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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 지구를 에워싸는 관계망, 세계화 속에 살고 있다
사소한 변화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매우 인상적인 과학 이론이 하나 있다. 어느 한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 바로 ‘나비 효과’이다. 동식물과 인간, 기후, 대양 등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은 서로 복잡하고 섬세한 균형을 이루며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은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다른 곳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구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그물망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물망이 한쪽 구석에서 움직이면, 그 움직임은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며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러한 물결은 지구의 어디인가에서는 축복이 된다. 강한 회오리바람이 비구름을 몰아와 오랜 가뭄에 우리는 전 지구를 에워싸는 관계망, 세계화 속에 살고 있다. 시달리던 지역에 비를 내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구의 어디인가에는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오고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일도 발생하니 말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예로, 지구의 어느 한 동물 종이 멸종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생태계 먹이사슬이 혼란에 빠진다. 그리하여 다른 동물 종을 멸종시키거나 반대로 특정한 식물 종이 지나치게 번성하게 만드는 생태계 불균형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처럼 이미 수백만 년 전부터 자연 속에는 무수한 관계망과 연결망이 존재했고, 여러 현상들이 자연의 균형을 조금씩 변화시켜 왔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와 비슷하게 전 지구를 에워싸는 관계망이 존재한다. 우리 인간이 만든 현대의 이러한 관계망을 가리켜 ‘세계화’라고 한다.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경제학자 시어도어 레빗Theodore Levitt 교수가 1983년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레빗 교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져 전 세계가 점점 하나의 생활권으로 결합하는 현상을 세계화라고 했다. 세계화 현상은 특히 재화, 서비스, 자본, 지식, 노동력이 여러 나라 사이에서 활발하게 교환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긴밀하게 결합된 세계화의 구조에서는 나비의 날갯짓이 아닌, 주식시장의 위기와 같은 일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 중서부에서 누군가 집 한 채를 구입한 일이 유럽의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며, 러시아의 가스 공장에서 발생한 문제가 독일 전체에 정전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모두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그물망 안에 속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의 법칙과 영향을 받아들이고, 다른 나라들과도 화합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다만 세계화가 어떻게 일어났으며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는 특정한 단계에 도달한 어떤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많은 것들도 세계화와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점을 보여 주고자 한다. 세계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계화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세계화의 기회와 위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따져 볼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 특히 가난한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의 이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보는 나라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 혹은 세계를 포괄하는 무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 시작은 대략 500년 전이었다.
불평등한 세계
부자 나라에서 실패한 국가까지
더욱 커진 빈부 격차
국제연합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은 매년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를 발표한다. 이는 평균수명, 교육 수준,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한 나라의 발전 정도를 계량화해서 나타낸 수치이다. 그 수치에 따르면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1990년에서 2000년 사이 21개 개발도상국의 인간 개발지수는 오히려 떨어졌다. 그사이 진행된 수많은 다른 연구 결과를 보아도 국가 간의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빈부 격차는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화를 통해 부자가 되었다. 예를 들면, 적절한 시기에 좋은 아이디어로 세계시장을 정복할 제품을 만들어 낸 기업 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전 세계 유망한 곳에 돈을 투자한 금융 투자자들도 아주 빠르게 엄청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전 세계 최대 갑부 225명이 소유한 개인 자산을 모두 합하면 1조 달러(우리 돈으로 약 1,100조.)에 이른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이 금액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28억 명, 즉 세계 인구 약 40퍼센트의 1년 소득을 모두 합한 액수에 해당한다.
서양의 인구 9억 명은 세계 소비의 86퍼센트, 에너지 소비량의 58퍼센트, 세계 모든 유선전화의 7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가장 가난한 12억 명은 세계 소비의 1.3퍼센트, 에너지 소비량 의 4퍼센트, 전 세계 유선전화의 1.5퍼센트만을 차지하고 있다.
서양은 전 세계 네트워크화와 자유무역, 다른 나라와의 교류에 서 이미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 또한 세계화의 모든 가능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해 왔다. 물론 세계화는 서양인들에게도 좋지 않은 측면이 있다. 생산 시설이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실업률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하소연은 차원이 다르다. 서양에 서는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아프리카나 아시아 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비슷한 상황도 전혀 없다.
사람들은 이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직 세계화가 진척되지 않아서 세계화의 장점을 충분히 얻지 못했을 뿐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니 상황이 달라지면 그곳의 삶의 조건도 당연히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세계화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으므로 세계화의 과정을 멀리할수록 미래의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가난한 나라들을 세계화의 과정에 편입시킨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전 세계와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그 나라들이 저절로 발전할 수 있을까? 가난한 나라에서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국가의 통제와 규제가 모두 사라지 고 불평등과 불공정도 없어질까? 우리는 이미 아프리카의 사례에 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시도된 이러한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 나라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세계화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는 왜 어떤 나라에는 축복이고 또 다른 나라에는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걸까?
실패한 국가들
1990년대에 병들고, 약하고, 무너진 나라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실패한 국가들Failed States’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렇게 불리는 이들 대부분은 과거 서양의 식민주의 지배에 시달리면서 심하게 착취당했던 나라들이다. 서양의 식민 통치가 끝난 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이웃 나라와 전쟁하거나 서로 다른 종족들 간에 내 전을 벌이는 등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재자나 부패한 범죄 집단은 무력으로 권력을 잡아 나라를 약탈했다. 도로와 철도, 항구 시설은 녹슬고, 공장들은 무너졌으며, 사람들은 살아갈 토대를 잃었다.
이 상황을 나무에 비유해 설명해 보자. 튼튼한 나무는 강한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오히려 더 강한 뿌리를 내리고 환경에 적응하며 계속 번성한다. 마찬가지로 토대가 강한 민주주의 국가는 세계화 과정의 부정적인 측면도 잘 극복한다.
그에 반해 병들고 약한 나무, 즉 토대가 무너진 나라는 폭풍에 쉽게 쓰러진다. 세계화의 쓰나미가 강한 힘으로 덮치고 태풍이 세차게 불어와 그렇지 않아도 약한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린다. 국가는 파괴되고, 소수만 부를 얻는다. 대다수 국민은 전보다 더 가난해진다.
수많은 국제회의에서 아프리카를 도울 방법이 논의되었다. 여기서 나온 결과를 간단히 말하자면, 이들 나라에서는 세계화 과정을 어느 정도까지 진척시키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숱한 착취를 당한 이들 나라가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에서 스스로를 지키도록 하고, 독재 정부가 나라를 약탈하거나 돈벌이에 이용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실패한 국가들은 서양의 도움에 의존해 있다. 무엇보다 공정한 무역조건이 마련되어야 하고,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세계 여론 역시 그들의 문제에 더 이상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정한 세계에서는 인권을 희생시킨 대가로 이득을 취하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실패한 국가들이 세계화의 과정에 성공적으로 진입해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그보다 먼저 서양의 원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실패자로 남아 질주하는 세계화의 기차에 타지 못하고 언제나 길모퉁이에 뒤처진 채로 있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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