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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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고 만난 첫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못 보던 셔츠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왼쪽 가슴께에 붙은 작은 물건을 가리키면서 자랑을 시작했어요.
“이게 6년에 한 벌만 나오는 귀한 옷이다. 이게 그 상표다. 운 좋게 내가 샀다. 어때, 멋지나?”
“쌤, 그게 뭔데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셔츠에 붙은 상표에 온통 관심이 쏠렸어요. 뭔가 신기해 보였거든요.
“역시, 너희들은 알아보는구나.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이게 아주 유명한 상표다. 그리고 구하기가 진짜로 어렵다. 너희들이 입학하던 해에 한 벌 나오고 올해 처음 나온 거니까.”
모두들 갸우뚱하며 선생님 가슴에 달린 상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반 만물박사 홍민이가 빙긋이 웃으며 선생님께 다가갔습니다.
“쌤! 그거 매미가 허물 벗고 나간 껍질 아입니꺼? 맞지예? 생김새를 보니까 매미 중에서도 말매미 껍질 같은데예.”
“니는 무슨 소리 하노? 우리 학교에서 매미가 껍질 벗는 거 봤나?”
선생님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그런 엉뚱한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듯 크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홍민이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진짜가?” “어디 보자!” 하며 달려들었어요. 그 바람에 매미 껍질은 선생님 옷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니들 때문에 새 학기 맞아 산 새 옷 다 망가졌다. 다시 사려면 6년을 또 기다려야 된단 말이다. 물어내라, 욘석들아!”
선생님은 아이들을 피해 다니면서 끝까지 매미 껍질이 상표라며 우겼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홍민이와 명호가 선생님이 달았던 것과 똑같은 상표를 가슴에 달고 나타났습니다.
“쌤, 6년 만에 나온 그 귀한 옷, 우리도 한 벌씩 샀는데예. 울타리 향나무 가지에 많이 걸려 있던데예.”
“공짜로 막 주던데예.”
두 친구의 말에 선생님과 우리는 와르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화단과 울타리를 뒤져 6년 만에 나온 옷을 사 입었습니다.
상추쌈이 급식으로 나온 날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자, 오늘은 큰 쌈 싸 먹기 대회를 하자. 상품은 마스크다.”
우리는 듣도 보도 못 한 ‘큰 쌈 싸 먹기 대회’와 상품이 마스크란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와!” 환성을 질렀어요. 그러고는 다들 다투듯 한 손 가득 쌈을 싸서 베어 물었습니다. 턱이 아픈 것도 참고 선생님 평가만 기다렸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칠판 옆 텔레비전이 켜지더니 화면에 교실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쳐다봤습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하필 늘 예쁘게 꾸미느라 애쓰는 새침데기 현영이 모습이 보였습니다. 커다란 상추쌈을 물고 흰자위가 반이나 되도록 눈을 크게 뜬 채 말입니다.
현영이는 울음도 웃음도 아닌 소리를 내지르며 팔을 휘저었고 교실은 야단법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해 캑캑거리다가 토하기까지 했다니까요.
선생님이 입 크기를 잴 자를 찾는 척하며 텔레비전을 켠 거였어요. 물론 그전에 일부러 카메라의 초점을 현영이에게 딱 맞추어 둔 것이었지요. 정말 우리 선생님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가을 햇살이 따듯해서 졸음이 밀려오던 지난 주 금요일 5교시에도 사건은 있었어요.
“욘석들! 봄 병아리들도 아니고, 어찌 요리 꼬빡꼬빡이냐! 다들 일어섯!”
선생님은 우리를 끌고 뚜벅뚜벅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옥상이라니! 우리는 또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면서 선생님을 따라갔지요. 옥상에는 화재 대피 훈련 할 때 한 번 올라가 본 것 말고는 올라가 본 적이 없습니다. 옥상이라는 말만 해도 선생님들 표정이 달라지곤 했습니다. 절대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곳입니다.
옥상에 도착하자 햇살이 쏟아져 세상이 하얗게 보였습니다.
“책상에 엎드려 불편하게 자지 말고, 여기서 편안히 누워서 한숨 자자!”
선생님은 우리를 모두 누우라고 하더니, 누워 있는 우리들 가운데에 앉아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눈이 부셔 찡그리고만 있었습니다.
“자, 지금부터 배를 타고 큰 바다를 지난다고 생각해 봐라. 학교가 배다.”
엉뚱한 선생님의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교실에서 가장 많이 졸던 명호와 철민이가 누워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쌤, 진짜로 배를 타고 가는 것 같아요. 구름은 가만히 있고 학교가 앞으로 죽죽 가는 것 같아요.”
“몸이 붕 떴다가 쑤욱 내려가요. 우와! 멀미할 것 같아요.”
나도 등이 따듯해지자 점점 눈이 감겼습니다. 둥둥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등으로 전해졌습니다. 명호가 한 이야기 때문인지, 정말 배를 타고 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조용해지자 학교 옆 아파트 아주머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걱정 마세요. 수업 중입니다.”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외치자 아주머니들은 웃는 얼굴로 급히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은, 이제까지와는 좀 달랐습니다. 선생님이 이상한 수업을 하면 항상 웃으면서 끝났는데, 어제는 좀 달랐거든요.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지금도 마음이 좀 이상합니다.
체육 시간이 되었는데도 선생님은 준비물을 챙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선생님 눈치만 살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운동장 구석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느티나무를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누워 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전교생이 다 보는 운동장에 벌렁 드러눕기가 어디 쉽나요? 체육복을 입었다지만 옷도 버릴 테고, 여자애들은 머리에 흙 묻는다고 투덜댔습니다.
“누워서 보면 가슴이 땅하고 나란해져서 색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등으로 나무뿌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들어 봐라. 또 느티나무 이파리는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봐라.”
우리는 곧 조용해졌습니다. 이런 수업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 처음에는 늘 조용해져요.
바람이 건듯 불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유리 막대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가 품고 있는 공간이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엄청 넓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얼굴까지 푸르게 물이 들 것 같았습니다.
“쌤, 나무가 하늘로 솟아올라 가고 싶다 캅니더. 가만히 서 있으니까 갑갑하대요. 이파리로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는 것 같아예.”
“맞아예. 나무가 ‘니도 갑갑하면 같이 날아가자’ 하고 자꾸만 귀에 대고 살살 꼬십니더.”
현영이의 말에 홍민이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라모 스리디 영화네.”
하늘이도 끼어들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친구들이 생기자 나무에 기대어 서 있던 선생님이 갑자기 쑥 나서며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서 상상해 봐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마라. 무조건이다.”
“…….”
“지금…… 나는 죽은 몸이다.”
“…….”
“죽은 내 몸이 녹아서 슬슬 흘러내린다.”
“…….”
“손이 흘러내리고 얼굴이 흘러내린다……. 이제 살점은 다 흘러내렸다. 나는, 흰 뼈만 남았다.”
“…….”
“흘러내린 내 몸이 땅으로 스며들어 나무뿌리로 들어간다. 흰 뼈는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
“뿌리로 들어간 내 몸이 나무둥치를 타고 오른다.”
“…….”
“나무둥치를 타고 오르다가 땅에서 들어온 물과 만났다. 흙냄새가 난다. 내 몸의 냄새도 난다. 내 몸의 냄새를 기억해라.”
“…….”
“드디어 제일 높은 나뭇잎에 닿았다.”
“…….”
“자, 땅바닥에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보아라. 어떠냐?”
“…….”
띄엄띄엄 명령하듯 내리는 선생님 말에 나무 아래 우리들은 불이 꺼진 듯 조용해졌습니다. 한참 뒤 한쪽에서 소리 죽여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마 수연이일 것이라 짐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훌쩍이는 소리가 동그라미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진짜, 마음이 이상해요. 쌤! 그만해요.”
철민이가 큰소리를 내며 되똑 일어서더니 옷을 툴툴 털었습니다.
“왜? 너 울었냐?”
선생님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더니 장난기 어린 얼굴로 철민이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부셔서 그렇지, 울기는 누가 울어요?”
철민이는 선생님을 마주 보지 못하고 애꿎은 옷만 툴툴 털면서 선생님을 뒤돌아섰습니다.
철민이에게서 튕긴 햇살이 눈까풀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수런수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옷만 터는 척하며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선생님은 희미하게 웃고만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반 친구들은 선생님이 또 어떤 이상한 수업을 할까 이것저것 따져 보고 미리 예상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허탕입니다. 얼결에 속절없이 당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날씨나 화단 등 주변의 변화를 자세히 살피는 일은 단체로 습관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우리가 먼저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선생님도 그럴 겁니다. 우리를 놀라게 할 일이 또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을 테지요.
겨울에는 또 어떤 일이 있을까, 기다려집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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