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입법 활동과 특별법 통과
특별법의 철학과 방향─진실인가, 정의인가
그 무렵 나는 내 나름의 경험과 지식에 기초해서 특별법에 담아야 할 내용과 그 논리적 근거를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도대체 지금 시점에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근본적인 문제부터 정리해야 했다. 우선 당시의 국면에서는 “승리자가 패배자를 벌하는 것”이 될 수 없었다. 우리는 남아공의 경우처럼 “미래의 정부를 구속할 책임규범과 기준을 확인할 국가의 의무”의 문제로 보았고 “앞으로도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역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법의 규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초안을 잡은 2004년 9월 17일의 ‘과청범국민위’ 발족식 발표문에 집약되어 있는데 당시의 내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우리의 기본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국가 바로 세우기, 국가의 기본 원칙인 정의 수립 차원에서 과거 청산 문제를 보았다. 한국에서 실패한 과거 청산의 대표적인 사례인 1949년 반민특위의 좌절은 민족을 배반하고 파시즘에 동조했더라도 반공 노선을 견지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며, ‘반공’이라는 이름을 빌린 어떠한 반사회적 행동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교육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한편 전후 독일에서 이루어진 나치 협력 세력의 숙청은 독일이 유럽에서 또다시 침략 국가로 등장하는 것을 억제했으며, 거꾸로 미국이 일본의 도쿄재판에서 동아시아 침략의 최고 책임 주체인 천황을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천황제를 부활시키고 전범들을 살려준 것은 지금처럼 일본의 정치와 사회가 또다시 우경화의 길을 걷도록 격려해준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즉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서유럽은 1990년대 이후 통합의 길로 나서고 있으나 일본과 중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국가 간 군비경쟁과 민족주의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최근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일본의 역사 망각증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위험한 우경화 경향, 그리고 전후 일본 사회의 특징인 물질주의와 보수주의는 모두 과거 청산의 결여와 연관되어 있다. 오늘 독일과 일본의 국가의 모습과 정체성, 그리고 양 국가가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각각 차지하는 위상은 바로 독일과 일본이 과거 자신의 침략전쟁을 어떻게 반성하고 사죄하였느냐는 차이에서 궁극적으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현대사는 반민특위 실패, 친일파의 독립운동 세력 제거라는 거꾸로 된 역사의 그늘 아래 있다고 볼 수 있고, 오늘의 독일과 일본의 모습 역시 전후 전쟁범죄자 처리 공과의 그늘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진상규명, 처벌과 명예회복, 사과, 구제와 포상, 각종 화해 조치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거 청산 과정은 국가, 정부, 정치 공동체의 도덕성을 수립하는 데 필요하며, 국민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도덕적 허무주의가 만연하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만성화되며, 국가 간의 정상적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한 사회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국가와 국가의 근본 철학과 방향을 완전히 재조정해야 한다면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은 건설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으며, 일종의 역사 만들기, 국가 만들기, 국민 만들기, 법과 질서 만들기 작업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진실을 앞세울 것인가, 정의 즉 가해자 처벌을 중시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요약하면 ‘정의 모델’과 ‘진실 모델’의 선택 문제였다. 다시 말해 과거 청산을 재판을 통해 진행하는 것과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조직을 통해 추진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문제였다. 이미 우리는 전자보다는 후자 쪽을 택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선택했다기보다는 전자가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에 현실론으로 후자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나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최대로 하고 처벌은 최소화하되 보상은 신중하게 해서 재발을 막을 안전장치를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그것은 주로 내가 활동해온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의식한 것이었다. 과거 청산의 방식과 성패는 정치적 국면, 과거 청산의 주체, 과거 인권침해 사건 발생 시점과의 시간적 거리, 대상의 성격, 운동 세력의 힘과 여론의 지지 등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의 과거 청산은 전쟁이나 혁명 등 비상한 상황 혹은 군부독재의 붕괴라는 ‘이행기’에 제기된 것도 아니었다. 특히 민간인 학살 문제는 발생 시점에서 매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것도 아직 한반도에 냉전이 상존하는 가운데 제기되었다. 민주화 이행기였던 1988년 국면에서 광주 5·18 학살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당시 시점에도 이미 사건 발생 후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러니 60년 전 한국전쟁기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가해자 처벌의 원칙을 내거는 것은 현실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적절치 않아 보였다.
당시 내가 가해자 처벌보다는 진상규명을 극대화하자고 주장한 이유는 광주 5·18을 비롯해 그 이전까지 한국의 여러 과거 청산 과정에서 그것이 너무나 불충분했고, 결국 한국의 국가나 사회를 뒤틀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광주 5·18 학살이나 제주 4·3 학살의 경우 일단 진상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지만 실제 가해 주체는 거의 밝혀내지 못했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경우도 83건의 조사 대상 중에서 명확하게 밝혀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군, 경찰, 공안 기구가 모두 자신의 비밀스러운 활동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가해 주체 규명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진상규명은 가해자 혹은 명령자를 밝혀서 그에게 책임을 묻거나 피해자 개인의 피해 상황 규명에 그칠 경우 가해의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밝혀낼 수 없다. 2000년에 설치되어 2004년에 활동을 종료한 의문사위의 활동은 이 점에서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거 청산에서 처벌 원칙은 완전히 포기할 것인가? 나는 법적 처벌, 정치적 처벌보다 ‘사회적 처벌’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국의 경우 과거 국가폭력 가해 주체를 제대로 밝혀낸 적도, 제대로 처벌한 적도 없었는데 그것은 이승만 정부 이래 과거에 국가 범죄를 저지른 가해 세력이 여전히 한국의 권력권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경우 처벌과 진실규명을 맞바꾸는 불처벌impunity이라는 원칙 아래 처벌과 정치적 사면을 교환하기도 했지만, 전·노 두 대통령의 형식적 처벌을 제외하고는 아예 처벌할 시도마저 할 수 없었던 한국에서 사면이라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진상규명을 통한 ‘사회적 처벌’의 길을 찾자고 주장했다. 즉 과거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의 책임이 밝혀질 경우에도, 그 책임을 법적으로 묻기보다는 가해자 명단 공개 등을 통해 그러한 잘못된 권력 행사에 협력할 경우 사회에서 인정받으면서 살아가기가 대단히 힘들어지고 자손에게까지 불명예가 이어진다는 것을 가르치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물론 진상이 규명되고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론이 형성되면 처벌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 가해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 생존해 있는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임이 틀림없었다. 유엔은 1968년 11월 26일 총회에서 ‘전쟁범죄 및 비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법상의 시효 부적용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으며,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인권단체들 역시 이 점에서는 확고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의 경우 비록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사건 발생 시점부터 조사 시점까지 공소를 정지시키고 그것에 기초해서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구속한 예가 있다. 과거 인권침해 사건은 모두가 대단히 정치적인 사건들이고, 따라서 과거 청산 작업 역시 대체로 정치권력의 의지에 기초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처벌을 해야 하지만, 처벌 여부, 혹은 처벌의 수위는 사회적 공감대나 여론 등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기울어졌다. 무엇보다도 처벌을 거론할 경우 과거사법 통과도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최대한도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국에서 더 이상 간첩, 혹은 좌익의 멍에 때문에 온갖 불이익을 감당하며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급박한 과제였다.
보론
1 과거 청산이란 무엇인가? 청산 대상은 제도인가 사람인가? 과거의 인권침해를 가능케 했던 법의 폐지가 우선인가, 책임자를 그 자리에서 추방하는 것이 우선인가? 과거에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명령한 장본인을 처벌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 제도적 청산보다는 인적 청산에 강조점을 두는 한국 사회의 그간의 관행은 극복되어야 한다. 인적 청산은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고, 제도적 청산은 과거의 공권력 범죄를 가능케 했던 법·제도 등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도덕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대중들에게 가시화할 수 있는 인적 청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까지 감옥에 보낸 나라에서 5·18 광주 학살의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5·18 학살을 가능케 했던 법과 제도의 청산이 미미한 것은 바로 제도적 청산 없는 인적 청산이 얼마나 일회성에 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제도와 환경의 극복만 강조하다 보면 역사적 국면에서 중요한 개인의 책임을 희석할 위험이 있지만, 반대로 권력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에게 지나치게 책임을 지우는 위험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인권침해를 가능케 하는 제도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과거 청산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고 찢어진 공동체를 복원하는 미래지향적인 작업이 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2 과거 청산인가, 과거사 청산인가?
:: 우선 과거사의 ‘사’는 역사[史]가 아니라 사건[事]이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 혹은 ‘과거사’는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범법 행위를 지칭한다. 청산이라는 것은 없애버린다는 의미로서 매우 강한 표현이다. 이미 발생하여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을 없애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가 현재의 일부가 되어 여전히 현재의 법과 정의를 굴절시키고 있는 점을 바로잡을 수는 있다. 그러니 ‘과거사 청산’보다는 ‘과거 청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 우선 우리는 과거의 역사, 과거의 사건을 청산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작된 기억은 여론, 혹은 대중 의식이라는 형식으로 잘못된 정치 권력을 정당화해주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일부가 된 과거의 잔재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과거 청산’이 더 적절하다.
3 과거 청산의 사회적 의미와 효과는 무엇인가?
:: 국가의 잘못된 폭력 행사의 책임자 규명과 응분의 처벌,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원인 제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러한 공권력 범죄가 재발할 위험이 있다. 즉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내릴 때 비로소 공권력 범죄의 반복 혹은 복수의 악순환을 막고 사회적 화해reconciliation와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 청산의 의의는 전쟁 같은 야만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보복적 갈등을 막고, 또 피해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 않도록 그들을 당당한 사회적 주체로 복귀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관계’를 복원하는 데 있다.
‘재해’가 아닌 어떤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기본적인 요건이다. 만약 분명한 피해자가 있는데도 가해 사실이 규명되지 않거나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공권력과 사회의 신뢰성은 확보되기 어려울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사망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만들어진 잘못된 정치적·사회적 관계의 틀은 그대로 남는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웃에 고통을 안겨준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양국이 새로운 갈등이나 전쟁에 돌입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가 간의 진정한 평화는 구축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 내에서 중대한 범죄가 처벌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죄’의 개념이 수립될 수 없다. 범죄자를 단죄하는 행위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 유지 활동이며, 최상의 교육 활동이다. 그런데 통치 혹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폭력 행위나 범법 행위에 면죄부가 주어지고, 또 정치적 이유로 사회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고통에 빠뜨린 집단·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버젓이 살아 있거나 오히려 권력권에 포진되어 있다면, 이것을 본 피해자나 여타 구성원은 침묵으로 저항하거나 적극적인 사회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더 이상 책임 있는 주체로 행동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기관이나 가해자의 인권침해 행위를 규명하는 것은 단순히 악이나 심리적 문제점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불균형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며, 그러한 비극이 발생했던 역사적·정치적 환경(냉전, 식민주의, 인종주의), 구성원이 복종함으로써 도덕적 자제력을 마비시키도록 하는 집단의 영향, 집단적 규범의 내면화,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것을 허용해 주는 언어들의 기여 등을 규명하는 것이다.
4 과거 청산은 국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청문회 등을 통해 과거의 국가폭력과 국가 범죄 사실, 가해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상황들이 공개되고 피해 사실들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알려지면,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고 사회 구성원은 타인이 겪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그러한 고통을 가져온 배경과 상황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이 가졌던 무관심과 공포도 같이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될 것이다. 진상규명과 그것을 공론화하는 작업은 바로 고통을 공유해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 것인가, 피해자 가족들과 피해자 ‘자신만의 것’으로 가슴에 묻을 것인가의 문제다. 따라서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규명 및 처벌은 일종의 사회적 정신치료, 국가 차원에서의 집단 정신치료라 부를 수 있다. 개인의 병과 달리 사회의 병은 “진실과 정의를 통해서 치료될Healing with Truth”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정신치료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겉으로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건강성, 즉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과 규범, 도덕률이 밑으로부터 무너진 상황이 초래된다. 용서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지만 진상규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범죄가 왜 누구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용서와 관용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청산은 일차적으로는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고 거시적으로는 정의 수립·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지만, 심층적으로 보면 화해와 통합을 가능케 하고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법·부정·부패·탈법·편의주의·목적 지상주의 등의 사회적·정치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5 피해자 보상 혹은 배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꼭 보상을 해야 하는가?
:: 피해자에 대한 보상·배상 문제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고, 또 다루기도 어렵다. 공권력의 잘못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경우 정치권력의 입장에서 혼란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들을 달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질적 보상이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구세력의 힘이 여전히 강하거나 정권의 기반이 약한 경우 구세력과의 적절한 타협을 통해서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포기하는 대가로 관련 시민·인권단체를 따돌리고 보상을 통해 피해자들을 포섭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생계가 곤란한 유족들도 명분보다는 실질적인 보상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보상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피해자들 간에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광주 5·18 등 한국의 과거 청산에서 이러한 점이 있었는데, 향후에는 이러한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선 진상규명 후 보상·배상 원칙이 분명히 확인되어야 하고, 불가피하게 보상·배상이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개인 차원의 보상은 최대한 축소시켜야 한다. 개인 차원의 보상은 공권력 피해로 인한 후손의 물질적 궁핍을 완화해 줄 수는 있으나, 차후에는 관련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왜소화하고 더 나아가 과거 청산 작업 전체의 정당성을 허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사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여 후대에 교훈으로 남기는 작업에도 큰 짐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보상이 요청되는 경우 결정 이전에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진상규명 이후 보상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에는 상징적인 보상 정도로 마무리하거나, 경제 능력이 없는 노약자들에 대한 복지 차원의 보상, 치료·교육비 지원 등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처벌과 보상 외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기념사업, 역사교육은 과거 청산의 마지막 수순이다. 사건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러한 잘못된 역사에 대한 극복 의지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념사업 역시 과거사를 과대하게 포장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동일한 비중을 갖는 역사적 사건들이 차별적으로 기념되고 기억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기념사업 역시 앞의 보상 문제와 마찬가지로 형평성과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단순한 정부 행정 업무의 하나로 간주될 경우에는 아무런 정신이나 의미를 담지 않은 의례적인 행사에 그칠 수 있다. 그래서 기념사업은 우선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야 하며, 동시에 각 기념사업 주체와 기관이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하고 사업과 비전을 공유하며 공동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하며, 중앙에서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기념사업이 과거의 사실을 박제화하거나 공로자를 영웅시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당면 사회적 의제들과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하며, 현재적 의미가 계속 확인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역사 해석 작업으로 나아가야 하고 새 역사 해석은 교과서에 반영되어 새로운 세대에게 교육되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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