 일반적인 정보체계 속에서 교차하는 다른 매체에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똑같은 동기가 카페에서 벌어진 토론, 살롱에서 즉흥적으로 지은 시, 거리에서 노래한 민요, 벽 위에 풀로 붙인 인쇄물, 은밀히 유통되는 수기신문, 책가게 계산대 밑에서 팔리는 소책자에 나타나기 일쑤였고, 그러한 동기가 다른 동기와 함께 씨줄과 날줄이 되어 복잡한 이야기를 짜내는 책에도 나타났다.
어떤 특별 주제가 험담이나 인쇄물 가운데 어디에 먼저 나타났는지 묻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주제는 모두 다른 지점에서 생기고 다른 방향으로 여행하면서 여러 매체와 사회환경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질문은 전갈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증폭과 동화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대중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되었던 방법에 관한 질문이었다. 금서는 이 과정에 어떻게 이바지했던가?
재담과 민요는 사라지고 잊혀지기 쉬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책은 이러한 주제를 인쇄물로 고정시켰다. 그리하여 그것을 보존해서 널리 퍼뜨리고 그 효과를 늘려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이 폭넓은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 속에 그것을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카페에서 주고받은 일화나 불손한 혼잣말이 인쇄된 책 속에 나타나면 그 성격은 달라졌다. 인쇄물로 탈바꿈하면 실제로 그 의미가 달라졌다. 왜냐하면 책은 사소하게 보이는 요소를 섞어서 규모가 큰 서사구조 속에 집어넣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구조는 종종 철학과 역사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물론 이야기 중에는 다른 이야기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었다. 《갑옷 입은 신문장이》는 입이 더러운 험담을 모아놓은 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는 똑같은 자료를 결합하여 강력한 이야기 줄거리를 가진 전기로 탈바꿈시켜놓았고, 《루이 15세의 사생활》은 당대 프랑스의 완벽한 역사처럼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작품들의 수사학은 독자에게 눈짓을 보내고 그의 옆구리를 슬쩍슬쩍 찌르는 동안에도 역사histoire로서 설득력을 강화시켜주었다. 수많은 독자가 책에서 자료를 얻었고, 저녁 식사 때나 카페에서 한담을 나눌 때 써먹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아마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주워듣고 자신의 독서 관점에 따라서 해석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금서를 읽으면서 여론을 급진화하는 데 한몫 했다.
여기서 우리는 명백히 과감한 추측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책에서 전갈을 골라내고, 어떻게 책에 포함시킬 내용을 다른 자료에서 끌어내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쌍방향으로 일어났고, 인쇄매체가 거리의 이야기를 보존하고 증폭하면서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가정해도 무방해 보인다.
사실 인쇄매체는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책은 온갖 주제를 인쇄로 고정시키면서 이야기에 맞게 만들고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사물을 인쇄물로 바꿀 때 정보-일화, ‘공공연한 소문’, ‘새 소식’-를 설득력 있는 그림으로 조직할 수 있었고, 이야기 줄거리를 따라서 사물을 배열하는 가운데 상황을 규정하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 나름대로 하나의 독특한 종류의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은밀한 문학의 베스트셀러는 의미를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을 강화했다. 그것은 현실을 선별하기 위한 틀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한 틀이 어떤 기능을 하느냐는 경험론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그것에 바로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독서의 심리적 경험에 관한 증거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접적이고 불완전한 대답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여론에 관한 정보가 불법 문학에 관한 증거와 일치한다면, 의미 있는 문화적 유형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에 담긴 주제들이 ‘공공연한 소음’의 동기를 결정하거나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차라리 두 가지 형태의 의사소통이 함께 작용하면서 체제의 정통성의 뿌리를 끊는 전갈을 규정하고 전달하고 증폭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통성을 부인하는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1780년대에 나온 방대한 자료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잠시 일반적인 명제를 역설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금서는 두 가지 방향에서 여론을 만들어냈다. 하나는 (말을 보존하고 퍼뜨리는) 인쇄물에 불만을 고정시키는 방향, 또 하나는 (느슨한 이야기를 일관성 있는 담론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에 불만을 맞추는 방향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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