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 이대로 좋은가*
* 제1부를 이루는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위하여’는 모두 네 꼭지의 글로 이루어지는데, 이 글인 첫 꼭지는 ‘6?25전쟁’ 61주년을 맞은 2005년 6월에 쓴 글을 가필하여 2011. 6. 19에 발표한 글입니다. 나머지는 2013년 7월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 쓴 글입니다.
1. 인류 문명사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문화’라는 말과 ‘문명’이라는 말을 사람들은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함께 혼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화’와 ‘문명’은 분명히 동일한 용어가 아닙니다. 영어에서는 문화를 culture라 하고 문명을 civilization이라 하며, 독일어나 불란서어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구분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culture란 언어, 종교, 풍습 등 주로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양식들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명civilization은 어떤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양식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전파될 수 있는 보편적인 물질적 생활방식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어떠한 원시인들에게도 다 자신들의 문화는 있습니다. 그러나 원시인들에게는 문명이 없습니다. 있어도 아주 낮은 단계의 원시적 문명이 있을 뿐입니다. 즉 문명이라는 말은 주로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서 생활하는 물질문명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큰 변화(이른바 발전)를 거쳐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추구한 “인류의 문명사”라는 수레는 크게 두 바퀴로 굴러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쪽 바퀴는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생각하여 부단히 ‘도구’를 발명·개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 바퀴는 자기와 다른 ‘이웃 인간집단’들, 즉 이웃씨족, 이웃부족 또는 이웃민족이나 국가들을 정복 대상으로 생각하고, 부단히 ‘무기’를 개발·생산하여 온 것입니다.
보다 좋은 도구를 만들어야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 이용할 수 있으며, 보다 좋은 무기를 만들어야 다른 ‘인간집단’을 자기 마음대로 정복·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류 문명사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하는 ‘도구’의 부단한 개발과 다른 ‘인간 집단’을 정복 대상으로 하는 ‘무기’의 개발을 계속 추구해온 것입니다. 더욱 좋은 도구를 만들어야 힘을 안 들이고 육신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획득할 수 있으며, 또 상대방보다 더욱 좋은 무기를 만들어 가져야 상대방과 싸워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기란 본래 살생의 도구입니다. 따라서 좋은 무기란 다른 동물 또는 다른 사람을 보다 효과적으로 살상 파괴할 수 있는 도구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 문명사의 발달이란 ‘도구’의 개발과 ‘무기’의 개발이라는 두 바퀴로 정신없이 달려온 변화의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구’의 발달은 석탄, 석유, 원자력 등으로 만드는 전기라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돌아가는 각종 자동화 기계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으며, 무기의 발달은 드디어 핵무기라는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 20세기까지의 인류의 문명발달사였습니다.
2. 문명사에 대한 대자연의 저항: 무한한 인간의 욕망과 유한한 자연자원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서 어떤 선각자들은 지난날 인류 문명 특히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을 추구했던 서양 문명에 대해 회의를 갖고 “서양 문명의 몰락”을 말하게 되었고, 또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문명사는 분명히 하나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어떤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날 정복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대자연이 두 앞발을 들고 사람에게 달려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인류가 도구를 개발해서 계속 정복하려고만 생각했던 대자연이 인류에게 이의를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자원의 고갈”이며, 둘째 “환경의 오염”, 셋째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여러 가지 이상 기후의 발생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 자원의 고갈은 우선 석유자원의 고갈 문제입니다. 인간들의 욕망은 무한한데 석탄과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은 유한하여 그것이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가들 사이에 유한한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살인적 전쟁이 빈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석유와 석탄 등 자원의 바닥이 보이자 인류는 핵 발전으로 자기들의 욕망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핵 발전은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사고나 지난번 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보여준 것과 같이 무서운 방사능 오염으로 지구촌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폐허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사능의 오염 확산 사태는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지구촌 환경의 오염 문제는 비단 방사능 오염의 위험뿐 아니라,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공기의 오염과 이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산화탄소 발생률이 세계 7위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지구촌의 허파라고 불리는 나무들을 유라시아 대륙의 도처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 밀림 도처에서 마구 베어내고 있어서 사막화 현상으로 인한 물 부족 문제를 초래하고, 지구촌은 자정능력을 상실하여 공기와 물의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셋째, 그 결과로 지구촌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여러 가지 이상 기후 현상들이 도처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그동안 인류가 정복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대자연이 “내가 진정 너희들의 정복 대상이냐” 하고 외치는 저항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저마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의 부자들이 자연 자원을 소모하고 있는 정도로 많은 물자를 소모한다면, 그리고 오늘날 한국인들이 배출하고 있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정도로 세계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배출한다면, 과연 지구촌의 자원, 환경, 생태계가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인류의 앞에 다가오고 있는 위기의 신호를 바로 보고 바르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인류는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생각했던 문명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될 때가 온 것입니다.
3. 문명사의 발달과 약소민족의 저항
그리고 인류 문명사 발달의 또 하나의 ‘바퀴’라고 말씀드린 ‘무기의 발달’은 어떻습니까? 무기란 사람을 죽이는 도구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원시시대에는 주먹 센 사람이 강자였습니다. 그러나 ‘칼’이라는 무기를 만들어서 좋은 칼을 잘 쓰는 사람이 ‘강자’로 되었고, 칼보다는 좋은 ‘활’을 잘 쓰는 사람이 강자로 되었으며, 드디어는 성능 좋은 총을 만들어서 잘 쓰는 사람이 강자로 되었습니다.
그러다 현대에 와서는 ‘핵무기’라는 무기를 만들어 쓰는 자가 강자로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한 것도 미국이 먼저 핵무기라는 엄청난 살상 파괴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핵무기를 먼저 만든 미국도 20세기 후반 1950년 Corea* 반도에서의 ‘6·25전쟁’ 때부터는 그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최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남북의 군대들 사이에서는 핵무기를 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남측에서는 ‘한국’, 북측에서는 ‘조선’이라는 용어를 선호하지만, 이 글에서 저는 그 대신 Corea를 사용하겠습니다.
핵무기는 적과 우군을 구분하지 않고,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과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너무도 많은 생명을 살상하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6·25전쟁’ 때 핵무기의 사용을 시도했지만, 트루먼 대통령이 이 건의를 거부하고, 맥아더를 해임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이 핵무기가 다른 약한 집단, 작은 나라 약소민족들의 저항 앞에서 그들을 정복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최강을 자랑하며, 각종 신예무기와 수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은 그 후 월남 전쟁에서도 월남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구실로 전쟁에 참여했지만 핵무기를 쓸 수 없었고, 비록 ‘고엽제’라는 또 하나의 무서운 살상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월맹군에게 패하고 월남이 공산화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그 후 미국은 지금도 각종 최신예 무기들과 수백 개의 핵폭탄을 생산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 폭탄으로 저항하는 ‘이슬람’ 사람들이나 ‘결사항전’하는 베트남 사람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을 핵무기나 고엽제로 이길 수 없지 않았습니까? 현재 미국은 핵무기와 각종 신예무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약소민족의 처절한 저항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현실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약육강식이 통하는 인류 문명사 속에서 한때는 보다 살상 파괴력이 큰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상대방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도였습니다. 그렇지만 1950년 6·25전쟁이 휴전 상태가 된 그때부터는 핵무기까지 보유한 미국의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라는 것도 약자 또는 작은 나라들, 즉 약소민족 사람들의 결사적인 저항을 정복하는 수단으로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한 것입니다.
4. 6·25전쟁 61주년을 맞으며 다시 생각하자
여기서 저는 인류 문명사가 새 방향을 찾기 위해서 ‘6·25전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토요일은 6·25전쟁 61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동양 사람들은 60갑자를 가지고 생활해 왔기 때문에, 60갑자가 다시 시작하는 그날을 회갑이라고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동족상잔의 6·25가 ‘회갑 날’을 맞았는데 우리가 이날을 무심코 지나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닙니까?
제가 “6·25전쟁, 61주년을 맞으며 다시 생각해 보자”고 제 발표의 부제를 삼은 이유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6·25전쟁’ 61주년을 맞으며 우리 민족 구성원이라면 진정으로 이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950년 6월 25일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제가 목숨을 걸고 철조망과 지뢰밭 그리고 민족분단의 임진강을 건너면서 지금까지, ‘6·25전쟁’의 의미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물으며 60년 동안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입니다. 그동안 저는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들을 넘어야 했습니다.
‘6·25’는 우리에게 무슨 날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제가 얻은 결론은 이 날은 우리 민족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 아니라 세계 문명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이며, 우리 민족은 약육강식하며 살아온 “인류 문명사”에 새 방향을 찾아 주어야만 할 “세계 문명사적 전환”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명을 갖게 되었다는 결론을 주는 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6·25전쟁’은 과연 왜 일어났으며, 어떤 경과를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간단히 생각해 보십시다.
‘6·25전쟁’이 ‘대한민국’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한 “남침” 전쟁이냐 아니냐? 라든지, ‘6·25전쟁’은 원래 Corea 민족 내부의 지역 간 분쟁인데 그것이 외세의 개입에 의해 확대된 미·소 간의 축소된 세계 제3차 전쟁이라든지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Corea가 북위 38도선으로 남과 북이 분단된 것은 미국의 군사적 편의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을 소련이 수용한 결과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후 1948년에 미국이 이승만 씨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을 수용하여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을 수립하게 한 것도 분명합니다. 물론 당시 Corea 사람들의 대다수 성원들은 “단독정부를 수립하면, 남북 간에 전쟁이 불가피해진다”는 이유로 그것 즉 남한만의 단정수립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자 남한의 점령군이었던 미국의 방침대로 ‘대한민국’이라는 분단국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8·15’ 당시 북한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또 하나의 분단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용인하고, 자기들이 갖고 있던 탱크와 각종 무기들을 이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인계해 주고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950년에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발생한 것입니다. ‘6·25전쟁’ 직후 상당기간 남측에서는 ‘6·25전쟁’을 “6·25동란”이라 불렀고, 북측에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릅니다.*
* 남측에서 “6·25”를 “6·25동란”이라고 부른 이유는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북측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내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다 근래 특히 남과 북이 “국제연합”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뒤로는 “6·25동란”이란 말을 쓰지 않고, “6·25남침” 또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Corea 반도의 북쪽에 세워진 또 하나의 정부로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될 또 하나의 국제법적 실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북측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란 용어를 계속 쓰고 있는데 북측은 즉 우리 선조님들이 세우고 지켜온 “민족의 국가”는 결코 둘일 수 없다는 입장에서 두 개의 분단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조국’은 1945년 이래 미국에 의해서 분단 점령되었지만,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일제’를 물러가게 하기 위해 싸웠듯이, 미제가 물러가게 하기 위해 싸운 것이 “6·25”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6·25”에 대한 남과 북의 입장을 종합하면 남과 북은 비록 하나의 민족 국가는 아니지만 “남과 북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내정 불간섭”, “비방중상 금지” 그리고 “상호 불가침”을 지키면서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을 쌍방 모두 만방에 약속한 것입니다.
어쨌든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소련제 탱크를 가지고 38선을 밀고 내려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국제법상 대한민국 영토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이 침범했다는 뜻으로 “유엔 결의”에 따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개입하여 국제적인 전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 다시 미국이 책정했던 38선 부근에서 휴전이 성립되어 남북 분단 상태로 된 채 60년의 세월이 흐르고도,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 이래의 현대 사회에서 전쟁을 하고 그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60년이 경과한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난날 남측은 미국을 믿고 많은 주민들의 반대의사를 무시한 채, 1948년 “5·10 단독선거”로 ‘분단국가’를 수립했으며, 북측은 소련을 믿고 ‘조국해방전쟁’을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국가에서든 국가권력을 담당한 사람은 저마다 자기 국가의 “국익”National interest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그 어느 강대국 지도자도 결코 약소민족을 위해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아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60년 전의 옛날이야기는 접어두고, 2000년대도 10년이 지난 2011년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십시오. 남과 북은 적대관계를 유지한 채 적대적 군비경쟁을 하느라고 북에서는 백성이 굶주려 죽어가고, 남에서는 청년 실업자가 늘어서 자살하는 청년들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라있습니다. 세계의 누가, 그 어느 강대국 정치가들이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습니까?
미국과 중국은 2006년의 ‘미·중 회담’에서 “Corea 반도는 현재의 분단 상태를 변경시키지 않고, 현상 그대로 유지한다”고 비밀협약을 해두었다고 합니다. 현대판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십니까? 이 사실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폭로한 사실입니다.*
* 「워싱턴 포스트」 2006. 9. 8자.
그래도 여러분은 Corea 반도의 주변 강대국들인 미국이나 소련 또는 중국을 믿거나, 자신들의 운명을 강대국 정치가들에게 믿고 맡겨두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작은 민족이 약육강식하는 문명사의 시대 속에 살아남자니,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일본, 미국, 소련,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며, 이소사대以小事大하는 사대주의적 사고가 불가피했다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21세기 중반을 바라보는 이제는 약자와 강자가 더불어 사는 “평화공존”의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일에 우리 민족이 앞장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Corea 민족은 참으로 “착한 백성 평화애호 민족”입니다. Corea 사람들은 고려왕국이 Corea 반도에 하나의 국가를 이룩한 이래 몇 백 년 아니 천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다른 민족이나 다른 국가를 침략하거나 노예화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이 없는 평화애호적인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세계 최강대국이 된 미국의 군사적 편의에 의해서 남북으로 분단된 채 두 개의 정권을 수립하고, 소련 탱크와 미국 비행기를 믿고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싸움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얼마나 많은 국토가 폐허로 되었습니까? 이런 비극적인 싸움질을 하고 6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전쟁 종결 처리인 ‘평화협정’을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합니까?
그리고 또 하나 더욱 한심한 것은 남과 북 당국 간에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해서 “6·15남북공동선언”, “10·4남북공동선언” 등 수없이 많은 약속들(계약서)을 국가원수들이 서명 날인하고도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공존”, “공생공영”하는 신뢰가 형성될 것이며, 어떻게 하나의 통일 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평화적 통일”, 그것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의무이고, 모든 국민의 의무입니다.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하신 함석헌 선생님 말씀대로 국민들이 깨어나서 정치인들이 세계 문명사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하는 일에 우리 민족의 남과 북이 힘을 합해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저마다 고민을 좀 해야 됩니다. 과연 인류 문명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만 지구촌이 안정되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인지, 그 방향을 바르게 찾아봐야만 하겠습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가 도구를 통한 정복과 피정복의 관계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무기의 힘을 통한 정복과 피정복의 관계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모든 백성들이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을 찾아서 제시해야 할 때가 닥쳐왔다고 확신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강대국을 믿을 게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 “평화롭게 함께 더불어 살아갈 길”을 찾아 나아가야만 합니다. 인류 문명사는 스스로 만든 ‘도구’와 ‘무기’ 앞에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야만 되는 한계 상황의 새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해 함께 토의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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