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전례가 없는 워크숍에 도전하다
1. ‘손 학문’이란?
한을 풀다
2007년 10월 20일, 게이오기주쿠 대학(이하 게이오 대학으로 표기)에서 학생, 교직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손 학문을 권합니다’ 워크숍을 개최했다. 최근 여러 해에 걸쳐 만지는 행위 를 테마로 한 각종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워크 숍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나는 전례 없는 흥미로운 워크숍 을 만들 생각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썼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짧은 안내문에 대학을 입학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응축해 보았다.
만지는 체험 워크숍 ‘손 학문을 권합니다’
이 손 저 손으로 터치(touch), 캐치(catch), 리치(rich)!
일본의 계몽 사상가이자 교육가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자신의 견문에 기초한 문명론으로 근대 일본을 이끌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눈과 귀로 연구하는 학문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바야흐로 만져서 살피고 배우는 ‘손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시작할 때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도 깜짝 놀랄 ‘손 학문’을 권합니다!
시각장애인이란 시각을 사용할 수 없는 약자인가, 아니면 시각을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사람인가? 최근 일반인과 시각장애인이라는 구분을 대신해 ‘보는 일반인(見常者)’과 ‘만지는 일반인(觸常者)’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떠오른다. 나는 이 워크숍에서 안내자라고 할 수 있는 만지는 일반인이 자신의 체험담을 이야기하면서 보는 일반인과 함께 만지는 세계의 창조적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은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고사성어이지만, 사실 세상에는 만져야 알 수 있는 것과 만지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존재한다. 이런 촉 문화의 매력을 숙지한 사람들이 바로 시각장애인, 만지는 일반인이다. 깜깜한 방 안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만져 보는 체험 워크숍에 참가하는 일반인과 만지는 일반인의 교류를 통해 탄생하는 신선한 ‘깨달음’과 ‘구축’을 경험하길 바란다. 풍요로운 촉 생활이 당신을 기다린다. 백문이 불여일촉이다.
만지는 일반인과 보는 일반인이라……. 말장난으로 가득했던 나의 20대와 30대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문구를 이제 와 다시 읽어 보니, 낯간지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참고로 이 책에는 내가 20년간 벌인 일들의 성과를 잔뜩 소개해 놓았다. 독자 여러분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 수 있으니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것이다. 풍요로운 촉 생활,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만지는 것만 못한 세계가 정말 존재할까? 나의 개인적인 너스레에 그치고 말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길 바란다.
그나저나 시각장애인인 나와 게이오 대학은 나름 인연이긴 한가 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게 1987년이다.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지건만 벌써 20년도 더 지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시각장애인은 대학 진학을 허가도 받지 못했다. 전쟁 뒤 선배들의 노력으로 점자 입시를 실시하는 대학이 서서히 증가했고, 현재는 배리어 프리 추세에 힘입어 대학 생활을 누리는 시각장애인 학생을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내가 시험을 치르던 시절에도 점자로 입시를 치르는 게 당연했고, 입학 여부는 실력에 달렸다고 인식하는 시대였다.
자토이치에 대한 동경심에 일본사를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는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여러 대학에 원서를 냈다. 게이오 대학은 양다리 작전을 펼쳐 원서를 넣었던 학교 중 하나였다. 게이오 대학은 시각장애인을 받아들인 적이 없으니 점자 수험을 허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맹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평소 낙천적인 성격인 나는 ‘수험 거부라니, 구시대적 발상이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을 외치는 시대에 그럴 리가 없다.’라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선생님의 예상대로, 아니 내 예상과는 달리 게이오 대학은 내게 수험 자격을 주지 않았다. ‘전례가 없다.’라는 이유였다. 나는 맹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그때만큼 나의 장애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게이오 대학에서 입시를 치르지 못한 경험은 내가 ‘장애인’임을 확인하게 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다행스럽게도 제1지망으로 지원한 대학에 입학해 게이오 대학을 원망하는 일 없이 충실하게 학창 생활을 만끽했다(원망을 안 했다고는 하나, 실은 와세다 대학과 게이오 대학 사이에서 야구 시합이라도 벌어지면 나는 언제나 와세다 대학을 응원했다). 게이오 대학도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시각장애인 학생을 받아들이고 졸업생도 배출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80년대는 아직 장애인의 학습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시대여서 점자 수험을 공공연하게 거부하는 일이 이따금 벌어지던 시대였다. 게이오 대학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2007년 6월, 게이오 대학에서 장애 이해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강연과 워크숍)을 기획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단순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체험이나 점자 학습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 보고 독특한 관점에서 보도록 돕는 행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내게 맡기는 거라고 했다. 게이오 대학과는 깊지는 않아도 인연이 있다며 나의 수험 일화를 이야기하자, 프로그램 담당 교수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일찍이 문전 박대를 당했던 학생이 20년이 지나 당당하게 강사로 게이오 대학 문을 들어오다니,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삶의 태도로서의 촉 문화론
게이오 대학 일화는 최근 20년 사이에 일본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진전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이런 변화를 몸소 체험한 ‘역사의 증인’으로 행운이라 생각한다. 일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통한’과 ‘통쾌함’을 맛보았던 것은 내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손 학문을 권합니다’ 워크숍의 배경이 된 내 인생 경험과 연구 활동의 집약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특별하고도 즐거운 촉 생활’ 덕분에 전례 없는 워크숍이 가능했으니 이제는 내가 느낀 통쾌한 촉 문화 연구 현장을 독자들도 함께 체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식문화가 음식의 양과 질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활 모습을 규정하는 것처럼, 촉 문화도 단순히 만지는 재미, 촉각에 의한 발견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만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만지는 행위를 통해 얻는 세계관과 인간관, 말하자면 ‘삶의 태도로서의 촉 문화론’을 제안한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이 책은 만지는 행위와 삶의 태도를 연결시키려는 노력만큼은 전례 없는 시도를 한 책이다. 손으로 더듬어 온 나의 20년 삶이 독자에게 ‘느낌이 있는 만지는 문화’로 초대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다음 장에서는 ‘손 학문’의 내용을 소개하며 위대한 촉 문화로 함께 여행을 떠나자. 느긋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나누며 폭넓고 깊게 작업했던 게이오 대학에서의 워크숍 내용을 소개한다.
2. 3고보다는 3쿄
장애인은 ‘3고’를 갖추지 못한 사람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년쯤 전에 남자는 고학력, 고수입, 장신의 ‘3고三高’를 갖추어야 이상적이라는 말이 나돌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겉보기와 숫자로만 판단하는 ‘3고’야말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고도 경제 성장과 거품 경제 시대를 겪는 과정에서 생겨난 천박한 개념이다. 사실 장애인은 이런 ‘3고’와 가장 동떨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최근 장애인이라는 호칭을 놓고도 여러 논의가 벌어진다. 적어도 학력(=교육), 수입(=노동), 키(=외모) 부분에서 장애인은 부당한 차별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은 3고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타파하고 새로운 장애인상을 제시하려고 나는 ‘손 학문을 권합니다’ 워크숍을 계획했다. 내가 경험한 ‘풍요로운 촉 생활’을 정리하고 응용하면서 ‘장애인이란 3쿄(고考, 교交, 경耕. 모두 일본어로 음독하면 ‘쿄’라고 읽는다. -옮긴이 주)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신선한 발견을 참가자와 함께 공유했다. 워크숍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워크숍 커리큘럼을 통해 살펴보는 3쿄
① 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를 만지면서 살펴보자.
추리 능력考
정보의 양과 전달 속도 면에서 시각은 다른 감각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은 시각을 우선하는 현대 생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일목요연하다.’는 말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시각이 얼마나 편리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한눈에 반한다.’는 말처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도 많고 표면적으로만 이해되는 것도 많다. 한편 촉각은 손바닥으로 스친 점spot을 통해서 정보를 입수한다. 손바닥을 위아래 좌우 앞뒤로 움직이면서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면으로 이어지며 면은 입체로 넓어진다. 능동적으로 손과 머리를 사용해 점을 확대하는 과정이 바로 ‘추리 능력’이다.
주위를 어둡게 한 뒤에 무엇일지 상상하면서 세계 각국의 생활용품이나 악기를 찬찬히 만져 보자. ‘이거구나.’, ‘이건 이런 느낌이네.’라는 식으로 시각에 의존해 소통하는 게 아니라,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느껴 보자. 마지막으로 방에 불을 켜고 촉감으로 살피던 물건을 눈으로도 확인하자. 손으로 만질 때 받았던 인상과 눈으로 보았을 때의 인상을 비교해 보니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개개인의 감상을 서로 나눈다면 워크숍이 훨씬 재미있어진다. 딱 보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 시각은 분명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일상에 유용한 감각이지만, 수동으로 정보를 입수하기에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다. 때로는 시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알아차리는 촉각으로 추리하고 생각해 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② 헤이안 시대 시각장애인 승려가 들려주는 『헤이케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껴 보자.
곱하고 나누는 능력交
촉각은 온몸으로 느끼는 점이 특징이다. 시각에 의존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온몸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심오함을 잊어버리기 쉽다. 대중가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헤이케 이야기』*를 비파에 맞춰 읊조린다고 한들 단조롭고 지루하게만 느껴지지만, 중세 사람들은 비파법사가 연마한 울림 좋은 목소리와 구슬픈 비파 소리(음률)를 온몸으로 느꼈다. 마치 눈앞에서 흥망성쇠 역사가 펼쳐지듯이 장면을 상상하며 창조 각 정보를 시각 정보로 자유롭게 바꿔 오감의 교류를 연출했다. ‘시각을 사용하지 않는’ 시각장애인 예술인이기에 더욱 자유롭게 표현했으리라.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눈으로 얻은 시각 정보, 귀로 얻은 청각 정보를 기계적으로 처리한다. 정보 양에만 집착하며 발전을 이뤄 온 우리 사회는 덧셈 뺄셈의 논리를 중시해 ‘곱하고 나누는 능력’의 필요성을 망각해 왔다. 전근대 일본은 물질적으로 빈곤했을지 몰라도 누구나 곱하고 나누는 묘미를 알던 풍요로운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깜깜한 방 안에서 비파법사가 노래하는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온몸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 유연한 원동력을 체감하는 것이 워크숍의 두 번째 목표이다.
* 헤이케 이야기: 헤이케의 번영과 몰락을 묘사한 일본의 군기 문학.
③ 점 개수 맞히기 게임을 통해 개발해 내자.
일궈 내는 능력耕
“저는 밝은 곳에서 글을 읽지 못하지만 여러분은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어두운 곳에서 글을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환경이 바뀌면 입장도 바뀌며 우리가 아는 상식도 달라진다. 느닷없이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으라고 하기는 어려우니, 워크숍에서는 점의 개수를 맞히는 게임을 실시했다. 점 세 개 정도까지는 대부분 어떻게 배열되었는지 식별해 내지만 네 개 이상이면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 적다. 점자의 뿌리는 프랑스 군의 ‘밤의 문자’라는 암호에서 시작되었다. 밤의 문자와 같은 암호를 해독한다고 생각하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재미있다.
나는 13년 동안 시각에 의존하는 ‘보는 일반인’으로 살았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열네 살부터는 시각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성장하면서 촉각을 쓸 일이 줄어들고, 사용하지 않다 보니 무디어진다. 내 경우에는 촉각이 비교적 둔해지기 전에 시력을 잃어서 점자 읽는 법을 빨리 습득했다. 시력을 잃어괴롭기도 했고 생활하는 데 성가신 부분도 많아졌지만, 숨은 오감(그중에서도 촉각)의 힘을 일궈 낼 기회가 주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힘이 존재한다. 자신 안에 있는 미지의 가능성을 일궈 내야 참신한 세계관, 인간관을 개척해 낼 수 있다. 열세 살 때, 오감의 잠재 능력이 열리며 내가 맛보았던 쾌감은 일궈 낼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자신을 느끼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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