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잘 입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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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릿한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무슨 자동 인식 장치라도 해놓은 듯 더불어 아랫배도 싸하게 아파오기 시작한다. ‘저 스타일은, 아직은 눈에 익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출근길은 그래서 최악이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명동엘 다시 한 번 나가야 하나’ 하고 얕은 한숨을 뱉어낸다. 그런 내 속도 모른 채 낯선 스타일을 한 여인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 눈부신 날렵함.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었다. ‘그래, 명동엘 또 한 번 나갈 때가 되었단 말이냐, 벌써, 이렇게나 빨리, 아아 환상적으로 지겹기도 해라, 제길……도대체 이게 뭐냐, 에이, 엿같이, 제기랄…….’
윤세연은 옷을 잘 입는 여자다. 언젠가 사무실에서 소풍 비슷하게 하루쯤 짬을 내어 야외로 나간 적이 있었는데,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보라는 어느 진행자의 얘기에 그녀는 고향, 나이, 이름, 사는 곳 등을 무심히 밝힌 다음, “간단히 말해 옷 잘 입는 여자입니다”라고 끝맺었다. 그렇다. 세연은 옷을 잘 입는다.
몇 해 전, 사람들이 무슨 작정이라도 한 듯 보라색 톤의 옷이며 가방이며 구두를 입고 들고 신으며 난리를 피웠을 때, 사무실에 가장 먼저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사람이 그녀였다. 샌들이 아니라 예쁘게 장식된 외출용의 굽 높은 슬리퍼를 신고 귀여운 모양의 발찌를 낀 채 스타킹을 신지 않는 스타일을 처음 시도한 사람도 그녀였다. ‘아무리 예쁘게 생긴 신발이지만 그래도 슬리펀데, 사무실에서 신어도 되나, 또 스타킹도 안 신고서 말이야’ 하면서 조금은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고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타색이나 분홍색 계열의 귀여운 블라우스가 유행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세연이 제일 먼저 입고 있었고, 나비처럼 생겨 머리를 쭉 쓸어서 뒤로 집게 되어 있는, 모조 보석이 박힌 집게 핀을 단정하게 꽂고 나타나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게 만든 사람도 그녀였다. 패션 슬리퍼 앞으로 쏘옥 드러나는 양쪽 맨발 엄지에 무당벌레와 나비를 그려 넣고 나타난 사람도.
그래, 그러고 보니 세연은 옷을 잘 입는 여자라기보다는 유행에 민감한 여자다. 그 유행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도 슬픈 구석이 있어서 마치 그녀 주변에서 춤을 추는 것같이 느껴진다. 세연에게 자신이 입는 멋진 옷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이상하게도 유행을 가장 먼저(그래봐야 길거리에 온통 넘쳐나는 것보다 한 보름쯤 빨라서 결코 낯선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따르고 가장 늦게까지 그 유행을 간직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아직도 저 옷이야, 촌스럽게’ 하고 한 번 돌아볼 정도가 될 때쯤 그 유행과 이별한다. 따라서 옷을 잘 입는 세연은 한 일주일쯤만 돋보였다가 곧 잊힌 여인이 된다. 가장 평범한 스타일의 여인이 된다. 종로 거리에 세워놓고 ‘올 한 해 서울의 가장 흔한 젊은 여성 스타일’이라고 가슴에 팻말을 달아주고 싶은 여인이 된다. 이상한 것은 세연이, 그녀가 주목받는 일주일보다 그 이후의 시간에 훨씬 편안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그녀는, 그녀가 무심히 그 유행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편안한 시간들을 위해, 주목받는 일주일을 참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시내의 대형 백화점들을 거쳐 명동에 나갔다. 몇 바퀴인가 머리 아프게 돌다가 피곤한 다리를 두드리며 햄버거 가게에 앉아 차가운 밀크셰이크를 들이켜려는데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제기랄. 그러면서도 나는 결국 내가 이 피로한 순례를 결코 중단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기적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역겹고, 또 그게 뭐라고 이렇게 눈물이나 글썽거리며 앉아 있는 것도 역겹다. ‘나는 모든 게 다 불쌍해. 우선은 나조차 불쌍해…….’ 다시는 이런 식으로 중얼거리고 싶지 않다. 그저 다만 피곤할 뿐이다. 몇 해가 더 지나야, 내가 늙어지고 또 늙어져서, 사람들이 내가 십 년이나 낡은 스타일로 입든 황당하게 촌스러운 색깔로 입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게 될 것인가. 그래, 모든 것이 그저 피로할 뿐이다.
윤세연. 내 입사 동기인 그녀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사 년 전 나와 함께 이 무역회사에 들어왔다. 꼼꼼하고 차분하여 아마도 어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을 그녀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독일 발 팩스를 받고, 독일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으며, 사람들이 오면 안내하고 접대하고 통역해주는 일을 한다. 아니 그러기 위해 입사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그녀는 복사하고 서류 정리하고 사무실 청소하고 정수기 관리를 하며 시시때때로 그녀를 부르는 ‘세연 씨, 잠깐만’에 응해야 한다. 삐익 소리와 함께 둘둘거리며 팩스가 오면 그녀는 나른하고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여다보곤 했다. 물품 주문 내역이나 물품 수령 확인, 혹은 하자 상황, 수량을 늘려달라거나 줄여달라거나 하는 요청, 납품 일자를 조금 당겨달라는 요청이나 몇 월 며칠에 무슨 비행기로 입국하겠다는 알림 따위가 적혀 있을 뿐인 그 종이쪽지를. 어쩌면 그녀는 독어 작문 시간이나 고급 시사 독어 시간, 독일 고전문학 시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돋보였을 자신의 대학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때때로 독어 사전을 펼쳐놓고 회사에서는 결코 쓰일 일이 없는, 그러나 결코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고급 어휘들을 입안으로 웅얼웅얼 외우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근무 시간은 오후 일곱 시부터 오전 다섯 시까지다. 하여 늘 출근길에는 정시에 퇴근하여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피로한 퇴근 행렬과 맞부딪쳤고, 지친 퇴근길에는 일찍 출근을 서두른 쌩쌩한 출근 행렬과 만나야 했다. 시내 쪽으로 나가는 출근길 지하철은 자주 텅 비어 있었고, 주택가 쪽으로 향하는 아침 퇴근길 역시 한산했다. 언제나 반대편에 사람들로 꽉 차 출입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복잡한 지하철을 바라보며 가끔, 우리가 낯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근무하는 밤 시간,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이제 나는 어떤 곳으로 떠밀려가는 것일까 아뜩하게 헤아려볼 때가 있다. 그녀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아린다.
우리들은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쯤, 친구들이 다 모이기 편하게 시내 한복판에서 만나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 친목 모임에 나갈 수 없어 점점 그들과 멀어져갔고, 때때로 어렵게 월차를 내어 참석해도 친구들이 다 보는 인기 있는 텔레비전 사극이나 유명한 개봉 영화를 보지 않아 대화에 낄 수 없었으며, 너무 오랜만에 보는 녀석들 앞에서 우습게도 낯을 가리고 머쓱해지는 바람에 쓸쓸해져서는 일찍 자리를 뜨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근무하는 우리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서로 아껴주고 서로 짜증내고 서로 가여워하며 똘똘 뭉쳤으며, 그 뭉침은 달리 말해 고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립을 어느새 스스로 편안해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공교롭게도 저녁 식사 시간에 딱 물린 출근 시간 때문에 회사 근처 초밥, 우동 전문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때우다가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가끔 마주 앉았으며, 새벽잠이 쏟아지는 퇴근길, 텅 빈 지하철에서 함께 앉아 가다가 스르르 잠에 빠져서는 “저기요, 홍제역 다 왔는데요”, “세연 씨, 다음다음이 불광역인 거 아시죠? 졸지 마세요. 저는 여기서 내려요” 하며 서로 깨워주다가 힘없이 씩 웃곤 했다.
이 회사에서 이곳을 천직으로 여기며 어떤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대 근무 같은 게 아니라서 낮과 밤을 오가는 바람에 생활 리듬이 흐트러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 한 이 개월만 지나면 어느새 근무 리듬에 몸을 딱 맞추게 되지만, 어느 누구라도 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고 퇴근할 때 출근하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진한 열패감과 고독이 그 속에는 묻어 있다.
우리들은 텔레비전을 잊어갔고, 친구들을 잊어갔고, 이해심 많던 연인과 몇 달에 걸친 피로한 싸움 끝에 결별했고, 가족들에게조차 서먹한 존재가 되어갔고, 오후 두세 시쯤, 거의가 집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인 후 점심 먹고 쉬면서 출근을 준비할 그 시간이면, 아기를 돌보는 젊은 주부들만 간혹 유모차를 밀고 왔다 갔다 하는 아파트 단지를 멍한 눈길로 굽어보는 사람이 되어갔다. 때때로 식구들이 어질러놓고 간 집 안을 정리하다가 여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며 ‘얘가 이런 고민이 있었구나, 이제 많이 컸어’ 하며 노인네처럼 눈을 붉히기도 하고, 바쁜 식구들을 대신하여 세탁소 심부름, 공과금 납부 심부름 등을 도맡아 하며 실직자가 된 기분에 싸이기도 했다. 이웃들은 간혹 우리 집에 음식 접시를 들고 와서 “그 집 아들 낮에 집에 있는 것 같던데 우리 집 택배 물건 좀 받아줘요, 경비실에 맡기려니 영 찜찜해서… …”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어머니는 “외국 관련 일이라 야간에 일해요, 노는 게 아니고” 하면서 필요 없는 설명을 굳이 덧붙이며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화난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곤 했다. 누구라도 그런 구질구질한 기분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얼마 전부터 나는 집에 여섯 시쯤 도착하여 씻고 아침잠을 자고 어머니가 차려놓고 나간 점심을 먹은 다음, 출근하기 전까지 회계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종일 그 일에 매달리며 학원도 다니고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떨어지곤 하는 그 시험을 나는 마음을 비운 채 붙들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모진 결심으로 마음을 다잡았다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무리를 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이 답답한 공부의 진행 속도를 그저 누리고만 있다. 나도 알 수 없다. 그래, 어쩌면 다만 한낮의 그 막막한 기분이 싫어서일 수도 있다. 점심을 먹고 베란다에 나가 힘없이 담배를 피우며 조금 더 잘까, 게임이나 할까, 비디오라도 한 편 볼까 헤아려보는 것이 싫고, 때때로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는 날엔 몰골 흉하게 낮술을 하거나, 베란다에 나가 뜸하게 지나가는 말쑥한 행인들을 겨냥해 침을 뱉거나 “야, 임마” 하고 소리친 다음 얼른 숨는 장난이나 치고 마는 내 모습이 싫어서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기약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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