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산물은 샛길로 간다
가락시장으로 가지 않는 유기농산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로 갈까요? 마트, 쇼핑센터 같은 소매점 유기농 코너로 직접 거래되기도 하지만, 농사꾼들로 구성된 생산자조합과 도시 소비자들로 구성된 생협(생활협동조합)이 아무래도 유기농산물 유통의 정통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를 자세히 알기 위해선 생활협동조합이나 영농조합과 같은 조합에 대한 기본을 알아야 합니다.
생산자조합, 영농조합
제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 일찍 수확하고 선별하고 포장해서 차에 실어 보내는 건 똑같아요. 차는 가락시장 대신 영농조합 물류창고로 갑니다. 우리 조합은 농사꾼 열여섯 명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영농조합입니다. 영농조합은 법인으로, 일반 기업과 같은 법인격을 갖습니다. 법인격이어야 통장 개설이나 농지 구입 같은 금융 거래나 계약, 등기 들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 단체의 정확한 명칭은 ‘영농조합법인 강원유기농’입니다. 우리 조합에는 사무실과 소포장실, 저온저장고, 창고 등이 있습니다. 커다란 냉장차도 있고 차를 운전하는 기사도 있습니다.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장이 있고 회계 관리하는 총무, 소포장과 거래처 관리하는 관리 직원도 있고요. 소포장실에서는 인근에 사시는 아주머니 서너 분이 근무합니다.
관리 책임 일꾼과 아주머니들은 상자에 담겨 온 수십 가지 농산물을 다시 꺼내서 각각 기준에 맞춰 작은 봉지에 포장하는 작업을 합니다. 날이 궂고 주문이 많을 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해요.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늦어도 오후 1시까지는 생협 물류센터에서 온 냉장차에 소포장한 물품을 실어 줘야 해요. 일정한 기준에 맞춰 작은 봉지에 포장된 물품은 다시 차에 실려 생활협동조합 물류센터로 갑니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4시까지는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농산물과 가공식품이 모인 물류센터에서 다시 한 번 분류됩니다. 각각 품목별로 포장된 물품이 이제는 최종 목적지에 따라 다시 나뉩니다. 길고 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각 물품이 늘어섭니다. 각 물품 옆에는 사람이 서 있고요. 컨베이어 벨트 위로 포장 상자가 지나가면서 상자에 담겨야 할 물건 앞에서 물품에 신호를 보냅니다. 신호등의 신호를 받은 물품을 그 물품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집어서 포장 상자에 담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품목별로 담겨 있던 물품이 목적지별로 다시 다 나뉘어 담깁니다. 물품의 분류가 끝나면, 포장 상자는 차에 실려 각 지역 생협 매장으로 갑니다.
강원도 화천 산골짜기에서 새벽에 수확한 농산물이 늦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서울에서 소비자 조합원을 만납니다. 엄청난 속도죠. 이런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우리 영농조합은 연 매출 15억 원이 채 안 되는 작은 회사입니다. 그러나 일반 기업이나 회사와 달리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요. 소비자들도 영농조합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영농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이나 다 어차피 같은 조합이니까요. 영농조합을 이해하는 게 결국 생협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윤 없는 가게, 생활협동조합
노동조합이나 신용협동조합, 농민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주택협동조합 등은 누가 뭘 하려는 것인지 이름만으로도 짐작이 되는데, 생활협동조합은 이름만 보아서는 뭔지 잘 모릅니다. 생활이란 말은 범위가 너무 넓어서 이름만으로는 종잡을 수가 없는 거지요. 유기농산물 판매하는 체인점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협동조합은 엄밀하게 따지면 소비자협동조합이 아닙니다. 조합원들이 공동구매하는 물품이 농산물이기 때문이에요.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최대화하려 하면 할수록 생산자인 농사꾼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공산품은 대량 구입으로 덤핑이 가능하지만, 농산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1990년대 말쯤에 시골로 올 준비를 했던 저는 운 좋게도 비교적 일찍 생활협동조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생협운동을 직접 겪었습니다. 수원에 살 때 한살림 소비자였고, 경실련 ‘정농생활협동조합’ 소식지를 만드는 일도 했고, 춘천으로 와서는 ‘춘천생활협동조합’을 만드는 실무를 맡아 조합원들과 함께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어요.
생활협동조합에 대해서 잘 정리된 이론 같은 건 만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사람들을 만나 이 소리 저 소리 주워들으면서 배웠습니다.
생협은 유기농업을 하고자 하는 농사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과 나누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거꾸로 도시 소비자들 역시 유기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사 먹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농사꾼이나 소비자나 이 일을 하기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농사꾼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나 제초제 같은 영농자재의 도움 없이 힘겹게 농사를 지어야 했지요. 퇴비를 만들어 뿌리고, 병충해와 원시적인 방법으로 싸우며, 끝없이 자라 올라오는 풀을 몸 노동으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한 품목을 전문으로 짓는 손쉬움을 버리고, 소비자의 밥상을 책임지기 위해 여러 종류의 농산물을 심었습니다. 이런 농사꾼을 주변에서는 손가락질하고 미친 짓이라고 욕하기도 했죠. 생산한 농산물은 볼품없고 양도 적었고요. 도시 소비자는 이런 볼품없는 농산물을 큰돈 내고 샀습니다. 큰 감자 하나 깎으면 될 걸 작은 감자 네댓 개씩 깎아야 하는 불편은 덤으로 따라붙었습니다. 식단을 짜서 미리 주문을 해야 했고, 싣고 온 농산물은 소비자들이 모여서 나누었지요. 나눔에 들어가는 비용을 추렴해서 운영하고 부족하면 더 내기도 했고요. 아무리 주문해도 오지 않는 물품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가 못 먹는 고통보다 농사를 망친 농사꾼의 고통이 더 클 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위로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일반적인 시장 원리로는 공감할 수 없는 짓을 서로 시작한 것이지요.
협동과 연대라고도 했고, ‘얼굴이 보이는 농산물 직거래’라고도 했고, 농사꾼은 소비자의 안전한 밥상을 책임지고 도시 소비자는 농사꾼의 살림을 책임지는 방식이라고도 했습니다. 서로의 권리가 아니라 책임을 강조하는 일종의 사회운동 성격을 띠었던 거지요.
소비자와 생산자들의 극단적인 불편은 1990년대 후반을 지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완화되었습니다. 작고 많지는 않지만 늘 살 수 있는 가게가 생겼고 나눔을 전담하는 실무자들이 생겼어요. 더불어 점차 전문성을 키워 갔습니다. 때맞춰 웰빙 바람이 불었고 유기농산물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났습니다. 소비자 생활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제도의 뒷받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요. 농사꾼들 역시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농사꾼과 소비자가 10배 가까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성장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갑자기 자라 버린 농산물은 허약해져 병충해를 쉽게 입습니다. 생협 역시 서로의 책임보다는 권리를 앞세우는 풍토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자연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책임으로 시작한 생활협동 운동이, 시장 원리에 맞추어 소비자의 권리를 우선하는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변모하면서 다시 농사꾼은 소외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샛길이 막다른 길이 되지 않으려면
유기농사꾼과 도시 소비자들은 그동안 비교적 손발을 잘 맞춰 왔습니다. 소비자가 미리 주문하고 농사꾼은 주문량에 맞춰 납품하는 방식이었지요. 전체 소비자가 자신이 먹을 농산물을 미리 주문하는 형태로, 농산물 유통에 직접 참여했던 겁니다. 이렇게 하면 유통기간이 짧은 채소는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이익입니다. 실무자는 갖다 놓은 채소를 어서 팔아 치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고, 재래시장 상인처럼 일곱 개 팔아 스무 개 값을 미리 벌어 놔야 하는 부담도 없습니다. 이렇게 생협 소비자들은 스스로 참여하는 계획소비를 함으로써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비싸고 드문 유기농산물 값이 더 비싸지지 않게 하려고 애썼죠. 벌레 먹고 못생긴 농산물뿐만 아니라, 농사가 잘 안돼서 양이 부족해도 소비자들이 이해했고, 풍년이 들어서 농산물이 넘칠 때는 기꺼이 더 사 주었습니다. 조합 경영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참여했습니다. 적자가 나면, 즉 충분한 조합 운영비가 확보되지 않을 때는 지갑을 열어 손실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웰빙 바람을 타고 조금이라도 더 자신에게 이로운 소비를 하겠다고 몰려온 사람들, 농사나 농민이나 농업을 생각해 볼 마음은 조금도 없이 그저 내 생각만 하는 ‘스마트’한 소비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일반 시장은 물론, 이 생협과 저 생협을 비교해서 이익이 되는 선택만 골라 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규격을 갖춘’ 농산물을 생산해 달라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유기농사꾼들한테 크고 반듯하고 흠 없는 농산물을 달라고 하는 건, 말하자면 퇴비나 유기질 비료를 팍팍 치란 얘기이고, 여러 작목 골고루 재배할 생각하지 말고 단작으로 ‘전문성’을 키우란 얘기입니다. 소위 유기농 자재로 쓰이는 천연 추출물로 만든 천연 약재를 유기 합성농약 치듯이 팍팍 치란 얘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농사꾼 처지에서는 그러지 않고서는 수지를 맞출 수 없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농산물의 크기와 모양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크기와 모양이 고른 농산물만 골라서 내놓으려면, 영양 과다 상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단작화는, 여러 작물을 고루 심고, 섞어 심고, 이어 심고, 돌려 심어 땅의 활용도를 높이고 병해충을 예방하고 땅심을 유지할 수 있는 작부(作付) 체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유기농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농산물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나친 요구는 그래서 부당하며 유기농을 망치는 일입니다.
유기농을 판별하는 기준을 바꾸자
우리나라에서 친환경 농산물 인증이 제대로 시작된 것은 2001년이다. 미국과 일본도 이즈음 유기식품 인증 제도가 시작됐으니 우리나라의 유기식품 인증 역사가 늦었다고 할 수 없다. 우리의 유기식품 인증 기준은 어떤 수준일까? 세계무역기구 가입 국가는 그 기준을 만들 때에 코덱스에서 정한 기준, 즉 국제 기준을 바탕으로 만든다. 우리나라, 유럽연합EU, 미국, 일본도 ‘코덱스 가이드라인 32호’에 따라 기준을 만들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유기식품 기준이 다른 나라보다 절대 낮지 않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유기농 인증이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바로 심사 방법론과 인증 방법론이다.
실험실 만능주의 혹은 결과 중심주의
겉으로 보기에 차이가 없는데 어떻게 유기식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유기식품과 일반식품의 차이가 식품 속에 개념적으로만 들어 있기 때문에, 즉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이 제품만 살펴보고서는 유기식품인지 아닌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필요하다.
농장과 가공공장을 찾아가 기준에 맞게 생산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일을 심사라고 하고, 심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심사원이라 한다. 그리고 심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제품에 붙이는 표시물(라벨)을 관리하는 일을 인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심사와 인증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나라의 유기식품 심사 방법은 한마디로 ‘실험실 만능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실험실주의를 달리 표현하자면 ‘결과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규칙 별표6’은 심사를 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이 별표6호를 읽어 보면 유기농에 대한 심사가 모두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험실에서 흙의 오염도, 수질, 작물의 잔류 농약, 우유나 축산물의 항생제, 심지어 퇴비에 항생제가 있는지 여부까지 분석하도록 하고 있다. 별표6은 이런 분석들을 위해 필요한 시료를 심사원이 생산 현장에서 어떻게 채취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놓은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실험실에서 실험을 통해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유기농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참 좋은 심사 방법으로 보인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을 검출해서 가려내겠다고 하니, 소비자 편에서는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증 방식에는 상당한 허점이 있는데, 그것은 실험실 분석을 통한 인증이 유기식품 인증에 정말 효과적인 방법인지 10년이 넘도록 이 심사 방법론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효과적이라고 다들 믿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살펴보자.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판단한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유기인증을 어떻게 할까? 이상하게도 그들은 실험실에서 분석을 하지 않고도 유기농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그게 가능할까? 나는 2007년 가을 일본유기심사(JAS) 일을 시작한 이래 줄곧 유럽연합, 미국의 기준에 따라 유기식품을 심사해 오고 있다. 이들이 정한 심사 방법은 실험실에서 하는 분석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 전까지 ‘한국식’ 심사를 해 오던 나는 처음에 그 차이가 무엇인지 정리가 안 돼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인증을 위한 심사에서 실험실 분석을 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속의 도구로만 아주 드물게 쓰일 뿐, 유기농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는다. 심사원은 논, 밭, 목장을 찾아가 흙을 직접 만져 보고, 작물과 동물의 상태를 관찰한다.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을 심사할 때, 동물의 외관을 보고 건강한지 평가한다. 사람의 얼굴과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건강을 알 수 있듯이, 동물도 그들의 행태와 겉모습을 보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의학적인 평가 모델이 쓰인다. 사육장 안의 공기는 냄새만 맡아 봐도 맑은 공기인지 나쁜 공기인지 알 수 있다. 일조량도 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물의 움직임을 보고,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사육 과정을 확인한다. 적정한 영양 공급이 되도록 사료의 양과 질을 관리하고 있는지 계산한다. 동물의 어미 아비가 누군지 찾아보고, 생산물을 추적해 본다. 사료를 생산하는 농장과 방목하는 목초지에 들어가 흙의 상태와 식물군을 조사한다. 흙 속에 기생충이 살 수 있기 때문이고, 여러 식물군이 있어야 풀을 뜯는 동물이 편식하지 않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시행 중인 이런 심사 방법들을 모두 열거하고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심사 방법들을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해 전문적인 심사원들을 훈련시킨다는 것이다. 심사원은 전문적인 평가를 위해 표준 급여량이나 동물의 소화흡수율 같은 데이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유기 심사원은 전문가로서 지식과 양식을 갖추기 위해 계속 교육을 받고 공부해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힘쓴다.
이와 같은 다른 나라의 심사 방법과 우리나라 심사 방법의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들은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훌륭한 도구인 실험실 분석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것일까?
어떤 성분을 검출해 낼 때 분석 기술을 사용하면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분석 기술이 발전된다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축적된 정보와 감성을 활용해 결론을 내는 사람의 직관적이며 정성적인 판단력을 분석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다. 실제로 분석 기술의 한계로 인해 유기식품 판정이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그들은 실험실 대신 심사원을 전문가로 양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인증기관들은 대부분 영세해 경영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심사원을 3D 업종 종사자쯤으로 대우해서 사람이 자주 바뀐다. 전문성을 갖춘 심사원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이렇게 어렵게 운영되는 인증기관들을 심지어 죄인처럼 보기도 한다. 언론에 유기농 못 믿겠다는 보도가 한번 나오면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비양심’으로 결론 짓고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당국의 계획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친환경 농업이 확대되면서 이익을 본 쪽은 잔류 농약 검사 등을 하는 분석 업종들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실험실 분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분석실로 들어가고 있다.
실험실에서 현장으로
우리가 ‘결과 중심주의’라면 유럽이나 미국 등은 ‘예방주의’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실험실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그들은 전문 심사원들을 양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관리 당국이 단속과 처벌을 해결책으로 삼고 있는 반면, 그들은 인증기관의 자율성과 관리 기술을 높여 문제가 생기기 전에 모니터링하여 사고를 예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앞에서 유기농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졌다. 유기농은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들어 있지 않은지를 두고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유기농이란 생물학적 순환, 생물 다양성, 토양의 생물학적 활성화를 높여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농사지은 농산물이다. 이런 생산 과정은 절대 실험실에서 분석해 낼 수 없다. 전문적인 심사 방법론을 활용할 때에만 유기적 생산과정을 평가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 우리는 어떤 심사 방법론에 손을 들어 줄 것인가? 어떤 성분이 있고 없고를 가리는 결과 중심주의를 선택해 실험실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생산 시스템과 생산 이력을 평가하는 과정 우선주의를 선택해 전문적 심사원을 양성할 것인가? 나는 감히 한국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실험실 만능주의가 유기농의 본질과 의미를 왜곡하고 있는 현실을 이제 그만 멈추자고 말하고 싶다. 실험실에 의존하면 유기농이 아닌 것이 유기농으로 판정될 수 있고, 유기농이 맞는데도 유기농이 아닌 것으로 판정될 수가 있다.
한국에도 전문 심사원들이 늘어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기술 수준을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소비자를 포함한 유기농 관계자들이 패러다임을 바꾸어, ‘유기농에는 어떤 성분이 있어야 해’ 또는 ‘어떤 성분이 없어야 해’ 하는 식의 물질 중심의 사고를 벗어날 때 심사 방법론도 바뀔 수 있고 전문 심사원도 늘어날 수 있다. 유기 심사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평가하는 전문적 업종이다. 이것은 절대로 실험실에서 분석되지 않는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