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에 부쳐
20여 년 전인 1994년 5월 10일,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들이 난생처음 투표권을 가지게 된 선거에서 뽑힌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백인들이 수백 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세월과, 백인을 최상위 계급으로 흑인을 최하위 계급으로 규정했던 ‘아파르트헤이트’ 50여 년의 시간을 박차고 나아가는 거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 날 넬슨 만델라가 한 연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넘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상처를 치유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를 갈라놓은 틈을 메울 순간이 왔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시간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정치적인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국민들을 가난과 박탈, 고통과 성차별 등 수많은 속박에서 자유롭게 할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흑인과 백인을 비롯한 모든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들이 가슴속에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당당하게 걸을 수 있도록, 그리고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나라, 무지갯빛 나라를 이곳 그리고 전 세계와 함께 평화롭게 만들어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들에게 넬슨 만델라는 화해와 더불어 변화와 민주화의 가능성을 상징했습니다. 국민들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누구도 그때의 희망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나라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거대한 산을 올라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산의 모양 자체를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몇몇 흑인들이 부자가 되고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수도 줄어들었지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전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라고 알려져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입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당당히 걸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닌, 타락한 공권력을 비롯한 수많은 부패와 폭력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사회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크게 목소리를 내고 뭉치기도 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보통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어린이들이 시련을 겪었던 이야기들이 왜 여전히 중요할까요? 나는 과거에 발생한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재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차별의 장벽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정책들이 거의 없어졌지만 오랫동안 굳어진 악습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쓰면서 나는 50년이 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세월을 가로질러 변화를 약속했던 새로운 정부의 초창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역사의 격정적인 공간과 시점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다양한 어린이들의 마음속을 여행하며 그 어린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서문에 쓴 것처럼 “우리의 내면에는 짐승이 존재하는데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악행을 범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국 독자들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더 알고 싶어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인류가 이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좀 더 평등하게, 좀 더 정의롭게, 좀 더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전하는 모습은 남아프리카 공화국만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삶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모든 곳의, 모두를 위한 도전입니다.
2013 9월 영국 본머스에서
베벌리 나이두Beverley Naidoo
장벽을 넘어
“장벽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말은 로한의 부모님이 집 아래의 토지에 낯선 사람들이 점거해 들어오자마자 했던 말이다. 로한의 아빠는 콘크리트 벽돌로 담장을 1미터가량 더 두껍게 쌓았고 그 위에는 가시철조망을 쳐 놓았다. 아빠는 일단 침범해 놓고 나중에 미안하다는 식의 일이 벌어지는 것을 확실히 예방하고 싶었던 것이다. 로한의 가족은 가파른 언덕 끝에 경사진 정원을 갖고 살고 있었다. 담이 높았지만 위층에 있는 로한의 방에서는 가시철조망 너머로 친구들과 함께 놀던 장소까지 내다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던 비밀 아지트 위의 야생 무화과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로한과 친구들은 도랑 아래로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널빤지며 파이프, 함석이나 플라스틱 쪼가리 등 무엇이든 쓸 만한 것은 닥치는 대로 끌어 모으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점거자들은 로한과 친구들이 지은 아지트를 해체시키더니, 그들이 사용했던 폐기물들을 재활용해서 다시 자신들의 판잣집으로 지었다. 로한은 친구들과 낡은 쓰레기통 뚜껑 두 개에 나누어 타고 부딪치며 쏜살같이 내려오곤 했었던 붉은 흙으로 덮인 ‘스키 슬로프’를 여전히 창문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점거자들은 그곳을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로 사용한다. 이제 그것은 언덕 비탈에 흩어져 있는 판잣집들 사이에 그어진 붉은 칼자국같이 보인다.
“이 성가신 상황에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긴 하구나.”
뒷담이 완성되고 나서 엄마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저 지저분한 붉은 흙을 묻힌 네 옷들을 빨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로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거기서 놀지 못하게 된 마음이 어떤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초기에는 점거인 무리 중 몇몇 여자들과 아이들이 물을 얻으려고 주택가로 물통을 들고 올라왔었다. 대략 2주 동안 로한의 엄마는 뒤뜰에서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그들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엄마는 그들이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통을 채우도록 허락했다. 대부분의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폭우와 홍수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북부 지방에서 가옥들, 동물들, 그리고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새천년이 밝았음을 알렸던 차였다. 텔레비전은 집 잃은 사람들과 그들을 지원하느라 애쓰는 장면들로 가득했다. 점거인들이 어디서 오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엄마의 말대로 어떻게 여자나 어린이에게 물을 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모든 것이 뒤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빨랫줄에서 옷이 사라진다는 불평이 이웃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첫 아프리카 인 가족이 인도인들이 사는 마운트뷰 지역에 이사를 왔었다. 누가 그랬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웃집 주마 부인을 포함해서 모두가 아프리카 인 가족을 의심했다.
“절대 저 사람들을 믿으면 안 돼요. 아시겠죠.”
주마 부인이 엄마에게 혹시 주변에 서성거리는 사람 보지 못했냐고 물어보면서 혀를 찼다. 하지만 그런 의식이 더 굳어지게 된 것은 필라이 부인의 집에 도둑들이 쳐들어 와서 필라이 부인의 목에 걸려 있던 황금 목걸이를 가져가는 바람에 부인이 심장병을 얻게 된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젊은 남자들이 판잣집 주변을 서성거리는 게 보였는데 그들이 그 패거리였을까? 필라이 부인의 아들은 경찰에게 점거인들 지역을 즉시 수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경찰은 수색을 하려면 더 많은 증거가 있어야 하고, 도둑들은 다른 데서 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제 새로운 신경과민증이 언덕 위 집주인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나라 어디서 발생한 것이든 절도, 침입, 혹은 자동차 납치 등에 관한 모든 보도는 자기들 정원 반대편의 점거인들에 대한 또 다른 이야깃거리로 번졌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로한은 자기 방 유리창 창살 사이로 바깥을 응시했다. 저 밖의 깊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표시로 초와 등잔 불빛이 깜빡였다. 엄마는 낮에 초인종 소리가 나고 여자나 어린이가 물통을 들고 있는 게 보여도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모든 이웃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왜 개인인 집주인들이 저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가? 그건 공공기관의 일이다. 점거인들에게 물을 주지 않으면 아마도 그들은 다른 데로 가서 판잣집을 짓고 살 것이다. 더 적당한 장소에 말이다. 아니면 그들이 떠나온 고향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점거인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서 물을 구해다 썼는지 얼마나 멀리 물을 길으러 가야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학교 가는 길에 로한과 아빠는 여자들이 머리에 물통을 이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저 사람들 진드기처럼 구는구먼. 한번 자리 잡게 해 주고 난 다음엔 떠나보낼 수가 없다니깐.”
아빠가 불평했다.
“다음엔 우리보고 전기도 좀 달라고 할 거다.”
그러나 로한은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로한은 물통을 이고 가는 여자들 뒤에 자기가 예전에 다니던 마운트뷰 초등학교의 검은색과 흰색으로 된 교복을 입고 흩어져 걷고 있는 아프리카 인 어린이들의 행렬을 훑어보고 있었다. 로한은 부모님이 반 학생 수가 적고 크리켓 구장과 럭비 운동장이 있는 더반의 사립학교로 전학시켜 주기 전까지 마운트뷰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마운트뷰 초등학교의 아프리카 인 학생들의 어머니 대부분은 언덕 위의 주택가에서 청소와 빨래, 그리고 다리미질을 했었다. 그런데 새해가 되고 점거인 어린이들이 급증하게 되면서 매주마다 등교 행렬이 더 길어졌다.
교차로의 교통 체증으로 로한과 아버지가 탄 차는 속도를 늦춰야 했다. 그 틈에 로한은 ‘철사 자동차’를 파는 아이를 여유 있게 지켜볼 수 있었다. 로한은 항상 기다란 운전대가 달린 철사로 만든 차를 조종하는 소년을 찾고 있었다. 열두 살이나 열세 살 정도 되는 것 같아 보이는 로한 또래의 그 소년은 매우 야위었고 몸이 가냘팠다. 로한이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소년이 이틀이나 사흘 이상 같은 차를 갖고 나오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철사로 만든 차가 어쩜 그렇게 멋진 모습을 갖추었는지 놀라웠다. 그것들은 쇼핑몰에 있는 아프리카 민속 공예품 상점에 있는 철사 장난감들보다 훨씬 더 정교해 보였다.
“와, 멋지다!”
로한은 속삭였다.
“저것 좀 보세요. 아빠.”
소년이 그들 쪽으로 응시하는 걸 보면 로한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소년의 눈길은 미끄러지듯 은색 보닛을 지나 바퀴 쪽으로 향했다. 소년은 한 번도 고개를 들고 로한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저건 우리 차랑 같은 벤츠예요. 아빠! 정말 멋져요. 저것 좀 살 수…….”
“아들. 그건 안 돼! 넌 우리가 차를 세우고 저 아이한테 얼마에 팔 거냐고 물어보자는 거지. 그렇지?”
로한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미소를 띠면서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 로한의 맘을 아주 쉽게 알아차린다!
“절대 안 돼! 만일 우리가 저 사람들한테서 물건을 사기 시작하면 우린 그들을 부추기게 되는 거야! 그건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니잖아. 그렇지?”
로한은 잠자코 있었다. 로한은 아빠의 주장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만일 점거인들이 떠나면 로한과 친구들은 자기들이 놀던 자리를 다시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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