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걸음 뒤에서
시를 아는 아이에게
‘국어를 잘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많고, 말을 곱고 바르게 잘하고, 글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쓰는 것일 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학교 국어 수업을 잘 이해하고 국어 시험을 잘 보는 것이겠지?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이제는 조금 낡은 이야기이지만, 한 원로 시인이 자신의 시를 지문으로 한 대학 입시 국어 시험 문제의 정답을 반도 맞히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어. 아마 학교에서 국어를 배운 지가 좀(?) 오래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닐 거야. 여기 ‘반걸음 뒤의 선생님’(이하 선생님)처럼,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국어 교과서 편집자로서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단다.
재미로 풀어 본 수능 국어 시험 몇 문제를 틀렸다고 우리 국어 교육이 여전히 한심하다고 여기서 굳이 말하려는 것은 아니야. 그것은 선생님의 관심 범위나 능력을 살짝 벗어나거든. 다만 선생님은, 다른 과목은 몰라도 국어, 특히 문학은 지금처럼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해 왔단다. 이것은 단지 학교 시험을 위한 국어, 문학 공부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야.
선생님에게 국어와 문학이란, 우연히 만난 좋은 시 한 편, 흥미로운 삶을 산 작가를 좋아해서 관련된 문학 작품을 읽고, 그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저절로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야. 조금은 개인적인 이런 경험을 그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국어와 문학이란 그렇게 즐기며 알아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 책은 이런 주제넘은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하고, 너와 같이 국어와 문학을 사랑해야 할 ‘어린 벗’들과 나누기 위해 나름대로 꾸며 본, 선생님의 ‘가상 문학 수업 지도안’이야.
다만, 시나 소설 같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림, 영화, 음악 등을 적극적으로 함께 이야기한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학을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예술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른 예술 작품을 접하다가 문학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야. 물론 짧은 시나 그림을 제외하면 지면 사정상 작품 전체를 소개하기는 어려워서, 일단 서로 어떻게 관련지어 읽을 것인지 개인적 경험과 의견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큰 틀을 잡았단다. 그래서, ‘나의 청소년 문학 교과서’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부 선생님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주장으로 비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 단순히 주관적인 느낌이나 주장이라고 지적된 부분은 선생님의 한계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넘어선 오류나 편견은 앞으로 계속 수정, 보완하려고 해.
덧붙여, 이 책의 제목 ‘시를 아는 아이’는 예전에 읽은 릴케의 시(“봄은 시를 외는 아이와 같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힌트를 얻어 지은 거란다. 이 책을 읽는 어린 벗들이 모두 시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시를 알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꿈을 담았단다.
시를 아는 아이를 꿈꾸며, ‘반걸음 뒤의 선생님’ 씀.
2013. 11.
시를 아는 아이 1-1
문학은 정서와 분위기 싸움?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부분)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시를 아니? 선생님은 청소년 시절부터, 특히 해마다 3월이 되면 이 시가 떠오른단다. 그 시절, 어느 선생님이 잠깐 불러 주었던 같은 제목의 노래와 함께……. 이 시는, 새봄이 되어 살갑고 부드럽게 봄바람이 불고 하늘빛이 고운 까닭을, 따뜻한 남쪽에 아름다운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노래한 시야. 그런데 이 시가 더욱 생생하게 내 마음속에 새겨진 것은 아마도 새로 신입생이 된 새봄에 이 시를 처음 만났기 때문인지도 몰라.
무엇보다 선생님은 그때 이 시를 그냥 몸으로 느꼈던 것 같아. 그래, 선생님이 방금 ‘몸으로’라고 했지? 이렇게 문학 작품의 정서나 분위기는 머리로, 이성적으로 깨달아서 아는 것이라기보다, 가슴으로, 감성적으로 먼저 느끼는 것인지 몰라. 특히 이런 시에서는 말이야. 그래서 20년도 더 전에 배웠던 이 시와, 이 시를 외며 걷던 안개 낀 보리밭의 모습이 내 몸속 어딘가에 ‘압축 파일’처럼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가 단숨에 떠오르는 것인지도 몰라.
문학 작품에서 정서나 분위기는 투명하고 빛나는 어느 한 구절, 한 문장을 보고 한 번에 느낄 수도 있고,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 입안에 남는 우리 차 향기처럼 은근히 느껴지는 때도 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우리가 읽은 문학 작품을 다시 기억하려고 할 때 줄거리나 인상적인 구절이 분명하게 떠오를 때도 있지만, 대체로 더 짙고, 오래 남는 것은 오히려 그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나 분위기인 경우가 많아. 그래서 한 작품의 정서와 분위기는 사람으로 치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첫 느낌이나 첫인상 같은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문학 작품의 한 행, 한 문장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이 이어지고 흘러가며 드러나는 빛깔이나 향기, 곧 정서나 분위기를 섬세하게 잘 느끼는 것이 작품을 잘 읽는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문학을, 무슨 산을 정복하거나 외국어를 마스터하는 것처럼 공부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학을 알고, 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 그 나이였어, 시가 내게로 왔어.
-파블로 네루다, 〈시〉(부분)
‘사랑과 저항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1904~1973)는 자기한테 ‘시’가 그냥 왔다고 해. 그럼, 이 시인이 태어날 때부터 워낙 특별한 존재여서 그한테만 ‘시’가 왔다는 걸까? 아마, 꼭 그건 아닐 거야. 삶이 그렇듯 ‘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에나 한 번은 오고 또 가 버리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쉿! 그러니 잘 들어 봐. 어쩌면 그 ‘시’는 벌써 너를 찾아와서 네 심장의 리듬을 따라 쿵쾅쿵쾅 온 온몸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니까!
시를 아는 아이와 함께 읽기
산 너머 남촌에는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 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나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
바람에 타고서 고이 들리데.
- 김동환
* 영嶺 : 높은 산의 고개나 마루
아이의 손바닥
이 시를 쓴 김동환 시인(1901~?)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잘 알려진 분이야. 일제 강점기에 《삼천리》, 《삼천리 문학》과 같은 잡지를 창간해서 운영하기도 했는데, 부인이기도 한 소설가 최정희(1912~1990) 선생의 말에 따르면 잡지 운영뿐 아니라 집안의 생계를 꾸리는 데에도 참 서투른 분이었다고 해. 하지만 시인이나 문화 담당자로서 긍지나 자부심만은 아주 컸던 분이었다고 해. 앞에서 이 시와 관련된 인연을 잠깐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종례를 하기 전에 칠판을 잠깐 보다가 앞 수업 시간에 써 놓은 이 시를 우연히 발견하시고는, 잘 아는 시(노래)라며 즉석에서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가요를 부르시던 모습이 지금도 또렷이 떠올라.
이렇게 시나 노래는 한순간이나 어떤 시절을 고스란히 되돌려 놓는 ‘마법’을 부리고는 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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